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상을 보는 교회

  • 한인 예배 (2002년 01월 13일)
  • 행 9:1-31
  • 설교자: 이종실

02년 01월 13일
본문: 사도행전 9:1-31 
제목: 환상을 보는 교회

<공동기도>
저희를 자녀로 삼으신 하나님 아버지
하나님 나라의 삶이 있는 교회를 허락하시니 감사합니다.
체코선교의 원대한 계획을 세우신 하나님의 환상을 보며
응답과 순복이 있는 교회로 성장하게 하여주시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본문>
그리하여 온 유대와 갈릴리와 사마리아 교회가 평안하여 든든히 서 가고 주를 경외함과 성령의 위로로 진행하여 수가 더 많아지더라.(행 9:31)

<설교>
세상은 꿈과 신념으로 움직이지만 교회는 하나님의 환상으로 움직입니다. 인류 역사의 위대한 업적은 꿈 꾸는 사람, 신념이 있는 사람들에 의해 이루어졌습니다. 그러나 기독교회와 역사는 하나님이 주시는 환상에 의해 이루어졌습니다.
시각 장애자가운데 가장 잘 알려진 인물을 들라면 헬렌 켈러일것입니다. 그녀는 “태어날 때부터 보지 못하는 시력보다 더 불행한 것은 환상이 없는 시력이다.”라고 했습니다.


어 단어를 빌리면 환상은 비전으로 표현할 수 있습니다. 비전은 이성적으로 미래를 보는 것입니다. 이상한 정신현상이 아닙니다. 꿈은
인간의 신념의 영상이라면 환상은 하나님께서 주시는 신비스러운 영상입니다. 하나님의 교회는, 하나님의 사람들은 이 신비스러운 영상
– 환상에 따라 움직였습니다. 우리 기독교인들은 이세상에서의 자신의 삶의 성취를 위한 꿈을 가지고 있을지라도 그 위에 하나님의
성령이 주신 환상이 함께 하지 않으면 큰 섭리가 나타나지 않습니다. 우리들의 꿈이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기위한 목적을 가질 때
하나님의 환상이 그 꿈위에 나타납니다. 사도 바울은 “하나님은 자기의 기쁘신 뜻을 위하여 우리로 소원을 갖도록
행하신다”(빌2:13) 고 말합니다.

인간의 계획과 인간의 열심은 필요합니다. 그러나 주의 일은, 교회의 사역은
하나님의 환상이 없으면 안됩니다. 아시아 선교를 위한 바울의 계획과 노력은 하나님의 환상에 의해 선교여행의 방향이 달라졌습니다.
프라하 꼬빌리시 한인공동체 창립 2주년을 맞이한 저와 여러분들이 깊이 깊이 생각해야될 일입니다.

오늘 말씀의
배경은 매우 잘 알려져 있습니다. 예루살렘에 있는 교회에 대한 박해가 절정을 이루어 믿는 이들이 유대와 사마리아모든 땅으로
흩어졌습니다. 그런데 흩어진 신도들이 거기서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였습니다. 흩어진 자들을 하나님이 복음화 하는 데 사용하고 있는 이
이야기는 8장에 기록되어있습니다.

9장에서 사울은 그리스도교를 믿는 사람을 잡아 예루살렘으로 끌고 오는 일에 다메섹
회당이 협조하도록 요청하는 대제사장의 공문을 받아 다메섹으로 가고 있었던 중이었습니다. 사울은 스데반이 돌에 맞는 그 현장에서
돌로 치는 사람들의 겉옷을 맡아 보관하는 일로 박해에 협력하던 사람이었습니다. 이제 그는 단순한 협력자가 아니라 기독교인들을
박해하고 잡아가둘 대제사장의 명령을 손에 쥐고 있는 박해자의 선봉이되었습니다. 사울은 바리새인이었고, 율법을 따르던 고위
종교인사가운데 하나였습니다. 그래서 그는 예수와 그 추종자들이 모세의 종교를 위협하는 것으로 알고 기독교 박해에 대한 신념이
있었습니다.

바리새인인 사울은 율법과 예언을 잘 알았으나 자신 앞에 있는 메시야를 볼 수 없었습니다. 그런데 기독교
박해 선봉에 섰던 이 바리새인 사울이 사도 바울로 변화됩니다. 다메섹으로 가는 사울을 하나님은 완전히 새로운 방법으로 사울이
하나님을 바로 알도록 만들었습니다.

사울이 다메섹 근처에 왔을 때 갑자기 하늘에서 빛이 번쩍이며 환히 비췄습니다.
사울이 땅에 엎드리자 음성이 들립니다.  “사울아 사울아 네가 왜 나를 박해하느냐?”  5절에서 사울은 질문합니다.  “주여
당신은 누구이십니까?” 예수님은 자신을 소개합니다. “나는 네가 박해하는 예수다.”

이 만남은 예수를 완전히 제거해야
된다는 사울의 믿음과 신념을 흔드는 것이었습니다. 모세의 종교를 굳건히 세우는 일에 최선을 다해 달려온 자신의 존재가 흔들리는
것입니다. 인간의 확고한 신념과 평생의 꿈이 무너지고 새로운 자신을 세우는 일은 엄청난 고통을 수반합니다. 성경은 우리들에게
이것을 직접적으로 말하지 않지만 저는 “사울은 사흘 동안 앞을 못 보고 먹지도 않고 마시지도 않았다.”는 말씀에서 충분히 그
고통을 느낄 수 있습니다. 모세의 율법으로 바라보던 세상이 이제 보이지 않는 사울입니다. 먹지도 마시지도 않는 사흘동안 사울은
과거의 자기와 고통스러운 투쟁을 하는 기도를 하고 있습니다. 기도 중에, 율법의 시력은 잃어버리고 환상을 보게됩니다. “아나니아
라는 사람이 들어 와서 손을 얹어 다시 눈을 뜨게 해주는 환상을 보았습니다.” 이 사흘간의 기도와 환상은 며칠 후에 다시 보게된 후
예수님에 대해 사울이 그렇게 능력있게 설교할 수 있었던 이유를 설명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이러한 새로운 환상이 사울을
변화시켰습니다. 사울에게 나타난 하나님의 환상이 우리들에게 다가오는 의미는 무엇입니까?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환상으로 만 두해째 교회 공동체로 모이는 우리 모두의 심령을 새롭게 하시기를 기도합니다.


울이 성경을 잘 알고 있던 바리새인임을 기억하시길 바랍니다. 우리도 사울과 같은 질문으로 하나님과 그의 말씀에 접근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주님 당신은 누구십니까?” 저는 감히 여러분들에게 이 질문을 요구합니다. 올바른 신앙은 성경을 많이 알고 그것을
교리로 신념으로 받아들이는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알고 있는 신념과 교리의 껍질을 벗겨버려야 바른 믿음의 모습이 드러나게됩니다.
바리새인 사울이 예수가 누구인지도 모르면서 그를 그리스도로 믿는 자들을 박해했던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환상은 자신이 알고 있고
확신하고 있던 것을 부인하게 하여 바른 확신을 갖게합니다. “주님, 당신은 누구십니까?” 올바른 신앙인들은 주장하고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회의하고 질문하고 그래서 하나님의 환상으로 바른 확신을 갖는것입니다. 다윗의 경우도 하나님 앞에 질문을 했습니다.

“주
의 장막에 유할 자가 누구입니까? 주의 성산에 거할 자 누구입니까?”(시15:1) 다윗이 몰라서 던진 질문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환상을 갖는 공동체는 서로가 서로에게 주장하고 가르침이 있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실존을 대면시키는 질문이 있습니다. 우리들의 봉사
속에서도, 교회를 섬겨가는 일속에서도 우리는 자신을 거울처럼 볼 수 있는 질문을 해야됩니다. 우리들이 기도할 때도 사울의 질문이
필요합니다. “주님 당신은 누구십니까?”

우리가 질문하는 그 주님은 – 그 하나님은 우리에게 환상을 주시는 분이십니다.
하나님은 우리들이 알고있는 것 보다 더 위대하고 크십니다. 우리들이 평생을 알아도 다 알지 못 할 분이십니다. 공동체의 날 수가 많아지는 만큼 공동체 안에 하나님을 아는 모습이 더 많이 드러나야 마땅할 것입니다.


나님을 아는 것이 사울을 변화시키는 방법임을 우리는 보고있습니다. 하나님을 아는 만큼 교회는 그 만큼 변하고 성장합니다. 하나님은
우리들을 사랑하시고 우리 안에서 그리고 우리를 통하여 일하기를 원하고 계신분임을 우리들이 알 때, 그리고 우리를 얼마나
사랑하시는 하나님인지 우리들의 영혼이 더 크게 느끼면 느낄수록, 우리는 개인으로서 교회로서 우리의 삶의 목적이 더 나은 의미를
가지게 될 것입니다. 

이제 우리들은 겨우 두 살입니다. 그동안 우리들의 의욕은 넘쳤지만 참았습니다.
우리들의 꿈과 계획으로 교회를 이루어가지 않으려고 했습니다. 하나님을 아는 만큼 우리들은 자신도 모르게 조금씩 조금씩 지난 2년간 교회의 밑그림을 그려갔습니다.


단추를 잘못 채우면 모든 것이 헛수고입니다. 해외의 한인 교회들이 겪는 무수한 시행착오가 바로 그것입니다. 그런데 불행한 것은
대부분의 유럽의 한인 교회들이 지난 50년간 똑 같은 시행착오를 되풀이하고있다는 것입니다. 오고 가는 유동인원이 많은 우리 교회의
경우는 더욱 조심스럽게 교회의 그림을 그려가야 됩니다. 오고 가는 사람들이 저마다의 경험과 꿈으로 그린 그림은 후에 아무도 알아
볼 수 없는 모습이 될 수 있기때문입니다. 붓을 들어 그림을 그리기 보다 먼저 하나님을 더 깊이 더 많이 알려는 노력이
우선되어야 할 것입니다. 왜냐하면 우리 안에서 우리를 통해 세상을 완전히 바꿀 잠재력으로 우리를 바라보시는 하나님을 알 때 우리는
비로소 하나님의 교회로 응답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들을 자신의 사역을 위해 적합하게 만들기를 원하고
계십니다. 우리는 우리의 욕망을 채우는 뜨거운 피가 흐르는 육신의 덩어리 그 이상입니다. 우리의 존재는 하나님이 살아 숨쉬는 그
자체이며 모든 수단을 뛰어넘어 하나님이 사랑하시는 존재입니다. 지속적으로 주를 더 닮도록 우리 한사람 한사람을 사랑하시는
하나님이심을 우리는 기억해야됩니다. 그래서 우리는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이 세상에 하나님의
사역을 성취하시기 원하셔서 저와 여러분들을 더 그리스도를 닮아가게 합니다. 하나님은 이미 영광이 충분하신 분이십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이 세상에서 우리의 삶을 주관하셔서 하나님께 영광을 올리는 우리들이 되게합니다. 저와 여러분은 스스로 하나님께 올릴
영광을 생산하는 기계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여러분들은 어떻습니까?

오늘 본문 22절이 말합니다. “사울이 힘을 더
얻어 예수를 그리스도라 증명하여 다메섹에 사는 유대인들을 굴복시키니라” 박해자가 진리의 전도자가 되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들을
하나님께 영광을 올리고 그의 나라를 사역에 동참하도록 우리를 사용한다는 놀라운 사실을 이 사건을 통해서 발견할 수 있어야 됩니다.


쩌면 여러분들은 여러분들이 스스로 사도 바울과 비교할 만한 그릇이 못된다고 생각하실 수 있을것입니다. 저와 여러분은 누구입니까?
하나님이 찾아 교회로 부르심을 받은 사람들입니다. 사도 바울과 비교할 만한 사람들이 안 되는 우리들을 왜 교회로 부르셨습니까?
50년의 한인교회 역사가 있는 이 유럽에서 현지교회와 함께하고 호흡을 같이 하는 한인교회의 모습이 아직 나타나지 않은 이때에
더구나 한국인 이주의 역사가 짧은 이 체코에서 우리를 새로운 한인교회의 형태로 왜 불러모아주셨습니까? 체코선교를 위해 전혀
불가능해 보이는 우리를 통해 하나님은 일하기를 원하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모든 것을 가졌다고 생각하는 사람을
원치않으십니다. 고린도 후서 12장 9절의 바울의 고백을 들어보시길 바랍니다. “내게 이르시기를 내 은혜가 네게 족하도다 이는 내
능력이 약한데서 온전하여짐이라 하신지라. 이러므로 도리어 크게 기뻐함으로 나의 여러 약한 것들에 대하여 자랑하리니 이는
그리스도의 능력으로 내게 머물게 하려함이라 그러므로 내가 그리스도를 위하여 약한 것들과 능욕과 궁핍과 핍박과 곤란을 기뻐하노니
이는 내가 약할 그 때에 곧 강함이니라.”

여러분들이 약하다고 생각한다면 하나님은 말씀하십니다.  “너희들은 내가
사용하기에 온전하다.” 왜 그렇습니까? 왜냐하면 우리가 우리자신에 대해 완전하다고 할 때 우리의 부족함과 연약함을 통해 일하실
하나님의 자리가 없어지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사울에게 그의 미래의 사역에 대해 모든 것을 보여주셨습니다. 그러나
사울에게 직접 보여주신 것이 아니라 역시 환상을 통해 아나니아에게 보여주셨습니다. 아나니아의 시력으로 사울은 박해자였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환상은 사울이 이방인을 위한 복음전도자였습니다. 9장 15절입니다. “이 사람은 내 이름을 이방인과 임금들과
이스라엘 자손들 앞에 전하기 위하여 택한 나의 그릇이라.”

우리가 우리교회를 환상이 아닌 단지 자연의 시력으로
바라본다면 교회당과 종탑과 친교실과 같은 시설들 만이 보입니다. 일주일에 한번 모이는 모임들이 보입니다. 그것도 우리 자녀들 까지
다해야 50여명 남짓모이는 보잘 것 없는 무리가 보입니다. 우리들의 단지 친교의 대상으로서의 체코 공동체가 보입니다.
외국생활에서 스트레스 받아 병든 우리들의 몸과 마음들이 보입니다. 체코 교우들과 함께 하지만 언어와 다른 문화이해를 극복하지 못해
만남 자체가 피곤해 지는 우리들의 모습이 보입니다. 음식 나누어 먹고 차 한잔 마시고 찬양연습하고 일년에 한차례 바자회나 해서
어려운 사람 외로운 이들에게 선물이나 돌리고 이런 저런 일들에 헌금한 것을 분배하는 일을 교회 일로 생각하는 우리들의 모습이
보입니다. 살얼음판 딛듯이 서로가 인간관계에 상처 내지않고 조심스럽게 예배 드리고 가끔 은혜 받는 것으로 안도하는 우리들의 모습이
보입니다. 주의 일 헌신이라는 것은 교회관리와 운영에 조금 협력하고 맡은 일 잘 처리하는 것 정도로 생각하는 우리들의 모습이
보입니다. 헌신이라는 것은 사생활에 침해를 받지않는 여분의 시간에 적당히 하는 것으로 이해하는 우리들의 모습이 보입니다. 삶의
문제가 없을 때는 별로 생각이 없지만 문제가 있을 때 위로해주고 도와주고 이해해주고 마음을 같이해 주는 교회를 원하는 나의 모습이
보입니다.

그러나 저와 여러분이 하나님의 환상으로 교회를 바라보면 건물과 사람들 너머의 교회가 보입니다. 환상은
우리가 정규적으로 교회에 오는 단순한 사람들의 무리가 아님을 보게합니다. 환상은 보잘 것 없고 고집스러운 저와 여러분의 모습 안에
하나님에 의해 사용될 잠재력을 보게 합니다. 환상은 체코교회 안에서 무의미해 보이는 우리들의 노력 너머로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섭리를 보게 합니다.

사울이 기독교 교회를 박해하기 위해 살기가 등등할 때 하나님의 환상이 나타나 오히려 온
유대와 갈릴리와 사마리아 교회가 평안하여 든든히 서가는 역사가 일어났습니다. 두 해전 체코 기독교인들과 한국기독교인들이 예배로
만나 함께 하나님의 나라를 이루어가는 계획과 꿈들은 시련을 겪었습니다. 개혁교도의 종친회와 같은 체코인 공동체 안에 논쟁이
일어났습니다. 일부에서 체코민족들만이 체코어로만 드리는 예배를 주장했습니다. 결국 두 가정이 교회를 떠나는 아픔을 겪었습니다.


련은 그뿐이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어떠한 시련도 방해하지 못했습니다. 밤이 깊어 갈수록 별이 더욱 밝게 빛나듯 시련이 클수록
하나님의 교회의 모습은 더욱 더 분명한 모습을 드러냈습니다. 체코 한국 기독교인들의 연합예배라는 인간의 계획과 꿈 위에 “선교하는
초대교회”의 하나님의 환상이 나타났습니다. 그 환상이 바로 우리 “프라하 꼬빌리시 한인 공동체”였습니다.

첫째, 개혁교도의 종친회 같은 체코 교회가 열린교회로
둘째, 개혁교도의 종친회 같은 체코 교회가 지역사회의 센터로
셋째, 개혁교도의 종친회 같은 체코 교회가 복음전파의 사명을 감당하는 교회로

우리를 통해 체코교회를 변화 시키려는 하나님의 계획은 시동이 걸렸습니다. 그래서 저와 여러분은 하나님앞에 다음과 같이 응답하였습니다.
첫째, 정성을 다해 준비하고 드리는 예배 공동체 – 예배를 한주일의 행사가 아니라 일주일동안 말씀과 기도로 씨름하며 매일 매일을 예배적인 삶으로 살아가는 공동체 
둘째, 배우는 공동체 -가르치고 주장하는 자세를 버리고, 타인으로부터 경청과 배움이 있는 공동체
셋째, 함께 일하는 공동체 – 목사부터 어린자녀에 이르기까지 작은 일 하나라도 함께 섬겨가는 공동체


리 공동체는 모두 함께 일하는 일터이자 하나님 앞에 바른 신앙을 세워가는 훈련장입니다. 함께 일하는 공동체 이기에 목회자를 비롯한
모든 교회 봉사자들이 교회의 사례를 받지않습니다. 그리고 봉헌한 물질은 선교와 구제와 봉사를 위해 사용하기로 처음부터 선언을
하고 시작된 우리들 입니다.

우리 교회는 원대한 일들을 계획하고 도모하기 전에 먼저 이처럼 자신을 성찰하는 일을 우선했습니다. 교회의 사역은 인간의 계획과 꿈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환상으로 지도 받아야 하기 때문입니다.


래서 첫날인 2000년 1월 9일 첫 설교를 다음과 같이 설교했습니다. 그날의 설교의 마지막 부분을 다시 읽어드리겠습니다.
“여러분들과 함께 우리 각자 각자의 믿음의 토대위에 나눔과 섬김의 공동체를 이루어가고자 모인 첫 예배의 설교시간에 드리는
질문입니다. ‘우리는 정말로 믿음을 가졌는가?’ ‘자기의 무기력함과 죄인임을 깨닫고 어쩔 도리가 없어 하나님 앞에 가슴을 치며
도우심과 용서를 간구하는 우리들인가?’ 하나님 앞에서 심령이 가난한자로 – 완전히 벌거벗은 자로 설 때 이 나눔과 섬김의 공동체인
우리 교회가 바르게 서갈 것입니다.”
2000년 1월 9일 첫 설교 마지막 부분입니다.

사랑하고 존경하는 성도여러분,

회 일은 인간의 계획과 꿈으로 이루어가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환상으로 성취되어가는 것을 잊지 마십시다. 우리의 계획과 신념과
꿈을 세우는 인간의 눈이 어두워지고 하나님의 환상을 밝히 보는 저와 여러분 모두가 되시길 빕니다. 인간의 시력은 표면적이고 제한된
것을 보지만 환상은 하나님만이 아시고 보실 수 있는 우리 안에 있는 세상을 바꾸는 하나님의 잠재력을 보게 합니다. 체코교회를
향한 원대한 계획을 세우신 하나님의 환상에 순복할 줄 아는 공동체가 되십시다.

<설교 후 기도>
교회
의 개혁이란 언제나 처음으로 처음의 교회 초대의 모습으로 돌아가는 것임을 압니다. 이 프라하 꼬빌리시 교회에 우리의 공동체를
세워주신 처음 그때 우리들의 마음과 결심이 해를 거듭할수록 더욱 새로워지게 하여주시옵소서. 해를 거듭할수록 반성이 없는 교회의
모습으로 변해가는 그런 어리석은 저희들이 되지않도록 인도하여주시옵소서. 하나님앞에서 바른 신앙을 갖기위해 끊임없이 질문하고 그리고
교역자부터 주일학교 어린이들까지 하나님의 교회를 동역하며 섬겨가는 아름다운 모습이 있게 하여주시옵소서. 인간의 계획과 경험과
꿈으로 움직이는 교회가 아니라 하나님의 환상으로 움직여가는 교회가 되게 하여주시옵소서. 주님의 뜻을 이루어가는 교회되게
하여주시옵소서. 모든 이들의 복의 근원이 되는 교회 되게 하여주시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드렸습니다. 아멘

한인 공동체 두돌 기념

매년 1월 두째주일은 우리 한인 공동체 생일날입니다.
금년은 1월 13일 주일이었습니다.
각 가정에서 준비한 조촐한 점심식사가 있었습니다.

각 테이블에 잡채, 만두 튀김, 묵, 돼지불고기, 떡, 김치 … 들로 먹음직 스럽게 준비해서 온 가족이 둘러앉았다. 이경희 성도가 준비한 커다란 생일 케이크에 초콜릿으로 만든 커다란 숫자 2와 촛불 두자루가 생일 케이크 위에 올려져 있었다. 권미연 양이 들고 주일학생들이 생일노래를 부르며 입장을 했다. 노래가 끝나자 아이들이 일제히 후~~ 불이 꺼지자 온 교우들이 박수를 치며 기뻐하였다. 함께 후~ 불지 못한 단비는 못내 아쉬운듯 꺼진 촛불을 후후 불어 보는이들 마다 웃음을 터트렸다. 송종식 집사님의 감사기도를 드리고 모두 즐거운 식사를 하였다.

폴란드에서 오신 손님들, 두마, 로만 그리고 정들자 떠나게된 유한승 성도도 함께 있었다.

삐섹 오픈 하우스 “벨리바” 문 열다(사진첨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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삐섹 오픈 하우스 “벨리바” 문을 열다.

감회가 깊다. 선교를 목적으로 하는 찻집 “벨리바”(Velryba – “고래”란 뜻의 체코어이다.)가 모든 준비를 마치고 1월 7일 오후 1시에 문을 열었다. 1994년도 어느날 첫만남을 시작으로 동유럽 선교의 원대한 꿈을 가지고 1999년 “체코-한국 선교센터”를 조직하기까지 수많은 대화와 기도로 함께 하던 나의 동역자이며 동시에 신앙의 선배로 많은 가르침을 받았던 파벨 호이까 목사님이 저 하늘나라에서 함께 감격하며 웃고있는 모습이 곳곳에 묻어남을 느꼈다.

삐섹 오픈 하우스 “벨리바”는 청소년, 청년, 어린아이가 있는 주부, 노인들을 대상으로 전도를 목적으로 하는 찻집이다. 찾아 다니며 전도하는 것이 아니라 전도의 대상들이 매우 흥미로운 찻집 “벨리바”로 모이게 하고 그리고 그들에게 복음을 전하는 것이다.

“벨리바”는 술과 담배를 팔지도 하지도 않는 찻집이다. 가까운 사람들이 함께 독서와 친교를 나눌 수 있는 아늑하고 청결한 공간이며 교양을 고양시키고 건전한 관심을 유도하는 삐섹 시민의 문화공간이 될 것이다. 많은 사람들의 관심을 유도하는 각종 프로그램은 한국기독교인들과 체코기독교인들에 의해 다채롭게 제공될 것이다.

“벨리바”는 고래라는 뜻이지만 동시에 요나를 삼킨 큰 물고기를 상징한다. 무신론적인 분위기의 사회에 기독교의 거부감을 최소화 하는데 초대교회 순교자들의 지혜가 동원된다. 물고기 모양의 로고는 기독교의 복음을 상징한다. 이 찻집은 단순한 찻집이 아니다. 찻집을 방문하는 사람들은 큰 물고기 속에 들어간 요나이다. 거기서 그들은 기독교의 복음의 가치를 새롭게 발견할 것이다. 헌신된 일꾼들을 통해 복음의 가치로 변화 받은 삶의 모습을 눈으로 발견하게 될 것이다. 어디에서도 경험하지 못한 사랑과 친교를 체험하게 될 것이다. 그토록 비판적이던 기독교에 대해 전혀 새로운 기독교의 모습을 발견하고 회개가 있을 것이다. 이 헌신된 일꾼들은 먼저 하늘나라로 가신 존경하는 파벨 호이까 목사님의 양들이다. 지도자를 잃은 그들은 흩어지지 않고 그 목사님의 아들 평신도 지도자 빅토르 호이까를 중심으로 더 훌륭한 일꾼들로 성장했다. 이것으로 우리는 먼저 세상을 떠나신 호이까 목사님을 평가할 수 있다. “벨리바”를 통해 배출되는 새로운 기독교인은 빅토르 호이까의 엘림 교회에서 지속적으로 양육이될것이다.

이처럼 전도와 복음의 수용 그리고 성장으로 이끄는 새 신자 양육 과정의 경험은 엘림교회만의 소유가 아니다. 이 경험을 기존의 전통교회에 접목시키고 닫힌 교회들이 열려지도록 동기를 부여하는 토대로 만드는 역할은 나의 몫이다.

1월과 2월은 홍보기간으로 삼고 찻집운영을 전반적으로 점검하는 기간이 될 것이다. 2월에 3월 프로그램이 계획된다. 아마 첫 프로그램은 파리장로교회(목사 이극범) 선교부에서 조직한 성악가와 기악가들의 콘서트가 될 예정이다. 성지 사진작가와의 좌담회, 영화 연출가와의 좌담회, 각종 콘서트, 경연대회, 한국음식을 제공하는 한국의 날… 오픈 하우스의 선교 뜻에 공감해서 동참하려고 하는 이들이 줄을 잇고있다. 1월 7일 오픈을 앞두고 전혀 예상치 못했던 일꾼을 하나님께서 미국에서 보내주셨다. 고등학교 때 미국 유학을 떠나 10여년간 바이올린을 전공하던 유한승 형제가 선교의 뜻을 가슴에 품고 체코 프라하로 왔다. 그것도 뜻 깊은 날 성탄 전야 저녁 예배를 찾아와 첫만남이 이루어졌다. 1월 7일 그의 역할은 모든 사람들에게 활기를 불러일으켰다. 백인이 아닌 사람이 영어를 유창하게 구사하고 게다가 전문 음악가이니 체코인들이 숨도 쉬지 못할 정도로 호감이 가는 일꾼이다.

당분간 월요일부터 토요일까지 오전 11시에 문을 열어 오후 8시에 문을 닫을 예정이다. 그러나 오후 프로그램이 정착되면 오전에 어린아기가 있는 부인들과 노인들을 위해 문을 열 계획이다.

“벨리바”는 선교 베이스이며 체코의 교회선교의 실험실이다. 정상을 정복하는 산악인들에게 베이스 캠프가 절대로 중요하듯 자신의 야망이 아니라 하나님의 나라의 비전을 위해 일하는 선교사들을 위해 오픈 하우스 “벨리바”는 베이스 캠프로 그들을 섬기길 원한다.

“벨리바”는 모든 선교 프로그램 실무자 “밀란”과 찻집운영실무자 “밀린다” 두 명의 정식 직원을 두고있다. 위치는 프라하에서 남쪽으로 100키로미터 떨어진 인구 3만명의 도시 삐섹(Pisek)이다.

인적인 자원만 있으면 할 수 있는 일들은 무궁무진하다. 이곳에서 단기 또는 장기 사역의 뜻이 있는 분들 그리고 물질로 기도로 동참을 원하는 분들의 연락을 기다린다.

내부수리를 위한 인력봉사와 필요한 물품을 헌금한 엘림교회 교우들에게 진심으로 감사드린다. 첫날 첫번째 찻집손님으로 방문한 프라하 꼬빌리시 한인교회 총무 송종식 집사님과 정남례 집사님께 감사한다. 그리고 이 사역을 위해 익명으로 헌금을 하며 돕는 손길도 있다. 이 모든 분들의 기도와 관심에 감사드린다.

잊을 수 없는 분들은 부족한 사람에게 신뢰를 가지고 기도로 물질로 후원하는 여전도회 전국연합회를 비롯한 교회들이다. 8년이 지나도록 선교의 결과를 재촉하지않고 묵묵히 기도하며 어려울 때 마다 기대이상으로 돕는 분들이다. 이 분들이 없었으면 감히 그렇게 오랜 시간을 가지며 이 사역을 준비하지 못했을 것이다.

무엇보다 부족한 사람을 위해 바로 옆에서 함께 기도하며 의논하는 프라하 꼬빌리시 한인교회 교우들은 나의 동역자, 나의 사역의 반려자이다. 교우들께 마음 깊이 의지하며 감사를 보낸다 그리고 1994년부터 이 사역의 발걸음을 인도하신 분 우리 하나님께 감사와 영광을 올린다.

2002년 1월 7일
삐섹에서 프라하로 돌아와
이 종 실

2002년 1월 6일

스물 다섯번째 에큐메니칼 예배

슈토렉 목사님이 병원에 입원하게 되어 스테판 교수님이 집례를 하였다. 예배를 위해 사전에 충분한 대화를 나누지 못했다. 미리 의논된 예배이지만 스테판 교수님이 조금 자유롭게 예배를 인도하였다. 성만찬 기도내용을 모두 전달하지 못한 안타까움이 있었다. 갑작스러운 찬송가 변경으로 예를 들어 오늘 예배의 마지막 찬송가 체코전통 성탄찬송을 한국어로 번역하지 못한채 체코어로 불렀다. 성만찬 찬양도 사전에 라띠보르스끼 장로님과 의논을 하였는데 체코교우들쪽에서 진행이 되지않았다. 오르간 주 연주자 뽈락 장로님이 직장문제로 오늘 예배에 참석하지 못하기 때문에 생긴 혼선이있었다.

예배를 파하고 체코교우들이 집으로 가면서 문앞에서 인사를 나누는 스테판 목사님에게 거의 모든 교우들이 설교에 대한 반응을 보였다. 설교에 대해 표현하는 것이 그리 익숙치 않은 우리 한인교우들 여러분들이 설교에 대해 반응을 보였다. 체코교회에서 설교를 하면서 조직신학적인 토대에서 접근한 설교에 매우 반응이 좋았던 경험이 떠올랐다. 스테판 목사님은 조직신학 박사로 찰스대학 개혁신학부에서 교수로 일하고 계시는 분이다. 성탄 후 유아학살의 이야기를 신학적 깊이가 있었던 설교였다.

오늘 손님이 많이 오셨다. 박경준 성도의 부인 되는 김윤희 자매, 로만의 한국 여자친구분, 유학생 김영미 자매 그리고 유비에프 선교사 가족모두가 예배에 함께 하였다.

이 예배는 체코교회를 열린교회로 열어가는 선교의 목적을 가지고 시작한것이다. 유비에프 선교사님들과 이 예배가 그 목적을 이룰 수 있도록 함께 노력하기로 다짐하였다. 다음 번 예배는 유비에프 선교사님들의 활약을 기대해본다. 오늘 봉사부장이신 안정숙 집사님이 손수 맛있는 점심을 준비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