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연합 예배 (2018년 2월 4일)
- 히브리서4, 12-13
- 설교자: 온드제이 꼴라쉬 목사
- 연합예배 설교 20180204 - 히브리서4, 12-13.docx
Text: Židům 4,12-13 Kolář
본문: 히브리서4, 12-13
Židům 4,12-13 Slovo Boží je živé, mocné a ostřejší než jakýkoli dvousečný meč; proniká až na rozhraní duše a ducha, kostí a morku, a rozsuzuje touhy i myšlenky srdce. Není tvora, který by se před ním mohl skrýt. Nahé a odhalené je všechno před očima toho, jemuž se budeme ze všeho odpovídat.
12 하나님의 말씀은 살았고 운동력이 있어 좌우에 날선 어떤 검보다도 예리하여 혼과 영과 및 관절과 골수를 찔러 쪼개기까지 하며 또 마음의 생각과 뜻을 감찰하나니
13 지으신 것이 하나라도 그 앞에 나타나지 않음이 없고 오직 만물이 우리를 상관하시는 자의 눈앞에 벌거벗은 것같이 드러나느니라
설교:
- Sestry a bratři, co je naším úkolem – rozdělovat, nebo spojovat?
형제 자매 여러분, 우리는 나눠져야 할까요 합해져야 할까요?
Položit tuto otázku v dnešním Česku se zdá být zbytečné nebo přímo pohoršující.
오늘날 체코 사회에서 이 질문을 한다는 것은 쓸모없는 일이거나 또는 문제를 더 악화시키는 일이 될 것 같습니다.
Všichni přece víme, že naše společnost je zásadně, bolestivě, možná dokonce nenapravitelně rozdělená.
우리 모두가 알다시피 우리 사회는 근본적으로, 고통스럽게, 심지어는 회복되지 못 할 정도로 나뉘어져 있습니다.
Přemýšlíme nad tím, co si s tím počít, ale nikdo žádný spolehlivý recept nemá.
그리고 우리는 이 문제가 해결되어야 한다는 것은 알고 있지만 이 문제에 대해 어느 누구도 해답을 제시하고 있지는 못합니다.
Tušíme, že naše budoucnost bude buď společná, anebo nebude žádná.
우리는 우리의 미래 사회가 통합이 되던지 아니면 아예 없어져 존재하지 않게 될 것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A tak někteří představitelé obou znepřátelených táborů říkají: vyjděme ze svých opevněných pozic, budujme mezi sebou mosty a odhazujme předsudky a nenávist!
나뉘어져 대립하고 있는 양 쪽 진영의 지도자들은 말합니다: 요새화된 자신의 울타리에서 나와 서로 간에 다리를 만들고 편견과 미움을 버립시다!
- Rozdělovat –nebo spojovat? Nad touto otázkou se můžeme podivit také zde, v našem kobyliském sboru.
나뉘어질 것인가 합해질 것인가? 이 문제는 이 곳 꼬빌리시 교회와도 관련이 되어 있는 문제입니다.
Vždyť tu přece už téměř dvacet let usilujeme o vzájemné porozumění, spolupráci, překonávání odcizení mezi národy, kulturami a křesťanskými tradicemi, a o budování společného duchovního domova.
왜냐하면 우리는 거의 20년 동안 서로간의 이해와 협력, 민족과 문화와 기독교적 전통의 다름을 극복하고자 힘써 왔으며, 하나된 영적 공동체를 이루고자 노력해왔기 때문입니다.
Soužití kobyliských národů je velkou školou bratrské a sesterské lásky, která nezůstává jen na úrovni vznešených prohlášení, ale projevuje se v běžném životě.
다민족이 함께 하는 꼬빌리시의 공동체적 삶은 단지 외적 선언에 머무르는 것이 아니라 실제 삶 속에서 드러내야 되는 형제 자매적 사랑과 같은 삶입니다.
- Rozděluje Bůh, anebo spojuje? Opět –jak se zdá– zbytečná otázka.
하나님은 나누시는 분이실까요 아니면 합하시는 분이실까요? 이 질문 또한 불필요한 질문 같습니다.
Vždyť Duch svatý je duchem komunikace, porozumění a společenství.
성령님은 우리가 알다시피 소통과 이해와 화합의 영이십니다.
Duch bourá překážky, zasypává propasti, propojuje lidi navzájem, činí z izolovaných jedinců Boží lid.
성령님은 막힌 담을 허시고, 벌어진 틈을 메우시고, 서로를 화합케 하시며, 개성이 다른 한 사람 한 사람을 모으셔서 하나님의 백성이 되게 하십니다.
Tak o tom svědčí mnohé biblické příběhy, nejvýrazněji příběh o apoštolech, které Duch povolal z uzavřenosti a ustrašenosti, aby zvěstovali evangelium různým národům.
이는 많은 성경 이야기들이 증거하고 있으며, 특히 제자들을 통해 이를 잘 알 수 있는데 성령님은 자기중심적이고 소심한 제자들을 부르셔서 여러 민족들에게 복음을 전파하는 사람들이 되게 하셨습니다.
Každý jim náhle porozuměl, nechal se Duchem strhnout, a tak se zrodila církev.
이러한 성령님의 인도하심을 따라 제자들은 단시간 내에 서로를 이해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이 후 성령님은 다시 제자들을 흩으셨고 이러한 흩으심으로 인해 교회가 생겨나게 되었습니다.
- Autor listu Židům přirovnáváBožíslovo k dvousečnému meči.
히브리서기자는 하나님의 말씀을 좌우에 날 선 검에 비유하였습니다.
Meč obvykle neslouží jako nástroj spojování.
검은 일반적으로 화합을 위해 쓰이는 도구가 아닙니다.
Ani v našem oddíle není pochyb o tom, k čemu má být použit.
오늘 본문에서도 검이 화합용 도구로 묘사되어 있지 않습니다.
Dokonalý Boží meč umí oddělit i to, co nedokáží ani ty nejmodernější chirurgické nástroje.
오히려 하나님의 검은 완벽하여서 오늘날 가장 현대적인 수술용 칼도 해 낼 수 없는 분리를 해 냅니다.
Proniká až do lidské duše, do jejich nejjemnějších zákoutí a tam koná svou práci.
하나님의 검은 혼과 영과 및 관절과 골수를 찔러 쪼개기까지 합니다.
Odhaluje každou naši přetvářku a lež, soudí naše nitro, odděluje to, co před Bohem obstojí, od naší marnosti.
또한 우리의 위선과 거짓을 드러내시고, 우리의 마음을 감찰하시며, 우리 속에 있는 헛된 것들로부터 하나님 앞에서도 견딜수 있는 참된 것들을 구별해 내십니다.
Vidí myšlenky, city a motivy, které skrýváme nejen před druhými, ale i sami před sebou.
또 다른 사람들 뿐만 아니라 자기 자신에게까지 숨기고자 하는 생각들과 감정들 동기들을 드러내십니다.
- Bůh vede lidi ksobě, spojuje a usmiřuje, ale dokáže takéoddělovat.
하나님은 사람들을 이끄셔서 서로 화합하고 화해토록 하시지만 또한 그들을 흩어지게도 하십니다.
Hned v první kapitole bible se dočteme, že celé dílo stvoření je dílem oddělování.
우리는 성경 첫 장부터 전체 창조의 역사가 나뉨의 역사였음을 읽습니다.
Náš svět je dokonale uspořádaný a krásný právě proto, že je vnitřně rozlišený a strukturovaný.
우리의 세상은 놀랍도록 질서지워져 있고 아름답습니다. 왜냐하면 내적으로 구분되어 있고 구분된 것들이 조화를 이루고 있기 때문입니다.
Není jednou velkou stejnou hmotou, nudnou a nezajímavou.
우리의 세상은 하나의 거대한 물질이 아닙니다. 지루하고 재미없는 한 덩어리의 물질이 아닙니다.
Světlo je odděleno od tmy, vody od pevnin, zvířata od rostlin.
빛은 어둠으로부터 구분되어 있고 액체는 고체로부터, 동물은 식물로부터 나뉘어져 있습니다.
Také současná fyzika nám potvrzuje, že vývoj vesmíru postupoval skrze postupně oddělování, až dospěl k neuvěřitelné a ještě stále neprobádané pestrosti, kterou můžeme pozorovat v přírodě běžným okem a ještě víc třeba pod mikroskopem.
현대 물리학은 우리에게 우주의 진화가 점진적인 나뉨으로 인해 진행되어져, 믿을 수 없을만큼 정교하게 성숙되어 왔으며, 자연계에서 육안으로 또는 현미경을 통해 주목해 볼 수 있듯이 더 이상 헤아릴 수 없을 정도의 다양성을 이루고 있음을 증명해주고 있습니다.
- Slovo svatý znamená původněoddělenýod světského, vyčleněný pro Hospodina.
거룩한 말씀에서 거룩은 원래 세상적인 것으로부터의 구분을 의미했습니다. 거룩은 구별의 의미를 내포하고 있는데 이로 인해 이 용어는 하나님을 위한 용어가 되었습니다.
Nezapomínejme, že také Izrael vznikl takovým oddělením od okolních národů, odmítnutím jejich bohů, kultů a zvyklostí.
이스라엘이 이방민족들로부터의 구별로부터, 이방신들과 이방신 섬기는 것을 거부하는 것으로부터 생겨났음을 기억합시다.
Církev je sice společenstvím, které v sobě spojuje lidi z různých národů, kultur a sociálních prostředí, ale zároveň se od svého okolí jasně odlišuje a má odlišovat.
교회 또한 여러 민족들과 문화들 여러 사회적 배경들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 모여 형성된 공동체지만 그러나 동시에 교회 주변의 여러 공동체들과는 엄연히 구별되고 또 구별되어야 합니다.
Někdy se musí dokonce velmi výrazně vymezit – třeba od postojů a činů pošlapávajících svobodu a důstojnost, degradujících člověka.
교회는 상황에 따라 예를들어 자유와 존엄을 짓밟는다거나 사람을 억압하는 입장과 행위들로부터 스스로를 분명히 구별해야 합니다.
Musí říci své jasné ne tam, kde se moc zvrhává v tyranii, kde jsou ponižováni slabí, nemocní a bezmocní.
교회는 권력이 폭압으로 변절되는 곳에서, 연약하고 병들고 힘없는 자들이 굴욕을 당하는 곳에서 분명한 자신의 입장을 드러내야 합니다
- Ježíš sám neváhal říci: nepřišel jsem přinést pokoj, ale meč.
예수님은 내가 세상에 화평이 아니요 검을 주러 왔노라 주저없이 말씀하셨습니다.
Jak se toto Ježíšovo varování shoduje s jeho slovy: pokoj vám?
예수님의 이 경고가 평안을 너희에게 주노라 하시는 말씀과 어떻게 조화될 수 있을까요?
Zřetelné přiznání k Ježíši Kristu a jeho cestě může vést k tomu, že se k nám mnozí lidé otočí zády, ba dokonce že si získáme nepřátele.
예수그리스도에 대한 고백과 그의 길을 따르겠다는 우리의 분명한 고백은 많은 사람들로 하여금 우리에게서 등을 돌리게 하고 심지어 우리의 원수들이 되게도 합니다.
Rozdělení může postihnout i rodiny, jak to zažívají třeba mladí lidé, kteří se rozhodli proti vůli svých rodičů dát pokřtít.
나눠지는 것은 가족 속에서도 일어날 수 있는데 예를들어 젊은 자녀들이 그들의 부모의 뜻에 반해 세례를 받기로 결정했을 때 나눠짐이 일어날 수 있습니다.
Ježíš nechce bezdůvodně lidi proti sobě poštvávat, ale pouze upozorňuje, že se takovému rozdělení někdy nelze vyhnout.
예수님은 이유없이 사람들이 당신을 대적하게 되는 것을 원치 않으셨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나뉘어지는 것을 피할 수 없음을 경고하셨습니다.
Pomysleme jen na to, kolik odpůrců proti Ježíši za jeho života povstalo – proti témuž Ježíši, který nás vyzýval, abychom milovali své nepřátele a modlili se za ně.
원수를 사랑하고 그들을 위해 기도하라 하신 예수님,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이러한 예수님의 생애동안 얼마나 많은 대적자들이 예수님을 대적하여 일어났는가를 생각해 봅시다.
Ježíš, který uměl odpustit i beznadějným hříšníkům a vrátit je zpět do společenství, sám zakusil nenávist druhých. Ježíš spojoval, ale také rozděloval.
예수님은 소망이 없는 죄인들을 용서하시고 그들을 다시 공동체로 돌려보내셨지만 또 다른 부류의 사람들로부터는 미움을 받으셨습니다. 예수님은 화합케 하셨지만 구별하기도 하셨습니다.
- Mají křesťanéspojovat, nebo rozdělovat?
크리스천들은 화합해야 할까요 구별해야 할까요?
Myslím, že platí jedno i druhé.
저는 두 가지 다 해야 된다고 생각합니다.
Především jistě mají spojovat: máme odpouštět sedmdesátkrát sedmkrát těm, kdo nám ublížili, vždy znovu hledat cestu smíření, podávat ruku i tehdy, když o to ten druhý nestojí.
우선 우리는 화합해야 합니다. 우리에게 해를 준 사람들을 일곱번씩 일흔번이라도 용서해야 합니다. 언제라도 다시 화해의 길을 찾고, 그럴 가치가 없는 사람들에게라도 손을 내밀어야 합니다.
Nemáme si nechat vnutit od svých nepřátel jejich nepřátelské vidění nás samotných.
우리는 우리의 대적자들이 우리를 적대적인 시선으로 바라보도록 내버려 둬서는 안됩니다.
Na základě Ježíšova blahoslavenství máme být těmi, kdo působí pokoj, máme odvážně vstupovat mezi soupeřící strany a vést je ke složení zbraní, i kdybychom si tím měli vysloužit odpor či posměch z obou těchto stran.
예수님의 축복에 기초하여 우리는 화평을 만들어 내는 사람들이 되어야 합니다. 경쟁하고 있는 사람들 사이에 용기있게 들어가 비록 양쪽으로부터 저항에 부딪치고 비웃음을 받을지라도 그들이 서로를 향한 무기를 내려놓을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Máme otevírat rozhovor tam, kde vládne zarputilé mlčení. Máme překonávat zlo dobrem.
우리는 양보없는 침묵이 지배하고 있는 곳에 대화가 시작될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우리는 선으로 악을 이겨야 합니다.
- Zároveňale platí, že je naším úkolem rozdělovat.
그러나 동시에 구별하는 것 또한 우리가 해야할 일입니다.
Máme trpělivě a pečlivě oddělovat pravdu od nepravdy, vypreparovat z polopravdy tu pravdivou a tu lživou část.
우리는 인내심을 가지고 신중하게 거짓으로부터 악을 구별해 내야 합니다. 절반의 참인 것에서 참인부분과 거짓인 부분을 구별해 내야 합니다.
Máme kriticky hodnotit různé ideologie, být podezřelí k sebejistým prohlášením mocných, zkoumat různé fámy a nepodložené informace.
다양한 이데올로기들을 비판적으로 평가해야 하며, 권력자들의 자기확신적인 선언들에 주의를 기울이며, 다양한 소문들과 근거없는 정보들을 경계해야 합니다.
Máme strhávat masky, do nichž se lidé halí, rozbíjet nabídky spásy přicházejících od falešných mesiášů – nejen těch náboženských, ale hlavně politických a obchodních.
사람들이 쓰고있는 가면을 벗겨내며, 거짓 메시야들이 주장하는 정치적 경제적 구원들 뿐만 아니라 종교적 구원들을 깨뜨려야 합니다.
Máme bojovat proti rozšířenému mínění, že každý má tu svou pravdu – protože pak nakonec zvítězí ne ten, kdo pravdu skutečně zastává, ale ten hlasitější a agresivnější.
모든 사람이 자신의 진리를 갖고 있다는 광범위한 믿음에 맞서 싸워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나중에는 결국 진정한 진리를 주장하는 사람이 아니라 목소리가 큰 사람, 공격적인 사람이 이길 것이기 때문입니다.
Nemáme nikoho odsuzovat, na to nemáme právo.
우리는 다른 사람을 판단할 순 없습니다. 우리에게 그런 권리는 없습니다.
Soud náleží Bohu. Ale máme být kritičtí a schopni si udělat vlastní úsudek o světě kolem nás.
판단은 하나님께 속한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비판적이어야 하며 우리 주위의 세상에 대해 스스로 판단할 수 있어야 합니다.
- Není tvora, který se před Božím slovem dokáže skrýt, říkálist Židům.
하나님의 말씀 앞에 자신을 숨길 수 있는 피조물은 없다고 히브리서 기자는 말합니다.
Vše se odhalí před naším Bohem, který nás bude soudit – a bude soudit i naše spojování a rozdělování.
모든 것이 우리를 심판하실 우리의 하나님 앞에 드러납니다. 하나님은 또한 우리가 행했던 우리의 화합과 구별을 심판하실 것입니다.
Jednou před Bohem staneme ve vší nahotě.
우리는 하나님 앞에 벌거벗은 것 같이 설 것입니다.
Věřím ale, že Boží pohled jen chladný rentgen, nabroušený skalpel, neúprosně provrtávající a zraňující.
하나님의 시선은 냉정한 X레이 사진 같을 것이며, 후벼파고 헤짚는 예리한 수술용 칼 같을 것입니다.
Bude to přece zároveň pohled Kristův – pohled laskavý, osvobozující a uzdravující.
그러나 하나님의 시선은 또한 그리스도의 시선 – 사랑스럽고 자유롭게 하고 치유하는 그러한 시선일 것입니다.
Kristus sám je to Boží slovo, ten dvojsečný meč.
그리스도께서 당신 자신이 이런 하나님의 말씀, 좌우에 날 선 검과 같은 분이십니다.
Ten, který je naším soudcem, je zároveň naším zachráncem.
우리의 심판주께서 동시에 우리의 구원주십니다.
Před Bohem si nemůžeme na nic hrát, nic předstírat.
우리는 하나님을 경홀히 여기거나 만홀히 여길 수 없습니다.
Vše bude zjeveno, plná pravda o nás vyjde najevo.
모든 것이 드러나며 우리에 대한 모든 것이 밝히 보여질 것입니다.
Věřím ale, že to poslední Boží slovo nebude drásat a trhat jako meč, ale bude to slovo pokoje, převyšující každé pomyšlení. Amen.
그러나 저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마지막 말씀은 칼처럼 파헤치는 말씀이 아니라 모든 기억을 뛰어넘는 평강의 말씀이 될 것이라고 믿습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