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인 예배 (2004년 02월 22일)
- 막 8:31-38
- 설교자: 다빗 유레흐
사랑하는 형제, 자매 여러분!
예수님은 오늘 본문에서 제자들에게 직접적으로 강력히 말씀하십니다.
현재의 우리에게도 예수님은 말씀하고 계십니다. 우리는 그분의 말씀을 신약성경에서 만날 수가 있으며 그 말씀들은 현재에도 살아서 그 효력을 발휘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성경 안의 말씀을 통해 우리를 향한 예수님의 뜻이 어떤 것인지, 우리에 대한 그 분의 계획이 무엇인지, 우리가
무엇을 행하기를 원하시는지, 하나님의 자녀가 되기 위해서 어떻게 예수님을 따라가야 하는지를 읽고 이해할 수 있습니다.
함께 오늘 본문말씀을 한번 깊이 생각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그래서 우리 인생 속에 하나님의 뜻을 발견하고 기독교의 가장 큰 명절인 부활절을 준비하는 기회로 삼아보도록 하겠습니다.
돌아오는 수요일은 재의 수요일입니다. 교회전통에 따라 이 날부터 사순절이 시작됩니다. 그리고 사순절은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을 기념하는) 부활절을 준비하는 기간입니다.
오늘 본문에서 예수님은 베드로와 제자들에게 이 땅에서의 예수님의 사명이 무엇을 향한 것인지 가르쳐주십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예수님과 장로들, 대제사장들이 죽임을 당하고 죽은 지 사흘 만에 다시 부활하시게 될 사건을 미리 예고해 주셨습니다.
예수님은 드러내 놓고 이 말씀을 하십니다. 그것도 아주 큰 목소리로 분명하게 말씀하셨습니다.
우리는 마태복음에서 이 말씀에 대한 베드로의 반응이 어땠는지 더 명백하게 알 수가 있습니다. 베드로는 예수님께 이렇게 말합니다. „ 주여 그리 마옵소서 이 일이 결코 주에게 미치지 아니하리 이다.“(마10:22)
예수님의 제자였던 베드로는 예수님이 그렇게 말씀하시면 안된다고 마치 예수님의 스승처럼 가르치기 시작했습니다.
자신의 스승에게 무엇은 할 수 있고 무엇은 하지 말아야 하는지를 말하기 시작 했습니다.
베드로는 그 말씀의 의미가 무엇인지 찾지도 않았으며 찾으려고 하지도 않았습니다. 예수님께 그 말씀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묻지 않았고, 그 말씀의 의미를 설명해 달라고 요구하지도 않았습니다.
베드로는 즉각적으로 자신의 충고를 스승에게 말했습니다.
그러한 베드로에 대해 예수님의 완고한 반응은 당연한 것이었습니다.
예수님은 베드로의 말을 인간적인 경솔함이라며 꾸짖으셨을 뿐 아니라 그런 말은 사탄의 말이기 때문에 아주 위험한 것이라고 지적하셨습니다.
사탄은 히브리어로 적대자를 의미합니다.
하나님께 대항하며 하나님을 위배하여 행하는 자, 하나님의 뜻에 반대하는 자가 바로 적대자인 것입니다.
베드로가 예수님의 말씀을 그대로 받아들이지 않고 그 말씀을 비판하며 자신의 생각을 주장했을 때 베드로는 바로 적대자가 된 것입니다.
베드로는 그 순간에 예수님을 대항했으며, 바로 하나님의 뜻을 반대하는 적대자가 된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베드로를 사탄이라고 단언하셨던 것입니다.
그 말씀은 모든 제자들이 자신들의 인간적인 부족함으로, 또는 생각으로 하나님을 대항하지 않고, 오직 하나님의 뜻을 찾기를 바라는 뜻에서 하신 훈계와 경고의 말씀이었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뜻이 무엇이고, 인간의 뜻이 무엇인지를 제자들에게 분명하게 보여주시기 위해 이 상황을 이용하신 것입니다.
예수님을 따르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무엇을 가져오는지(무엇이 따르는지)를 분명하게 보여주시기 위함이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따른다는 것은 자기를 부인하는 것입니다.
그것은 우리의 인간적인 이성이 예수님을 따르는 것이 우리에게 이익이 되지도 않고 좋은 것도 아니라고 말할 지라도, 그래도 예수님을 따른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인간인 우리는 우리를 위해 정말 올바른 것이 무엇인지 잘 모를 때가 많습니다.
우리 인생의 중심방향이 하나님을 믿는 믿음이 되지 않고, 또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이 우리를 불러 알게하는 하나님의 뜻을 찾지 못하게 된다면 우리 인생은 정말 헛되고 의미가 없는 것이 되 버립니다.
여기서 우리는 본문의 목숨을 잃는다는 표현을 더 잘 이해 할 수 있게 됩니다.
예수 그리스도 없이는 우리의 생명도 없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 없이는 가치 있게 살 수도 없고, 자신의 인생 사명과 하나님의 뜻이 충만해질 수도 없습니다.
사람의 눈으로는 우리가 잘 사는 것처럼 보일 수도 있습니다. 성공적인 삶을 살아가는 것처럼 행복해 보일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결국 충만한 삶이 아닙니다.
그리고 반대로, 예수 그리스도를 따라가는 사람이 오히려 자기 인생 전체를 낭비하는 것이라고 보여질 수도 있습니다.
오늘날 부와 권력, 명예를 추구하지 않는 사람, 다시 말해 세상의 (눈으로 본) 성공을 추구하지 않는 사람, 그리고 자신의
시간과 에너지를 세상적인 성공에만 쏟지 않는 그런 사람은 전혀 있을 수 없는 사람인양 무시를 당합니다.
하나님과 이웃을 섬기는 사람, 자신의 시간을 이웃을 위해 투자하는 사람은 우리가 사는 세상에 속하지 않는 사람처럼 여기기도 합니다.
자기 일만을 위해 열심을 내는 우리는 이제는 자녀들이나 부모를 위한 시간도 없습니다. 교회에 갈 시간이라던가 이웃을 위한 시간은 더 말할 나위도 없습니다.
인간적인 눈으로 자신의 인생을 낭비하는 것 같은 사람이 오히려 복음을 듣고 예수 그리스도를 따라갈 때, 사실상 그 인생은 구한 것이 됩니다.
제가 알고 있는 사람들 중에도 많은 수입을 가지고 살지만 진정한 자신의 인생을 살아가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습니다.
물론 그 사람들은 살아가면서 멋진 자동차와 집을 소유하며 자녀들에게도 최고의 교육을 시키고 자신의 가족을 위한 재정적인 수단을 마련해놓습니다.
그러나 이미 제가 말씀 드린 것처럼 그들 중 대부분은 진정한 자신의 인생을 살고 있지 못합니다.
그들은 자기 가족을 위한 시간도 자신을 위한 시간도 없습니다. 세상에서 참 많은 것을 갖게 되었지만 행복한 사람들은 아닙니다.
그렇게 되 버린 결과는 어떻게 다시 돌이킬 수 없는 것들입니다.
부모가 충분한 시간과 사랑으로 자녀들을 돌보지 않을 때, 자녀들의 독립적인 삶을 위한 경제적인 준비나 멋진 장난감이 그 사랑을 절대 대신할 수는 없습니다.
사람에게는 느낌과 감정이 매우 중요한 것입니다. 그것이 결여되거나 그에 대한 부정적인 경험이 있을 때에는 평생 그것에 상처를 받고 살아갑니다.
그리고 우리 인생 속에 잘못되었던 것을 고치기 위해 다시 인생을 돌이키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우리의 인생을 다시 돌이킨다는 것은 전혀 불가능한 것입니다.
우리는 모두 과거의 어떤 일이나 상황 속에 다르게 행동할 수 있었던 것들을 떠올릴 수가 있습니다. 하지만 결국 그렇게
행하지 않았기에 돌이킬 수 없는 결과를 갖게 되었고 그래서 우리 영혼 깊숙한 곳에 짐으로 남아 있는 경험은 아마 다 해 보셨을
겁니다.
전형적인 예로 가까운 사람의 죽음을 들 수가 있습니다. 그 사람이 살아있을 때 해주지 못한 말들 때문에 우리는 지금도 마음 아파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형제 자매 여러분!
오늘 설교의 첫 부분에서 말씀 드린 것처럼 교회전통에 따라 오늘부터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시고 부활하신 예수님을 기리는 부활절을 예비하기 시작합니다.
나사렛 예수 없이는 기독교가 생겨날 수 없었고, 우리를 크리스챤이라고 부를 수도 없었을 것입니다.
크리스챤은 그리스도인을 의미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따라가며, 우리 인생의 방향을 정하는 것으로서 그 분의 말씀을 받아들이고, 자신의 일상 속에 예수님을 닮아가려고 노력하는 사람입니다.
예수님은 우리를 대신해 십자가에서 돌아가셨습니다.
우리의 진정한 인생이 무엇이고, 그 의미가 무엇인지 알 수 있도록 하기 위해 우리를 대신해서 돌아가셨습니다.
예수님은 당신 자신을 위해 이 땅에 오신 것이 아니라 우리를 위해 이 땅에 오신 것입니다.
예수님은 우리를 당신에게로 하나님께로 끊임없이 부르고 계시며, 누구를 위해,무엇예수님은 우리를 하나님 나라로 부르고 계십니다. 그 곳에서 우리는 하나님과 우리의 이웃들과 함께 완벽한 공동체를 이루게 됩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말씀하고 계십니다. 그러나 우리는 오늘 본문의 베드로처럼 그 말씀을 듣지만 순종하지는 않습니다.
베드로처럼 인생을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 우리가 더 잘 안다고 생각하며 무엇을 해야 하는지 우리가 가장 잘 안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하나님께 순종하지 못합니다. 우리는 그 분 앞에서 자신의 방법과 계획을 늘어놓습니다. 그리고 그것들을 하나님께서 받아들이시고 동의하실 거라 확신합니다.
우리는 성경을 읽지만 모두 자신의 관점에서 읽기 때문에 성경을 우리의 상황에 맞추게 됩니다.
성경 속에 자기 상황에 비추어 마음에 드는 구절이 있으면 그것을 골라 읽습니다. 하지만 뭔가 마음에 안들고 듣고 싶지 않은 말씀이 나오는 구절들은 생략해버리고 무시해 버리기도 합니다.
오늘 본문의 베드로 같이 말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말씀하시지만 우리는 그 분을 무시하며, 우리가 원하는 것을 행하시도록 요구합니다.
그리고 우리는 얼마나 우리가 하나님으로부터 멀어지고 있는지 인식조차도 하지 못합니다. 점점 더 세상 것을 목표로 살아가는 사람들이 되어간다는 사실을 모르고 있습니다.
하나님으로부터가 아닌 세상으로부터 더 많은 것을 얻으려고 하다가 오히려 자신의 인생을 잃어버릴 수 있다는 것을 인식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자신의 인생을 다시 살수 없다는 것을 알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과 그 분의 뜻을 지금 당장, 이 순간에, 그리고 매일 매일 들어야만 합니다.
그것을 내일로, 다음 주로, 다음 달로, 내년으로 미루어서는 안됩니다.
하나님께 순종하는 것을 우리가 더 많은 시간을 가졌을 때 해야지 라고 미루어서는 안됩니다. 직장에서 할 일이 좀 줄었을 때, 회사가 잘 되어 번창할 때, 먼 훗날 정년퇴임을 해서 시간이 날 때 등으로 미루어서는 안됩니다.
지금 이 순간이 바로 그리스도를 따라가는 삶을 시작하는, 또 그 삶을 계속(지속)해 나가는 가장 올바른 시간이 되는 것입니다.
Amen
설교 후 기도
선하신 하나님 아버지, 우리의 인생길이 어떤 방향으로 가야 하는지 알려주시고 보여주시기 위해 우리에게 주신 성경 말씀을 감사하며 당신을 찬양합니다.
형제, 자매들과 함께하는 공동체 속에서, 또는 성경을 읽을 때에도 주님을 만나는 순간들은 저희들에게 있어서 큰 축복입니다.
그 순간들이 우리에게 주님의 사랑에 대한 확신을 가져다 주며, 또한 살아가는 힘을 갖게 합니다.
우리는 주님께 우리에게 뒤돌아 서지 아니하시고, 우리를 정죄하지 않으실 거라고 잘 말합니다. 그러나 우리가 얼마나 연약한지, 얼마나 자주 믿음 안에서 무너지는지 주님은 잘 알고 계십니다.
우리가 당신의 뜻대로 행하지 않았다는 것을, 또 당신의 사랑을 우리 이웃을 위해 실천하지 못했다는 것을 우리의 행동들이 말해주고 있습니다.
주님, 우리를 긍휼히 여겨주시옵소서. 낡은 우리의 인생 폐허 속에 성령으로 임하셔서 당신의 복음의 진리가 스며든, 당신에
대한 사랑이, 이웃에 대한 사랑이 충만한, 그리고 영원한 생명에 대한 희망으로 가득한 그런 새로운 인생을 건설해주시옵소서.
주님의 도우심과 축복을 간구합니다.
Ame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