체코개혁교회와 예배의식

체코개혁교회와 예배의식(1998년 9월)
    – 동유럽 단기선교 연수를 마치고 방문한 학생들과 만난 후

한번은 모선교단체의 젊은이들이 방학동안에 단기선교연수로 동유럽 여러나라에 흩어졌다가 체코에서 모여 세미나와 평가회를 갖고 나를 찾아온적이있다.  나는 그들이 동유럽 교회에서 무엇을 보고 느꼈을지 궁금해서 먼저 짧은 기간이지만 보고 느꼈을 젊은이들의 경험을 경청하였다.  대체로 공통되는 의견은 체코교회는 예배가 은혜스럽지 못해 교회가 성장하지 못할것 같다는것이다.

예배가 교회성장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는 그들의 생각과 전혀 문화적 역사적 배경을 달리하는 교회에 까지 고민없이 자신의 사고로 잣대를 대는것은 우리 목회자들의 생각을 반영하는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해보았다.  교회성장을 위해 최근 교회들이 예배의식에서 부터 예배당 시설에 이르기까지 컴퓨터나 정보로 급변하는 시대에 맞는 변화를 모색하고 있음을 여러매체를 통해 이 외국에서 까지도 감지할 수 있다.  변화가 목적을 갖든지 아니든지, 또는 의식적이든지 무의식적이든지 변화는 늘 있어왔다.  중요한것은 전통의 계승과 창조의 조화가 있는 변화를 올바른것이라고 한다면, 우리가 계승할 내용에 관해서 숙고하는 일이 반드시 선행되어야 한다는점이다.  그래야 창조와 적용이 올바른 방향을 가질 수 있기때문이다.

이러한 면을 염두에 두고 그동안 체코개혁교단의 동역 목회자로 일하면서 느낀 체코개혁교회와 예배의식에 대한 소감을 피력하고자 한다.  체코개혁교회의 예배의식은 한마디로 요약해서 자신의 교회의 역사적 의미라고 정의내릴 수 있다.  15, 16세기 유럽의 종교개혁을 단지 카톨릭과 개혁파들의 종교분쟁의 시각으로 바라본다면 종교개혁의 역사적 의미를 올바르게 이해하지 못할것이다.  다시말해서 당시 종교개혁은 곧 사회개혁이었다.    하나님의 말씀을 자유로이 그리고 이해되도록 체코어로 선포할것과 그리스도의 말씀대로 양종의 성찬을 나눌것, 사제나 감독은 세상의 권력을 포기할것, 그리고 성직자도 죄를 지었으면 처벌을 받을것 등을 주장한 체코종교개혁은 당시 전 유럽의 교회와 국가 권력으로 부터 반대를 받았을 만큼 중세사회질서를 근본적으로 흔드는 사건이었다.  이러한 개혁의 역사적 경험들이 검소하며 절제되어있고 말씀을 강조는 현재 체코교회의 예배의식과  당시 반개혁의 상징이었던 십자가대신 사용되는 성경책과 성찬잔의 교회의 상징물과 설교단을 정면 한 중앙에 배열하는 예배당 시설등에 고스란히 반영되어있다.

예배순서에서 예배의 부름, 파송의 말씀, 그리고 축도는 목회자의 미사여구 없이 성경의 본문을 그대로 인용해서 선포한다.  이때 성도들은  모두 일어서서 그 말씀을 경청한다.  성경본문을 그대로 인용하는 축도를 할때마다 “찌어다”와 “축원하옵나이다”의 논쟁이 있었던 우리교회가 생각난다.  설교단의 배치는 체코 종교개혁의 도화선이 된  후스가 설교했던 베들레헴 채플에서 그 원형을 볼 수 있다.  베들레헴 채플은 카톨릭 예배당으로 오직 말씀만 선포되었던 곳이다.  이 예배당은 다른 카톨릭 교회건축양식과 다를 뿐아니라 제단을 놓을 자리에 설교단이 차지하고 있다.  이 채플을 체코개혁교회가 예배당의 전형으로 삼고 있다.  예배당 양식까지도 말씀을 강조한 자신의 교회역사와 접목되어있음을 엿볼수있다.

성찬예식은 특별한 절기를 제외하고 한달에 한번있다.  체코교회에서 재미있게 느낀것은 예배의 모든예식은 안수받지 않은 목회자(신학생, 전도사), 장로 누구나 집례가 가능하다.  설교도하고 축도도 한다.  그러나 성찬예식 만큼은 반드시 안수받은 목사가 집례하게 되어있다.  1415년 후스의 화형의 불씨는 체코종교개혁의 불길을 일으켰고, 1781년에 비로소 그들은 자신의 교회를 세울 수 있는 종교의 자유를 얻었다.  카톨릭의 박해 아래서 예수님의 최후의 만찬을 기억하면서 자신들의 일용할 양식, 호밀빵을 나누며 서로 격려와 기도로 믿음을 키워온 체코개혁교회 교인들이 종교의 자유를 얻어 자신들의 손으로 지은 예배당에서 카톨릭에서 사용되는 웨이퍼(얇게구운하얀색의 과자)대신 고난과 죽음속에서 믿음과 사랑을 키워온 자신들의 양식, 거칠고 거무스름한 호밀빵을 들고 참례했던 그들의 첫번째 성찬예식을 나는 성찬을 집례하거나 참례할때마다 상상해보려고 노력한다.  “진리를 가르치고 배우고 죽기까지 지키기”(후스의 어록에서) 위해 자신의 조상들의 고난과 피흘린 역사가 담겨있는 호밀빵앞에서 화체냐, 영적임재냐, 기념이냐 라는 신학논쟁은 한뼘의 마음장난에 불과하게 느껴진다.

나는 우리한국교회가 역사와 문화의 배경을 전혀달리하는 체코개혁교회의 예배의식을 그대로 모방해야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러나 우리역시 칼빈의 종교개혁이 전통에 서있는 장로교회로
서 죽기까지 진리를 지켜온 역사적 경험과 예배의식이 상호작용되어 오늘도 개혁교회로서 전통을 잇고있는 체코교회를 보면서 우리가 계승할 내용이 무엇인지 진지하게 숙고하는 시간이 있었으면 하는 마음이 간절하다.

제2차 유럽 에큐메니칼 총회를 참관하고

제2차 유럽 에큐메니칼 총회를 참관하고 (1997년 11월 1일 여전도회보)

체코형제개혁교회 일원으로 유럽 에큐메니칼 총회를 참석할 수 있는 기회를 갖게된것을 하나님께 감사드린다.  교회 내적.외적으로 중대한 사안이 있을 때 마다 전체 유럽교회가 함께 모였던 다른 어느 교회 회의 보다 유럽 에큐메니칼 총회의 교회사적 의미는 앞으로 교회사가들에 의해 더욱 중요하게 다루어질것으로 믿는다.

1차 2차 세계대전, 소위 철의 장막으로 불려진 냉전시대의 유럽의 분열, 그리고 옛 유고연방의 내전등과 같은 현대사의 참혹한 경험들로 유럽인들은 자신들의 미래에 대해 공포를 가지고 있다.  이 공포를  극복하기 위해 8년전 1989년 스위스 바젤에서 유럽 에큐메니칼 총회로 분열된 모든 교회들이 한 자리에 모였다.  그리고 그들은 유럽 분열의 종식이 역사의 한 흐름이 될것으로 전망하고 새로운 유럽을 건설하기 위한 교회의 역할을 의논하였다.

그러나 8년후인 금년(1997)에 그들은 “새로운 유럽” 건설을 위해 다시 한번 총회로 모일 수 밖에 없었다.  6월 23일 부터 29일 까지 전 유럽의 160개 이상되는 각기 다른 교회(교파)와 20개 이상의 선교 단체로 부터 약 만명이 오스트리아 그라쯔(Graz)에 모였다.  유럽교회들의 고뇌를 금번 2차 총회의 주제인 “화해 – 하나님의 선물, 새 생명의 근원”에서 읽을 수 있다.  화해는 분열과 갈등을 다루고 있다.  그런뜻에서 옛 유고연방과의 국경부근인 오스트리아 남부에 위치하고 있는 그라쯔는 화해의 대상인 분열과 갈등의 구체적인 내용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도시이다.  정치적
으로 냉전시대에 나토와 바르샤바 양진영의 대표들이 만났던 곳이며 교회적으로는 에큐메니칼 활동 단체들이 일어났던곳이다.  이처럼 그라쯔는 금번 총회가 추구하는 화해의 내용과 방향에 대한 지정학적인 상징성을 갖고있다

“철의 장막”이 무너진 지금 유럽의 화두는 “통합”이다.  “철의 장막”으로 나뉘어졌던 동-서유럽의 통합, 시장과 화폐의 통합이다.  다양한 문화와 역사를 배경으로 하고있는 각각의 이질적인 민족들이 통합하기위해 유럽을 우선 하나의 시장으로 건설하는것이다.  이 시장의 건설은 “신자유주의 와 세계화 라는 유령”에 의해 장악되고 있다.  유럽교회들은 유럽대륙에 이 유령들에 의해 깊고 길게 드리워지는 그림자를 바라보기 시작하였다.

그래서 그들은 동-서 유럽으로 갈라놓았던 냉전시대의 “철의 장막”이 “은(silver)의 장막”으로 대치되고 있다고 경고 하였다.  “은의 장막”이란 이데올로기에 의한 분열을 의미하는 “철의 장막”이 무너진 이후 동서유럽간의 경제적 차이로 인해 분열이 오히려 더욱 심화되고 있는 상황을 뜻한다.  프랑스 복음주의 교회 엘자베스 팔멘티즈 목사는 이러한 상황의 유럽을 “공포” 와 “희망” 이라는 두 쌍둥이를 갖고있는 임산부에 비유를 하였다.  이 공포와 희망 사이에서 유럽교회는 “화해”로 자신의 역할을 자리매김 하였다.  그리고 이번 총회에서 유럽교회는 그 화해의 길을 유럽의 정신적 토대인 기독교 뿌리에 대한 반성과 그 역사로 부터 배움으로써 찾으려고 하였다.  그렇지만 회의의 결과가 정치, 경제, 사회일반에 즉각 반영되기 보다는, 서서히 그리고 교회간의 화해의 노력으로 나타나게될 것이다.  화해의 노력으로써 동서 교회들은 서로가 서로를 배척하지 않는것이 무엇보다 중요한것임을 함께 인식하며 동시에 그것을 하나의 행동양식으로 지켜가기로 약속하였다.

회의를 참석하면서 느낄 수 있었던것은 “철의 장막”이 무너지는 엄청난 역사적 사건도 유럽의 거대한 변화의 전주곡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변화의 방향은 동서유럽의 통합이며, 유럽교회는 그 변화를 단지 세계화라는 미명하에 경제적인 방법에 맡기지 않고 “평화”라는 정신적 가치의 토대위에 “새로운 유럽”을 건설하려고 하는 것이다.  거기에서 “화해”라는 주제가 도출된 것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앞으로 한국교회는 동유럽 선교를 이해해야 할 것이다.  이번에 동유럽을 대표할만큼 중요한 위치에서 총회의 회원교회로 참석한 러시아 정교회는 자신들이 이루어 놓은 교회의 일치를 한국교회가 파괴하고 있다는 비난을 유럽교회들 만이 모이는 이 회의에서 조차 거론하였다.  물론 러시아 정교회의 일방적인 편견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전체 유럽교회의 흐름과 동떨어진 우리의 동유럽 선교는 앞으로 복음주의 계열의 유럽교회들 조차도 거부감을 가질 수 있음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해외선교 이제 달라져야한다.

해외선교 이제 달라져야한다. (1996. 9. 7 새누리신문)
    – 여의도 순복음교회 조용기 목사의 체코 프라하 집회 유감

체코 프라하는 1300년대에 이미 성경대로 성찬예식을 실천하여 평신도가 성찬잔(포도주)을 받았던 “벽 속의 성 마르틴 교회”, 루터 보다 1백년 앞서 종교개혁을 일으킨 얀 후스가 설교한 교회인 “베들레헴 채플”, 빌라호라(白山)전투에 패배한 개혁파 지도자들의 목을 쳐 20년동안 매달아 놓은 까렐교 교각탑과 같은 개신교회의 역사의 흔적이 담겨있는 많은 유적들을 간직하고 있어, “말씀(복음)대로 사는 삶” “진실(진리)을 지키는 삶” “교회의 청빈한 삶”을 노력했던 개신교 조상들의 정신과 신앙을 지금도 엿볼수 있는 곳이다.

체코의 이처럼 뿌리깊은 개신교회는 마치 “예수를 위해 우리는 죽음의 위협을 겪고 있다”고 고백한 초대교회 처럼 중세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 성경이 전하는 복음을 위해 고난을 받아온 교회이다.  체코인들이 그토록 갈구하던 자유의 시대가 1989년 공산정부의 몰락으로 도래하였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이 자유의 시대는 체코 전통개신교회들에게 새로운 고난의 시대가 되고 있다.

몇 가지 원인이 있지만 그중에 하나가 일부 해외선교사들의 일방적인 선교활동때문이다.  극단적인 신비주의 성령운동의 경향이 연약한 전통개신교회의 분열을 야기시켜 이곳 교회지도자들은 이러한 성령운동을 앞세워 밀고 들어오는 선교활동에 대해 “쳐들어 온다”라는 표현을 쓰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개최된 여의도 순복음교회 조용기 목사의 체코 프라하 집회(8월 13일-14일)를 보면서 한국교회의 선교를 위해 개인적 소견을 갖게되었다.  물론 조 목사의 집회가 성령운동이 무질서하게 일어나는 이곳 교회들에게 바람직한 영향을 끼칠것을 기대하지만, 새누리 신문을 통해 조 목사의 기하성이 교회의 연합을 위해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에 회원교회로 참여하기로 결정하였다는 소식을 접한지 얼마 지나지 않아 집회가 열리게되어 해외선교와 교회(교단)의 연합운동의 상관관계를 한번 생각해 보는 계기가 되었다.

기하성이 교회협에 참여함으로써 교회협이 소위 “새틀”을 갖추는데 크게 기여하였다고 평가를 받고 있는데 앞으로 조 목사의 선교활동이 새틀안에서 교회협의의 해외선교방향을 제시하는데 기여
할 뿐만 아니라 나아가 세계교회들과도 연대와 일치, 연합과 동역의 정신을 가지고 연약한 교회일지라도 현지교회(교회협)들과 숙의 검토하여 조 목사의 선교활동이 이루어졌으면 하는 기대를 가져본다.

세계교회와의 연대와 일치를 운운하지 않더라도 이러한 것은 개신교 총10개 교단을 다 합해야 45만명 교인도 채 안되는 체코 개신교회들에 대한 이곳 일간지와 큰 도로 광고보드에 선전된 내용대로 “70만명의 교인을 이룬 세계제일 큰 교회”가 갖추어야할 신앙인의 자세 이자 윤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이러한 선교의 자세를 갖추고 세계교회들과 연대와 일치의 연합정신의 범위안에서 선교활동을 하고자 하는 노력은 어느 한 개인, 어느 특정한 교회, 어느 교단 하나에 국한되는것은 아니다.  최소한 교회협 참여 교단들만이라도 교회연합의 정신을 함께 구현시켜 나가야 할 곳 가운데 빼놓을 수 없는곳이 바로 선교사들이 교회들이 각 교단들이 개별적 독자적으로 진행하고 있는 해외선교현장임을 지적하고 싶다.

이미 몇몇 교단은 유럽에 해외노회까지 설립한 실정이 되었으니 해외선교현장의 무질서와 난맥상을 다시 거론하지 않더라도 한국교회의 교파주의, 개교회 주의에 의한 한국교회의 선교의 문제점을 누구나 다 잘 알고 있다.  그러므로 “새틀의 교회협”의 참여교단들이 해외선교 현장에서 교파주의 개교회주의를 극복하고자 하는 노력없이 교회연합을 추구하는것은 교회와 사회를 부패시키는 타락한 교회정치의 한 단면을 스스로 보여주는것이다.

교회협에 참여함으로써 그리스도의 몸된 교회의 연합과 일치를 새롭게 이루어가는 교회(교단)들의 노력에 끝없는 애정과 사랑을 보낸다.

척박한 선교현장

척박한 선교현장 (1996. 8. 31 기독공보)
    – 체코형제개혁교회와의 선교협정서 체결의 81회 총회헌의 소식을 듣고

기독공보를 통해 체코형제개혁교회와의 선교협력과 협정서 체결을 위한 헌의가 81회 총회에 상정될 것이라는 소식을 듣고 현지 선교를 위해 준비하고 있는 본인으로써 감사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이 일이 앞으로 우리교회가 체코선교에 더 깊은 관심을 갖는 계기가 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최근 체코교회의 형편을 소개하고자 한다.

체코교회의 현황

체코의 개신교는 약 10개의 교파가 있고 전체인구의 3퍼센트, 약 45만명에 불과하다. 약 10개 개신교 교파가운데 가장 전통적, 중심적 교회가 우리 교단과 동역할 교단이 “체코형제개혁교회”(이하 형제교회)이다.

“형제교회”는 2백 64개의 교회에 15만 3백 71명의 교인이 있다.  이 교회의 뿌리를 얀 후스(Jan Hus, 1419년 화형)로 부터 한다면 5백년의 역사이며 오스트리아 합스부르크왕가로 부터 공식 인정을 받은 때로부터 그시작을 본다 하여도 2백년의 역사를 가진 교회이다.  긴 역사임에도 불구하고 소수교회인 까닭은 교회역사 자체가 고나의 연속이었기 때문이다.  카톨릭의 박해와 공산당의 박해속에서 교회를 지키고 신학을 발전시켜 헝가리 개혁교회, 슬로바키아 루터교회와 함께 “형제교회”는 매우 귀중한 개혁교회의 유산을 지금까지 잘 간직하고 있는 뿌리깊은 교회이다.

체코의 기독교 분포가 카톨릭 45퍼센트, 개신교 3퍼센트 그리고 불신자가 전체인구의 절반이 넘는다.  그리고 공식적 통계로 절반 가까이 되는 기독교 인구 가운데 실제 출석 교인은 약 10퍼센트 정도로 추정되고 있다.  그러므로 체코 전체인구의 약 95퍼센트를 복음화해야 하는 선교적 과제를 “형제교회”는 가지고 있다. 지금까지 “교회의 생존”을 위해 모든역량을 모으며 인고의 세월을 살았고 지금부터는 “교회의 성장”을 위해 모든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뿌리깊은 반감

1989년 이후 체코 정부가 이전에 국유로 몰수했던 재산을 원 소유자에게 반환을 하고 있고, 최근 교회재산을 반환하기 위해 정부가 법제정을 추진하자 사회민주당과 공산당이 반대를 제기해서 좌절된 일이 있었다.  이 사건은 체코 개신교의 사황을 이해하는데 대단히 중요하다.  정부가 “교회재산반환의 법”을 추진하자, TV장송이 이법에 대한 국민 여론을 직접 취재하여 방송을 한적이 있다.  이때 국민의 10명중 10명이 모두 반대의사를 표현하였고 심지어 “왜 정부가 교회 목회자(신부, 목사)에게 국민의 세금으로 봉금을 지불해야 하는가?”라고 반문할 정도였다. (체코에서는 각각의 교파가 정부로 부터 예산을 받아 소속 목사 또는 신부에게 사례비를 지급하고 있음)

척박한 선교현장

체코 인구의 절반을 넘게 차지하고 있는 불신자들은 교회에 대해 적대적인 입장을 분명히 취하고 있어 목회자에 대한 인식은 대단히 부정적일 수 밖에 없다.  “목회자는 일(노동)하지 않고 책 읽고, 노래(찬송)부르고, 일요일에 몇사람 앞에서 10-20분 정도 연설(설교)하고 정부로 부터 돈을 받는 사람들이다”라고 비판한다.  1989년 이후 체코사회는 바뀌었지만 체코교회는 여전히 공산주의 시대를 살아가는 것과 다를바가 없다.  특히 불신자들이 이해하는 교회는 카톨릭 교회이며 전체 국민의 3퍼센트에 불과하는 개신교회는 소수종파로 생각하여 개신교 자체를 부정적인 시각으로 바라보고 있는 실정이다.

이처럼 체코는 선교의 황금어장이 아니다.  우리 교회의 눈물의 기도를 요구하는 척박한 선교현장인 것이다.  온갖 어려움속에서도 복음의 씨앗을 뿌리기 위해 노력하는 “형제교회”형제 자매들에게 한국교회가 동역교회가 되어 함께 관심을 가지고 서로 기도하는것이 말할 수 없는 큰 격려와 위로가 될 것이다.

총회 해외선교 정책을 위한 제언

총회 해외선교 정책을 위한 제언 (1993년 10월 30일 기독공보)

우리 총회가 선교사를 파송한 나라는 모슬렘 국가를 제와하면 정도의 차이는 있으나 모두 기독교가 전파되었고 현지인 교회(교단)들이 있다.  우리는 그들과 직접적으로 선교협정을 맺거나 세계개혁교회연맹(WARC), 세계교회협의회(WCC), 아시아 교회협의회(CCA), 세계선교협의회(CWM) 등 에큐메니칼 기구를 통해 직접, 간접으로 관계를 맺고 있다.

그런데 이와같이 에큐메니칼 관계를 가지면서 동시에 그들과 관계없이 선교사를 파송하는 앞뒤가 맞지 않는 정책을 우리 총회는 펴왔다.  하나의 예가 독일이다.  우리 총회는 EMS와 선교협정을 체결하고 EMS의 요청으로 선교사를 파송하면서 다른 한편으로 EMS와 협의 없이 우리 임의대로 선교사를 파송하였다.  에큐메니칼 관계 따로, 해외선교 따로 시행되었던 “세계선교부” 이전의 이야기아다.  이러한 모순을 극복하기 위해서 “세계선교부”가 신설되었다.

세계선교부 발족이후 눈에 띄게 달라진 점은 총회 파송선교사의 양적인 증가이다.  세계선교부가 여러면에서 점점 전문성을 갖게되어 해외선교에 대한 관심을 교회들에게 불러일으키고 아울러 그 관심들을 집중하여 매년 수십명의 선교사가 새롭게 파송되고, 선교비 예산도 수억원씩 늘어나고 있다.  특별히 옛 소련과 베트남 등 공산국가에 선교사 파송이 많아졌다.  그러나 에큐메니칼 관계와 해외선교는 세계선교부 발족이전의 총회해외선교와 큰차이가 없어 세계선교부 신설의 뜻이 빛바래가는 안타까움이 있다.

현재 진행하고 있는 총회 선교사들의 선교활동은 크게 세가지 유형으로 구분된다.  하나는 식민주의적 모델이다.  복음이 필요한 곳에 자발적으로 가서 복음을 전하고 교회를 세우는 일방적 선교형태이다.  두번째는 동역 선교모델이다.  즉 현지 교회의 요청에 의해 필요한 인적자원을 파송하는 경우이다.  이때 원칙은 선 선교협정 후 선교사 파송이며 세계에큐메니칼 회원교회들이 동역 가능한 교회이다.  다른 하나는 나눔의 모델이다.  세계선교협의회를 축으로 하여 회원국간의 인적 물적 경험의 나눔으로서 선교를 한다.  여기서 해외선교의 용어는 나눔으로 대신하며 나눔은 일방통해이아닌 쌍방통행의 선교형태이다.  이것은 서구 제국주의 선교에 대한 비판에서 출발한것이다.

이와같이 상호모순을 갖는 모델들이 세계선교부 설립 이후에도 계속 공존하거나 확대되고있다.  이로 인해 세계 선교부는 교회, 선교사 그리고 해외교회들에게 선교활동은 있지만 선교정책과 선교행정의 원칙이 없다고 비판을 받게되었다.  따지고 보면 해외선교에 대한 많은 비판들 – 원칙 없는 선교사 파송, 동역교회를 배제한 현지 선교부 설립, 선교활동에 대한 사전 조율없이 선교사들을 같은 국가, 같은 지역에 파송하는 일, 선교사들 사이에 있는 불협화음, 주먹구구식의 선교행정, 선교사 개인의 판단과 절차에 따라 결정되는 세례식, 성만찬, 목사 안수, 장로 장립의 문제, 선교사의 안식년 문제 등 – 은 모순을 갖는 세계선교부의 활동에서 기인되고 있는것이다.  그러므로 이 모순의 본질적인 해결이 없는 세계선교부의 선교정책은 한국교회의 기형적인 선교모습을 초래하게될것이다.

선교현지교회와의 관련성을 갖는 해외선교모델 개발은 세계선교부의 긴급한 선교정책 가운데 하나이다.  분산된 빛들을 한곳에 모아 강력한 열에너지로 바꾸는 렌즈와 같이 파송 선교사들의 다양한 해외선교 모델들과 독자적이며 동시에 역동적인 개교회의 해외선교 열기를 하나의 촛점으로 집중하게 하는 세계선교부의 해외선교모델이 존재할때 비로소 총회의 해외선교의 방향성이 정
립될것이고, 지금까지 진행된 선교활동, 교회(후원교회), 총회 그리고 해외교회들과의 정당하고 일관성있는 협력이 이루어지게 될것이다.

이 뼈대가 구축되면 선교사의 후생복지 문제들을 해결할 수 있는 구체적이고 현실적인 대안이 자연스럽게 제시될 수 있을 뿐아니라 선교정책을 포함한 제반의 문제들이 점점 발전적 지향을 갖는 대안을 창출하는 토론의 장을 확보하게될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