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인 예배 (2020년 11월 29일)
- 창세기 12장 1-5절
- 설교자: 류광현 목사
- 주일 가정예배 예식서 2020.11.29.pdf
<창세기 12장 1-5절>
1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이르시되 너는 너의 고향과 친척과 아버지의 집을 떠나 내가 네게 보여 줄 땅으로 가라
2 내가 너로 큰 민족을 이루고 네게 복을 주어 네 이름을 창대하게 하리니 너는 복이 될지라
3 너를 축복하는 자에게는 내가 복을 내리고 너를 저주하는 자에게는 내가 저주하리니 땅의 모든 족속이 너로 말미암아 복을 얻을 것이라 하신지라
4 이에 아브람이 여호와의 말씀을 따라갔고 롯도 그와 함께 갔으며 아브람이 하란을 떠날 때에 칠십오 세였더라
5 아브람이 그의 아내 사래와 조카 롯과 하란에서 모은 모든 소유와 얻은 사람들을 이끌고 가나안 땅으로 가려고 떠나서 마침내 가나안 땅에 들어갔더라
○ 가라! 떠나라! 하나님은 아브람에게 말씀하셨습니다. 어디를 떠나라는 것인가? 고향, 히브리어로 ‘땅’을 말합니다. 그가 서 있는 자리, 익숙한 환경, 그곳을 떠나라는 것입니다. 또한 친척을 떠나라 합니다. 그가 속해 있던 혈연공동체, 맺고 있던 관계들, 가까이 지내던 사람들, 그들을 떠나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아버지의 집을 떠나라 하십니다. 그가 따르던 권위, 의지하던 울타리를 떠나라는 것입니다.
○ 왜 떠나라 하실까요? 더 나은 계획을 가지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내가 너로 큰 민족을 이룰 것이다” 새로운 공동체가 그를 통해 형성될 것입니다. “네게 복을 주어 네 이름을 창대하게 하리라” 하나님의 사람으로서의 새로운 정체성이 그에게 부여될 것입니다. “너는 복이 될지라” 세상에 하나님의 복을 흘려보내는 사명자로 그는 거듭나게 될 것입니다.
○ 왜 꼭 떠나야만 했을까요? 그가 있던 자리에서는 그렇게 될 수 없었을까요? 그렇습니다. 문제는 장소가 아닙니다. 거기라서 안 되는 것이 아닙니다. 관건은 사람입니다. 거기에 얽매여 있는 사람, 그 문화와 관계의 틀 안에 갇힌 사람이 갖는 한계 때문입니다. 사람이 새로워져야 했습니다. 그래서 떠남이 필요했습니다. 가라! 떠나라! 때때로 하나님은 우리를 익숙한 환경, 안정된 삶의 조건에서 불러내십니다. 그분의 선하신 뜻 안에서 우리를 새로 빚어 사용하시기 위함입니다.
○ 어디로 가라 하십니까? “내가 네게 보여 줄 땅으로 가라” 확실하게 알려주지 않으십니다. 일단 떠나서 가다보면 그 여정 중에 알게 되리라 하십니다. 왜 이런 모호성이 필요합니까? 믿음을 불러일으키기 위해서입니다. 그 땅에 도착하는 일보다 더 중요한 것은 믿음의 사람으로 그 땅에 서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믿음은 제자리에서 저절로 생겨나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순종의 여정에 오를 때, 그 한 발 한 발 떼는 과정에서 모르는 사이에 조금씩 조금씩 생겨납니다.
○ 익숙한 곳을 떠나 낯선 곳으로 떠난다는 것은 두려운 일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아브람에게 약속을 주십니다. “너를 축복하는 자에게는 내가 복을 내리고 너를 저주하는 자에게는 내가 저주하리라” 이 약속은 아브람뿐 아니라 하나님만을 의지하고 그분이 보여주실 새로운 땅으로 나아가는 모든 하나님의 사람들에게 주어진 약속입니다. 요셉으로 말미암아 보디발의 집에 하나님의 복이 내렸습니다. 그가 옥에 갇힌 중에도 하나님은 그와 함께 하셨고 그에게 인자를 더하셨습니다.
○ 아브람은 떠났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떠났습니다. 그때 그의 나이 75세였습니다. 인생을 살만큼 산 나이였지만, 자기 경험을 하나님 말씀보다 앞세우지 않았습니다. 어디로 가야 하나, 알지 못했지만, 어디로 가선 안 되는지는 알고 있었습니다. 떠나온 고향 ‘우르’ 방향이 아니라면, 그 반대방향인 ‘가나안’을 향해 가보자, 어쩌면 아브람은 그렇게 생각했는지 모릅니다. 그처럼 불확실한 중에도 그는 떠났고, 그가 가나안 땅에 들어셨을 때, 하나님은 그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이 땅을 네 자손에게 주리라”
○ 오늘 본문 말씀은 그리스도인들이 떠남을 생각할 때마다 떠올리곤 하는 말씀입니다. 저 역시 한국에서 체코로 떠나올 때 이 말씀을 생각했고, 그 후에도 거듭거듭 이 말씀을 떠올렸습니다. 나는 왜 이곳에 오게 됐을까? 여기서 나는 잘 살고 있는 걸까? 내가 여기 있는 것이 과연 하나님의 뜻일까? 아마 여러분도 그런 생각을 할 때가 있었을 것입니다. 떠남에는 두 종류의 떠남이 있습니다. 내가 바라는 것을 이루기 위해 떠나는 것과 하나님의 부르심에 순종해서 떠나는 것. 결과적으로 똑같이 낯선 땅에 있다 해도, 이 둘은 상당히 다릅니다.
○ 아브람의 아버지 데라는 ‘가나안 드림’ 속에서 가족들을 데리고 떠난 것 같습니다. 가는 길에 하란을 들렀는데 살기 괜찮았습니다. 그래서 거기 주저앉았습니다. 가나안까지 굳이 더 갈 필요가 없었습니다. 한편 아브람은 아버지를 따라와 하란에 사는 동안에 하나님의 부르심을 들었습니다. 그리고 다시 짐을 꾸려 가나안을 향해 떠났습니다. 하지만 그것은 ‘가나안 드림’ 속에서 떠난 여정이 아니었습니다. 하나님의 약속과 사명을 붙들고 떠난 믿음의 여정이었습니다. 거기서의 삶에 고난과 어려움이 있다 하여도 제 맘대로 접어버릴 수 있는 삶이 아니었습니다.
○ 우리가 체코에 있든 한국에 있든 어디에 있든, 사실 그건 하나님의 관점에선 그리 중요하지 않습니다. 중요한 것은 부르심에 순종하여 떠나본 경험입니다. 이것이 없다면, 아무리 그가 외국에 나와 살고 있다 해도, 여전히 그는 자기 고향과 친척과 아버지의 집에 머물러 있는 셈입니다. 설령 가나안 드림, 유러피안 드림 속에서 떠나온 여정이었다 해도, 아브람처럼 거기서 다시 하나님의 부르심을 들을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나를 보내신 이곳, 여기서 만나게 하시는 사람들을 이전과는 다르게 보며 다르게 대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 보냄받은 자리에서 아브람처럼 복이 되는 삶을 살아갈 수 있습니다.
○ 아브람이 특별한 사람이어서 하나님이 그를 부르신 것이라 생각하기 쉽지만, 그렇게 볼 만한 근거가 성경에는 없습니다. 하나님의 부르심에 순종하며 나아갔던 그의 믿음이 그를 특별한 사람으로 만들어갔다 말하는 것이 아마 더 옳을 것입니다. 가라! 떠나라!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말씀하십니다. 뒤돌아보지 말고, 두려워하지 말고, 하나님이 부르시는 새로운 땅으로 담대히 나아가는 우리 모두가 될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