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연합 예배 (2011년 10월 02일)
- 사도행전 16장 25-34절
- 설교자: 에르딘게르
2011년 10월 2일
사도행전 16장 25-34절
1
내가 어떻게 해야할까? 사도들에게한 간수의
질문이 우리들에게도 있습니다. 우리는 이 질문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압니다. „내가 어떻게 해야할까?“ 이 질문은 상황에
따라 그 의미가 달라집니다
첫째, 절망적인 의미를
갖는 경우입니다 „무엇을해야하나, 나는 모르겠다. 절망이다. 무엇을 내가 할
수있는가? 아무것도 바뀌는것이 없다. 나는 알지못하겠다.“ 무기력하고 절망적인
느낌의 질문입니다. 현재 암울한 상황을 표현하는것입니다. 우리들의 삶 속에서
이러한 느낌을 자주 겪게됩니다. 이것은 자포자기를 하는 질문 입니다. 이러한 질문은
우리의 삶과 가치를 상대적으로 만들고 다른 한편 우리 인간이 얼마나 무기력한 존재임을 보여줍니다.
두번째로 미래지향적인 의미의 경우입니다. 내가 행복하기위해, 부유하기위해, 건강하기위해, 학문이 있는 사람이
되기위해 내가 무엇을 해야할까? 우리가정이 잘 되기위해 내가 무엇을 해야하나? 다른사람들이 나를
필요로하기 위해, 직장에서 만족스러운 사람이 되기위해 다른사람이 나로 인하여 행복해 지기위해 등등 나는 무엇을 해야하나? 이러한 질문은
우리를 진취적으로 만듭니다.
세번째 경우로, 이 질문은 인간의
한계와 함께 영원한 삶을 지향하게 합니다. 존재론적인 질문입니다. „간수 처럼 내가
구원을 받기위해 어떻게 해야하나? 우리 주 그리스도에게 한 부자가 질문한 것처럼 „내가 영생을 얻기위해
무엇을 해야합니까?“ 질문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질문은 삶을 뿌리내리게 하며 인생의 목표와 관점을 보여줍니다. 모든 이들에게
삶의 궁극적인 의미를 주고 우리가 노력하고 씨름할 수 있도록 힘을 주고 그 노력과 씨름을 통해 인생의 기쁨을 갖게합니다. „내가 어떻게 하여야
구원을 받으리이까?“ 간수의 질문이 바로 이 경우입니다.
2
그런데 사람들은 매일, 같은 상황에서
내가 어떻게 하여야 구원을 받으리이까 질문을 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그 질문은 우리의 삶을
근본적으로 변화하도록 요구하기 때문입니다. 모든 사람들에게 이 질문은 필요로 합니다. 인생의 많은 사건을
통해 사람들은 삶의 이야기들을 갖게됩니다. 간수들의 질문들 앞에는 매우 드라마같은 사건이 일어났습니다. 이 질문이 있기
전에 지진이 있었습니다. 무엇이, 가서 제자를 삼고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라는 그리스도의 복음이 전파되는 전주곡이 되었습니까?
지진이었습니다. 사도들은 기도하였고
하나님을 찬양하였습니다. 어떻게 보면 미친것 같은 이 소리가 옥에 갇힌 다른 죄수들의 귀에도 들려졌습니다. 사도들의 상황은
어떤 상황이었습니까? 위기였으며 패배와 무기력함이었습니다. 일반적으로 보통
사람들이 만약 사도들 처럼 홀로 감옥에 갇혀, 자신과 사람들과 하나님으로 부터
격리되어있다면, 누군가를 원망하며, 상처받은 삶을 한탄하며, 악하고 올바르지
못한 사람들을 꾸짖고 이웃과 하나님을 비방하였을 것입니다. 사람들은 자신의 정당성을 위해
누군가를 희생제물로 삼습니다.
3
사도들이 기도하고 하나님을 찬송하자 땅이 흔들리고 돌이 구르고 창문이 깨어지고
수갑이 풀립니다. 옥문이 열리고 쇠사슬이 풀렸습니다. 지진은 누구도 상하게 하지 않았고 누구도 억압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지진은
자유케하고 문을 열고 길을 만들었습니다. 바짝 말라버린 대지에 균열을 일으킨 지진은 사람의 마음과 영혼과 삶을 흔들어
놓은 지진이 되었습니다. 누구도 상처받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견고한
옥문은 움직이지않는 물건이라고 생각하는 것처럼 인생을 습관적으로 경험적으로 움직이는 것으로서 바뀌지않는 일상으로 생각하는 사람들에게 지진은 큰
고통을 안겼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모든 죄수들이 도망을 쳐서 그 책임을 물어 나는 체포되어
처벌을 받게될것이며 그 책임을 감당할 수 없어 차라리 죽는게 낫다고 생각하였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도망치거나 포기하는 그런 사람들과 다릅니다. 우리 모두는 지금
여기에 있습니다. 하나님은 지진으로 옥터를 흔들며 우리의 찬송과 기도와 찬양을 기뻐하고 계십니다. 이 하나님의 기쁨은
지금 여러분들과 함께 있습니다. 하나님은 무엇인가 역사하시고 계십니다. 모든 예상을 뒤엎는
갑작스러운 상황은 간수들이 스스로 목숨을 끊으려는 것을 멈추게 하였습니다. 그들의 마음이 열리자 놀랍게
입이 열렸습니다. „내가 어떻게 하여야 구원을 받으리까?“ 내가 어떻게 하여야 내가 자유하며 내가 어떻게 하여야 내 삶이 참된 뿌리, 참된 관점, 참된 목표가 생길
수 있습니까?
4
방금전까지 지진으로 시끄러웠던 옥사에 고요함이 찾아왔고 그 고요한 옥사에
„주 예수를 믿으라, 그리하면 너와 네 집이 구원을 받으리라“ 바울의 음성이
퍼져나갔습니다. 변화는 아주 래디컬합니다. 죄수들을 무자비하게 감시하는 간수들이 그리스도를 믿으라는 초청의 말씀을
들었을때 그들의 태도는 180도 달라졌습니다. 그 죄수들을 데려다가
매를 맞아 상처난 자리를 씻어주었습니다. 이사야 예언자의 예언(53,4) 대로 우리의 질고를
지고 우리의 슬픔을 당하였고 우리의 징벌을 받아 하나님께 맞으며 고난을 당한 그리스도를 받아들였습니다. 간수는 그리스도를
믿는다는 커다란 고백을 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믿음의 말 대신에 그는 커다란 일을 하였습니다. 상처를 씻어주고
아픔을 달래주었습니다. 그는 다른 동료들의 조롱도 지휘관의 처벌도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사람에게
가장 우선 필요로한것이 무엇인지 생각하였습니다. 시간이 없다고 말하지 않았습니다. 내가 지금 하고
있는 일이 있다거나 다른 사람에게 알아보라거나 의사를 부르라거나 하는 말하지 않았습니다.
한편 사도들의 모습도 비슷합니다 „내가 부득불 할
임이라“ (고전9,16) 여기서 사도 바울의 말이 생각납니다. 사도들은 자신들을
가혹하게 대한 간수에게 세례를 베푸는것을 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그것은 사람들과 함께하는 하나님의
친밀함의 분명한 표현입니다. 인간을 사랑하시는 하나님의 친밀함입니다. 어른 어린아이
백인과 흑인, 황인, 한국인 일본인 체코인 몽골인 모두를 사랑하시는 하나님의 친밀함입니다. 간수의 집안 모든 사람들이 세례를
받았습니다. 사도행전의 저자는 어떤 믿음의 조건이나 약속을 누구에게도 요구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의 자비는
모든 인간의 척도를 넘어서고있습니다.
세례를 받는 사람이 하나님을 믿는다고 한다면 다른 말은 필요없습니다. 물과 비누 그리고
몇가지 소독약이면 충분합니다. 하나님을 믿는다는 간수의 말없는 고백은 죄의 쇠사슬에 묶여 고통받는 이들의
상처를 돌보아주는 것입니다.
5
사랑하는 형제 자매 여러분, 이 교회당에서
체코 한국 일본 몽골인들이 매주일 각각 예배로 모이고 있습니다. 오늘같이 한달에 한번 모두 함께
모여 예배드립니다. 이것은 매우 중요합니다. 모두 함께 여기
있다는 것은 여기 모인 많은 입들이 말없이 마음으로 모든 사람을 차별없이 사랑하시는 하나님의 사랑을 고백하고 있다는 뜻입니다. 우리 주님의 교회
공동체임을 고백하는 것입니다. 바로 여기에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마28,20) 우리 주님의 약속이 성취됩니다. 이 말씀 바로
직전에 세례에 대한 말씀이 나옵니다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을 제자로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베풀고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그래서 우리는 여기서 함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베풀고, 우리를 위해 돌아가신
예수 그리스도를 기억하는 그리스도의 만찬의 식탁에 둘러서,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함께
읽고 증언합니다. 이렇게 모임으로써 우리가 함께 해야할 것을 확신하게 됩니다. 이러한 확신을 통해 우리들이
함께 걸어가야 할 앞으로의 모든 길이 하나 하나 열려지게될 줄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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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처음에 커다란
지진이 있었습니다. 그러자 생생한 존재론적인 중요한 질문이 나왔습니다: „내가 어떻게 하여야
구원을 받으리이까?“ 내가 어떻게 해야
영생을 얻을 수 있습니까? 내가 무엇을 해야 영생의 삶을 지금 살 수 있습니까? 믿음의 초청이
대답이었습니다.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라 그리하면 구원을 받을 것이며 자유함을 받을 것이며, 너희 가족 모두가
그리스도가 주시는 선물을 받게 될 것이다.“ 그렇습니다. 고백은 필요없습니다. 마음이 필요합니다. 그리스도를 위해
이웃을 위해 열린 마음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의 말씀이 임합니다. 세례에서는 하나님의
생명의 말씀의 상징인 물로 그리고 성만찬에서 그리스도의 희생의 상징인 떡과 잔으로 표현되고 있습니다.
처음에 커다란 지진이 있었습니다. 땅과 사람들의
마음과 영혼을 흔드는 지진입니다. 그리고 마지막에 잔치와 하나님을 믿는 믿음의 큰 기쁨이 있었습니다. „간수가 그들을
자기 집에 데리고가서 음식을 차려주고 온 집안이 하나님을 믿으므로 크게 기뻐하니라“ 이 기쁨, 하나님을 믿음을
때 오는 기쁨, 하나님으로 부터 오는 기쁨으로 우리를 이 교회 형제 자매로 함께 예배드리고 있는 체코 한국 일본 몽골 그리고 다른 모든 민족들을 초청하고
있습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