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연합 예배 (2019년 12월 1일)
- 디모데전서 6장 7-16절
- 설교자: 류광현 목사
- 너 하나님의 사람아 - 딤전6,7-16 - 연합예배20191201.docx
<디모데전서 6:7-16>
7 우리가 세상에 아무 것도 가지고 온 것이 없으매 또한 아무 것도 가지고 가지 못하리니
8 우리가 먹을 것과 입을 것이 있은즉 족한 줄로 알 것이니라
9 부하려 하는 자들은 시험과 올무와 여러 가지 어리석고 해로운 욕심에 떨어지나니 곧 사람으로 파멸과 멸망에 빠지게 하는 것이라
10 돈을 사랑함이 일만 악을 뿌리가 되나니 이것을 탐내는 자들은 미혹을 받아 믿음에서 떠나 많은 근심으로써 자기를 찔렀도다
11 오직 너 하나님의 사람아 이것들을 피하고 의와 경건과 믿음과 사랑과 인내와 온유를 따르며
12 믿음의 선한 싸움을 싸우라 영생을 취하라 이를 위하여 네가 부르심을 받았고 많은 증인 앞에서 선한 증언을 하였도다
13 만물을 살게 하신 하나님 앞과 본디오 빌라도를 향하여 선한 증언을 하신 그리스도 예수 앞에서 내가 너를 명하노니
14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나타나실 때까지 흠도 없고 책망 받을 것도 없이 이 명령을 지키라
15 기약이 이르면 하나님이 그의 나타나심을 보이시리니 하나님은 복되시고 유일하신 주권자이시며 만왕의 왕이시며 만주의 주시요
16 오직 그에게만 죽지 아니함이 있고 가까이 가지 못할 빛에 거하시고 어떤 사람도 보지 못하였고 또 볼 수 없는 이시니 그에게 존귀와 영원한 권능을 돌릴지어다 아멘
1 오늘부터 시작되는 대림절은 주님의 다시 오심을 기다리는 절기입니다. “그 때에 사람들이 인자가 구름을 타고 능력과 큰 영광으로 오는 것을 보리라”(눅21:27) 이처럼 주님은 세상 끝에 다시 오시리라 하셨고, 이후 사도들은 주의 강림이 가까움을 선포하였습니다. 주님이 다시 오시는 날이 심판의 때요 완성의 때라면, 그 전까지의 시간은 준비의 때요 선교의 때라 할 것입니다. 주님이 언제 다시 오시느냐는 하나님의 주권에 달린 부분이지만, 그 때까지 우리가 어떻게 사느냐는 각자의 책임으로 맡겨진 부분입니다. 주님은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므로 깨어 있으라 어느 날에 너희 주가 임할는지 너희가 알지 못함이니라”(마24:42). “허리에 띠를 띠고 등불을 켜고 서 있으라”(눅12:35). 오늘 본문에도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나타나실 때”라는 표현이 나옵니다. “기약이 이르면 하나님이 그의 나타나심을 보이시리라” 합니다. 그렇다면 그 때까지, 주님의 다시 오심을 기다리는 성도들은 이 땅에서 어떻게 살아야 할까요?
2 먼저 우리는 ‘내가 누구인지’를 늘 생각하며 살아야 할 것입니다. 본문 11절에서 바울은 수신자 디모데를 향해 “너 하나님의 사람아!”라고 부릅니다. 본래 이 ‘하나님의 사람’이란 말은 구약의 예언자들에게 적용되던 호칭입니다. 하지만 바울은 이 말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온전케 되어 선한 일을 행할 능력을 갖춘 그리스도인들에게 폭넓게 적용합니다(딤후3:17). 하나님께 속한 사람, 하나님께 배운 사람, 하나님을 믿는 사람, 하나님을 섬기는 사람 등의 의미가 이 표현 속에 담겨 있을 것입니다. 하나님께 속한 사람은 세상에 속한 사람과 구별됩니다. 하나님께 배운 사람은 세상 풍조를 따르는 사람과 구별됩니다. 하나님을 바르게 믿는 사람은 하나님을 잘못 믿는 사람과 구별됩니다. 하나님을 섬기는 사람은 다른 우상을 섬기는 사람과 구별됩니다.
3 사도 바울은 디모데에게 그가 ‘하나님의 사람’으로서 ‘피해야’ 할 것과 ‘따라야’ 할 것을 말해줍니다. 먼저 ‘피해야’ 할 것.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과 경건에 관한 교훈에서 벗어난 가르침을 피하라 합니다. 또한 교만한 마음에서 비롯되는 변론과 언쟁을 피하라 합니다. 그리고 이어서, 부하려 하는 자들을 향하여, 돈을 사랑하는 일을 피하라 합니다. ‘부하려 하는 자’란 단순히 ‘부자’를 말하는 게 아닙니다. ‘부자가 되길 욕망하는 사람’을 말합니다. 자족할 줄 모르고 필요 이상으로 쌓아 두려 하는 사람입니다. 그런 사람들은 시험과 올무와 여러 어리석고 해로운 욕심에 떨어져 파멸의 구렁에 빠지게 되리라 합니다. 돈을 사랑함이 일만 악의 뿌리가 된다, 돈을 탐내다 미혹을 받아 믿음에서 떠나 불행을 자초하는 이들이 있다고 합니다.
4 오늘날 우리가 사는 이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돈이 곧 권력이고 성공이고 행복으로 인식되기 쉽습니다. 돈이 있어야 행복할 수 있다는 생각이 사람들의 마음을 지배하고 있습니다. 가나안 농경사회 속에서 풍요와 다산의 신 바알과 아세라가 이스라엘 백성을 하나님에게서 멀어지게 했던 것처럼, 오늘날엔 돈이란 우상이 엄청난 위세를 떨치며 사람들을 미혹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이 상황을 매우 심각하게 보시며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한 사람이 두 주인을 섬기지 못할 것이니 혹 이를 미워하고 저를 사랑하거나 혹 이를 중히 여기고 저를 경히 여김이라 너희가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기지 못하느니라”(마6:24) 오늘 본문에서 사도 바울은 말합니다. “우리가 세상에 아무 것도 가지고 온 것이 없으매 또한 아무 것도 가지고 가지 못하리니 우리가 먹을 것과 입을 것이 있은즉 족한 줄로 알 것이니라”
5 그렇다면 ‘하나님의 사람’이 적극적으로 ‘따라야’ 할 것은 무엇인가? “의와 경건과 믿음과 사랑과 인내와 온유를 따르라” 합니다. ‘의’는 하나님과의 바른 관계에서 말미암는 바른 행동을 의미합니다. ‘경건’은 하나님의 성품을 반영하는 바른 동기의 행동을 가리킵니다. 그러므로 ‘의와 경건’을 추구한다는 것은 하나님 앞에서 바르게 행하려 애쓴다는 뜻입니다. ‘믿음’은 받은 은혜 안에서 하나님을 신뢰하는 것입니다. ‘사랑’은 받은 은혜 안에서 자기를 내어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믿음과 사랑’을 추구한다는 것은 그리스도의 은혜 안에서 행하려 애쓴다는 뜻입니다. ‘인내’는 소망 가운데 기다리며 견디는 것입니다. ‘온유’는 소망 가운데 선으로 악을 이기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인내와 온유’를 추구한다는 것은 하나님께 소망을 두고 늘 선을 행하려 애쓴다는 뜻입니다.
6 이 여섯 가지 덕목을 추구하며 “믿음의 선한 싸움을 싸우라”고 바울은 권면합니다. 당장의 눈에 보이는 성공과 만족과 이득을 좇으려는 욕망에 굴복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그 길에서 돌이켜, 예수 그리스도와 하나님 나라의 복음이 계시하는 온전하고 영원한 가치를 좇으라는 것입니다. 여기 상충되는 두 길, 충돌하는 두 세계가 있습니다. 따라서 이것은 일종의 싸움입니다. 투쟁입니다. 또한 경주입니다. 주 앞에 서는 그 날까지 우리가 성실히 완주해야 할 믿음의 경주입니다. “경기하는 자가 법대로 경기하지 아니하면 승리자의 관을 얻지 못할 것”(딤후2:5)이라 바울은 말합니다. 아무렇게나, 아무 길로나 달려선 안된다는 것입니다. 마땅히 가야할 길로, 제대로 달려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에 히브리서는 말합니다. “모든 무거운 것과 얽매이기 쉬운 죄를 벗어 버리고 인내로써 우리 앞에 당한 경주를 하며 믿음의 주요 또 온전하게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자”(히12:1-2)
7 “믿음의 선한 싸움을 싸우라’ 한 뒤에, 바로 이어서 바울은 “영생을 취하라” 합니다. ‘취하라’는 말은 ‘적극적으로 붙잡으라’는 뜻입니다. 무엇을? 영생, 즉 영원한 생명을. 여기 사용된 헬라어 Zoe 는 단순히 생물학적 생명을 뜻하는 단어(Bios)가 아닙니다. 영적인 생명, 하나님과의 교제 속에서 누리는 새 생명을 의미하는 단어입니다. 이 세상이 아닌 하나님 나라에 속한 생명, 죽음조차도 파괴할 수 없는 영원한 생명이 바로 그것입니다. 이 생명이 믿음의 선한 싸움을 싸우는 사람들의 양식입니다. 이 생명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주어집니다. 그분이 생명의 빵이요 물입니다. 바울은 디모데에게 바로 그 생명을 취하라 말하는 것입니다. 믿음의 선한 싸움을 싸우는 하나님의 사람들은 이미 이 땅에서부터 그 생명을 누릴 수 있습니다. 이천 년 전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역사했던 그 생명이 그들 속에서도 역사할 수 있습니다. 이를 위해 우리는 그 생명을 사모하며 붙들어야 합니다.
8 주님이 다시 오시는 그 날까지 이 땅에서 우리는 증인의 삶을 살아야 합니다. 우리의 삶이 예수 그리스도와 하나님 나라에 대한 ‘선한 증언’이 되어야 합니다. 바울은 주님 오시는 그 날까지 “흠도 없고 책망 받을 것도 없이 이 명령을 지키라”고 디모데에게 말하면서, 이것이 하나님과 그리스도 예수 앞에서 명하는 것임을 주지시킵니다. “만물을 살게 하신 하나님 앞과 본디오 빌라도를 향하여 선한 증언을 하신 그리스도 예수 앞에서 내가 너를 명하노니” 하나님은 만물에게 생명을 주시는 분입니다. 생물학적 생명(Bios)만이 아니라 영적인 생명(Zoe)도 그분이 우리에게 주십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모든 사람 앞에서 선한 증언을 하신 분입니다. 제국의 권력자 앞에 서셨을 때도, 그분은 하나님 나라의 왕으로서 의와 경건, 믿음과 사랑, 인내와 온유를 드러내는 선한 증언을 하셨습니다. 그 하나님과 그리스도 앞에서 살아갈 때, 우리의 삶도 세상을 향한 선한 증언이 될 수 있을 것입니다.
9 “기약이 이르면 하나님이 그의 나타나심을 보이시리니” 이 땅에서 하나님의 사람들은 보이는 것만을 따라 살지 않습니다. 보이진 않지만 실재하는 것, 때가 되면 나타날 그것을 미리 믿음으로 바라보고 소망하며 살아갑니다. 지금이나 그 때나 하나님은 변함없이 하나님이십니다. 그 하나님에 대해 바울은 이렇게 말합니다. “하나님은 복되시고 유일하신 주권자이시며 만왕의 왕이시며 만주의 주시요 오직 그에게만 죽지 아니함이 있고 가까이 가지 못할 빛에 거하시고 어떤 사람도 보지 못하였고 또 볼 수 없는 이시니 그에게 존귀와 영원한 권능을 돌릴지어다 아멘” 우리는 이 하나님 앞에서 살아갑니다. 우리는 이 하나님의 사람들이며, 이 하나님 나라의 백성들입니다. 이 세상에서 기죽은 모습으로, 무력하게, 헛된 것에 휩쓸리며, 아무 빛깔도 향기도 없이 서 있을 존재들이 아닙니다. 어떤 의미에서 우리는 특명을 받아 이 땅에서 미션을 수행하는 저 위대하신 분의 특수요원들입니다. 지금 보이지 않는 것들이 그 때에는 다 드러날 것입니다. 오늘 우리가 여기서 하는 일들은 결코 무의미한 일로 남지 않을 것입니다.
10 사랑하는 형제 자매 여러분! 주님의 다시 오심을 기다리는 성도들로서 우리는 이 땅에서 어떻게 살아야 할까요? 바른 것을 ‘따르는’ 일이 중요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말과 삶이 나타내는 교훈, 즉 의와 경건과 믿음과 사랑과 인내와 온유를 따르십시오. 또한 바른 일에 ‘힘쓰는’ 것이 중요합니다. 헛된 영광을 구하며 서로 다투지 말고, 하나님과 그리스도 앞에서 믿음의 선한 싸움을 싸우십시오. 그리고 바른 것을 ‘취하는’ 일이 중요합니다. 재물에 소망을 두지 말고 하나님께 소망을 두십시오. 영생을 취하십시오. “사람의 생명이 그 소유의 넉넉한 데 있지 않다” 하시며, “자기를 위하여 재물을 쌓아 두고 하나님께 대하여 부요하지 못한 자’를 주님은 ‘어리석다’ 하셨습니다(눅12:15-21). 우리는 믿음의 눈을 떠야 합니다. 보이는 것 너머에 실재하는 영원한 것에 마음을 둘 수 있어야 합니다. 다시 하나님을 바라보십시다. 그리스도 예수의 길을 따릅시다. 하나님 나라에 투자하고, 그 나라의 일에 헌신합시다. “지혜 있고 진실한 청지기가 되어 주인에게 그 집 종들을 맡아 때를 따라 양식을 나누어 줄 자가 누구냐 주인이 이를 때에 그 종이 그렇게 하는 것을 보면 그 종은 복이 있으리로다”(눅12:42-43) 우리 주님의 말씀입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