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코형제개혁교회의 선교신학

체코형제개혁교회의 선교신학
– 1981년 11월 제22차 총회에서 결의

서론

예수 그리스도는 살아 계신 주님으로써 자신의 백성에게 오시며, 우리들의 낙심으로부터 우리를 이끌어 주시며(사 40.29-31), 자신의 맹세(롬15.21)를 우리들에게 기억시키시며, 자신과 함께 우리들이 새로운 길로 갈 수 있도록 우리를 부르신다.(막1.36-38)

마지막 때에 우리 교회가 해야될 과제들 가운데 하나가 믿음을 상실하고 교회와 멀어진 많은 세례교인들을 돌보는 것이다. 이것을 우리는 전도(evangelizace) 라고 하며 동시에 선교(misie)는 오늘날까지 믿지않는자들로 부터 새로운 교인들을 얻는 것으로 이해되며, 특별히 먼 이방 민족에게 복음을 전하는 것이다.(소위 해외선교) 잃어버린 영혼과 죽은 영혼을 찾는 것은 모든 우리 \"개교회\"(sbor)들의 지속적 과제가 될 것이다.(마18.12, 계3.2)

그러나 오늘날 우리들은 새로운 과제에 직면하고 있다. 20세기 후반기에 기독교인들로 간주되는 유럽민족에게서 변화들이 일어났다. 복음을 듣지 않고, 믿지 않고, 세례 받지 않는 숫자들의 점차적인 증가로 교회들, 기독교 민족들이 소수로 전락하게 되었다. 우리 교회의 개교회들, 개인들 단체들은 감소되고 그리고 내적으로 약화된 중심에 새로운 봉사를 위한 희망적인 관점을 여는 것이 중요하다고 점점 깨닫게된다 \"온 천하에 다니며 만민들에게 복음을 전하라\"(막16.15). 그러나 현재 우리들은 우리 교회의 현재의 위치가 하나님의 심판의 발자취를 따르며 모든 사람들에 대한 끊임없는 관심이 없이 내적으로 교회의 사명이 진행되는 그 곳에서 깊이 회개하는 것을 소홀히 할 수 없으며 그래서 우리는 그것을 선언해야만 한다. 만약 그리스도의 백성들이 하나님의 사랑과 용서 그리고 화해 없는 세상의 중심에서 산다면 하나님과 인간 앞에서 좋은 양심을 가질 수 없다. 여기서 온전한 회개란 새롭게 그리스도의 선교의 실례를 고려하고 실현하는것을 지체하지 않고 시작 하는 것을 말한다.

하나님의 선교

하나님은 자신의 구원의 사역의 시작부터 모든 인간과 자연을 위해 자유와 새로운 삶을 준비하셨다. 모든인간들 가운데 오직 한사람 아브라함을 선택하셨을 지라도 이미 그의 선택을 통해 전 인류를 고려하셨다: \"모든 족속이 너를 인하여 복을 얻을 것이니라\"(창12.3) 하나님의 원래 계획은 자신이 선택한 백성을 포기하지 않고 이방민족을 낙담시키지 않는 것이다. 바빌론 포로가 하나님의 사역의 완성을 위협하였을 때에도 이방인(바빌론)에 대한 하나님의 관심은 포기되지 않았다. 바빌론의 포로에서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돌보지않았으나 모든 백성, 모든 민족을 위한 희망까지 포기하신 것은 아니었다(사49.6, 51.4-5). 만약에 우리들이 포로생활로 부터 해방되는 제2이사야서를 읽는다면 그 기간과 그 장소에서 모든 이들을 위한 하나님의 도우심의 새로운 약속이 어떠한가에 우리는 놀라게된다. 여기서 종말론적인 관점이 열리게된다. 선택받은 자들이 자신을 재앙의 끝(종말)으로 생각하는 순간에 자신과 자신의 하나님을 의심하는 순간에 하나님은 이방인들의 무지와 자신들의 죄 아래에서 고통받는 모든 이들을 구원하시기 위해 손을 내미신다(사53.). 이미 구약에서 그렇게 언급하였기에, 하나님의 은총의 선한 사역에 대해 말하고 있는 신약이 모든 사람들을 위해 구약의 언급을 다시 확인하고 있다는 사실은 그렇게 놀라운 것이 아니다: \"저는 우리 죄를 위한 화목 제물이니 우리만 위할 뿐 아니요 온 세상의 죄를 위하심이라.\"(요일2.2) 그래서 예수 그리스도가 성육화되고 하나님의 선교가 완성되었다. 예수 그리스도안에서 선택받은 자 이스라엘과 이방민족간의 장벽이 허물어졌다(엡2.11-19). 여기서 하나님은 모든 이방인들이 빨리 그 소식을 듣고 그리고 그것을 믿고, 그리고 그를 찬양하기를 원하고 계신다(롬15.7-12).

교회의 선교

하나님의 선교는 예수 그리스도에 의해 계속된다. 부활하시고 하늘로 승천하신 그리스도가 세상 통치권을 갖는다. 그리스도는 자신의 제자들에게 성령으로 권한을 위임하고 그들을 파송하여 모든 민족 모든 국가들에게 복음을 증거 하게 하였으며 그래서 계속해서 새로운 그리스도의 제자들이 일어난다. 이렇게 예수 그리스도는 자신의 통치권을 실현시켜나가고 있다(마28.18-20, 막16.15-16, 요20.21, 행1.8). 그러한 사도들의 선교활동은 계속해서 다음 세대의 교회들의 과제가 되
었고 세상에서 교회 존재의 이유 중에 한가지가 되었다.

선교적인 소망

교회는 자신의 선교적 소명을 가지며 그것을 기쁨으로, 소망 적으로 수행해야한다. 교회는 모든 사람들을 위한 소망을 갖는 것이 마땅하다. 소망은 인내며 기다림이다. 소망은 무엇에 의해 금방 준비 되는 것이 아니며 긴 호흡이다. 한번의 실패로 소망은 어느 누구도 무시당하지 않는다. 소망은 계속된 폐쇄(역자의 주 – 공산정부에 의한 교회의 고립을 의미한다. 즉 당시의 공산정부는 전도를 포함한 신앙의 자유를 교회 안에서만 가능하도록 제한하였다)에 의해 용기를 잃게 하지 않는다. 자신의 그리고 다른 사람의 편견과 싸운다. 오늘날 모든 이들에게 생생한 선교의 희망을 자극하는 것을 우리들은 필요로 한다.

그렇다고 해서 모든 수단에 의해 복음이 전파되어야 한다는 것은 아니다. 복음은 믿음의 자유로운 결정에 대한 하나님의 초청이며 복음이 전해질 수 있는 모든 방법을 복음은 허락하지 않는다. 복음 안에 하나님의 아름다움과 영광이 있다. 복음이 원칙적이고 지속적인 반대에 충돌하는 곳에서는 선교적 증인은 침묵해야한다(마10.14).

\"개교회\"(sbor)들의 선교

우리들의 개교회가 설립되는 동안 우리들은 개교회안에서 살고 성장하는 자들을 위해 개교회에 대해 생각한다. 만약에 우리들이 그리스도의 선교의 위임을 받아들인다면, 우리 개 교회들 가운데 중요한 변화가 일어날것이다. 개교회안에서 모든 것은 우리들의 가장 우선되는 사명에 복종되어질 것이다. 모든 예배는 응답 적으로, 사려 깊게 한사람 한사람에 대한 고려가 있는 형태가 될 것이다. 찬송, 기도 그리고 설교들이 그들에게 이해되어질 수 있어야 할 것이다. 만약 우리들이 주의 깊게 고린도전서 14장을 읽어본다면 모든 모임에서 \"무식한 자들과 믿지않는자\"(고전14.23, 공동번역 – 보통교인과 믿지않는자) 에 대한 고려를 해야함을 어떻게 사도들이 강조하고 그리고 요구하고 있는지 우리는 알 수 있다. 그러나 단지 분명한 언어(역자의 주 – 방언의 문제)에 대해서만 언급하는 것이 아니다. 개교회의 모든 삶이 새로운 삶의 좋은 본보기가 되어야한다. 새로운 삶이란 하나님의 영광이 목적이 되며, 사랑과 신뢰, 존경과 자유가 서로 충만한 것이다. 만약에 전도할 때 복음화된 사회를 인식하지 못하고 그 사회 안에서 자신의 새로운 영적인 집을 찾으려고만 한다면 개교회는 사람을 모으는 것은 물론 그들에게 말하는 것조차 쉽지않을것이다.

개교회의 모든 삶이 새로운 삶의 좋은 본보기가 될 때 전 교인들이 참석하는 개교회의 선교활동이 이루어질 것이다. 세상에 대한 개방의 원칙을 갖는 선교활동중에(고전5.10, 요17.14-18) 개 교회는 결과적으로 하나님 왕국의 질서를 발전시키게 된다. 개교회는 자신의 선교적 사명을 수행하며 그 선교의 사명 안에서 새로운 하나님의 백성의 차별성을 분명하게 알 것이다. 하나님의 백성은 미움에 대항해서 사랑을 세우고 용서로 잘못을 극복하고 새로운 소망으로 차별성을 이끈다. 소비적인 삶의 양태를 상호 나눔과 다른 사람에 대한 깊은 고려를 함으로써 극복하며 소심함에 대항하여 자유와 용기를 제공하며 약한 자들과 함께 함을 좋아하며 시대조류에 휩쓸리지 않으며 그리고 모든 존재들을 십자가에 죽으시고 부활하신 주님의 삶으로 이끈다. 그래서 예언자적인 활동을 통해 하나님의 백성이 새로운 삶의 영광을 세상에 비춘다.

선교의 실천

성서는 교회가 자신의 활동들 가운데 선교를 위한 특별한 사명을 언급하고 있다. 즉 성령의 명령
으로 선교활동을 위해 구별해서 안수를 교회가 베푼다(행13.1-5). 성령이 요청하는 것은 교회 안에서 많은 봉사들이 있지만 복음전하는 일에 몰두하는 것이다(고전1.17). 개교회는 어디나 선교적 기능의 범주에 따라 각자 맡은 바 은사가 다른 교인들(\"전도자\"엡4.11)이 있다. 모든 사람들에게 그리스도에 관한 증언을 알려 줄 과제가 세례받은자 각자에게 있다(벧전1.9)

우리들은 선교를 위해 은사를 갖고 있는 모든 이들에게 다음과 같은 사항을 언급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교회는 선교의 과정과 방법을 성령에게 모두 일임할 수 없다. 물론 교인 각자는 선교활동을 위해 자신을 성령에게 맡겨야 한다. 선교활동에서 카리스마가 일하는 것은 무엇이든지 간에 카리스마가 개인이나 그룹을 제한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리스도 앞으로 인도하고 믿음대로 활동하는 회중으로 인도하는 것이다. 개 교회들이 신입교인들에게 자신의 공동체를 개방할 것과 그들에게 그들이 알고있는 복음의 진리를 모든 삶으로 증거 하도록 개 교회들에게 기억시키자. 우리들의 개 교회들은 자신의 전통과 속박을 극복해야만 하며 모든 사람에 대한 허구와 의심과 예민함으로부터 기독교인의 자유를 입증해야만 한다(갈2.11, 롬14.15-23). 복음은 본래의 삶의 풍성함을 의미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영원한 삶은 그의 받아들임에 달려있기때문이다.

선교의 목표

전도의 목적은 믿기를 작정한 자들에게 세례를 베푸는 것이다. 믿는 자가 세례 받음으로 그리스도의 몸에 연결되어 받은 은사를 자신의 삶으로써 받아들이게된다(엡4.11-32). 그러나 어떤 경우에도 교회는 선교를 자신을 위한 목적으로 삼아서 안된다. 예를 들어 내적인 영향력을 얻기 위해서라든가, 사회에서 자신의 위치를 보장받기 위해서라든가… 주님이 우리들의 공동체에 구원받은 자를 더하여 주실 때(행2.47) 그것이 커다란 기쁨이 되는 것이지 자기만족이나 우월성이 아니다. 이러한 맥락에서 우리들은 우리들의 개교회들에게 언급할 필요가 있는 것은: 즉 선교적으로 섬기는 교회는 자신의 일이 자기 십자가를 지고가는것임을 알아야 한다(행5.41 그리고 바로 첫 번째 순교자 스데반!).

선교와 일치

개교회를 위해 선교를 거슬리는 관점은 매우 고통스럽다. 즉 교회가 교단으로 분열되어 함께 사랑안에서 살지 못하고 오히려 선교활동의 장애물이 된다. 이와 같은 우리들의 분열보다 더 강한 분이 그리스도임을 우리들은 고백한다. 그 소망으로 그리스도를 고백하는 모두가 가까워지고 일치되는 그때를 위해 우리들은 노력한다. 설령 그것이 이루어지지 않는다 하더라도 우리들은 그리스도의 복음으로부터 특별한 강조점을 들으며 서로 자신의 지식으로 봉사하는 선물 받은 공동체를 기독교회의 한가지 형태 안에서 보기를 원한다. 우리는 – 우리들의 선교적 사명의 관점으로 – 서로 존경하며, 다른 교회의 활동을 존경하고 성서적 증인과 선교활동의 발전적 이해를 위해 협력함으로 교회를 돕는 것을 원한다. 그러므로 교회의 경쟁과 개종주의의 모든 형태를 우리는 거부한다. 주님의 만찬식탁의 공동체 안에서 우리들은 자신의 직접적인 목적을 바라본다.

선교와 종말

신약의 증인들은 개인에게나 민족에게 일정한 시간이 주어진 것이며 그래서 자비로우신 하나님은 우리 모두가 하나님 나라에서 준비될 어질 구원과 삶에 대해 알기를 원하신다는 것을 확인하고 있다.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이 공허하지 않았다! 하나님은 좋은 사람 나쁜 사람, 믿는 사람 믿지 않는 사람, 종교인들 비종교인들 누구나 모두를 사랑하신다. 그들 가운데서 하나님은 자신의 잃어버린 자를 끊임없이 찾고 또 찾고 계신다. 그러므로 교회는 선교의 사명보다 더 중요한 사명
은 없다: 온 세상에 모든 민족 모든 국가들에게 그리스도의 복음을 확신시키고 예수 그리스도가 세상의 구세주 되심을 모든 사람이 믿고 받아들이도록 하는 일이다. 교회가 더 열심히 사명을 수행하면 할 수 록 점점더 승리가 가까워지고 그리스도가 이미 하나님과 화해시킨 모든 민족과 나라들을 위해 진리와 진실 사랑과 평화가 다스리는 하나님 나라가 충만하게될것이다.(마24.14, 롬11.11-15, 벧후3.9)

장로들과 개교회들을 위한 과제들

우리 개교회의 장로들은 그리스도 교회의 선교적 사명에 대한 관점으로 다음에 응답한다:

1. 매 설교에서 분명하게 이해할만하게 복음의 핵심이 표현되어진다.
a) 예수 그리스도의 세상 통치의 선언. 그리스도는 자신의 승천으로 통치권을 갖게되었고 성령을 그들에게 보내줌으로써 실현하였다.
b) 하나님의 화해와 예수 그리스도를 따르는 것에 복종하도록 초청
매 설교는 복음을 만난 사람 그리고 개교회의 전회중이 전도에 대한 준비, 그것들을
어떻게 설명할지를 고려해야 한다. 장로들은 조직적으로 설교의 청중들이 성장하도록 그리고 다른 사람에게 복음을 전달 할 수 있도록 돌보아야 한다.(\"때가 오래므로 너희가 마땅히 선생이 될 터인데 너희가 다시 하나님의 말씀의 초보가 무엇인지 누구에게 가르침을 받아야 할 것이니 젖이나 먹고 단단한 식물을 못 먹을 자가 되었도다.\"히5.12)

2. 교회의 경계선 밖의 인생들의 고통과 질문들 그리고 세상의 문제들은 모든 개교회의 기도와 예배에서 다루어진다. 그래서 예배는 그리스도의 희생을 지불한 세상을 위한 싸움터가 되는 것이다.

3. 성찬예식은 \"봉사\"로 모든 개교회가 믿음을 고백하는 장소이다. 즉 어린이들, 병자, 노인들, 버려진 자들 고통받는 자들을 섬기는 것이다.

4. 개교회는 자신의 삶에 대한 자기중심을 극복해야 하며 모든 교회들의 사명에 응답해야한다. 그래서 교회의 경계선을 넘어가는 과제에 대해서 그리고 다른 개교회안에서의 활동을 위해 교회는 자신의 일꾼을 자유롭게 해야 한다.

5. 교회의 선교활동에 의해 관심을 일깨운 사람들이 개교회의 공동체 안에서 자신들을 사랑으로 받아들이는 형제 자매들을 발견할 때 그들은 세례를 받는 자리까지 나아갈 수 있을 것이다.

6. 장로들은 선교활동을 위한 교회의 가르침과 고백을 가급적 짧은 기간 안에 적응될 수 있도록 그리고 이해될 수 있도록 새로운 교리로 표현하는데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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