콘서트 안내

3월 3일 오후 5시 꼬빌리시 교회당에서 콘서트가 있습니다. 파리한인장로교회의 교인이면서 파리에 음악을 공부하고 있는 분들이 체코선교를 위해 준비했습니다.

인솔자: 성원용 목사
선교위원회 총무: 서병조 집사
소프라노: 함혜경 사모, 이명진 성도, 이현정 성도
피아노: 임미아 성도, 이경희 성도
플룻: 유현수 성도

이 분들은 3월 4일 삐섹에서 오전에 두차례 프랑스 김나지움(고등학교) 학생들과 교실에서 만남의 시간을 갖고 오후 2시에 벨리바 찻집으로 학생들을 초대하여 이야기를 나눈후 오후 4시에 콘서트를 갖고 프라하로 돌아와 다음날 5일 파리로 돌아갈 예정입니다.

프로필
소프라노 함혜경(Soprano HAM, Hye Gyung)
서울대학교 음악대학 성악과 졸/ Ecole Normale de Musique de Paris과 블로뉴 국립음악원에서 성악 전공 중이며, Evry Cathedrale 합창단의 솔리스트와 파리 한인장로교회 성가대 지휘자 역임

소프라노 이명진(LEE Myung Jin)
조선대학교 음악대학 성악과 졸/ 광주 시립합창단 단원과 광주 오페라 단원/KBS Amteur Music concert 및 다수의 오페라에서 연주

소프라노 이현정(LEE, Hyun Jung)
호남신학대학교 교회음악과 졸업/프랑스 Ecole Normale de Musique de Paris 와 Conservatoire de Rueil Malmaison 에서 성악 공부 중

테너 서병조(SUH Byung Jo)
고려대학교 법과 대학 및 파리 5대학 법학박사 과정 수료/주 OECD 대한민국 대표부 근무/ 에클레시아 합창단, 바하 합창단 활동

피아노 임미아(IM Mi A)
숙명여자 대학교 피아노과 졸업/프랑스 Ecole Norme de Musique de Paris의 최고연주자 과정에 재학중이며, 프랑스 St. Nom la Breteche Piano Concour에서 2등 입상

피아노 이경희(LEE Kyoung Hee)
이화여자 대학교, 동 대학원 피아노과 졸업/프랑스 Ecole Norme de Musique de Paris에서 피아노 공부 중

풀릇 유현수(YU Hyun Soo)
이화여자 대학교 피아노과 졸업/서울 국립음악원과 프랑스 국립 음악원 졸업/ C.N.R de Reuil-Malmaison과 Ecole Norme de Musique de Paris에서 풀릇 공부 중

흙으로 돌아가리라

  • 한인 예배 (2002년 02월 17일)
  • 창 3:8-19
  • 설교자: 이종실

02년 02월 17일(사순절 첫째주일)
본문: 창세기 3: 8-19
제목: 흙으로 돌아가리라

<공동기도>
구원의 하나님 아버지
죽음의 날을 기억하는 겸손한 삶으로
하나님을 대적하는 우리의 불순종을 대속해 주신
하나님의 사랑을 새롭게 깨닫는 사순절이 되게 하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본문>

들이 날이 서늘할 때에 동산에 거니시는 여호와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아담과 그 아내가 여호와 하나님의 낯을 피하여 동산 나무
사이에 숨은지라 … 네가 얼굴에 땀이 흘러야 식물을 먹고 필경은 흙으로 돌아가리라. 그 속에서 네가 취함을 입었음이라 너는 흙이니
흙으로 돌아갈 것이니라 하시니라.

<설교>
오늘은 사순절의 첫 주일입니다. 사순절은 부활주일
전 6주간의 기간입니다. 이 기간에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고난과 죽음과 부활을 묵상합니다. 예수님께서 죽으시어 우리의 죄
값을 지불하시고 우리에게 생명을 주신 것을 묵상합니다. 사순절을 “lent”라고 하는 데 이 말의 어원은 “lengthen”에서
왔습니다. 봄에 낮 시간이 점점 길어지는 기간을 의미합니다. 사순절의 원래기간은 40시간이었습니다. 예수님이 고난을 받으시고
무덤에 머물러 계시던 시간을 기억하며 금식하는 기간이었습니다. 이것이 3세기 초에 6일로 늘어났습니다. 그러다가 주후 800년에
40일이 되었습니다. 이 전통은 예수님께서 공생애를 시작하기 전 광야에서 금식하며 기도하던 40일에 근거를 두고 있습니다.
사순절의 시작은 부활절 전 일요일을 포함하지 않은 40일입니다. 이 날은 수요일인데 특별이 이 수요일을 교회력에서 “재의
수요일”이라고 부릅니다. 지난 주 수요일인 2월 13일이 바로 재의 수요일이었습니다.

재의 수요일은 회개의 날을 상징합니다. 재위에 앉아 재를 머리위로 뿌리며 회개자는 “죽음을 기억하라!”(MEMENTO MORI!)고 절규합니다. 이것이 후에 카톨릭 수도원에서 수도승들의 인사였다고 합니다.

오늘 창세기 기자는 사순절의 첫 주일을 맞이하는 우리들에게 “흙으로 돌아가리라”즉 “죽음을 기억하라!” 고 우리를 기억시키고 있습니다.


세기 기자는 매우 냉정하게 단호하게 우리들의 이 땅 위에서의 수고와 고통과 죽음의 이유는 우리 인간의 죄 때문이라고 언급하고
있습니다. 죽음 – 흙으로 돌아가는 것은 인간이라면 누구도 피할 수 없는 죄의 값입니다. 이 창세기의 신앙 전통에 따라 사도
바울은 “죄의 삯은 사망”(롬 6:23)이라는 명제를 선언하였습니다.

오늘 본문에서 하나님은 아담과 하와에게
신신당부를 하였습니다. “너희가 이 금단의 열매를 먹는 날에는 죽으리라.” 그러나 그들이 사악하게도 그것을 먹었을 때 하나님의
탄식이 울려퍼졌습니다. “오호라, 사람이 선과 악을 아는 일에 우리와 같이 되었구나.  그가 손을 내밀어 생명의 실과를 따먹고
영원히 사는 일이 없도록 하여야겠구나.”(22절)

하나님을 탄식케 한 인간의 불순종이 죄입니다. 우리들의 귀에는
언제나 하나님께 불순종을 유혹하는 뱀의 소리가 쟁쟁하게 들려오고 있습니다. “선과 악을 알게 되어 너도 하나님처럼 되리라.”
인간은 자신을 창조한 하나님이 되는 것 만큼 즐거운 유혹은 없습니다. 한번 알게 된 달콤한 유혹과 욕망은 인간 안에서 성장해
갑니다. 인간은 자신이 원하는 것은 무엇이나 다 이룰 수 있는 존재로 이해하기 시작하였습니다.

이때 하나님은 인간에게 인생의 한계를 설정합니다. “(흙) 속에서 네가 취함을 입었음이라 너는 흙이니 흙으로 돌아갈 것이니라 하시니라.” 흙으로 돌아가는 것입니다.


생은 마지막 종점이 있습니다. 인간이 태어나는 그 순간은 인생의 마지막 종점을 향해 첫발을 내딛는 것입니다. 우리는 흙으로
돌아갑니다. 우리가 만들고 우리가 사랑하고 우리가 하나님처럼 소중히 여기는 것들을 모두 남기고 떠나야만 합니다.

“흙
으로 돌아가리라” 이 선언은 우리 인간이 신이 아니라 죽음을 향하는 존재임을 깨닫게 한것입니다  “너는 흙이니 흙으로 돌아갈
것이라” 이 선언은 죽음은 인생 끝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삶의 모든 순간에 위치하고 있음을 깨닫게 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달력과 시계를 사용합니까? 날이 어두워지기 전 서둘러 일을 계속해야 되는 강박관념은 어디에서 비롯되었습니까? 젊음이
지나가 것을 안타까워 하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이 평범한 말들과 사실들 그 배후에 우리는 시간 시간 우리가 죽어가고 있고
우리에게는 제한된 시간만이 있다는 사실을 무의식속에서 생각하고 있기때문입니다. 우리는 화살처럼 날아가고 물처럼 끊임없이 흘러가는
시간과 날이라는 특급열차에 몸을 싣고 있음을 알기때문입니다. 우리는 수명을 연장할 수 있지만 죽음을 정복할 수 없습니다.


음의 초읽기에 당혹스러워 하는 인간을 보며 즐거워하는 잔인한 하나님이신가? 여기에서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가 병든자를 고치고
죽은자를 살리는 복음서의 이야기를 기억하십시다. 이러한 예수 그리스도의 공생애는 세상에 질고와 죽음은 존재하지 않아야 된다는
선언입니다. 고통과 죽음은 하나님의 창조가 아닙니다. 인간이 피조물임을 거부하는 인간의 욕망으로 망가진 하나님의 창조가 고통과
죽음인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오셔서 우리의 손을 아버지 하나님의 손과 다시 붙잡고 화해하게 함으로써 망가진 하나님의 창조가
수리된것입니다. 인생의 질고와 죽음이 사라진것입니다. 그러나 이때 죽음은 생물학적인 죽음이 사라진 것을 의미하는 것은 아닙니다.
하나님의 심판이 사라졌다는 것입니다.

다시말씀드려 죽음이 다른 질과 내용을 갖게된 것을 의미합니다. 죽음은 시간과
영원사이에 가로놓인 담장이 아니라 오히려 시간과 영원을 연결시켜주는 다리가 된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고린도전서 15장에서 우리는
죽지않고 모두 변화할 것이라고 합니다. “마지막 나팔 소리가 울릴 때에 순식간에 눈 깜짝할 사이도 없이 죽은 이들은 불멸의 몸으로
살아나고 우리는 모두 변화할 것입니다. 이 썩은 몸이 불멸의 옷을 입고 이 죽을 몸이 불사의 옷을 입게 될 때에는 승리가 죽음을
삼켰다. 죽음아, 네 승리는 어디 갔느냐? 죽음아 네 독침은 어디 있느냐? 라는 성경말씀이 이루어질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우리에게 승리를 주신 하나님께 감사합니다.” 고린도전서 15: 50-58절 말씀입니다.

하나
님은 “네가 그것을 따먹는 날에는 정녕 죽으리라”(창2:17) 라고 위협을 하면서 동산 중앙에 있는 실과를 따먹지 말라고
명령하셨습니다. 그런데 인간은 그 실과를 따먹었고 그래서 심판의 번개가 내리쳤습니다. 땅은 가시와 엉겅퀴로 가득차게 되었습니다. 그
심판은 뱀에게도 역시 내려졌습니다. “네가 그것을 따먹는 날에는 정녕 죽으리라” 이미 선언되었지만 그 사형선고는 즉시 인간에게
내려지지 않았습니다. 금방 죽는 대신 죽어야만 하는 운명을 인간은 지니게 되었습니다. 사형선고 대신 집행유예를 선고받았습니다.
이렇게 인간은 사망의 그늘이지만 그래도 계속 살아갈 수 있도록 허락을 받았습니다. 이처럼 하나님의 심판 속에 하나님의 은혜의
신비가 은밀히 감추어져있습니다.

예수님은 어리석은 부자의 비유에서 “오늘밤 네 영혼을 도로 찾겠다”고 합니다.
나는 누구입니까? 나는 어디에 있습니까? 다가오는 밤에 나는 나의 영혼을 빼앗기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오늘 나는 아직 살도록 허락 받았습니다.


리에게 결코 죽음의 운명에서 해방된다는 약속이 주어지지 않았지만 저와 여러분들은 잠시 동안 생명을 부지 하도록 허락 받았습니다.
전쟁과 폭동과 질병과 사건사고와 자연환경의 위협의 홍수 속에 사는 우리들에게 하나님은 폭풍구름 저 너머에 화해의 표시로서 무지개를
만드셨습니다.

가시와 엉겅퀴와 흙으로 돌아가게 되는 우리들의 고통과 압박들은 우리들로 하여금 “이 보잘 것 없는 세상은 우리의 집이 아니다”라는 것을 기억 시킵니다.

리고 고통이나 애통, 울부짖음이 더 이상 존재하지 않으며 모든 눈에서 눈물이 씻겨지고 원수의 하나까지 모두 쳐 부셔진 새 하늘과 새
땅을 우리가 기다리고 있음을 깨닫게 해줍니다. 흑암과 사망의 그늘아래 거할 때 우리는 깨닫게 됩니다. 하나님이 어떻게 우리를
위로해 주시는지, 하나님 그분이 얼마나 신실한 분이신지 깨닫게 됩니다. 우리가 깊은 심연에서 울부짖을 때 우리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시는 하나님을 우리는 만나게 됩니다.

고통의 심연에서 다윗은 목자 되시는 여호와를 발견하고 그를 노래합니다.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가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그가 나를 푸른 초장에 누이시며 쉴만한 물가로 인도하시는 도다. 내 영혼을
소생시키시고 자기 이름을 위하여 의의 길로 인도하시는 도다. 내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다닐지라도 해를 두려워하지 않을 것은
주께서 나와 함께 하시리라. 주의 지팡이와 막대기가 나를 안위하시나이다. 주께서 내 원수의 목전에서 내게 상을 베푸시고 기름으로 내
머리에 바르셨으니 내 잔이 넘치나이다. 나의 평생에 선하심과 인자하심이 정녕 나를 따르리니 내가 여호와의 집에 영원히
거하리로다.”(시편 23편 전체)

사랑하고 존경하는 교우여러분,
사순절의 첫번째 주일을 맞이하여 저와 여러분은
우리가 죽음을 향하는 존재, 다시 흙으로 돌아가는 존재임을 기억하십시다. 죽음을 기억하는 자, 흙에서 나와 흙으로 돌아가는 우리
존재를 아는 자만이 죽음과 고통 너머로 우리를 사랑하시는 신실하신 위로자요 구원자이신 하나님을 만날 수 있습니다. 죽음을 기억하는
겸손한 삶으로 하나님을 만나는 이 사순절이 되길 주님의 이름으로 기원합니다.

<설교 후 기도>
우리
들이 흙으로 돌아가는 존재임을 사순절의 첫 주일에 다시 기억합니다. 주님앞에 진실하게 하시며 주님만을 의지하는 삶을 살아가는
저희들 되게 하여주시옵소서. 마음의 욕망이 결국 하나님에 대한 불순종임을 알고 욕망을 비운마음에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의 신비로
채워주시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 드렸습니다. 아멘

2월 당회

2월 18일 오후 7시 세미나실에서 목사 2인 전도사 1인 장로 10인이 모였습니다.
이번 회의는 꼬빌리시 교회의 부목사로 현재 전도사(목회 실습자)인 드로빅을 청빙결정이 주요 안건이었습니다.

몇분 장로들의 드로빅 추천과 꼬빌리시교회에 대한 드로빅의 의견과 그의 청빙요청 서한 을 낭독후 면접시간을 가졌습니다. 면접시간에 드로빅은 장로들의 질문을 받고 답을 해야했습니다.

그후 드로빅을 사무실에서 기다리게 하고 당회는 자유토론을 벌렸습니다. 무기명 기표 투표로 1명 기권에 11명 찬성하여 청빙키로 하였습니다.

드로빅은 목회자 3인의 팀사역의 범주에서 주로 꼬빌리시 교회의 보흐니쩨 병원 사역을 담당하게 됩니다. 업무 계약서 청빙서를 작성하여 3월 중에 있을 공동의회에서 교인들의 결정을 기다리는 절차가 남았습니다.

새로운 목회자가 한인 공동체를 체코교회의 선교의 관점에서 이해를 하게 하는 것은 동시에 우리 한인 교우들의 몫이라 생각 합니다.

우리교회의 삶의 스타일

  • 한인 예배 (2002년 02월 10일)
  • 마 7:15-20
  • 설교자: 이종실

02년 02월 10일 (주현 주일 후 다섯번째 주일)
본문: 마 7:15-20
제목: 우리교회의 삶의 스타일

<공동기도>
열매로 판단하시는 하나님 아버지
좋은 나무가 아름다운 열매를 맺듯이
예수 그리스도와 하나되려는 우리들의 삶을 통해
그리스도의 복음의 열매 맺길 원합니다.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본문>

짓 선지자들을 삼가라 양의 옷을 입고 너희에게 나아오나 속에는 노략질하는 이리라 그의 열매로 그들을 알찌니 가시나무에서 포도를,
또는 엉겅퀴에서 무화과를 따겠느냐 이와 같이 좋은 나무마다 아름다운 열매를 맺고 못된 나무가 나쁜 열매를 맺나니 좋은 나무가 나쁜
열매를 맺을 수 없고 못된 나무가 아름다운 열매를 맺을 수 없느니라 아름다운 열매를 맺지 아니하는 나무마다 찍혀 불에
던지우느니라 이러므로 그의 열매로 그들을 알리라.

<설교>
주님의 이름으로 문안드립니다. 지난 두주간
여러분들의 기도로 은혜가운데 한국교회 방문을 마치고 돌아왔습니다. 체코에 온지 만 8년이 되었고 그동안 몇차례 한국을 방문했지만
이번처럼 후원교회에 선교보고를 목적으로 다녀온 것은 처음이었습니다.

이번에 정릉교회 여러분들의 극진한 환영을
받았습니다. 1월 22일 12시 30분에 인천공항에 도착하자마자 3시까지 종로5가 여전도 전국연합회 사무실로 직행해야 되는 저의
사정을 아신 정릉교회 김유철 목사님께서 공항으로 마중을 나오시려는 계획을 바꾸어 여전도회로 저를 찾아오셨습니다. 뿐만 아니라
영락교회 목양관에 저의 숙소를 마련해 주시고 방에는 환영 꽃다발과 두주간 동안 먹고도 남을 과일들과 음료수 그리고 다과를 준비해
주셨습니다. 그리고 여러분 모두를 기억하시면서 한분 한분 안부를 여쭈어 보았습니다. 신양교회 이만규 목사님께서도 여러분들의 안부를
전해주셨습니다. 그리고 지구촌 교회 동유럽 선교 방문팀의 사랑을 받았습니다.

1993년 체코로 처음 나올 때 저의
교단의 선교사로 파송을 받지 않았습니다. 주위의 많은 분들이 총회 선교부에서 4년이 넘도록 일한 사람이 교단 파송 없이 해외에
나가는 것을 많이 염려하였습니다. 그러나 교단의 선교사 파송과 후원 업무를 만 4년을 봉사하면서 선교사로 파송 받는 다는 것이
얼마나 두렵고 마음 무거운 일인지 알게되었습니다.

이미 1987년에 선교사가 되기로 결심했지만 선교사로서의 삶에 대한
확신을 갖기위해 하나님과 씨름을 하기로 결심했습니다. 교회가 하나님의 이름으로 파송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교회의 이름으로
파송하도록 허락되는 날까지 하나님과 씨름하기로 결심했습니다. 그래서 교회의 파송을 받지않고 후원없이 1993년에 체코로 왔습니다.


나님의 파송은 전혀 예상치 못하게 제 자신도 알지 못한 채  3년 뒤에 이루어졌습니다. 1997년 체코교회와 한국교회의
선교협정체결로 체코교회 지도자와 한국을 방문했을 때 1996년 말에 여전도회 전국연합회가 저를 후원키로 결정을 하였다는 소식을
그때 처음 알게 되어 선교협정체결에 따라 선교사 인선과 훈련을 받고 파송을 받고 오늘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일반적으
로 한국교회가 이해하고 있는 해외선교는 교회 개척과 새로운 교인을 얻어 세례를 주는 것입니다. 그러나 체코에서는 이러한 선교개념이
적용될 수 없다는데 많은 어려움이 있었습니다. 이미 천년이 넘는 교회의 역사에 개신교회의 출발지인 체코에서 전통적인 선교개념은
적용될 수 없었습니다.

더구나 선임 선교사가 없는 선교지에서 선교 정책을 세우는 일은 창의적인 예술 작품을
완성시키는 것과 비교할 만큼 힘든 작업이었습니다.  제가 세운 선교정책은 앞으로 체코교회역사와 한국교회역사에 기록되고 역사적인
평가를 받게 될것이며 그리고 앞으로 많은 후배 선교사들이 저의 선교정책을 이정표로 삼고 활동을 할 것을 생각하면 저의 책임이 매우
막중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아직도 더 다듬고 더 시행착오를 거쳐야 되지만 어느 정도 “오픈 하우스” 라는 선교정책의 방향이 정해졌다고 생각되어 이번에 후원교회들을 방문해서 그것을 설명하고 하고 왔습니다.


국교회의 체코선교는 체코 개혁교도들의 종친회와 같은 폐쇄적인 예배공동체로서의 체코교회가 열린 공간을 갖도록 하고 동시에 기독교에
대해 비판적이고 적대적인 사회가 교회에 우호적인 관심을 갖도록 유도하는 역할을 강조하였습니다. 그 실례로 프라하 꼬빌리시 교회
안에서의 한인 공동체가 갖는 의미 그리고 현재 기도중인 쁠젠의 꾸란두브 교회에서의 상담 프로그램 그리고 최근 문을 연 삐섹의
벨리바를 들었습니다.

특별히 삐섹 활동에 들어가는 재정지원을 위해 총회와 후원금 증액을 의논하였습니다. 지난 만
8년간 지속적으로 관계하는 20여개 교회들 가운데 10여개 교회들이 조만간 새로운 프로그램 발전할 것을 기대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번 방문에 양 교단의 협력체계를 좀 더 조직화 할 수 있는 방법들에 대에 자문을 구하고 돌아왔습니다. 아울러 앞으로 저의
사역은 팀 사역이 되어야 하기에 동역자를 위해 널리 의논을 나누고 돌아왔습니다.

1993년도부터 지금까지 선교사로서의
저의 활동은 가시적인 선교프로그램 개발이 아니라 선교정책을 세우고 그에 따른 선교 베이스를 구축하는 일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선교 프로그램은 베이스가 구축되면 자연스럽게 따라오게 되어있습니다. 그러나 선교 베이스를 구축하는 일은 무척 외롭고 인내를 필요로
하는 일입니다. 이 일이 가능한 것은 제일 가까이 저의 곁에 사랑하는 교우들의 기도와 이해와 동역이 있었기 때문이라고 믿습니다.

저는 여러분들을 언제나 저의 동역자로 여기며 여러분을 위한 목회도 저의 선교의 일 가운데 하나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저와 여러분이 함께 교회 공동체로 형성하는 것은 많은 해외의 한인교회 가운데 하나가 아니라 체코 선교를 위한
하나의 모델로서의 한인 교회를 저와 여러분의 모색이었습니다.

그러나 그 모색은 저와 여러분들의 기발한 아이디어가
아니라 선교 공동체였던 초대교회의 정신과 삶으로부터 철저히 배우는 것이었습니다. 초대교회는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과 하나되어 나눔과
섬김의 삶으로 복음을 땅끝까지 전파하는 선교 공동체였습니다. 연약한 자를 존중하는 초대교회의 교훈을 따라 재직회라는 교회조직대신
모든 이들의 의견을 귀담아 들을 수 있는 가족 공동체라는 회의 조직을 만들었습니다. 초대교회는 성경지식을 가르치고 배우는 학교가
아니라 공동체적인 삶의 장소였습니다. 성령의 감동을 받은 심령들이 자신들의 것을 모두 내어놓고 함께 공동생활을 하며 모인 곳이
초대교회였습니다. 자신의 것을 아낌없이 내어놓은 공동체적인 삶의 기본자세는 나눔과 섬김이었습니다.
저와 여러분들은 이
나눔과 섬김의 삶을 통해 말씀을 배우고 기도를 하는 것을 노력하고 있습니다. 그 실천으로 교회를 섬기는 모든 봉사자들은 교회로부터
사례를 받지않았습니다. 교회는 우리들이 봉헌한 하나님의 재물로 우리들끼리 주고 받는 선물을 사는 일을 자제하였습니다. 대신
우리들은 진심으로 봉사자들을 인정하고 감사하고 마음으로 환영하는 방법을 배우고 실천하려고 노력하였습니다. 선물로 그 수고를
인정하는 것 보다 진심어린 마음으로 봉사자들의 수고를 감사하고 인정하고 사랑을 나누는 것이 훨씬 더 어려운 일임을 저희들은 알고
있습니다. 그리고 나누는 일을 미리 계획하기 위해 재정의 수입과 지출을 계획하는 예산 세우는 일을 하지 않고 필요에 따라
공급하시는 하나님을 의존하는 삶을 배우려고 노력하였습니다. 이러한 나눔과 섬김의 노력과 함께 교회로 모이는 사람들에게 나타나는
삶의 스타일은 첫째 자기 자신을 아는 생활로 그리고 정직하고 부드러운 언어생활로 마지막으로 숨은 봉사생활로 드러나게 되는
것입니다.

왜 우리는 체코선교를 위해 믿지않는 자들을 가르치고 적극적으로 복음을 선포하지 않고 대신 초대교회를
따르는 삶을 숙고해야 하는가 하는 질문입니다. 선교는 조작과 선동과 가르침이 아니라 우리 자신의 변화를 통한 하나님의 사역이기
때문입니다. 어느 기독교 교육학자는 기독교를 “만남의 종교”라고 정의 했습니다. 이 정의에 따르면 선교는 가르침이 아니라 만남을
통해 일어나는 복음의 역사라 할 수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만남을 통해서 삶에 질적인 변화를 일으켰기 때문입니다. 저와
여러분은 복음인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 그와 동화된 삶을 살아가는 사람 기독교인들입니다. “이제 내가 산 것은 내가 산 것이 아니요
내안에 그리스도가 사신것이라.” 고백하는 사람들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단지 본보기로 삼고 사는 사람들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가
내 존재 영역 안에 들어와서 거기에 머무르고 거기에서 살고 그와 일체가 된것입니다. 이러한 우리들은 다른 사람들과의 만남이
이어집니다. 이 만남을 우리는 선교의 장이라고 말합니다.

저와 여러분은 이중적인 선교의 장에서 살아 가고 있습니다.
체코사회와 한인사회 입니다. 이 이중적인 선교의 장은 저와 여러분이 선택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우리들에게 부여한 것입니다.
피할 수 없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로 변화된 우리의 삶이 체코교회와 체코 한인사회에 영향을 미칩니다. 우리가 각자 자기의 길을
가며 서로 교통하지 않고 접촉하지 않는다고 생각하는 것은 잘못된 것입니다. 우리 인간은 날개 끝에서 반짝 반짝 비치는 불빛으로
야간 비행에 서로 부딪히지 않고 피해 지나가는 비행기와 같은 그러한 존재가 아닙니다.
우리들의 삶 그리고 우리 교회의 삶은
그 자체가 이미 선교적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우리 자신이 그리고 우리 교회가 좋은 누룩 좋은 소금 좋은 나무의 존재로의 변화가
곧 사회를 변화시키고 아름다운 결실을 가져오게 하는 선교 행위인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고린도후서 13장 5절 앞 부분에서 “너희가 믿음에 있는가 너희 자신을 시험하고 너희 자신을 확증하라”고 했습니다. 이어 뒷부분에서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너희 안에 계신가?” 라고 반문하고 있습니다.


는 이 말씀에 근거해서 우리 자신을 시험하는 방법으로 우리 교회의 라이프 스타일 – 자기 자신을 아는 생활, 정직하고 부드러운
언어생활, 숨은 봉사생활 – 이 나에게 우리 교회에게 있는가 자문하고 싶습니다. 우리들의 라이프 스타일이 우리의 믿음의 증거가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한번 우리 자신을 시험해 보고 싶습니다. 그리고 또 다시 반문을 해보고 싶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 안에 계신가?” 만약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의 대상으로 우리 밖의 존재로 여길뿐 우리 안에 예수 그리스도가 없다면
우리가 무엇을 선포하고 무엇을 선교할 수 있겠습니까?

사랑하고 존경하는 교우 여러분,
좋은 나무마다 아름다운
열매를 맺고 못된 나무가 나쁜 열매를 맺습니다. 아름다운 열매를 맺지 아니하는 나무는 하나님 나라의 확장을 위해 걸림돌이 되어
찍혀 불에 던져질 것입니다. 나는 나 자신을 아는 가? 나는 정직하고 부드러운 언어생활을 하는 가? 나는 숨은 봉사생활을 하는가?
예수 그리스도와 하나 되어 나눔과 섬김의 공동체적인 삶을 살아가는 신앙인의 삶의 스타일입니다. 이 신앙인의 삶의 스타일이
하나님의 선교와 무관하지 않음을 깨닫는 저와 여러분이 되십시다. 그리고 우리들의 우리 교회의 삶의 스타일을 보면서 우리 자신이
좋은 나무인지 늘 성찰하십시다.

<설교 후 기도>
주님의 은혜를 감사 드립니다. 우리를 선교적인 교회
공동체로 모이게 하시는 주님께 감사 드립니다. 좋은 나무가 아름다운 열매를 맺는 다는 오늘의 말씀을 통해 우리들이 이땅에서
하나님을 따르는 삶의 긴장이 식지않게 하여주시옵소서. 우리들의 열매로 우리들을 판단하시는 주님이 시오니 그리스도를 알고 그리스도와
하나되는 일에 더욱 힘쓰는 저희들로 삼아 주시옵소서. 그리고 그 그리스도의 복음을 세상에 널리 전하는 사명을 감당하는 저희들
되게하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 드렸습니다. 아멘.

바츨라프 클라우스의 말

나눔터 제 21 호 (2002/02/02 발간)

살며 생각하며 – 바츨라프 클라우스의 말

바츨라프 클라우스는 현재 체코의 가장 영향력 있는 정치가 가운데 한 사람이다. 1941년 6월 19일 프라하에서 태어나 1963년 프라하 경제대학 국제무역학과를 졸업하였다. 공산당 통치 시절인 1966년에 이태리에서 그리고 1969년에 미국에서 경제학을 공부하였다. 1970년까지 체코슬로바키아 아카데미 경제연구소에서 일하였다. 1971년부터 1986년까지 체코슬로바키아 국가은행에서 여러 직책을 거쳤다. 그의 학문적인 업적은 외국에서 높이 평가 받고 있고 찰스 대학과 출신 대학인 프라하 경제대학의 정교수로 임명될 정도로 뛰어난 경제학자이다. 1989년 과도정부시절에 재정부 장관이 되면서 정치무대에 등장하여 1992년에 수상이 되었다. 현재 정권은 경쟁당인 사회민주당(CSSD)에게 내어주었지만 그의 당인 시민민주당(ODS)은 다수당으로 현재 그는 의회 의장직을 맡고있다.

요즘 그는 체코의 유명한 스키장이 있는 슈핀들 물리녜의 한 식당 지붕 위 빌보드 광고에 등장하였다. 거기서 클라우스는 Volkl 상표의 스키를 들고있고 그 아래 “뷜클 을 찍으십시오. (Volte Volkl)” 광고문구가 들어있다.

국내정치 지도자가 해외상표의 스키를 선전하는 것을 언론매체가 가만히 보고 있을 리 없다. 이에 대해 클라우스의 답변은 기상천외하다. 그의 얼굴은 친구식당을 소개하기위해 친구를 바라 보고있고 자신이 사용하는 스키는 Head인데 뷜클 스키선전과 관련 짓는 것을 이해할 수 없다는 것이다.

일반적으로 선전문구가 광고사진의 의미를 해석하는 것이지 빌보드의 걸려있는 위치가 광고의 내용을 뜻하는 것은 아니라며 클라우스의 답변에 국민들의 비난이 일고있다.

클라우스는 뷜클로부터 광고비용을 단 1꼬룬도 받지않았다고 주장하지만 아무도 믿지않는다. 바츨라프 클라우스의 이 말 같지 않은 뉴스거리 때문에 나눔터 독자들도 슈핀들 물리녜의 클라우스 친구 식당과 뷜클 표, 스키 그리고 Head 표 스키 이름들을 알게 되었을 것이다.

그의 광고가 언론매체에 의해 논쟁이 일어난 것을 싫어하지 않는 클라우스는 “우리들은 선거운동을 위해 많은 돈을 제공하는데, 빌보드 하나가 이처럼 언론의 관심을 촉발할 수 있는 아이디어는 매우 가치가 있다. 언론매체는 뷜클 회사의 광고비 수주에 대해 말할 수 있다. 우리는 최소 경비로 최대효과를 위한 이러한 사례를 계속 만들 것이다.” 약간의 콧소리가 더욱 감미로움을 더하는 특유의 미소에 촉촉이 젖은 목소리로 말했다.

나는 평소에 바츨라프 클라우스의 경제학 서적을 언젠가 한번 읽어보아야겠다고 생각을 하고있었다. 그러나 그 마음이 싹 달아났다. 말하나 곧게 할 줄 모르는 지식인의 글이 머리 속에 들어오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말할 때 경직되는 것을 고쳐보려고 애쓰는 필자이기에 텔레비전에서 그를 볼 때 마다 어떠한 상황에서도 격앙되지않고 웃는 얼굴로 부드럽게 말하는 모습이 무척 부러웠다. 그러나 부드러운 말씨만으로 안 된다. 부드러운 말씨와 함께 말이 곧아야 한다. 부드러움을 가장한 정직하지 못한 말은 사기요 폭력이다.

말 같지 않는 소리 때문에 짧은 우리 인생들이 얼마나 힘들게 살고있는가? 가뜩이나 스트레스가 많은 이 해외에서 많지않은 우리 한인들 특별히 종교인들이 먼저 서로 부드럽고 정직하고 교양 있는 말들을 할 수 있었으면 하는 소망을 이 새해에 가져본다. 말 같지 않은 소리하는 소리꾼들로 체코의 한인사회가 고통 받지 않도록 이 새해에 시인의 노래로 하나님께 기도 드리고싶다.

“네 혀는 날카로운 면도날, 속임수의 명수로구나,
착한 일보다 악한 일을 더 즐기고
바른 소리보다 거짓말을 더 좋아하니
해치는 소리라면 모두 좋아하는 사기꾼아
하느님께서 너를 박살 내어
영영 없애 버리시리라.
장막에서 너를 끌어 내서
인간 세상에서 뿌리째 뽑아 버리시리라.”
(시편 52편 2-5절, 공동번역)

목사 이 종실( 나눔터 발간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