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인 예배 (2002년 04월 14일)
- 히 13:20-21
- 설교자: 정미현
02.04.14 부활절후 두번째주일
설교자 정미현 목사
본문: 히브리서: 13: 20-21
제목: 끊임없는 희망
장소: 프라하 꼬빌리시 한인교회
<성경본문>
20 ○양의 큰 목자이신 우리 주 예수를 영원한 언약의 피로 죽은 자 가운데서 이끌어 내신 평강의 하나님이
21 모든 선한 일에 너희를 온전케 하사 자기 뜻을 행하게 하시고 그 앞에 즐거운 것을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 속에 이루시기를 원하노라 영광이 그에게 세세무궁토록 있을찌어다 아멘
<설교>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하나님의 사랑과 성령의 교제케 하심이 여러분 모두에게 함께 하시기를 기원합니다.
사랑하는 교우 여러분,
오늘 이 아름다운 주일에 제 스승이신 로흐만(Lochman) 교수의 80회 생신 기념회가 있는 그 분의 고국에 올 수 있게 되었고 또 여러분과 함께 본문말씀을 나눌 수 있는 이러한 자리가 허락되어 감격스럽고, 감사하고 기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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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분들이 잘 아시겠지만 역사라는 단어는 영어로 history입니다. 미국 여성신학자들이 이 단어를 해석하는 것에 의하면 역사란
남성들의 이야기( he-story) 였다는 것입니다. 역사는 남성들에 의하여 주도되었고 여성들의 이야기는 별로 언급되지 않는
것입니다.
교회의 역사도 이와는 다르지가 않았습니다. 여성들도 교회안에서 중요한 일들을 많이 하였고 헌신적으로 일하였으나 여성들의 이야기는 많이 전하여지지 않습니다. 그래서 오늘은 중세기에 살았던 한 여성의 이야기로부터 시작하려 합니다.
이 여성의 이름은 노르비취의 줄리안이며, 14세기 영국에서 살았습니다.
당시 유럽 전역에서와 마찬가지로 영국에도 흑사병이 심하게 퍼져 있었고, 전쟁과 기아가 만연한 시기였습니다.
이로인하여 심한 절망감이 사람들 사이에 지배하였는데, 이러한 어려운 고난의 상황 속에서 줄리안은 신비주의적 은둔가로 영국의 노르비취 라는 곳에 살면서 사람들에게 끊임없는 희망과 용기를 불러 일으켜 주었습니다.
그녀의 삶에 대해서는 많이 전해지는 것이 없습니다.
1373년 5월에 그녀는 심한 병을 앓게 되고 난 뒤에 특별한 환상체험을 하게 되는데 이것을 두 권의 책으로 기록하였습니다.
첫 번 책은 짧고 간결한 반면에 두 번째 책은 자신의 체험에 대하여 더욱 자세히 적고, 이를 해명하는 내용입니다.
그런데 두 권의 책 전체에 나오는 중요한 내용은 다름아닌 고난과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것입니다.
이미 초대교회의 교부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어머니로 표현한 글들이 많이 있습니다만, 줄리안은 예수 그리스도를 은혜로운 어머니로 묘사하고, 이에 대하여 신학적으로 설명한 것으로도 유명합니다.
어머니가 아이를 자궁 속에서 키워내고, 심한 고통가운데 출산하고 젖을 먹여 키우듯이 우리의 예수 그리스도가 어머니와 같이 커다란 사랑으로 우리를 살피신다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십자가의 죽음으로 우리를 삶으로 인도하셨습니다.
오늘의 우리의 성서본문에도 바로 이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사건이 중심에 있습니다.
히브리서는 초대교회 시기에 그리스도교로 개종한 유태인들이 고난을 당하는 상황가운데 이들이 신앙 안에서 굳건히 서도록 권면하는 글입니다.
양의 큰 목자이신 우리 주 예수를 영원한 언약의 피로 죽은 자 가운데에서 하나님이 부활로 이끌어 내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고난의 십자가를 통하여 우리는 하나님과 화해하게 되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로 새로운 삶의 근거를 얻게 되었습니다.
바로 이 사건에 대한 신앙이 우리로 하여금 우리 자신의 고난을 극복할 수 있는 힘을 더하여 줍니다.
우리가 격게되는 크고 작은 고난의 문제들에서 우리가 절망으로 빠져 들어가는 것이 아니라, 끊임없는 희망으로 다시 일어설 수 있는 것입니다.
그 희망의 근원은 바로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왜냐하면 예수 그리스도가 모든 고난과 악을 물리치시고 부활하셨기 때문입니다.
그 때문에 우리도 예수 그리스도의 오심으로 이미 이루어진 하나님의 나라를 믿는 믿음가운데 살 수 있고, 하늘에서와 같이 땅에서도 온전히 이루어질 다가 올 하나님의 나라를 바라보고 희망하는 믿음 가운데 살아갈 수 있는 것입니다.
다가 올 하나님의 나라를 바라본다는 것이 이 세상에서의 삶을 무시하라는 것은 아닙니다.
오히려 그 반대입니다.
지금의 우리의 삶을 소중히 여기며 매순간을 살아야 할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우리에게 다가오시는 하나님의 나라에 대한 소망가운데 살아가는 것입니다.
우리에게는 두 가지 측면이 모두 중요합니다.
하나님의 나라를 기다리며, 지금의 이 세상에서 우리들이 할 수 있는 일들을 서두르며 살아야 할 것입니다.
기다리며 서두르며!
이러한 기다림과 서두름의 긴장관계 속에서 줄리안은 그녀의 책의 마지막을 이렇게 마무리 짓고 있습니다.
“All schall be well. All manner schall be well.” 모든 것이 잘 될 것입니다. 모든 것이 잘 풀려 나갈 것입니다.
이 문장이 너무 낭만적으로 들리지는 않는지요?
그러나 이 문장은 전혀 낭만적이거나 단순한 말이 아닙니다.
희망을 가득 품고 있는 이 문장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죽음과 부활에 근거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모든 것이 자동적으로 잘 될 것이라는 뜻일까요?
이것은 한편으로 십자가와 부활의 사건을 믿고 살아가는 우리 그리스도인들에게 행동을 촉구하는 말이기도 합니다.
하나님 나라를 바라보는 믿음가운데 우리가 직면하는 모든 개인적, 사회적 악의 문제에 굴복하지 말고 고난의 상황을 이겨나가라는 뜻입니다.
우리가 이 세상에서 직면하는 고난은 예수 그리스도의 고난과는 다른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사건에 어딘가 부족한 것이 있어서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에 보태야 한다거나, 십자가를 대신 짊어저야 하는 것이 아닙니다.
왜냐하면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 모두를 위하여 십자가를 짊어지셨고 그분의 십자가의 사건은 유일회적이며 온 시간 속에 펴진 사건이기 때문입니다.
그 어느 것도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사건을 대신 할 수 없습니다.
우리 자신은 하나님과 화해하기 위한 제물이 될 수 없고, 단지 희생양이 되신 예수 그리스도에 대하여 감사할 수 있을 따름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옛 존재를 벗어버리고 새로운 존재로 살아갈 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우리와 가까이 있는 또 멀리 있는 모든 사람들에게 관심하며 서로가 서로를 배려하는 가운데 살아가야 할 것입니다.
고난의 상황가운데 있는 사람들에게 살아갈 수 있는 용기를 주며, 서로 서로 희망을 불러넣어 주어야 할 것입니다.
바로 그러한 삶을 줄리안은 살았습니다.
“모든 것이 잘 될 것이다.”라는 말을 하면서 전쟁과 가난과 질병이 만연한 시기에 주변에 고난 당하는 사람들을 위안하였고 삶의 용기를 불러 넣어 주었습니다.
이 말은 결코 값싼 심리적 위안의 말이 아닙니다.
저는 어려움이 있을 때마다 이 말을 되내이곤 하는데 그러면 새 힘을 얻곤 합니다.
물론 이 말이 어떤 주술적 힘을 지닌 것은 결코 아닙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로 인하여 우리도 바로 모든 것이 잘 될 것이라는 말을 단지 고백할 수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살리시려 하시기 때문에 우리가 고난의 상황에 사는 것을 원치 않으십니다.
그러나 우리의 이 세상의 삶 가운데에는 끊임없이 크고 작은 고난의 상황이 우리를 위협합니다.
바로 이러한 문제 상황 가운데 굴복하지 않고 끊임없는 희망을 품고 살아가야 할 것입니다.
희망한다는 것은 항상 중요하고도 좋은 것입니다.
그렇지만 저는 싸구려의 희망을 말하는 것은 아닙니다.
신학적인 용어를 써서 종말론적 희망이라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나라가 궁극적으로 도래한다는 것에 대한 희망을 뜻하는 말입니다.
여러분들이 발을 디디고 계신 바로 이 나라는 체코의 종교개혁자인 얀 후스의 전통이 살아 숨쉬는 곳입니다.
그는 예수 그리스도가 진리이심을 고백하며 악에 굴복하지 않고 저항하였기 때문에 산 채로 화형당하였습니다.
이러한 용기 있는 믿음의 전통을 이어나가는 후스파들에게 가장 중요한 것이 바로 이 하나님 나라에 대한 궁극적 희망이었습니다.
오늘 우리의 설교 본문말씀에 기록되어 있듯이 영원한 언약의 피로 예수 그리스도를 부활로 이끄신 하나님은 우리를 어떠한 순간에라도 어려움 가운데 내버려 두질 않습니다.
그렇다고 모든 문제상황으로부터 우리가 빗겨갈 수 있는 것도 아닙니다. 어려움과 고난은 항상 우리 삶 가운데에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깊은 나락속으로 떨어진다 할 지라도 우리는 걱정없이 다시 일어설 수 있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 스스로가 십자가의 죽음으로 그 나락으로 떨어지셨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나락으로 떨어진다고 해도 하나님의 손은 우리를 붙들어 주고 계신 것입니다.
하나님은 모든 선한 일에 우리를 온전케 하시고 그분의 뜻을 행하게 하시고 그 앞에 즐거운 것을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 속에 이루시기를 원하고 계십니다.
부활하신 그리스도에 대한 끊임없는 희망과 믿음 가운데 어떠한 순간에도 절망함 없이 이국 땅에서의 여러분들의 삶이 날마다 더욱 풍요로와지기를 간절히 기원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