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인 예배 (2019년 6월 30일)
- 시편 20:1-9, 히브리서 11:16
- 설교자: 류광현 목사
- 하나님의 이름으로 - 시 20,1-9.docx
<시편 20편 1-9절>
1 환난 날에 여호와께서 네게 응답하시고 야곱의 하나님의 이름이 너를 높이 드시며
2 성소에서 너를 도와 주시고 시온에서 너를 붙드시며
3 네 모든 소제를 기억하시며 네 번제를 받아 주시기를 원하노라
4 네 마음의 소원대로 허락하시고 네 모든 계획을 이루어 주시기를 원하노라
5 우리가 너의 승리로 말미암아 개가를 부르며 우리 하나님의 이름으로 우리의 깃발을 세우리니 여호와께서 네 모든 기도를 이루어 주시기를 원하노라
6 여호와께서 자기에게 기름 부음 받은 자를 구원하시는 줄 이제 내가 아노니 그의 오른손의 구원하는 힘으로 그의 거룩한 하늘에서 그에게 응답하시리로다
7 어떤 사람은 병거, 어떤 사람은 말을 의지하나 우리는 여호와 우리 하나님의 이름을 자랑하리로다
8 그들은 비틀거리며 엎드러지고 우리는 일어나 바로 서도다
9 여호와여 왕을 구원하소서 우리가 부를 때에 우리에게 응답하소서
<히브리서 11장 16절>
그들이 이제는 더 나은 본향을 사모하니 곧 하늘에 있는 것이라 이러므로 하나님이 그들의 하나님이라 일컬음 받으심을 부끄러워하지 아니하시고 그들을 위하여 한 성을 예비하셨느니라
시편 20편은 왕을 위한 기도시입니다.
전쟁터로 나가는 왕을 위해 성전에서 낭독되거나 불려지던 노래였을 것으로 추정됩니다.
1-5절은 왕을 위해 축원하는 내용, 6-8절은 믿음으로 선포하는 내용, 그리고 마지막 9절이 하나님께 기도하는 내용입니다.
왕이 곤경에 처하여 도움을 청할 때 하나님께서 응답해 주시길 축원합니다.
왕이 하나님 계신 곳을 바라볼 때 하나님께서 도우시고 붙드시길 축원합니다.
왕이 하나님께 제사 드릴 때 하나님께서 그 예배를 받아주시길 축원합니다.
왕이 무언가를 소원하거나 계획할 때 하나님께서 이루어주시길 축원합니다.
왕이 전장에서 하나님의 이름으로 싸울 때 하나님께서 승리 주시길 축원합니다.
그리고 이 모든 소원을 담아 마지막 9절에서,
하나님께서 왕을 구원하시고 그 백성의 간구에 응답하시길 기도합니다.
이처럼 백성들이 왕을 축복하며 기도하는 이유는 간단합니다.
왕은 백성들을 위해 앞장서 싸우는 존재이며, 왕의 승리가 곧 백성의 승리이기 때문입니다.
특별히 과거 하나님의 백성 이스라엘의 왕은 ‘하나님의 이름으로’ 싸우는 존재였습니다.
그가 하나님 앞에 바로 서 있을 때 하나님은 그에게 승리를 허락하시고 이를 통해 영광을 받으셨습니다.
하지만 이런 의문이 들 수 있습니다. 왜 하나님의 백성들이 꼭 이겨야 하는가?
자녀가 1등을 하게 해달라고 기도하는 그리스도인 부모가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런데 그 아이가 1등을 하면 다른 집 아이는 1등을 할 수 없겠죠?
더 복잡한 상황은 그리스도인들끼리 대립하고 다투는 경우입니다.
아마 양측 모두 자신들이 하나님의 이름으로 싸운다고 생각할 것입니다.
이 경우 하나님은 둘 중 어느 편을 드셔야 하는 걸까요?
하나님의 백성이 이겨야 한다면,
혹은 하나님 백성을 대표하는 이가 이겨야 한다면,
그것은 자기 욕심을 따라 싸우는 싸움에서가 아니라,
진정 ‘하나님의 이름으로’ 싸우는 싸움에서일 것입니다.
모두 명분은 그렇게 내세우겠지만,
누가 진정 ‘하나님의 이름으로’ 싸우고 있는지는 하나님이 아실 것입니다.
진정 ‘하나님의 이름으로’ 싸우는 싸움이란,
내 욕망을 이루기 위해 하나님을 이용하는 삶이 아니라,
어떤 어려움이 있어도 꿋꿋이 하나님의 길로 행하는 삶을 말할 것입니다.
예수님처럼, 하나님의 이름에 걸맞는 사랑과 정의와 용서와 자비의 길로 행하며
그 걸음과 결과를 하나님께 온전히 의탁하는 삶,
그것이 바로 하나님의 이름으로 싸우는 싸움일 것입니다.
그 사람은 하나님께 당당히 기도할 수 있고,
환란 중에도 하나님의 함께하심을 경험할 수 있습니다.
또한 다른 이들도 그 사람을 위해 진심으로 축복하며 기도해줄 수 있습니다.
성경 속에서 우리는 하나님께서 모세를 통해 직접 알려주신 ‘여호와’라는 이름 외에도,
지나온 역사 속에서 하나님을 경험한 사람들이 믿음으로 고백했던 수많은 하나님의 이름들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본문 1절에 “야곱의 하나님의 이름”이라는 표현이 나옵니다.
이것은 창세기 35장에 나오는 야곱의 이야기를 연상시키는 표현입니다.
세겜에서 그 가족이 위기에 처했을 때 야곱은 가족들을 향해 말합니다.
“우리가 일어나 벧엘로 올라가자 내 환난 날에 내게 응답하시며 내가 가는 길에서 나와 함께 하신 하나님께 내가 거거서 제단을 쌓으려 하노라” (창35:3)
벧엘의 하나님… 내 환난 날에 내게 응답하신 하나님…
이 야곱의 하나님이 동일하게 왕과 함께 하사, 그의 환난 날에도 그에게 응답하시고 그를 높여주시길 간구하는 것입니다.
또한 본문 5절에 “우리 하나님의 이름으로 우리의 깃발을 세우리니”라는 표현이 나옵니다.
이것은 출애굽기 17장에서 이스라엘이 아말렉을 물리친 사건을 연상시킵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과 함께하시며 승리를 주시던 날 모세는 거기에 제단을 쌓고 그 이름을 ‘여호와 닛시’라 부르며 말합니다.
“여호와께서 맹세하시기를 여호와가 아말렉과 더불어 대대로 싸우리라 하셨다” (출17:16)
‘여호와 닛시’란, 여호와는 나의 깃발, 즉 승리케 하시는 하나님에 대한 고백입니다.
이러한 하나님의 이름들은 후세 사람들로 하여금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를 알게 하고,
어떤 상황에서도 그 하나님을 믿고 의지하며 그분의 길로 나아갈 수 있게 합니다.
7절에서 시인은 말합니다: “어떤 사람은 병거를, 어떤 사람은 말을 의지하나 우리는 여호와 우리 하나님의 이름을 자랑하리로다”
이 또한 이스라엘이 홍해를 건널 때 하나님께서 그들을 구원해주셨던 사건을 연상시킵니다.
당시 이스라엘에겐 아무런 전쟁 무기가 없었지만 그들을 쫓아온 애굽군대는 말과 병거로 무장하고 있었습니다.
두려워하는 모세와 이스라엘 백성에게 하나님은 말씀하십니다.
“너희는 두려워하지 말고 가만히 서서 여호와께서 오늘 너희를 위하여 행하시는 구원을 보라… 여호와께서 너희를 위하여 싸우시리니 너희는 가만히 있을지니라” (출14:13-14)
이어 모세가 지팡이를 들고 손을 바다 위로 내미니 홍해가 갈라졌고,
이스라엘은 무사히 그곳을 벗어났으며 애굽군대는 바다에 몰살되었습니다.
하나님의 이름으로 싸운다는 것은 이 구원하시는 하나님의 이름을 의지하고 자랑하며 싸운다는 뜻입니다.
하나님의 이름으로 싸우는 사람은 아무리 유용한 인간적 수단이나 능력일지라도,
그것 자체가 그에게 승리를 보장해 주리라고 믿지는 않습니다.
하나님의 이름으로 싸우는 사람은 오직 하나님의 이름을 의지하고 자랑합니다.
그가 그 싸움에서 승리할 수 있고, 또 승리해야 할 이유가 있다면,
그것은 그가 하나님의 이름을 걸고 그분이 기뻐하시는 뜻대로 싸우고 있기 때문일 겁니다.
하나님의 이름으로 싸우는 사람은 단순히 인내의 사람이 아니라 불굴의 사람입니다.
하나님의 길을 가는 중에 겪게 되는 어떤 고난에도 굴하지 않고 끝까지 그 길을 가는 불굴의 사람입니다.
오스왈드 챔버스 목사님의 <주님은 나의 최고봉>이란 책에 이런 내용이 있습니다.
그리스도인들이 갖는 최악의 공포는 자신이 정죄를 받을 것이라는 것보다 예수님이 패배하실 것이라는 두려움이다. 그래서 예수님이 내세웠던 사랑, 정의, 용서, 자비가 결국 승리하지 못하고 수포로 돌아갈 것이라는 불안에 덮이게 된다. 영적 불굴을 촉구하는 부르심은 전전긍긍하며 매달려서 아무것도 못하는 상태에서 벗어나라는 명령이다. 즉 하나님이 패배하지 않는다는 확신을 가지고 일을 하면서 의식적으로 굳혀 가라는 것이다.
하나님이 지지 않으신다는 믿음 가운데 예수님 가신 길로 꿋꿋이 끝까지 나아가는 것,
그것이 바로 영적 불굴의 자세요, 하나님의 이름으로 싸우는 사람의 모습이라 할 것입니다.
하나님을 모욕하는 블레셋 군대의 적장 골리앗을 향해 나아가며 다윗은 말합니다.
“너는 칼과 창과 단창으로 내게 나아 오거니와 나는 만군의 여호와의 이름 곧 네가 모욕하는 이스라엘 군대의 하나님의 이름으로 네게 나아가노라” (삼상17:45)
이스라엘 군대의 많은 장수들이 골리앗의 덩치와 그가 가진 무기들에 압도되어 두려워 떨고 있는 상황에서 어떻게 다윗은 이렇게 용감하게 행할 수 있었을까?
그것은 다윗이 알고 있던 하나님의 이름, 즉 ‘만군의 여호와’(Lord Almighty – 전능하신 하나님)라는 이름 때문이었을 것입니다.
초대교회 사도 베드로와 요한은 성전 미문에 앉아 구걸하던 사람을 바라보며 말합니다.
“은과 금은 내게 없거니와 내게 있는 이것을 네게 주노니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일어나 걸으라” (행3:6)
내게 있는 것…
내게 있는 이것을 네게 주노니…
어쩌면 우리가 주지 못하고 사는 것은 ‘내게 없는 것’에만 늘 초점 맞추고 살기 때문은 아닐까?
똑같이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받은 자들로서, 우리는 그 ‘내게 있는 것’을 어떻게 인식하며 살고 있는가?
나에게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이란 무엇인가?
요한복음 14장 13-14절에서 예수님은 말씀하셨습니다.
“너희가 내 이름으로 무엇을 구하든지 내가 행하리니 이는 아버지로 하여금 아들로 말미암아 영광을 받으시게 하려 함이라 내 이름으로 무엇을 구하든지 내게 구하면 내가 행하리라”
그렇습니다. 하나님은 결코 지지 않으십니다.
그분의 뜻은 결코 수포로 돌아가지 않습니다.
그분의 이름에 능력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결국 승리하실 것입니다!
아니, 승리는 오직 그 하나님의 길 위에서만 주어질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의 싸움은 내 눈 앞에 어떤 사람과의 싸움이 아닙니다.
우리를 하나님의 길, 그리스도의 길에서 벗어나게 하려는 세력과의 싸움입니다.
우리 자신을 돌아보십시다.
과연 나는 진정 ‘하나님의 이름으로’ 나아가고 있는지,
내 삶의 걸음 속에 ‘하나님의 이름으로’ 나아가는 사람의 표지와 능력이 있는지,
내가 바라고 의지하는 것은 무엇이며, 내가 자랑하려 하는 것은 무엇인지…
히브리서 기자는 믿음으로 살았던 하나님의 사람들을 열거하며 이런 말을 합니다.
“하나님이 그들의 하나님이라 일컬음 받으심을 부끄러워하지 아니하시고 그들을 위하여 한 성을 예비하셨느니라” (히11:16)
하나님은 아벨의 하나님이신 것이 뿌듯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에녹의 하나님이신 것이 자랑스러우셨습니다.
하나님은 노아의 하나님이신 것이 뿌듯하셨고,
또 아브라함의 하나님이신 것이 자랑스러우셨습니다.
여기에 자기 이름을 넣어 생각해보면 어떨까요?
하나님이 나 OOO의 하나님이라 일컬음 받으심을 부끄러워하지 아니하시고 OOO를 위하여 한 성을 예비하셨느니라
어떤 상황 속에서도 하나님의 이름을 의지하고 자랑하며 믿음의 선한 싸움을 싸우는 우리 모두가 될 수 있길 바랍니다.
그리고 고난 중에 ‘하나님의 이름’을 붙들고 꿋꿋이 나아가는 믿음의 형제자매들을 위해 함께 기도해주는 우리 공동체가 되길 바랍니다.
그런 당신의 자녀들을 위해 하나님은 한 성을 예비하실 것입니다. 아멘.
기도하겠습니다.
사랑하는 주님, 우리에게 주신 당신의 이름에 감사드립니다. 그 이름 붙들고, 그 이름에 걸맞는 하나님 자녀의 길을 걷게 하여 주옵소서. 그 이름의 능력이 우리 삶 속에 나타나게 하여 주옵소서. 하나님의 이름을 의지하고 자랑하며 믿음의 선한 싸움을 싸우는 당신의 자녀들과 늘 함께하여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