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라하 꼬빌리시 한인 디아스포라

(부제: 프라하 꼬빌리시 한인교회, 우리는 무엇을 노력하는가?)

목사 이종실

반적으로 해외 한인교회는 자신들을 “디아스포라 교회”라고 부른다. “디아스포라”는 신약성경의 초대교회시대때 로마의 박해를 피해 다른 나라로 흩어져나간 이주자 유대인들을 일컫는 말이다. 그리고 이들에 의해 그리스도의 복음이 유대 문화와 민족과 지경을 넘어 전 세계의 보편적 진리가 되기시작하였다. 그래서 선교신학자 Andrew Walls 는 기독교는 이주성의 종교이며 기독교 역사 안에 디아스포라 요소가 있다고 한다. 그렇다면 한인 크리스천들이 해외로 이주하면 모두 선교적인 디아스포라가 되는가? 유럽은 한인 이주역사가 50년이 넘고 한인교회 역사도 그만큼된다. 50년이 지난 지금 유럽의 한인교회는 모국교회인 한국교회와 비교하여 무엇이 다르고 어떤 측면에서 차별된 선교적 디아스포라인가?

국교회가 지금처럼 단기선교의 이름으로 선교현장에서 직접 선교활동을 하거나 현지인 사역자들과의 직접 접촉을 하는 선교와 한국에 들어온 아시아와 구 소련연방 국 노동자들에 대한 선교가 확대되면서 한국에 있는 모국교회와 해외에 있는 한인교회의 선교적 형태나 그 내용에 있어서 뚜렷한 차이를 발견하기가 쉽지않다. 이러한 문제의식과 함께 2000년 1월부터 프라하 꼬빌리시 교회안에서 유럽의 해외한인교회 모델을 나름대로 노력하면서 다양한 질문들을 만나게되었다.

 

프라하 꼬빌리시 한인교회의 출발에 대하여

1993년 체코에 온지 5-6년만에 갖게된 체코교회에 대한 이해 가운데 하나가 체코교회의 폐쇄성이었다. 약 400년간의 카톨릭의 박해와 50여년간의 공산주의의 박해로 체코교회는 생존 그 자체가 오랫동안 지상과제였다. 결국 이러한 역사적 경험이 현재 체코교회의 폐쇄성으로 나타났고 체코교회의 과제는 이 폐쇄성을 극복하는데 있다고 나는 판단하게 되었다. 이러한 체코교회의 미래에 대해 고민을 하고 있던 프라하 꼬빌리시 교회 담임이었던 슈토렉 목사와 함께 이 꼬빌리시 교회가 폐쇄성을 극복하는 체코 개신교회들의 모델 교회가 되는 길을 계속 모색하고 있었다.

래서 해외에서 한인교회가 현지교회에 소속되어 현지교회와 사회안에 동화되어 누룩처럼 소금처럼 역할을 하는 것이 성서의 가르침이라고 믿고있었던 나는 기존의 독립된 한인교회가 아닌 <체코교회와 함께 호흡하는 교회로서의 한인교회>에 동의하는 분들과 프라하 꼬빌리시 체코교회에서 한인교회를 시작하게 된다.

<체코교회와 함께 호흡하는 교회>라는 대 전제와 방향만을 세웠을뿐 그러한 교회를 세우기위한 뚜렷한 모델을 비슷한 상황에 놓여있는 다른 유럽의 한인교회들 가운데 찾아 볼 수 없었다. 유럽의 한인교회 역사는 무려 50년이 넘는다, 그리고 유럽의 한인교회 목회자들의 면면을 보면 신학적으로 목회적으로 매우 뛰어난 분들이다. 그 분들의 관점에서 바른 한인교회를 위해 많은 노력들을 하고 있지만 선교적 한인교회 모델에 대한 토론은 아직도 유효할 만큼 뚜렷한 모델이 나타나기까지 시간이 더 필요하다.

 

체코의 한인 크리스천들과 성서적 디아스포라

1990년 체코와 한국 양 국가간의 외교협정이 체결되면서 체코에서 외교관 및 주재상사 직원들이 체류를 하기 시작한다. 한국이 IMF를 겪으면서 진출한 대기업들이 다시 철수를 하고 한국에서 생활이 어려운 사람들이 기회를 찾기 위해 체코에 관심을 갖게 될 때, 한국에서 프라하를 배경으로 하는 드라마가 인기를 얻고, 직항이 생기면서 체코여행 붐이 급격하게 일어나게 되어, 민박과 가이드 여행사 식당 등의 일자리를 찾아 많은 사람들이 체코 정착을 시도하게 된다. 최근 대기업들의 투자가 확대되면서 체코의 체류한국인들이 급증하게 되었다. 2005년도 내무부 통계에 장단기 체류비자를 가진 한국인 250여명이었는데 2010년에 1300명에 달하고 그 중에 영주권자 (10년 이상 체류자) 가 80여명에 달하고 있다. 체코의 한국인들은 미국의 한국이민자처럼 체코체류가 최종적 목적이 아니라 대부분 경제적 또는 자녀교육 등의 일시적 목적을 위한 일시체류의 성격이 강하다.

경의 디아스포라는 박해와 같은 요인에 의해 발생한 반면 체코의 한인크리스천들은 경제와, 자녀 교육과 같은 좀 더 자유로운 선택에 의한 해외 이주자들이다. 그리고 이들은 얼마던지 한국과 왕래가 가능하며, 인터넷 환경으로 인해 한국과 물리적인 거리만 있을 뿐 심리적 공간적 거리감을 크게 느끼지 못하고 있다.

러나 해외이주 자체가 완전한 개인의 자유로운 선택에 의한 것이 아니라 개인적인 문제, 경제적인 문제, 회사의 명령 등 피할 수 없는 강제적 요인이 있기에 거의 모든 체코의 한인 크리스천들은 “체코로 오게 된 것은 자신의 의지가 아닌 하나님의 뜻”이라고 고백을 한다. 그리고 그 하나님의 뜻을 “하나님의 선교”에서 찾으려고 한다. 체코에 나올 때 심지어 한국 소속 교회로부터 “평신도 선교사”로 파송을 받는 경우들도 있었다.

래서 체코의 한국인 크리스천들은 “하나님이 나를 이곳에 보냈다” 라는 자기인식과 함께 그들이 교회를 이룰 때 “체코와 동유럽 선교를 위해서 존재한다”라는 공동체적 인식을 가지게된다. 그러나 이러한 인식이 박해와 같은 고난의 환경이 아닌 보다 자유로운 선택에 의한 이주로 인하여 선교적 자기인식이 구체적인 삶과 교회 공동체 모델을 구현하는데 긴장감이 떨어지고 오히려 자기 중심적인 신앙생활에 빠져버리는 경향이 있다.

코의 한국인 이주자는 언어와 문화의 차이로 체코 사회에서 소외되고 있지만 동시에 체코에 대한 대기업의 투자 등과 같은 이유로 체코 사회에 대해 우월한 의식을 가지고 있는 이중성을 갖고있다. 이러한 경향은 체코교회를 향한 한인 크리스천들의 태도에서도 나타난다.

코의 한국인 이주자와 신약 성경에 나타나는 “디아스포라”를 비교하면 해외로 흩어진 사람들이라는 의미에서는 같이 이해가 되지만 그 내용은 실제로 많은 차이가 있다. 디아스포라 개념은 세계화 시대에 다르게 이해되어져야 한다. 그러나 체코의 한국인 이주자는 신약 성경의 디아스포라는 물론 현대의 아프리칸 이주자, 남미인 이주자, 동남아시아 이주자, 망명자들과는 거리가 멀다. 체코의 한국인 이주자는 언제든지 체코의 삶을 자발적 의지로 포기할 수 있는 “자발적 디아스포라” 이다.,

러한 삶의 조건 때문에 자신의 경험에 따라 체코 사회를 정확하게 이해하거나 존중하지 못하는 경우도 있다. 그래서 한인교회의 “체코와 동유럽을 위한 자기의식”은 교세와 경제적으로 약한 체코교회에 대해 돕는 입장을 갖기쉽다. 이러한 관점에서 한인교회는 물질적 인적인 지원을 체코 또는 동유럽 선교로 이해하게 된다.

마제국 하에서의 유대인 디아스포라 선교는 자신이 살았던 사회와 동화의 과정에서 나타나고 있는 반면 체코 사회에서의 한국인 크리스천 이주자들의 선교적 역할은 대체로 체코사회와 유리된채 물질적 인적 나눔의 차원에서 이루어지고 있다. 물론 오늘날 타문화들이 한 사회안에서 어떤 형태로 공존하는 것이 바람직할지 논의가 필요하다. 그러므로 체코 유학생, 주재상사 직원, 출장자 등과 같이 일시체류자들이 절대적인 비율을 차지하고 있는 체코한인 크리스천 “디아스포라”에 대한 정의와 정체성 정립이 무엇보다 우선 필요하다.

 

프라하 꼬빌리시 한인교회의 선교의식과 교회론

앙배경이 다른 한인크리스천들은 하나의 교회를 이루기 위해 먼저 그리스도의 몸으로서의 교회를 철저하게 인식하고 고백해야한다. 이것은 교회성장을 위한 교단과 개교회 안팍의 경쟁에 익숙한 교회관의 변화가 필요함을 의미한다. 해외생활 속에서 부딪치는 개인적인 이해관계와 인간관계가 교회 공동체 안에서 극복되기 보다 교회 분열의 중요한 요인으로 작용한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의 몸으로서의 교회에 대한 고백은 개인적인 이해관계와 인간관계를 신앙안에서 승화시키는 자기싸움으로 나타나야한다. 그리고 동시에 문화와 인종과 기독교 전통과 믿음의 형태가 완전히 다른 체코 크리스천들을 이해하고 함께하려는 노력을 의미한다. 즉 꼬빌리시의 한국인 크리스천들의 선교는 그리스도의 몸으로서의 교회 고백 그리고 체코 크리스천과 다른 민족 크리스천들과 함께 하나의 교회를 이루는 노력에서 출발하게된다.

2010년 12월 31일부로 체코 통계청에 의하면 체코의 한국체류자들은 총1331명이다. 영주권자(10년이상 체류허가) 85명 (남자37명, 여자48명) 그리고 비자와 장기체류 허가자들이 1246명 (남자669명, 여자577명)이다. 재외국민 투표제가 실시되면서 주체코 대한민국 대사관이 파악한 실제 한인체류자들의 숫자는 체코 통계청 숫자에 미치지 못하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이들 가운데 체코를 이민 목적으로 체류하는 숫자는 아주 극소수에 불과하다. 대부분 5년미만 체류를 하다가 귀국을 하고 개인 사업을 하는 체류자들은 체류 년도가 상대적으로 길다. 개인사업자들은 대부분 민박 여행사 가이드 식당 등 관광 서비스 분야이며 소수의 무역업이 있다. 이러한 일반적인 체코 한국인 체류자들의 상황이 그대로 꼬빌리시 한인교회 교인들 구성에서도 나타나고 있다.

재 자녀를 포함하여 90여명 (자녀들 30명, 장년 60명) 주일 예배에 모이고 있는 프라하 꼬빌리시 한인공동체의 경우 한해 평균 20여명(자녀 포함)의 교인들이 귀국을 하고 다시 새로운 교인들로 채워지고 있다. 2010년의 경우 무려 40명의 교인들이 귀국을 하였다. 교회 주소록을 한해에 3-4번은 수정을 해야될 정도로 교인들의 변동이 매우 심하다. 2000년 1월 9일 공동체가 세워졌다. 만 10년동안 등록되어 있는 교인은 목회자 가정을 포함해서 4가정에 불과하며 만 5년이상 등록 교인은 3가정이다.

의 대부분 단기간의 일시체류자들로 구성된 한인교회가 조직상 어떤 형태로 존재해야 되는가? 라는 질문이 제기된다. 이러한 상황에서 한인교회가 독립교회로 조직되는 것이 올바른 출발인가? 누가 교회의 미래를 위해 책임있는 결정을 내릴 수 있는가? 비록 소수이지만 이 땅에서 태어나고 이 땅에서 자라나는 자녀들이 일시 체류자들로 구성된 독립된 한인교회를 그들의 정체성을 고양시키는 고향으로 받아들일 수 있겠는가?

기체류및 이민자가 절대적으로 소수에 불과한 다른 유럽나라의 경우를 보더라도 50년 유럽 한인교회 역사에서 북미주의 독립한인교회 모델을 찾아보기 어려운 원인이 유럽 한인 교인들이나 그 목회자들의 능력의 문제에 있는가? 아니면 유럽에서 재숙고 되어야 할 한인교회의 존립 형태의 문제인가? 교회간의 일치운동이 일어나고 있는 유럽에서 한인교회들이 독립교회로 존재하는 것이 윤리적인가? 그 독립교회는 누구로 부터 영적 신학적 성서적 교회적 지도를 받고 있는가? 독립교회들이 나아갈 길은 자신들의 노회구성과 총회구성인데 그나마 이것마저 임의단체로 또는 모국교회의 교파주의 아래서 진행되고 있는 유럽 한인교회들의 현실을 그대로 반성없이 따라가야 하는가? 이 독립교회들을 유럽의 현지교회들은 어떻게 바라보고 있으며, 이 한인교회들로 부터 그들에게 비추어지는 한국교회의 모습은 무엇일까? 현지교회가 이해하지 못하는 한인교회의 독립교회 존재형태를 지속하면서 유럽선교를 이야기 할 수 있는가? 이 유럽땅에서 설립되고 있는 독립교회로서 우리 한인교회가 말하는 교회와 선교란 무엇인가? 이러한 질문에 대한 숙고와 대안으로서 <프라하 꼬빌리시 한인교회>가 서가고 있다.

회 존립자체가 재숙고를 하자면 모든 면에서 교회론적인 입장을 정리할 필요가 있다. 먼저 프라하 꼬빌리시 교회는 모든 교인들이 하나님이 이 땅의 선교를 위해 보내주신 일시체류자들임을 고백하고 자신들의 은사를 따라 섬기는 공동체로 고백을 하였다. 선교사인 목사는 가르치는 은사로서 그리고 교인들은 모두 자신들의 은사를 따라 교회를 섬기는 것이다. 그래서 목회자 부터 모든 봉사자들은 댓가없이 섬기고 있다. 꼬빌리시 교회는 헌금지출에 인건비가 없는 교회이다. 목회자가 후원단체로 부터 받는 사례비는 곧 프라하 꼬빌리시 한인교회로 부터 받는 것과 다름이 없는 것은 교회는 그리스도의 한 몸임을 고백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 땅에 일시체류자로 보내주신 하나님의 뜻이 하나님 나라의 선교인 것은 교회 헌금을 선교와 봉사에 사용하는 실천으로 고백하고 있다. 지난 10년간 헌금지출의 60-70 퍼센트를 선교와 봉사에 사용하고 있다.

라하 꼬빌리시 한인교회는 그리스도의 몸으로서의 교회를 전제로 하고있다. 이것이 단지 구호나 교리가 아니라 실천의 장으로 이끌기 위한 목회적 질문은 계속 모색되고 있다. 이 질문은 교회성장의 가치관 아래있는 개교회 신앙생활에 익숙한 교인들에게 전혀 새로운 영적체험의 기회가 될 수 있지만 현실적으로 신앙생활에서 쉽게 이해되고 받아들여지기 어렵다. 그래서 교회 공동체 안에서 말씀과 기도로 자기자신을 다시 되볼아보는 신앙생활, 정직한 언어생활로 성도교제가 있는 신앙생활, 성도들 간의 경쟁이 아닌 자발적인 동기로 하는 섬김이 있는 신앙생활들이 그리스도의 몸으로서 교회를 세우는 즉 세가지 목회적 과제에 목회자의 설교와 모든 목회행정이 촛점을 맞추게 된다.

코의 한인체류자들을 위한 교회의 섬김도 교인 한명을 더 채우기위한 수단이 되지 않도록 노력한다. 새롭게 정착하는 한인들에게 선물을 돌리거나 해외생활 정착에 필요한 사항들을 손쉽게 도와줄 수 있는 것처럼 과도한 선전을 하는 행동 등 으로 이웃 한인교회들과 경쟁하는 모습이 비추어 질 수 있는 행위를 하지않는다.

김을 위해 교인들이 교회밖 활동으로서 자발적으로 나눔터라는 정보지를 발간하고 홈페이지를 만들어 체코사회 정보사이트를 충실히 제공해 주고있다. 그리고 조그마한 생활의 어려움이라도 덜어주는 섬김을 찾아 실천하고 있다. 모든 교우들은 체코선교를 위해 세워주신 교회인줄 믿고 하나님께서 자신의 일을 위해 자신의 백성을 꼬빌리시 한인교회로 불러모아 주고 있는 체험을 지난 10년 동안 하였다.

 

체코형제개혁(장로)교단 프라하 꼬빌리시 교회와의 관계

코형제개혁(장로)교단 총회의 추천으로 1995년부터 프라하 꼬빌리시 교회를 우리 가족이 출석을 하기 시작하였다. 나는 그 당시 담임 목사였던 이지 슈토렉 목사와 많은 대화를 나눌 수 있었다. 그를 통하여 체코교회의 폐쇄성의 문제를 깊게 이해하게 되었다. 그리고 그의 예배예전에 대한 관심이 체코교회의 폐쇄성을 극복하기위한 노력인것을 알게되었다. 그리고 그가 이해하는 선교는 모든 민족 모든 사람들이 성만찬에 참여하는 것이다. 성만찬을 비롯한 예배의 모든 의식은 복음에 감격하고 기뻐하는 하나님의 백성들의 역동적인 축제였다. 그는 그 기쁨이 좀 더 깊게 표현되는 예배의식을 늘 갈망하였다.

래서 그와 자연스럽게 한국인 크리스천들과 함께하는 예배에 대해서 이야기를 할 수 있게 되었다. 이렇게 <체코-한국 에큐메니칼 예배> (나와 함께 교회를 섬기고 있는 류광현 전도사는 이 예배의 형태와 내용을 Inter cultural common worship service로 규정한다)가 논의되기 시작하였다. 1997년 3월 체코형제개혁(장로)교단과 대한예수교장로회(통합)과 선교협정이 체결되었다. 체코의 한국 이주민에 대한 목회적 선교적 관심을 포함하고 있는 선교협정을 프라하 꼬빌리시 교회는 존중하였다. 체코형제개혁(장로)교단은 한인교회가 이 교단의 소속 개별 교회로 등록되는 것을 제안하였지만, 현지 개 교회와의 하나의 교회를 이루는 노력을 좀 더 해보는 것이 더 유의미하다는 생각을 하게되었다.

배경은 첫째 한국인 이주자들이 대부분 단기체류자이기에 개교회 존립의 당위성과 그 전통의 유지에 대해 스스로 확신을 갖지 못하였다. 두번째, 소수이지만 1.5세들이 성장하고 있고 이들에게 정체성을 세워주는 더 높은 가능성이 개교회로 존립하기 보다 현지 개교회와 하나되는 것이라는 확신때문이었다. 이러한 교회의 형태가 1.5세와 앞으로 2세들에게 한국인과 체코인의 정체성을 함께 수용하는 그들의 고향이자 정체성의 토대가 될것이다. 한국인의 정체성과 함께 타문화를 수용하는 기회를 이주자 후손들에게 마련해주는 것은 이민자 교회의 중요한 요소라고 확신한다. 세째, 체코교회는 우리 한국인들을 받아들임으로서 열린교회로 그리고 우리 한국인 크리스천들은 체코 개신교회 전통과 신앙의 뿌리를 배우는 이와같은 상호 경험의 나눔은 바른 선교적 교회를 세우는 노력이다. 그래서 우리들은 <프라하 꼬빌리시 한인교회>라고 이름을 붙이게 되었다.

토렉 목사는 이러한 뜻에 동의하고 한국인 크리스천들의 입장을 최대한 수용하였다. 프라하 꼬빌리시 한인교회 교인들의 신앙전통들이 매우 다양하였다. 체코교회의 교회법과 신앙전통을 그대로 받아들이기가 쉽지도 않았고, 한국 교인들 사이에서도 공통분모를 찾는것도 어려웠다. 교회를 지도하는 나 자신 조차도 교회의 방향만 서있을뿐, 걸어가는 길은 언제나 돌다리를 두드리는 심정이었다. 작은 일하나도 그것이 어떤 방향에서 어떤 결과를 가져올지 몰라 늘 심사숙고하였다. 결과에 대해 무리가 없고 예측가능한 일부터 시작하여도 언제나 예측하지 못한 문화의 차이에서 오는 문제들이 나타날 정도였다.

래서 당회는 프라하 꼬빌리시 교회의 한국인들을 그리스도의 몸으로서 꼬빌리시 형제 자매로 받아들이고 꼬빌리시의 한국인 형제 자매들의 자치를 결정하였다. 즉 같은 교회 교인이지만 체코교회의 교회법을 따르지 않고 자치를 하도록 허락한것이었다. 우리가 한 교회라는 고백은 한달에 한번 함께하는 예배와 성만찬과 세례이다. 그 외에도 절기예배를 포함해서 자주 예배를 함께 드릴려고 노력하고있다.

회는 꼬빌리시의 한국인들이 꼬빌리시 야곱의 사다리 교회당이 자신들의 집으로 느껴지도록 예배공간뿐 아니라 한국인들이 주중에도 자신들의 모임을 자유롭게 할 수 있도록 공간을 배려하였다. 물론 그것은 월세없는 제공이었다. 그러나 꼬빌리시의 한국인들은 자신들을 같은 교인으로 받아들인 체코 교회의 경제적인 어려움은 곧 우리 자신들의 어려움임을 인식하여 교회의 선교활동을 지원하게된다. 보흐니쩨 정신병원에 두 명의 사역자를 지원하게된다. 그리고 경제적인 부담이 되는 교회 수리나 설비교체가 있을때 꼬빌리시의 한국인들도 함께 동참을 하였다. 교회당 리모델링을 위한 헌금에도 동참을 하였다.

리고 5월 첫째주에 꼬빌리시의 체코 한국인들이 예배후에 함께 체육대회도 하고 음식을 나누어 먹는 성도의 교제를 하고있다. 대략 대림절 직전이 되는 11월 마지막 토요일에 보흐니쩨 정신병원의 환자들에게 성탄절 선물을 마련하기 위한 기금 모금을 위해 <음식 바자회>가 매년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이 바자회는 교회 밖 외부인들의 관심을 끌고있다.

빌리시의 체코 형제 자매들은 체코의 한국인들의 문제에 앞장서서 도움을 주었다. 프라하 한글학교가 정부에 등록된 단체가 되도록 앞장을 서서 도왔다. 한국 어린아이가 치료비가 많이드는 질병에 걸렸을때 꼬빌리시 체코 형제 자매들이 앞장을 서고 그리고 체코형제개혁(장로)교단 전체가 관심을 갖고 체코외국인 의료보험공단이 이 한국 어린아이를 위한 특별 기금을 마련한 후 이 어린아이의 의료보험을 연장시켜 치료를 하도록 도움을 준 적도 있었다. 외국인의 의료보험은 매년 비자와 함께 연장을 하게되는데 일단 큰 질병에 걸리면 의료보험연장이 불가능하였다. 한국인 자녀들이 현지학교와 유치원 입학을 할때 꼬빌리시 체코 형제 자매들이 학교장에게 연락을 하거나 직접 만나 도움을 주었다. 외국인들에게 정보가 절대로 부족하였던 체코 한인초창기때 꼬빌리시 교회 체코 형제 자매들의 도움은 이루 말할 수 없이 컸다. 이러한 도움들은 프라하 꼬빌리시 한인교회 교인들 뿐 아니라 도움이 필요한 한국인 체류자들 모두에게 베풀어졌다.

렇게 교회론적인 선언과 함께 꼬빌리시의 한국인들을 자신들의 교회로 받아들여준 꼬빌리시 교회는 이제 한국인 장로를 당회원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그러나 꼬빌리시의 한국인들이 각기 다른 교단의 배경을 가지고 있고 한국과 다른 장로제도 때문에 꼬빌리시의 체코 형제 자매들이 문을 열어도 우리가 들어가지 못하고 있다. 현재 3분의 한국인 교우들이 “대표집사”라는 이름으로 당회의 언권위원으로 참석을 하고 있다. 현재 언권위원으로 참석하여 직접 교회일을 함께 논의함으로써 체코 한국 양 민족이 하나의 교회로 나아가는데 평신도의 역할이 점점 확대되고있다. 뿐만아니라 일본공동체 몽골공동체가 새로 모이기 시작했으며 체코어가 가능한 아프리칸 크리스천들이 체코공동체 예배에 참석하고 있어 다민족들에게 열려있는 교회로 점점 그 특징을 드러내고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