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가 아시나니

 

<욥기 23장 8-10절>

8 그런데 내가 앞으로 가도 그가 아니 계시고 뒤로 가도 보이지 아니하며

9 그가 왼쪽에서 일하시나 내가 만날 수 없고 그가 오른쪽으로 돌이키시나 뵈올 수 없구나

10 그러나 내가 가는 길을 그가 아시나니 그가 나를 단련하신 후에는 내가 순금 같이 되어 나오리라

 

○ 욥은 극심한 고난 속에 있었습니다. 이유를 알 수 없는 고난이었습니다. 하나님을 잘 믿는 욥이었지만, 너무 힘들 때면 반항하는 마음이 들었습니다. 하나님께 따져 묻고 싶었습니다. 왜 이런 고난을 허락하셨는지, 왜 나를 이렇게 힘들게 하시는지, 정말 묻고 싶고 알고 싶었습니다. 하지만 그럴 수 없었습니다. 하나님을 만날 길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 ‘내가 앞으로 가도 그가 아니 계시고 뒤로 가도 보이지 아니하며’ 전에는 바로 옆에 계신 것만 같았는데, 어쩐 일인지 이제 그분은 철저히 얼굴을 숨기신 것 같았습니다. ‘그가 왼쪽에서 일하시나 내가 만날 수 없고 그가 오른쪽으로 돌이키시나 뵈올 수 없구나’ 이 모든 일이 하나님 허락 없이는 이루어질 수 없을 텐데, 그분이 뭔가 일하고 계신 것 같긴 한테, 도저히 파악할 수 없는 모습으로, 너무나 낯선 모습으로 그분은 일하고 계신 것 같았습니다.

○ 친구들이 와서 하는 말들은 욥에게 전혀 위로가 되지 않았습니다. “뭔가 잘못한 게 있으니까 이런 벌을 내리셨겠지.. 잘 생각해봐.. 진심으로 돌이키면 벌을 거두어 주실꺼야..” 욥은 자신이 하나님처럼 완벽히 의롭다고 생각하진 않았지만, 그렇다고 남들보다 죄가 많아 그런 벌을 받는다고 생각되지도 않았습니다. 이제껏 그는 하나님을 경외하며 정직하게 살고자 애써왔기 때문입니다. 하나님도 욥이 그런 사람이라는 것을 알고 계셨습니다.  

○ 놀라운 것은, 그 극심한 고난 속에서도, 또 반항심과 근심 속에서도, 욥이 계속 하나님을 바라보고 있었다는 사실입니다. ‘그러나 내가 가는 길을 그가 아시나니 그가 나를 단련하신 후에는 내가 순금 같이 되어 나오리라” 하나님을 찾으려 해도 찾을 수 없습니다. 보이지 않습니다. 이해되지 않습니다. 그런데도 그분을 변함없이 신뢰할 수 있을까요? 예, 있습니다! 그래도 우리는 그분을 신뢰할 수 있습니다. ‘그분께 이르는 길을 나는 찾을 수 없다. 그러나 내가 가는 길을 그분은 아신다!’ 내가 지금 어디에 서 있고, 또 어디로 가고 있는지 나는 알 수 없지만, 그분은 알고 계시며 결국 그분의 선하신 뜻을 이루실 것이라고 욥은 고백하고 있는 것입니다.    

○ 고난 속에 있을 때 우리는 ‘왜?’라고 묻게 됩니다. 물론 때로 하나님은 우리가 어떤 상황에서 ‘왜?’라고 묻기를 바라십니다. 하지만 우리에게 주어지는 모든 고난이 우리가 답을 찾아내야 할 시험문제는 아닙니다. 설령 어떤 상황이 우리 잘못의 결과로 주어졌다 해도,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뜻은 근본적으로 선하시며, 우리를 향한 그분의 생각은 우리에게 미래와 희망을 주는 것이라는 사실을 우리는 기억할 필요가 있습니다(렘29:11).

○ 어느 날 예수님의 제자들이 날 때부터 맹인 된 사람을 거리에서 보고 예수님께 물었습니다. “이 사람이 맹인으로 난 것이 누구의 죄 때문입니까? 자기입니까, 그의 부모입니까?” 그러자 예수님은 이렇게 대답하셨습니다. “이 사람이나 그 부모의 죄로 인한 것이 아니라 그에게서 하나님이 하시는 일을 나타내고자 하심이라” 그리고는 땅에 침을 뱉어 진흙을 이겨 그의 눈에 바르시고 실로암 못에 가서 씻으라 하셨습니다. ‘이에 가서 씻고 밝은 눈으로 왔더라’ 성경(요9:1-7)은 이렇게 간단히 기록하고 있지만, 앞을 못 보는 사람이 그 흉측한 몰골로 길을 물어가며 연못까지 가는 일은 분명 믿음과 수고를 요하는 것이었습니다. 바로 그 일의 끝에서 하나님이 그에게서 하시는 일이 나타나게 된 것입니다.

○ 이처럼 고난의 상황 속에서 ‘Why?’보다 더 필요한 질문은 ‘What?’일 것입니다. 그 상황에서 내가 ‘무엇’을 하기를 하나님이 바라시는지 생각해보고, 신뢰와 인내 속에서 그 일을 해나가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럴 때, 지금은 다 알지 못하는 하나님의 선하신 뜻이 그분의 때(Kairos)에 놀랍게 성취되어 있는 것을 우리는 보게 될 것입니다.

○ 결국 끝은 옵니다. 욥의 고난도 결국 끝이 났습니다. 마침내 드러난 진실은, 그 고난이 누구 때문에 생겨났는지에 대한 설명도 아니었고, 욥이 그 시험에 몇 점으로 통과했는지에 대한 평가도 아니었습니다. 그 모든 것은 후면으로 밀려나고 한 가지 진실만 도드라지게 나타났습니다. 하나님이 하나님이시라는 사실! 그 어떤 일도 하나님께서 허락하시지 않으면 일어날 수 없고, 그 어떤 불행도, 그 어떤 악의도, 하나님의 크신 뜻 안에서 더 온전한 선을 이루는 계기가 될지언정 결코 최종 결론이 될 수는 없다는 것. 마침내 하나님께서 욥에게 말씀하셨고, 그 하나님 앞에서 욥은 할 말을 잃고 스스로 입을 가렸습니다. “내가…이제는 눈으로 주를 뵈옵나이다”(욥42:5)

○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결국 욥이 한 일은 견딘 것이었습니다. 두렵게 하는 어둠 속에서도 마음을 하나님께로 향하고 견딘 것이었습니다. 생각해보면, 정말 중요한 것은 내 노력으로 얻어지지 않고 열림과 견딤 속에서 선물로 주어집니다. 믿음도 그렇고, 소망도 그렇고, 사랑도 그렇습니다. 하나님의 거리두심은 그 사이를 좋은 것으로 채우시기 위함입니다. 하나님의 부재를 느낄 때, 어쩌면 그 때가 하나님이 우리 옆에서 가장 활발히 일하시는 때인지 모릅니다.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뜻은 언제나 선하시며, 우리에게 주어진 오늘은 미래를 향해 열려 있는 희망의 오늘입니다. 우리에게 익숙한 옛 틀 안에 모든 걸 집어넣으려는 생각을 버리고, 하나님께서 마침내 이루어주실 더 온전한 것을 기대하며 오늘을 하나님 앞에서 사는 우리 모두가 될 수 있길 바랍니다. 우리가 가는 길을 하나님이 아십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