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인 예배 (2019년 9월 22일)
- 누가복음 8장 4-8절
- 설교자: 류광현 목사
- 들을 귀 있는 자는 들으라 - 눅8,4-8.docx
<누가복음 8장 4-8절>
4 각 동네 사람들이 예수께로 나아와 큰 무리를 이루니 예수께서 비유로 말씀하시되
5 씨를 뿌리는 자가 그 씨를 뿌리러 나가서 뿌릴새 더러는 길 가에 떨어지매 밟히며 공중의 새들이 먹어버렸고
6 더러는 바위 위에 떨어지매 싹이 났다가 습기가 없으므로 말랐고
7 더러는 가시떨기 속에 떨어지매 가시가 함께 자라서 기운을 막았고
8 더러는 좋은 땅에 떨어지매 나서 백 배의 결실을 하였느니라 이 말씀을 하시고 외치시되 들을 귀 있는 자는 들을지어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말씀하십니다.
하지만 잘 듣는 사람은 적습니다.
귀는 가지고 있어도 못듣는 경우가 많습니다.
잘 듣던 사람도 언젠가부터 못듣게 되기도 합니다.
‘잘 듣는다’는 것은 단지 ‘소리’의 문제만은 아닙니다.
‘마음’의 문제이기도 합니다.
말 소리를 다 듣고, 말의 문자적 의미를 이해했다 해도,
그 말을 한 사람이 어떤 마음으로 했는지를 헤아리지 못하면,
또, 듣는 사람이 부적절한 마음으로 듣고 있다면,
말을 잘 들었다 하긴 어려울 것입니다.
어느 날 예수님께서 모인 무리를 향해 말씀하십니다.
씨 뿌리는 자가 나가서 씨를 뿌렸는데,
더러는 길 가에 떨어지매 밟히며 공중의 새들이 먹어버렸고,
더러는 바위 위에 떨어지매 싹이 났다가 습기가 없으므로 말랐고,
더러는 가시떨기 속에 떨어지매 가시가 함께 자라서 기운을 막았고,
더러는 좋은 땅에 떨어지매 나서 백 배의 결실을 하였다,
그리고 이어서 외치셨습니다: “들을 귀 있는 자는 들을지어다!”
들을 귀 없는 자는 듣지 말라는 뜻이 아니라,
들을 귀 없는 자는 들을 귀 있는 자가 되라는 의미일 것입니다.
그렇다면 ‘들을 귀 있는 자’란 어떤 사람을 말하는가?
이 비유만 듣고 그 말뜻을 이해한 사람은 없었던 것 같습니다.
하지만 거기서 멈추지 않고 더 듣기 원했던 사람들은 있었습니다.
9절에, “제자들이 이 비유의 뜻을 물으니”
여기서 ‘제자들’이란 누구를 말할까? 열두 제자를 말할까요?
마가복음 4장의 평행본문에는 이렇게 돼 있습니다.
“예수께서 홀로 계실 때에 함께 한 사람들이 열두 제자와 더불어 그 비유들에 대하여 물으니”
열두 제자 플러스, 거기 있던 사람들 중 일부가 함께 예수님께 나아갔다는 것입니다.
이 사람들, 즉 진리를 사모하여 다시 자발적으로 예수님께 나아온 사람들,
일차적으로는, 그들이 바로 ‘들을 귀 있는 자들’에 해당할 것입니다.
마태와 누가는 아예 ‘그들이 바로 제자들이다’ 한 셈입니다.
비유 속 씨 뿌리는 사람처럼 예수님도 사람들 가운데서 비유의 말씀을 흩뿌리십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못알아들었음에도 그냥 뒤돌아 갑니다.
하지만 그 상태로 그냥 가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진리에 목말라 다시 한번 그분께 향하는 별종들이 있습니다.
예수님은 그들에게만 비유의 속뜻을 알려 주십니다.
“너희 진주를 돼지에게 던지지 말라” (마7:6)
가치를 알아보고 나아온 자들에게만 ‘하나님 나라의 비밀’을 계시해 주십니다.
본문 11절 이하에 그 비유의 속뜻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씨는 하나님의 말씀을 뜻한다 합니다.
그렇다면 씨가 떨어진 땅은 그 말씀 들은 이의 마음을 나타낼 것입니다.
씨가 길 가에 있다는 것은
말씀을 들었으나 깨닫지 못함으로
마귀가 와서 그 말씀을 마음에서 빼앗아가는 경우라 합니다.
‘길 가’와 같은 마음은 어떤 마음일까?
아무나 드나들며 귀한 것을 쉽게 빼앗아갈 수 있는 허술한 마음…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믿음으로 구원에 이릅니다.
로마서 10장 17절에, “믿음은 들음에서 나며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말미암았느니라”
그런데 이 ‘말씀을 통한 하나님의 구원 사역’을 방해하는 세력이 있다 합니다.
마귀, 우리는 그 방해꾼의 존재를 인식하며 살아야 합니다.
몰래 들어와 빼앗아가는 자가 있다는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아무나 와서 우리 마음을 헤집고 다니지 못하게 단속할 수 있어야 합니다.
잠언 4장 23절에 말씀합니다.
“모든 지킬 만한 것 중에 더욱 네 마음을 지키라 생명의 근원이 이에서 남이니라”
또한 베드로전서 5장 8-9절에 말씀합니다.
“근신하라 깨어라 너희 대적 마귀가 우는 사자같이 두루 다니며 삼킬 자를 찾나니 너희는 믿음을 굳건하게 하여 그를 대적하라”
다음, 씨가 바위 위에 있다는 것은
말씀을 들을 때에는 기쁨으로 받으나
뿌리가 없어 잠깐 믿다가 시련을 당하면 배반하는 경우라 합니다.
‘바위’와 같은 마음은 어떤 마음일까?
그 무엇도 뿌리내리기 힘들 만큼 딱딱하게 굳은 완고한 마음…
그 속이 온통 ‘자기’(the self)로 꽉 차 있어서,
하나님의 생명이 숨쉬며 역사하기 힘든 닫힌 마음…
이 마음을 가진 사람은 자기 맘에 드는 말씀은 기쁨으로 받지만,
자기 맘에 맞지 않는 말씀은 그대로 튕겨내 버립니다.
그 순간엔 그게 편하겠지만, 문제는 시련이 닥칠 때입니다.
그 시련을 받아 안고 새롭게 태어날 수 있는 믿음의 저력이 없습니다.
믿음의 뿌리가 약해 쉽게 넘어지고 배반한다 합니다.
누가복음 9장 23절에서 예수님은 말씀하십니다.
“아무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날마다 제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것이니라”
요한복음 12장 24절에서도 말씀합니다.
“한 알의 밀이 땅에 떨어져 죽지 아니하면 한 알 그대로 있고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느니라”
다음, 씨가 가시떨기에 떨어졌다는 것은
말씀은 들었으나 지내는 중에 세상 염려와 재물과 향락에 기운이 막혀
온전히 결실하지 못하는 경우라 합니다.
‘가시떨기 속’과 같은 마음은 어떤 마음일까?
이런저런 많은 것들에 얽매이고 치여서 생명력을 잃은 분산된 마음…
세상의 일들에 대한 염려, 재물의 유혹과 욕심, 헛된 즐거움을 추구하는 일…
그런 것들에 마음이 분산된 사람은 생명의 기운이 막혀 결실하기 어렵습니다.
야고보 사도는 이런 사람을 ‘두 마음을 품은 사람’(약1:7)이라 칭하고,
이런 사람은 “무엇이든지 주께 얻기를 생각하지 말라” 합니다.
요한일서 2장 15절 이하에 말씀합니다.
“이 세상이나 세상에 있는 것들을 사랑하지 말라 누구든지 세상을 사랑하면 아버지의 사랑이 그 안에 있지 아니하니 이는 세상에 있는 모든 것이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이니 다 아버지께로부터 온 것이 아니요 세상으로부터 온 것이라 이 세상도, 그 정욕도 지나가되 오직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자는 영원히 거하느니라”
마지막으로 예수님은 씨가 ‘좋은 땅’에 떨어진 경우를 말씀하십니다.
씨가 좋은 땅에 있다는 것은
착하고 좋은 마음으로 말씀을 듣고 지키어
인내로 결실하는 자를 의미한다 합니다.
‘좋은 땅’과 같은 ‘착하고 좋은 마음’이란 어떤 마음일까?
이것은 타고난 성품이 착한 사람을 말한다기보다는,
하나님의 섬세한 손길 가운데 점차적으로 다듬어져서,
앞의 세 가지 마음의 문제가 극복된 성숙한 마음을 의미할 것입니다.
마귀의 방해로부터 자기를 잘 지키고,
자아의 완고한 틀을 깨고 하나님께 자기를 내어드리며,
세상의 것들에 마음 내어주지 않고 하나님만을 사랑하게 된 마음…
그 마음을 가진 사람은 말씀을 잘 듣고 지키어 인내로 결실한다 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지금 여러분의 마음은 어떤 상태입니까?
오늘 본문 누가복음 8장 18절 말씀 함께 찾아 읽어보겠습니다.
“그러므로 너희가 어떻게 들을까 스스로 삼가라 누구든지 있는 자는 받겠고 없는 자는 그 있는 줄로 아는 것까지도 빼앗기리라 하시니라”
내가 하나님 말씀을 어떻게 들어야 할까, 다시 한번 잘 생각해보라는 것입니다.
무엇을 어떻게 듣느냐가 우리 인생의 많은 부분, 심지어 살고 죽는 것도 결정할 것입니다.
여러분, 하나님 말씀을 우습게 여기지 마십시오.
뭐든 내가 원하는 걸 선택하여 살 수 있는 시대라 해서,
하나님 말씀도 그럴 수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천만에요! 본다고 다 보이는 말씀이 아닙니다. 듣는다고 다 들리는 말씀이 아닙니다.
아마 지금 저와 여러분이 알고 있는 것은
저 넓은 진리의 바다에 작은 모래 알갱이 몇 개 정도에 불과할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 앞에서 겸손해집시다!
들을 귀 있는 자는 들으라!
마음이 향해 있어야 들을 수 있습니다.
마음이 준비돼 있어야 들을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그분께로 점점 더 가까이 나아가
그분과 한 마음 한 뜻으로 사는 사람들이 되기를 원하십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각자에게 허락하시는 모든 일들은
아마도 바로 그 목적에 봉사하도록 주어진 것들일 겁니다.
우리가 할 일은 그분이 여러 경로를 통해 우리 안에서 일하실 때,
우리 마음 밭에 오셔서 울타리를 치시고, 돌을 뽑아내고, 가시떨기를 걷어내실 때,
그분이 그렇게 하시도록 나를 내어드리는 일일 것입니다.
요한복음 1장 4절에 심오한 말씀이 있습니다.
“그 안에 생명이 있었으니 이 생명은 사람들의 빛이라”
말씀이신 예수님 안에 생명이 있다 합니다.
그리고 그 생명이 우리 인간들의 빛이라 합니다.
그 빛을 받아야 우리가 살지 않겠습니까?
그 빛을 받아아 우리가 가야할 길로 가지 않겠습니까?
“누구든지 있는 자는 받겠고 없는 자는 그 있는 줄로 아는 것까지도 빼앗기리라”
들을 귀가 있는 자는 하나님의 진리의 빛을 받고 받고 또 받고,
그래서 점점 더 주님의 빛을 잘 비추는 사람이 되어가지만,
들을 귀가 없는 자는 있다고 생각한 그것조차도 빼앗기리라 하십니다.
오늘 이 말씀을 마음에 새기며,
겸손히 사모하는 마음, 은혜를 구하는 마음,
착하고 좋은 마음으로 하나님 말씀 앞에 나아가는 우리 모두가 될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아멘.
기도하겠습니다.
사랑의 주님, 우리에게 말씀의 빛을 비춰주시는 은혜에 감사드립니다. 우리 안에 착하고 좋은 마음을 창조하셔서, 언제나 우리가 그 진리의 말씀 잘 들으며, 그 생명의 빛을 따라 살아가게 하여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