흙으로 돌아가리라

  • 한인 예배 (2002년 02월 17일)
  • 창 3:8-19
  • 설교자: 이종실

02년 02월 17일(사순절 첫째주일)
본문: 창세기 3: 8-19
제목: 흙으로 돌아가리라

<공동기도>
구원의 하나님 아버지
죽음의 날을 기억하는 겸손한 삶으로
하나님을 대적하는 우리의 불순종을 대속해 주신
하나님의 사랑을 새롭게 깨닫는 사순절이 되게 하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본문>

들이 날이 서늘할 때에 동산에 거니시는 여호와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아담과 그 아내가 여호와 하나님의 낯을 피하여 동산 나무
사이에 숨은지라 … 네가 얼굴에 땀이 흘러야 식물을 먹고 필경은 흙으로 돌아가리라. 그 속에서 네가 취함을 입었음이라 너는 흙이니
흙으로 돌아갈 것이니라 하시니라.

<설교>
오늘은 사순절의 첫 주일입니다. 사순절은 부활주일
전 6주간의 기간입니다. 이 기간에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고난과 죽음과 부활을 묵상합니다. 예수님께서 죽으시어 우리의 죄
값을 지불하시고 우리에게 생명을 주신 것을 묵상합니다. 사순절을 “lent”라고 하는 데 이 말의 어원은 “lengthen”에서
왔습니다. 봄에 낮 시간이 점점 길어지는 기간을 의미합니다. 사순절의 원래기간은 40시간이었습니다. 예수님이 고난을 받으시고
무덤에 머물러 계시던 시간을 기억하며 금식하는 기간이었습니다. 이것이 3세기 초에 6일로 늘어났습니다. 그러다가 주후 800년에
40일이 되었습니다. 이 전통은 예수님께서 공생애를 시작하기 전 광야에서 금식하며 기도하던 40일에 근거를 두고 있습니다.
사순절의 시작은 부활절 전 일요일을 포함하지 않은 40일입니다. 이 날은 수요일인데 특별이 이 수요일을 교회력에서 “재의
수요일”이라고 부릅니다. 지난 주 수요일인 2월 13일이 바로 재의 수요일이었습니다.

재의 수요일은 회개의 날을 상징합니다. 재위에 앉아 재를 머리위로 뿌리며 회개자는 “죽음을 기억하라!”(MEMENTO MORI!)고 절규합니다. 이것이 후에 카톨릭 수도원에서 수도승들의 인사였다고 합니다.

오늘 창세기 기자는 사순절의 첫 주일을 맞이하는 우리들에게 “흙으로 돌아가리라”즉 “죽음을 기억하라!” 고 우리를 기억시키고 있습니다.


세기 기자는 매우 냉정하게 단호하게 우리들의 이 땅 위에서의 수고와 고통과 죽음의 이유는 우리 인간의 죄 때문이라고 언급하고
있습니다. 죽음 – 흙으로 돌아가는 것은 인간이라면 누구도 피할 수 없는 죄의 값입니다. 이 창세기의 신앙 전통에 따라 사도
바울은 “죄의 삯은 사망”(롬 6:23)이라는 명제를 선언하였습니다.

오늘 본문에서 하나님은 아담과 하와에게
신신당부를 하였습니다. “너희가 이 금단의 열매를 먹는 날에는 죽으리라.” 그러나 그들이 사악하게도 그것을 먹었을 때 하나님의
탄식이 울려퍼졌습니다. “오호라, 사람이 선과 악을 아는 일에 우리와 같이 되었구나.  그가 손을 내밀어 생명의 실과를 따먹고
영원히 사는 일이 없도록 하여야겠구나.”(22절)

하나님을 탄식케 한 인간의 불순종이 죄입니다. 우리들의 귀에는
언제나 하나님께 불순종을 유혹하는 뱀의 소리가 쟁쟁하게 들려오고 있습니다. “선과 악을 알게 되어 너도 하나님처럼 되리라.”
인간은 자신을 창조한 하나님이 되는 것 만큼 즐거운 유혹은 없습니다. 한번 알게 된 달콤한 유혹과 욕망은 인간 안에서 성장해
갑니다. 인간은 자신이 원하는 것은 무엇이나 다 이룰 수 있는 존재로 이해하기 시작하였습니다.

이때 하나님은 인간에게 인생의 한계를 설정합니다. “(흙) 속에서 네가 취함을 입었음이라 너는 흙이니 흙으로 돌아갈 것이니라 하시니라.” 흙으로 돌아가는 것입니다.


생은 마지막 종점이 있습니다. 인간이 태어나는 그 순간은 인생의 마지막 종점을 향해 첫발을 내딛는 것입니다. 우리는 흙으로
돌아갑니다. 우리가 만들고 우리가 사랑하고 우리가 하나님처럼 소중히 여기는 것들을 모두 남기고 떠나야만 합니다.

“흙
으로 돌아가리라” 이 선언은 우리 인간이 신이 아니라 죽음을 향하는 존재임을 깨닫게 한것입니다  “너는 흙이니 흙으로 돌아갈
것이라” 이 선언은 죽음은 인생 끝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삶의 모든 순간에 위치하고 있음을 깨닫게 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달력과 시계를 사용합니까? 날이 어두워지기 전 서둘러 일을 계속해야 되는 강박관념은 어디에서 비롯되었습니까? 젊음이
지나가 것을 안타까워 하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이 평범한 말들과 사실들 그 배후에 우리는 시간 시간 우리가 죽어가고 있고
우리에게는 제한된 시간만이 있다는 사실을 무의식속에서 생각하고 있기때문입니다. 우리는 화살처럼 날아가고 물처럼 끊임없이 흘러가는
시간과 날이라는 특급열차에 몸을 싣고 있음을 알기때문입니다. 우리는 수명을 연장할 수 있지만 죽음을 정복할 수 없습니다.


음의 초읽기에 당혹스러워 하는 인간을 보며 즐거워하는 잔인한 하나님이신가? 여기에서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가 병든자를 고치고
죽은자를 살리는 복음서의 이야기를 기억하십시다. 이러한 예수 그리스도의 공생애는 세상에 질고와 죽음은 존재하지 않아야 된다는
선언입니다. 고통과 죽음은 하나님의 창조가 아닙니다. 인간이 피조물임을 거부하는 인간의 욕망으로 망가진 하나님의 창조가 고통과
죽음인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오셔서 우리의 손을 아버지 하나님의 손과 다시 붙잡고 화해하게 함으로써 망가진 하나님의 창조가
수리된것입니다. 인생의 질고와 죽음이 사라진것입니다. 그러나 이때 죽음은 생물학적인 죽음이 사라진 것을 의미하는 것은 아닙니다.
하나님의 심판이 사라졌다는 것입니다.

다시말씀드려 죽음이 다른 질과 내용을 갖게된 것을 의미합니다. 죽음은 시간과
영원사이에 가로놓인 담장이 아니라 오히려 시간과 영원을 연결시켜주는 다리가 된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고린도전서 15장에서 우리는
죽지않고 모두 변화할 것이라고 합니다. “마지막 나팔 소리가 울릴 때에 순식간에 눈 깜짝할 사이도 없이 죽은 이들은 불멸의 몸으로
살아나고 우리는 모두 변화할 것입니다. 이 썩은 몸이 불멸의 옷을 입고 이 죽을 몸이 불사의 옷을 입게 될 때에는 승리가 죽음을
삼켰다. 죽음아, 네 승리는 어디 갔느냐? 죽음아 네 독침은 어디 있느냐? 라는 성경말씀이 이루어질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우리에게 승리를 주신 하나님께 감사합니다.” 고린도전서 15: 50-58절 말씀입니다.

하나
님은 “네가 그것을 따먹는 날에는 정녕 죽으리라”(창2:17) 라고 위협을 하면서 동산 중앙에 있는 실과를 따먹지 말라고
명령하셨습니다. 그런데 인간은 그 실과를 따먹었고 그래서 심판의 번개가 내리쳤습니다. 땅은 가시와 엉겅퀴로 가득차게 되었습니다. 그
심판은 뱀에게도 역시 내려졌습니다. “네가 그것을 따먹는 날에는 정녕 죽으리라” 이미 선언되었지만 그 사형선고는 즉시 인간에게
내려지지 않았습니다. 금방 죽는 대신 죽어야만 하는 운명을 인간은 지니게 되었습니다. 사형선고 대신 집행유예를 선고받았습니다.
이렇게 인간은 사망의 그늘이지만 그래도 계속 살아갈 수 있도록 허락을 받았습니다. 이처럼 하나님의 심판 속에 하나님의 은혜의
신비가 은밀히 감추어져있습니다.

예수님은 어리석은 부자의 비유에서 “오늘밤 네 영혼을 도로 찾겠다”고 합니다.
나는 누구입니까? 나는 어디에 있습니까? 다가오는 밤에 나는 나의 영혼을 빼앗기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오늘 나는 아직 살도록 허락 받았습니다.


리에게 결코 죽음의 운명에서 해방된다는 약속이 주어지지 않았지만 저와 여러분들은 잠시 동안 생명을 부지 하도록 허락 받았습니다.
전쟁과 폭동과 질병과 사건사고와 자연환경의 위협의 홍수 속에 사는 우리들에게 하나님은 폭풍구름 저 너머에 화해의 표시로서 무지개를
만드셨습니다.

가시와 엉겅퀴와 흙으로 돌아가게 되는 우리들의 고통과 압박들은 우리들로 하여금 “이 보잘 것 없는 세상은 우리의 집이 아니다”라는 것을 기억 시킵니다.

리고 고통이나 애통, 울부짖음이 더 이상 존재하지 않으며 모든 눈에서 눈물이 씻겨지고 원수의 하나까지 모두 쳐 부셔진 새 하늘과 새
땅을 우리가 기다리고 있음을 깨닫게 해줍니다. 흑암과 사망의 그늘아래 거할 때 우리는 깨닫게 됩니다. 하나님이 어떻게 우리를
위로해 주시는지, 하나님 그분이 얼마나 신실한 분이신지 깨닫게 됩니다. 우리가 깊은 심연에서 울부짖을 때 우리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시는 하나님을 우리는 만나게 됩니다.

고통의 심연에서 다윗은 목자 되시는 여호와를 발견하고 그를 노래합니다.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가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그가 나를 푸른 초장에 누이시며 쉴만한 물가로 인도하시는 도다. 내 영혼을
소생시키시고 자기 이름을 위하여 의의 길로 인도하시는 도다. 내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다닐지라도 해를 두려워하지 않을 것은
주께서 나와 함께 하시리라. 주의 지팡이와 막대기가 나를 안위하시나이다. 주께서 내 원수의 목전에서 내게 상을 베푸시고 기름으로 내
머리에 바르셨으니 내 잔이 넘치나이다. 나의 평생에 선하심과 인자하심이 정녕 나를 따르리니 내가 여호와의 집에 영원히
거하리로다.”(시편 23편 전체)

사랑하고 존경하는 교우여러분,
사순절의 첫번째 주일을 맞이하여 저와 여러분은
우리가 죽음을 향하는 존재, 다시 흙으로 돌아가는 존재임을 기억하십시다. 죽음을 기억하는 자, 흙에서 나와 흙으로 돌아가는 우리
존재를 아는 자만이 죽음과 고통 너머로 우리를 사랑하시는 신실하신 위로자요 구원자이신 하나님을 만날 수 있습니다. 죽음을 기억하는
겸손한 삶으로 하나님을 만나는 이 사순절이 되길 주님의 이름으로 기원합니다.

<설교 후 기도>
우리
들이 흙으로 돌아가는 존재임을 사순절의 첫 주일에 다시 기억합니다. 주님앞에 진실하게 하시며 주님만을 의지하는 삶을 살아가는
저희들 되게 하여주시옵소서. 마음의 욕망이 결국 하나님에 대한 불순종임을 알고 욕망을 비운마음에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의 신비로
채워주시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 드렸습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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