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 있는 사람 5: 긍휼히 여기는 자

긍휼히 여기는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긍휼히 여김을 받을 것임이요 (마태복음 5:7)



오늘은 예수님께서 선포하신 팔복 중 다섯 번째, ‘긍휼히 여기는 자의 복’을 살펴봅니다.

긍휼히 여긴다’는 건 무슨 뜻일까? 우리말 사전에서 ‘긍휼’(矜恤)은 “불쌍하고 가엾게 여겨서 도와줌”으로 풀이됩니다. 비슷한 뜻의 단어가 있는데, 바로 ‘자비’(慈悲)입니다. ‘자비’는 “크게 사랑하고 가엾게 여김”이라는 의미입니다. ‘자비’가 베푸는 이의 마음의 크기에 더 초점을 맞춘다면, ‘긍휼’은 베푸는 이의 마음의 움직임에 좀 더 초점이 맞춰지는 느낌입니다. 하지만 이 두 단어는 큰 틀에서 비슷한 의미를 담고 있어서, 우리말 성경에도 둘이 혼용되거나 짝을 이루어 등장하는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표준새번역 성경의 경우 오늘 본문을, “자비한 사람은 복이 있다. 그들이 자비함을 입을 것이라”라고 번역합니다. ‘긍휼’을 뜻하는 영어 단어는 Compassion입니다. 이것은 라틴어 ‘파티’(pati)와 ‘쿰’(cum)에서 파생됐는데, 이 두 단어를 합치면, ‘함께 고통받다’라는 의미가 됩니다. 본문에 ‘긍휼’로 번역된 헬라어 원어는 ‘엘레에몬’인데, 이것은 자비와 긍휼의 태도를 넘어 구체적인 자비와 긍휼의 행동을 암시하는 단어입니다. ‘긍휼’에 해당하는 히브리어는 ‘라카밈’, 이것은 ‘하나님의 자궁’을 일컫는 말입니다. 긍휼은 기본적으로 하나님께 속한 것, 그리고 그분의 긍휼은 생명을 자라게 하고 태어나게 하는 근원이라는 의미가 여기 함축되어 있습니다. 이로 볼 때, 긍휼은 평범한 친절이나 부드러운 마음씨 이상의 것이라 하겠습니다.

성경적 의미의 긍휼이란, 고통받는 누군가와 고통을 함께하는 것, 그가 겪고 있는 아픔과 두려움, 슬픔과 낙심의 자리로 가서 거기 함께 머무는 것입니다. 긍휼은 단지 특권적인 위치에서 허리만 구부려 소외된 자들에게 향하는 것이 아닙니다. 높은 곳에 서서 낮은 곳의 좀더 불운한 자들에게 동정의 손을 뻗치는 것이 아닙니다. 긍휼은 직접 그 사람에게 다가가 고난이 가장 극심한 곳, 거기에 자리잡는 것입니다.

살다보면 누구나 어려운 때를 맞게 되고, 그때 우리는 누군가의 도움을 필요로 합니다. 우리가 누군가로부터 진정한 위로와 위안을 받을 때는 언제입니까? 그가 나에게, 어떤 생각을 해야 하고 어떤 행동을 해야 하는지를 가르쳐 줄 때입니까? 때로는 그럴 수도 있겠습니다. 하지만 그 고통의 순간에 내게 무엇보다 필요한 것은 누군가가 나와 함께 있어 주는 것이 아닐까요? 그 순간 누군가가 내게 와서 “내가 무슨 말을 해야 할지, 어떻게 행동해야 할지는 잘 모르겠어. 하지만 내가 네 곁에 있다는 것, 그리고 절대로 너를 혼자 내버려두지 않겠다는 것만큼은 알아주었으면 좋겠어”라고 말해 줄 때, 우리는 거기서 참된 위로와 위안을 경험하지 않습니까?

사람들을 변화시키기 위해서, 즉 상대방이 새로운 일을 행하고 새로운 방식으로 생각하게 하려고 고안된 방법과 기술이 난무하는 시대에, 우리는 함께 있어주는 것이라는 단순하지만 어려운 선물을 잃어버리고 만 것은 아닌지… 그리고 우리가 이 선물을 잃어버린 이유는, 누군가와 함께 있는 일에 유용성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은 아닌지…
“왜 제가 이 사람을 방문해야 하죠? 어차피 제가 할 수 있는 일이란 아무것도 없는데 말이에요. 할 말도 없다고요. 도대체 제가 무슨 소용이 있단 말입니까?”
하지만 종종 우리는 정말 중요한 사실을 잊습니다. 이렇게 무익해 보이는 일, 젠체하지 않고 겸손하게 그저 함께 있어 주는 일 속에서, 우리가 진정으로 위로와 위안을 받는다는 사실을 말입니다.

생각해 보면, 하나님께서 우릴 위해 하시는 일이 이런 일 같지 않습니까?

하나님은 우리의 문제를 전부 해결해주시거나, 우리의 길을 다 보여주시거나, 우리의 의문에 모두 답해 주시지는 않는 듯 합니다. 그보다는, 우리의 문제와 혼돈과 의문 속으로 들어오셔서 거기 우리와 함께 거하십니다.

하나님은 긍휼의 하나님이십니다. 이 말은, 그분이 우리와 함께하기로 선택하신 분이라는 뜻입니다. 이천 년쯤 전, 하나님의 아들이 인간의 몸을 입고 사람들 가운데로 오셨습니다. 우리와 결속되어 함께 살기 위해, 우리의 기쁨과 고통을 함께 나누기 위해, 우리를 품에 안고 하나님께로 이끌기 위해, 그리고 우리가 겪는 모든 것들을 함께 겪기 위해, 하나님은 그 아들 예수 안에서 우리 곁으로 오셨습니다. 때로 한 무리의 사람들이 다른 누군가에게 이렇게 쏘아붙이는 말을 듣습니다.
“이보시오! 당신은 우리가 힘들고 어려울 때 함께하지 않았잖소. 당신은 우리처럼 굶어 보지도 않았고, 추운 데 내몰려 본 적도 없고, 억울하고 비참한 게 뭔지도 모르지 않습니까. 그러니 당신은 우리 일에 관여할 자격이 없습니다.”
만약 하나님께서 우리 가운데로 오셔서 우리가 겪는 일들을 함께 겪지 않으셨다면, 우리 중 누군가도 하나님께 이렇게 반응할 수 있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이것은 예수님과 아버지 하나님께는 해당되지 않는 얘기입니다. 히브리서 2장 17-18절에 말씀합니다.

“그러므로 그가 범사에 형제들과 같이 되심이 마땅하도다 이는 하나님의 일에 자비하고 신실한 대제사장이 되어 백성의 죄를 속량하려 하심이라 그가 시험을 받아 고난을 당하셨은즉 시험 받는 자들을 능히 도우실 수 있느니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