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예드노따 브라뜨르스까(Jednota Bratrska : 형제단) 1457년 – 1621년
후스파의 급진개혁의 첫 시기는 특별히 형제단의 종교개혁을 자극하였다. 로마와의 타협에 대해 불만이 있었던 급진적인 후스파 진영에서 15세기 후반에 (뽀제브라디의 이지 Jiri z Podebrady 라는 후스파 왕이 통치) 새로운 개혁세력이 일어났다. 이 개혁 세력이 “보헤미아 형제단”(Unitas fratrum)이다. 이들은 남보헤미아 종교사상가 뻬뜨르 헬취쯔끼(Petr Chelcicky)의 가르침과 프라하 후스파 감독 얀 로끼짜나(Jan Rokycana)의 설교에 의해 영향을 받은 신실한 신앙인들 그룹이었다. 이들은 악한 세상과 구별되기를 바라며 1457년에 동 보헤미아 지역의 쿤발트에 정착해서 복음 안에서 그리고 초대교회의 모형에 따라 올바르게 기독교 교회를 세우려고 하였다. 그들의 영적인 지도자로는 수도승 제호즈 프라슈끼(Rehor Prazsky), 후스파 사제 잠베르크의 미하엘(Michael ze Zamberk)이다.
“침묵의 왕”과“하나님의 어린양”인 예수 그리스도를 신실하게 믿으며 “좁은 길”을 따르는 삶을 노력하였다. 첫 10년 간 형제단은 점점 세속화되어가고 후스파 교회들과 관련된 마지막 사슬을 끊어버린 보헤미아의 발덴-따보르 교회 시대를 살아온 가장 연장자 사제에 의해 안수를 받은 자신의 사제들을 선출하였다. 쿤발트의 마데이(Matej z Kunvaldu)가 형제단의 첫번째 사제가 되었다.
형제단의 신학자와 설립자들로 중요한 인물들은 형제단의 신학자와 조직가로 루까쉬 프라슈끼(Lukas Prazsky), 루터교회의 영향을 받은 신학자이며 찬송가 작곡자 얀 아우구스따(Jan Augusta), 유명한 신학자, 소설가, 음악신학가, 신약 성서 번역가 얀 브라호스라프(Jan Blahoslav), 시편을 시적으로 번역한 신학자 이지 스뜨레이쯔(Jiri Strejc) 등이다.
형제단은 체코 종교개혁의 전면에 등장하였다. 비록 형제단은 미약한 소수 민족이었고 그의 역사는 순교역사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오늘날까지 16,17세기의 체코의 영적인 삶의 가장 중요한 사건으로서 평가되고 있다. 형제단의 신앙고백, 교리, 교회 조직과 찬송가 외에 자신의 언어로 번역된 성서 끄랄리츠까 성경(Bible kralicka)이 그 증거가 된다(역자 주: Bible kralicka- 간단한 주석이 곁들여진 6권으로 된 체코어 성서, 1579-1593년 모라비아의 끄랄리체에서 출판됨). 교회 규율의 강조점으로서 형제단은 교회의 칼빈적인 개념과 모든 삶의 영역에서의 그리스도의 통치의 신학에 더 가까웠다.
교회 생활에 대해서 가장 기본적인 형제단의 개념은 라틴어 슬로건에 잘 나타나 있다 : In principiis unitas, indubiis libertas, in omnibus caritas(연합의 원칙으로, 의심 없는 자유로, 모든 사랑으로)
형제단의 가장 유명한 인물은 마지막 감독 얀 아모스 꼬멘스끼(Jan Amos Komensky 또는 Comenius 1592-1670)이다. 전유럽에서 그는 신학자로 교육자로 과학자로 민족 간의 평화를 위한 운동가로 알려져 있다. 그는 자신의 생애 절반을 반종교개혁시대에 망명자로 외국에서 지내야 했다. 그는 교육과 언어학의 업적으로 “민족의 선생”이 되었다. 미래 에큐메니칼 기독교 사회와 국제평화 협력의 비젼에 대한 그의 제안으로 새로운 시대의 길을 여는 파이어니어가 되었다. “인간의 진보에 대한 일반적인 상담(Obecna porada o naprave veci lidskych)”이라는 그의 학문적 업적과 관련해서 그의 영적인 유산은 오늘날에도 매우 의미가 있다. “모든 것에 대한 교정(Panorthosia)” 제하의 제6권은 종교, 철학, 과학과 정치에서의 인간관계의 발전에 대한 제안이 그 내용이다. 30년 전쟁 기간에 망명중인 꼬멘스끼가 “세계의 미궁(Labyrint sveta)”에서 자신의 민족에게 내적인 “마음의 천국(raji srdce)”에 대해 가르쳤다.
꼬멘스끼는 개인의 회심과 모든 기독교인들의 회개로 교회와 세상의 갱신이 시작되는 것을 보았다. 1650년에 출간된 “형제단의 죽어가는 어머니의 유산”에 교회와 개혁주의 형제들에 관해 가장 감명깊게 나타나 있다. 예수 그리스도가 십자가에 죽으시고 부활하신 주님일 뿐 아니라 세상을 통치하실 분이며 마지막 날에 오실 분임을 확고하게 믿는 믿음이 꼬멘스키가 자신의 가장 어려운 삶의 문제를 멈추는 데 도움이 되었다.
얀 아모스 꼬멘스끼는 형제단의 신학을 발전시켰다. 그는 자신의 저술 활동으로 당시 전유럽에 체코종교개혁의 영적인 그리고 실천적인 동기를 확산시키기 위해 노력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