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의 재복음화를 위한 바람직한 선교방향
한 국 일(장로회신학대학교, 선교학)
유럽교회의 상황과 현주소
얼마 전 한 신문에서 최근에 독일 교회 현황에 관한 기사를 읽은 적이 있다. 독일교회는 교인들이 계속적으로 감소하여 비어있는 교회가 생기게 되고 그 교회건물을 유지하는데 경제적인 어려움을 겪고 있기 때문에 비용절감을 위해 교회 문을 닫는다는 소식이었다. 이와 유사한 현상들을 오늘날 서구교회들에게서 발견하는 것은 드문 일이 아니다. 유럽교회는 근대주의와 더불어 등장한 세속주의 확산으로 인해 신앙에 심각한 도전을 받고 있으며 결과적으로 나타난 현상은 많은 사람들이 교회를 떠났다. 이러한 현상은 최근에 들어 더욱 심각한 상태를 초래하고 있다. 필자가 2005년에 영국 스코틀랜드에 머물면서 영국교회의 상황을 확인할 수 있었다. 스코틀랜드 장로교회는 세계 장로교회의 원조이며 19세기에는 전 세계에 선교사를 파송하여 세계선교를 주도적으로 이끌었던 교회이기도 하다. 그런데 현재 수도인 에딘버러의 경우만 하더라도 시내의 많은 교회 건물들을 유지비용 문제로 인하여 매각하여 다른 용도로 사용되고 있는 것을 보았다.
2008년에는 독일과 스위스를 방문할 기회가 있었다. 독일에서 가장 큰 규모의 개신교 신학부를 가진 하이델베르크 대학교 신학부를 방문하였는데 그곳의 한 목사의 설명에 따르면, 1990년 대에는 약 2500여 명의 신학생이 있었으나 현재는 760여 명의 학생이 있으며 독일에서 두 번째로 큰 튀빙엔 대학교의 신학부는 2000명에서 680명으로 그 수가 크게 줄어들었다. 스위스의 대학교 신학부 상황은 더 심각하였다. 베른 대학과 취리히 대학 등은 서로 연합하여 신학부를 함께 운영하고 있으며, 세계적으로 잘 알려진 유명한 신학자 칼 바르트가 교수로 있던 바젤 대학교 역시 이러한 현상을 비껴가지 못하였다. 바젤대학교는 2008년 당시 80여명의 신학을 전공하는 학생이 80여명인데 학생수가 좀더 감소하면 교육부로부터 학위를 받지 못하게 되는 상황이 올지도 모른다고 설명하였다.
2009년 1월 호주를 방문하면서 시드니와 멜버른에 있는 신학대학교들을 찾아보았다. 그곳 상황도 예외가 아니었다. 멜버른 대학교의 신학부는 비교적 상황이 좋았으나 시드니의 대학교들은 신학부의 생존을 위해 힘겨운 씨름을 하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미국의 신학대학교 상황은 정확히 알지 못하지만 유럽의 신학대학교 보다는 나은 형편이긴 하나 신학대학교를 지원하는 학생수가 줄어들고 있는 것은 비슷하다. 미국 내 뿐만 아니라 세계적으로 유명한 진보성향의 신학대학인 뉴욕 유니온 신학교도 지원하는 학생 수가 급격히 줄어들고 재정적으로도 어려움을 겪고 있다는 소식이 들린다. 미국 장로교회(PCUSA)의 경우, 2009년 현재 11,000여 개의 교회 중 약 50%에 해당하는 5000여 교회에는 목회할 담임목사가 없이 존재한다. 유럽의 카톨릭 교회의 경우 교회에서 목회할 성직자가 부족하여 인도나 필리핀으로부터 카톨릭 신부들을 초청하여 사역을 맡기고 있는 상황이다. 이것이 천년 이상의 기독교 전통을 가지고 있으며 과거에 세계 선교를 담당하였던 서구교회들의 현주소이다.
서구교회와 신학대학교의 현재 상황들을 언급하는 것은 교회나 선교 상황을 그들이 가진 오랜 전통이나 경험, 신학적 깊이를 무시하고 외적 규모나 숫자로 평가하거나 판단하려는 의도가 아니다. 또한 오랜 전통을 가진 서구교회들이 이제는 더 이상 세계 선교의 책임을 수행하지 못한다고 주장하는 것도 아니다. 오히려 오랜 경험과 지식을 갖춘 서구교회들과 선교단체들로부터 신생교회들이 배울 점들이 많이 있다. 그러나 서구교회들의 현주소를 직시할 때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은 그들이 현재 교회의 생존을 위한 씨름을 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러한 현상은 오늘의 세계 교회와 선교상황의 구도가 바뀌어가고 있다는 점을 말하고자 함이다. 1996년 독일의 윤리학자이며 개신교 회장을 역임한 후버박사(W. Huber)는 하이델베르크 대학의 강연의 내용에서 독일교회의 심각성을 일깨우면서 “독일은 이제 재복음화 되어야 한다” 고 역설한 바 있다.
유럽교회는 격려와 지지를 필요로 한다.
연구학기로 6개월 간 영국 스코틀랜드의 수도 에딘버러에서 보내는 동안 스코틀랜드 교회와 목사, 교인들과 교제하면서 유럽의 교회에 대한 일반적인 상황에 대하여 다시 한번 깊이 생각할 수 있는 기회를 가졌다. 주일날 교회에 출석하고, 책을 읽고, 목회자, 신학자들과 대화를 나누면서 느낀 것은 유럽교회는 다른 교회로부터 격려와 지지를 받아야 할 필요가 있다는 점이다.
유럽교회는 내부와 외부로부터 많은 비판에 직면해 있다. 무엇보다 세속화된 서구사회로부터 기독교는 언제나 비판의 대상이 되어있다. 18세계 계몽주의 이후 합리주의가 보편화되어 있는 유럽사회에서 하나님을 말하기가 얼마나 어려운가를 유럽사회 안에서 실감하게 된다. 세속주의와 물질문명, 개인주의, 성적자유 등으로 둘러 쌓인 서구교회는 교회를 향한 무신론적, 세속주의적 영향과 비판으로부터 신앙의 전통을 지키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다. 게다가 이러한 세속주의와의 대화를 통해 형성된 신학의 자유주의적 성향은 교회를 세우기 보다 때로는 교회의 근간을 흔들어 놓는 부정적 영향력을 행사한다. 점점 감소하는 교인들의 수는 서구교회의 미래에 대하여 불투명하고 불안한 마음을 갖게 한다. 한 교인이 고백한 것 같이 서구교회는 점점 쇠퇴하여 사망에 이르게 될 것이라는 자조적인 결론을 내리고 있다. 세속주의로부터 신앙을 지키기 위한 그리스도인과 교회의 노력은 서구기독교의 특성을 내향적으로, 자기 중심적으로, 보존과 유지를 위해 자기 안으로 향하도록 만들어 놓았다. 그것의 가장 극단적인 형태 중 하나를 중부유럽의 체코 형제교회에서 보게 된다. 체코 형제교회는 박해시대에 신앙을 지키기 위해 내부적으로 결속을 다진 형태가 교회체질이 되어 결과적으로 밖을 향해서는 폐쇄적인 교회를 낳았다. 이렇게 서구 기독교는 세속주의와의 싸움에서 내향적 교회가 되었고, 그에 더하여 교회간 질서를 지키며 지역 중심으로 조직화 된 교구제도가 오늘날 반선교적 교회체질을 형성하는데 일조하였다.
서구 기독교는 아직도 식민지시대의 역사적 과오로 인한 죄의식으로부터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중세 교회의 타락과 식민지와 결탁한 과거의 역사는 오늘날 기독교 존재가치를 부정하거나 약화시키는 가장 큰 요인으로 작용한다. 이와 더불어 19세기에 서구교회는 전 세계를 향한 선교사를 파송하였고 선교활동을 활발하게 전개하였지만 탈식민지 시대인 오늘날, 과거의 피식민지 국가는 물론, 그 교회로부터도 비판의 대상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이들은 신학적으로 서구신학을 비판하고 서구교회를 질타한다. 에큐메니칼 운동권에서는 이들의 신학이 주종을 이루기 때문에 역시 서구교회와 신학에 대한 비판이 강하게 제기된다.
선교가 활발할 때는 식민주의와 결합된 이유로 비판의 대상이 되고, 서구교회가 약화되고 있는 오늘의 상황에서는 서구교회의 세속주의와 신학과 자유주의 신학이 비판의 대상이 된다. 비유럽권 교회들, 즉 진보적 교회들은 서구교회의 역사를 비판하고 보수적 교회는 서구교회의 세속주의와 자유주의를 비판한다. 이러한 내 외부로부터 주어지는 강한 비판에도 불구하고 서구교회가 존재할 수 있는 이유는 그들의 오랜 전통과 보이지 않는 신앙으로부터 나오는 저력이 있기 때문이다.
오늘날 서구교회를 질타하는 또 하나의 세력은 타종교이다. 그들은 유럽교회를 서구 식민주의 역사와 함께 비판하면서 서구교회가 위축되어 있는 틈새로 들어가 자유로운 서구사회의 분위기에서 선교적인 종교가 되어간다. 기독교가 서구사회에서 쇠퇴하고 있는 반면 오히려 그들은 점점 그 세력과 영향력을 증가시키고 있다. 타종교와 기독교 국가간 갈등이 확산되면서 이에 대응하는 종교다원주의 신학이 기독교 신학 내부에서 발전되었는데 이것도 서구교회를 내부적으로 약화시키는 요인이 된다. 계몽주의 이래 서구사회를 지배해 온 관용적 태도는 그 필요성이 충분히 인정되지만 결과적으로 자기 신앙의 확신을 갖는 것과 다른 사람들에게 전하는 것을 어렵게 만드는 문화를 조성해 왔다. 타종교인들은 제국주의적 식민역사를 가진 기독교 국가들의 약점을 알고 있으며 이점을 통하여 타종교인들은 유럽 내에서 자신의 입지를 굳히고 동시에 기독교 영향력을 제한하려고 한다.
유럽에서 기독교는 더 이상 공적 영역에서 직접적인 영향력을 행사하기 어렵다. 서구사회를 형성하는 두 가지 요소-세속주의와 종교다원사회-로 인하여 오랫동안 기독교가 서구사회에서 누려온 공적 위치와 기능이 약화되어 개인적 선택사항으로 축소되어졌다. 또한 비국가교회(free church)는 국가와의 관계를 단절하고 교회중심으로 한 독자적 성격을 형성해 왔으며 그렇기 때문에 오히려 자유롭게 전도활동을 전개한다. 위에서 언급한 요인들은 오늘의 서구교회의 현주소가 어디에 있는가를 보여준다. 서구교회는 내 외적으로 이러한 문제들과 영향력에 의해 둘러 쌓여 있어 생존을 위한 힘든 투쟁을 하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 처한 서구교회들은 외부로부터 격려와 지지를 절대적으로 필요로 한다. 그들의 장점이 인정되고, 그들의 약한 부분이 격려를 받아야 한다.
유럽의 재복음화를 위한 바람직한 선교방향
유럽교회를 내부로부터 깊이 이해하지 못하고 드러난 현상만으로 판단하면서 유럽을 단순한 선교현장으로 인식하고 일방적으로 선교하려는 태도는 바람직하지 못하다. 먼저 유럽 기독교의 오랜 전통과 문화에 대한 올바른 이해가 필요하다. 유럽의 재복음화를 위해 일하려는 사람들은 신학적으로 유럽교회와 전통, 문화에 대하여 대화할 수 있는 수준을 갖추어야 한다. 선교적 열정만 가지고는 충분하지 않다. 또한 유럽사회 저변에 자리한 기독교의 영향력에 대한 인식도 중요하다. 유럽에서 지역교회가 쇠약해진 것은 사실이지만 그것 만으로 유럽교회를 평가할 수 없는 것은 전체 교회를 지탱해주는 기독교 전통과 문화가 가진 힘이 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유럽교회는 재복음화의 절실한 필요성을 인식하고 있기 때문에 그것을 오늘날 어떻게 실현할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하여 함께 대화하고 노력할 필요가 있다.
유럽의 재복음화를 위한 선교활동에 중요한 원칙을 지켜야 한다. 첫째 유럽교회가 오랫동안 형성해 온 기독교 전통과 문화를 이해하고 존중하는 태도를 가져야 한다. 위에서 언급한 내용을 오해하고 단지 주일에 교회 모이는 신자의 숫자만으로 유럽교회를 판단하는 것은 큰 잘못이다. 유럽교회가 아직 가지고 있는 신앙적 전통의 깊은 자원을 인정하고 존중하는 것이 중요하다. 둘째 다른 지역도 마찬가지이지만 특히 유럽의 재복음화의 주체는 유럽교회가 되어야 한다. 외부의 선교활동은 지원과 격려의 성격을 넘어가지 못한다. 예를들면 오늘날 외국인 선교사들이 한국에 와서 한국교회를 무시하고 직접적으로 선교활동을 전개한다면 효과도 없을 뿐 아니라 한국교회로부터 큰 저항을 만나게 될 것이다. 하물며 한국교회와 비교되지 않을 만큼 오랜 역사와 전통을 지닌 유럽교회는 단기간의 활동이나 개인적 차원에서 전도활동은 적합하지 않다. 유럽교회가 현 상황에 포기하지 않고 신앙과 복음의 열정을 회복하도록 그들 옆에서 친구가 되어 격려하며 지원하는 방식의 선교가 필요하다. 이러한 원칙하에 필자가 경험하고 성찰한 유럽의 재복음화를 위한 가능하고 바람직한 몇 가지 방법을 제안하고자 한다.
첫째 유럽교회는 현실적으로 목회자 수가 부족하다. 신학교를 지원하는 학생수가 급감하고 있으며 종교학(religious studies)을 병행하지 않고는 신학부를 운영하기 조차 어려운 것이 현실이다. 그렇기 때문에 한 목회자가 몇 개의 교회를 책임지거나 아니면 교회를 통폐합하는 경우들이 발생한다. 우선적으로 생각해 볼 것은 대중적 형태는 아니지만 유럽의 지역교회를 책임지는 목회자로 선교 활동하는 형태이다. 물론 이것은 개인적 차원에서 실현하는 것은 어렵고 교회 대 교회간 협력관계를 맺은 교회의 지역에서 가능하다. 유럽이나 미국, 호주 등에서 현지인 상대로 목회하는 한국인 목회자들이 있다. 영국 URC(연합개혁교회)는 목회자의 수가 부족하여 한국의 신학생들에게 앞으로 영국 교회를 위해 목회할 것을 강력하게 요청하고 있다.
둘째 지역에 속한 개교회 목회도 필요하지만 지역 전체를 복음화하는 보다 넓은 차원의 선교접근도 유용하다. 동양인으로서 유럽인을 대상으로 목회하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다. 그러나 지역교회 목회자들을 격려하고 지원하는 활동은 어떤 면에서 더 효과적이며 가능한 활동이다. 호주의 오렌지 시티에서 한국인 목회자는 지역의 개교회를 개척하여 훌륭하게 목회하고 교회를 성장시켰지만 지역교회를 나와 지역 전체의 복음화와 목회자들을 위해 일하는 것을 보았다.
셋째 유럽 사회는 다민족 다문화로 이루어진 사회이다. 유럽의 이러한 사회적 특성으로 보아 다문화목회와 선교활동이 필요하고 가능하다. 이미 영국이나 호주 등에서 다문화 특성의 목회를 하는 한국인 선교사들이 있다. 이들이 현지교회와 협력하여 함께 선교활동을 하는 중에 현지 교회와 목회자들에게 한국교회의 선교적 열정과 신앙적 도전을 줄 수 있는 기회가 많이 있다. 또한 유럽에는 중국이나 이슬람 지역과 같이 자유롭게 선교활동을 하기 어려운 지역에서 온 사람들이 많이 살고 있다. 그 지역에서는 선교가 불가능하지만 유럽에서는 오히려 기회가 된다. 한 선교사는 영국 옥스포드 대학교 주변에서 20년간 중국인 유학생을 상대로 선교활동을 하고 있다. 어떤 면에서 중국 본토에서의 활동보다 더 좋은 선교의 결과를 얻는다.
넷째 유럽교회와 한국교회가 교단적 차원에서 에큐메니칼 협력관계를 맺은 후에 함께 일하는 방식이 필요하다. 유럽은 우리가 개인전도 차원에서 접근하기가 어렵다. 서구사회는 이미 개인전도를 잃어버린 것 같은 분위기도 있지만 다른 사람에게 우리 자신의 생각이나 더구나 신앙을 일방적으로 전하거나 고백이나 결단을 촉구하는 것 같은 일은 거의 불가능하다. 더구나 외국인으로서 거리에서 만나는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며 믿음의 결단을 인도하는 것은 쉽지 않다. 물론 이러한 전도를 하는 사람들이 없는 것은 아니다. 그러므로 서구교회는 교회와 교회의 상호협력관계에서 접근하는 것이 가장 바람직하다. 유럽교회의 회복을 위한 협력활동은 매우 다양하게 진행할 수 있다.
유럽교회를 돕는 일 중 하나는 그곳에서 영향력을 가진 교회 지도자들과 신학자들, 그리고 젊은 그리스도인들을 돕는 일이다. 한국교회는 그들과 긴밀한 협력관계에서 한국교회로 초청하여 그들을 격려하고 잃어버린 신앙과 선교의 열정을 회복하도록 도와주는 것이 필요하다. 결국 교회 지도자들과 신학자들이 유럽의 세속주의 상황으로 인해 교회가 약해지는 현상을 어쩔 수 없이 받아들이는 소극적 태도를 넘어 재복음화를 위해 도전적 노력과 행동을 할 수 있도록 격려하는 것이 필요하다. 현지에서 영향력을 가진 목회자들과 신학자들, 그리고 청년들의 교류활동은 유럽교회의 넓은 차원에서 매우 효과적으로 전개될 수 있다. 한 독일 선교학 교수는 대부분의 선교학 교수들이 독일의 복음화를 위한 선교학적 연구보다는 개인적 흥미와 관심사에 따른 주제를 연구하고 있다고 말한 바 있다. 유럽의 신학자들이 쇠약해가는 유럽교회를 상대로 개인적 차원에서 어떤 일을 시도하는 것이 매우 외로운 작업일 것이다. 이들을 한국교회가 초청하여 함께 한국교회의 영성과 선교열정을 경험하게 하며 유럽복음화를 위해 의논하고 지원해준다면 그들에게는 큰 힘이 될 것이다. 우리 역시 유럽 교회들을 방문하면서 겉으로는 보이지 않지만 교회 안에 깊이 자리한 전통과 교회의 사회적 영향력, 다른 교회를 위한 섬김과 봉사활동들을 배워야 한다.
유럽의 선교단체들과 협력하며 그들이 용기와 자신감을 가지고 국내 복음화 차원에서 활동하도록 하는 것도 필요하다. 복음주의 선교단체는 여전히 해외선교에 집중하여 있으며, 에큐메니칼 성격을 가진 교회들은 주로 국내에서 디아코니아 활동에 집중하고 있기 때문에 유럽사회의 국내 복음화는 유럽교회의 관심사와 활동에서 사각지대에 놓여있다고 볼 수 있다.
전 세계 특히 거의 모든 서구지역에 존재하는 한인교회를 유럽의 재복음화를 위한 교두보로 활용하는 것이 필요하다. 한국교회는 우리에게 주어진 세계선교의 과업을 보다 효과적으로 수행하기 위해서 전 세계에 흩어져 있는 한인교회들과의 연결망을 통하여 오늘의 세계 교회가 필요로 하는 인물들을 발굴하고 그들과 함께 양성하고 파송하는 “글로벌 사역”(Global ministry)을 수행하는 전략을 개발해야 한다. 바울이 유대인으로서 로마시민권을 가지고 당시 유대와 로마문화를 모두 친숙하게 접근할 수 있었던 것 같이 그러한 인재들을 발굴하고 교육하여 유럽교회의 협력선교사로 파송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한국교회는 이제 선교 2세대에 접어들면서 해외에서 태어나거나 오랜 기간 동안 살아오면서 영어와 현지어에 능통한 사람들이 많이 있다. 또한 서구지역에 세워진 한인교회 역시 유럽선교를 위해 한국교회가 가진 큰 자원이다. 선교사 자녀, 유학생, 이민자 자녀들에게 유럽선교를 향한 도전과 동기부여를 통해 그들의 친구로서 협력자들로 일하게 하는 것이다. 이들이 갖춘 언어와 문화는 한국교회와 유럽교회를 연결하는 중요한 선교 매개자가 될 수 있다.
결론적으로 유럽의 재복음화를 위해 현재 세계교회에서 한국교회가 할 수 있는 역할이 있다. 한국과 유럽 사이에는 인종적, 문화적, 언어적 차이가 존재하지만 그들을 위해 중보하고 이해하는 마음으로 친구가 되어 접근한다면 이러한 차이를 넘어갈 수 있다. 유럽의 재복음화는 유럽교회와 세계교회를 위해서 오늘날 시급한 과제이다. 오늘의 선교에 가장 바람직한 관점은 친구가 되는 것이다. 친구는 서로를 비난하거나 무시하지 않는다. 친구는 상대의 연약함을 이해하고 감싸준다. 그리고 어떻게 하든지 그것을 극복하고 해결할 길을 함께 찾는 사람이다. 유럽교회는 오늘날 자신들의 연약함을 감싸 안고 그것을 해결해가도록 격려하고 지원해 줄 친구가 필요하다. 한국교회는 오늘날 유럽교회의 친구가 되어 유럽의 재복음화를 위한 선교활동에 함께 참여할 계획을 세워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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