엔돌 여인의 만찬

  • 연합 예배 (2002년 02월 03일)
  • 삼상 28:4-25
  • 설교자: 이지 슈토렉

스물여섯번째 에큐메니칼 예배
본문:삼상 28:4-25
제목:엔돌 여인의 만찬


울은 이미 많은 전쟁을 치루었고 용감하게 싸울 줄도 알았습니다. 그러나 한편으론 두려움에 얼마나 무릎을 떨었는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사울은 신앙인이었습니다. 여러 면에서 우리는 그를 부러워 할 수도 있습니다. 그는 누구에게 가야하는지를 알았고 도움을
구하기 위해 변장할 줄도 알았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잠잠하십니다. 아무리 사울이 구하여도 하나님은 응답이 없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사람, 사무엘은 이미 죽었기 때문이고, 하늘과 땅까지도 사울에게 침묵했습니다. 결국 저승만 남았습니다. 사울은 그래서
즉시로 신하들에게 명했습니다. “나를 위하여 신접한 여인을 찾으라”. 그리고는 다른 옷을 입고 변장하여 먹을 것도 준비하지 않은 채
신하들과 함께 밤에 엔돌로 갔습니다.

전에는 그렇게도 열심히 핍박했던 것을 이제는 마지막 도움인양 찾아다니고
있습니다. 그로 하여금 이단과 종교악을 제거해 버리도록 한 은밀한 충돌질이 결국에는 자기 파멸에 이르게 하였습니다. 전체주의적인
경향의 사람들은 이러한 자기 파멸의 매혹으로 고통합니다. 가룟유다도 예수님을 최후의 전장까지 몰아부쳐서 승리의 왕국을 실현하고픈
욕망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사울과 같은 최후를 맞이하고 말았습니다.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는 교리의 하나님이나 한정적인 문제
해결의 하나님이 아니십니다. 자유하며 거룩한 분이십니다. 자유케 하시는 하나님이시요 헌신하는 자들의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실 때는 인간에게 기회의 때요, 생명의 때입니다. 그러나 잠잠하실 때는 이미 때가 지났습니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실 때는
낮이요, 인간의 모습을 보는 것입니다. 그러나 잠잠하실 때는 밤으로 변하게 됩니다.

그것은 엔돌에 있는 여인에게는
목숨이 달려있는 일입니다. 그러나 결국에는 여호와로 그 대단한 남자에게 맹세하였습니다. 그러자 사울의 신분이 드러났습니다. 그
다음부터는 이미 공포였습니다. 저승에서 겉옷을 입은 한 노인이 올라오는데 사울은 그가 사무엘임을 알아 보았습니다. 사무엘이 말하길
“내일 너와 네 아들들이 나와 함께 있으리라” 했습니다. 사울은 이미 오래전에 들었는데 또 무슨 말을 듣고 싶었을까요? 저승에서
온 자에게 “죽으라”는 말 외에 다른 말을 들을 수 있습니까? 이스라엘의 왕이 그것도 몰랐을까요? 그만큼 돌이킬 수 업고 신성한
“죽어야 한다”는 것이 가룟 유다의 저주입니다. 사울은 비참히 죽임을 당하게 됩니다. 모든 그의 화려함은 땅으로 엎드러지고
기력이 진하여 졌습니다. 저승세계를 보는데 익숙한 그 엔돌여인은 난처한 입장이지만 사울이 얼마나 큰 고통을 당하고 있는지 인식시켜
주어야 했습니다. 성경 어디에서도 이와 같은 공포는 없습니다. 이런 것은 단지 생명이 파멸에 이르거나, 삶의 비열함이나, 아무런
소망이 없을 때 뿐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엔돌의 그 신접한 여인은 경험에 기초한 기지를 발휘하여 어머니의
심정으로 말했습니다. “나로 왕의 앞에 떡 한 조각을 드리게 하시고 왕은 잡수시고” 사울은 죽음의 길을 가야 했습니다. 엔돌의 그
침상에서도 어찌할 수 없었습니다. 그러나 힘이 없어 가지 못했습니다. 그 엔돌 여인은 사울에게 마지막 예식을 베풀고 함께한
자들과 함께 마지막 만찬을 차려 주었습니다. 최고의 죄수도 도움없이는 세상과 함께 떠날 수 없습니다. 사형수도 식사한끼 대접않고
가게 해서는 안됩니다. 그렇게 죽음의 마지막까지, 최후의 심판으로 가는 길에도 죄인을 위해 기력을 회복하라고 음식을 준비해
놓습니다. 죽어가는 자의 이마를 닦아주고, 살인자의 눈물을 닦아주고, 공포로 떠는 사람에게 다정한 포옹을, 악인에게는 선한
도움을, 원수에게는 사랑을 주어야 합니다. 그리고 우리에게는 성만찬이 우리로 하여금 일어나 계속 길을 갈 수 있도록 해줍니다.


늘 우리는 성경에서 가장 어두운 이야기 중 하나를 읽었습니다. 아마도 누군가 가볍게 영벌의 고통을 맛본 사람이나, 단순한 죽음으로
괴롭힘을 당한 사람은 이 엔돌 여인의 행동을 같은 복음서의 다른 여인중에서도 막달라 마리아와 같이 수정과 같은 귀한 자로 보게
됩니다. 그리고 겟세마네의 주님이 흘린 핏방울에서 사울을 봅니다 주님은 그의 죄를 최후에까지 담당하셨습니다. 이는 우리를 죽음의
권세로부터 구원하여 하나님과 함께하는 삶으로 돌아가도록 하기 위함입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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