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인 예배 (2019년 11월 24일)
- 시편 56:3-4
- 설교자: 류광현 목사
- 내가 두려워하는 날에는 - 시56,3-4.docx
<시편 56:3-4>
3 내가 두려워하는 날에는 내가 주를 의지하리이다
4 내가 하나님을 의지하고 그 말씀을 찬송하올지라 내가 하나님을 의지하였은즉 두려워하지 아니하리니 혈육을 가진 사람이 내게 어찌하리이까
시편 56편은 다윗의 생애에 있었던 한 사건을 배경으로 씌어진 시입니다.
표제에 보시면, ‘다윗이 가드에서 블레셋인에게 잡힌 때에’ 라고 되어 있습니다.
사울 왕을 피해 블레셋 성읍 가드로 도망친 다윗은 거기서도 위기를 맞습니다.
가드 왕 아기스의 신하들이 다윗이 누구인지를 왕에게 고해 바쳤기 때문입니다.
다윗이 거인 골리앗을 물리쳤던 사건 다들 아실 것입니다.
그 적장 골리앗이 바로 블레셋 가드 사람이었습니다.
어쩌다 그 적국에까지 도망쳐 갔는지, 다윗의 신세가 처량하기 그지 없습니다.
“사울이 죽인 자는 천천이요 다윗은 만만이로다”
그 날의 승리를 기억하며 이스라엘인들 사이에 불려지던 노래,
이 가사가 의미하는 바를 신하들이 그 땅 왕에게 말해주고 있을 때,
그 앞에 서서 그 말을 듣고 있던 다윗의 심정은 어땠을까요?
사무엘상 21장 12절에 말씀합니다.
“다윗이 이 말을 그의 마음에 두고 가드 왕 아기스를 심히 두려워하여”
어찌 두렵지 않을 수 있었겠습니까! 누구라도 그 상황에선 두려울 것입니다.
우리도 두려워할 때가 있습니다. 아니, 많습니다. 자주 우리는 두려움에 휩싸입니다.
어떤 사람 앞에서, 어떤 상황 앞에서, 어떤 문제 앞에서…
현실의 곤경 때문에, 과거의 트라우마 때문에, 미래의 불확실성 때문에…
누군가의 위압적이거나 못마땅한 표정, 혹은 누군가의 작은 말 한 마디 때문에…
때론 아무 이유도 없이… 우리는 두려워합니다.
그 두려움 때문에 해야할 무언가를 하지 못하기도 합니다.
그 두려움 때문에 하지 말아야 할 무언가를 하기도 합니다.
성경에는 ‘두려워하지 말라’는 말씀이 무수히 반복됩니다.
두려워 하지 말아라… 내가 너와 함께한다.
두려워 하지 말고, 내가 하는 일을 보아라.
두려워 하지 말아라… 나는 너의 하나님이다.
두려워 하지 말아라… 내가 다 안다.
두려워 하지 말아라… 내가 너를 돌보고 있다.
두려워 하지 말고, 믿기만 하여라.
하나님은 우리가 두려워하기 쉬운 존재임을 잘 아십니다.
하지만 우리 인생에 두려워할 일이 없게 해주시진 않습니다.
오히려 두려워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 때로 우릴 몰아넣으시고,
거기서 하나님을 찾게 하십니다.
두려울 때,
내가 두려운 날에,
나는 어떻게 해야 할까?
3절에 아주 놀라운 고백이 나옵니다.
“내가 두려워하는 날에는 내가 주를 의지하리이다”
우리 이 말씀 함께 다시 한번 읽어볼까요.
내가 두려워하는 날에는 내가 주를 의지하리이다!
여러분, 이 말씀 꼭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두려워하는 날에 꼭 이 말씀을 떠올리며
하나님을 의지하는 저와 여러분 될 수 있길 바랍니다.
하나님을 의지한다는 건 무슨 뜻일까?
두려울 때 하나님을 의지한다는 건 구체적으로 뭘 어떻게 한다는 뜻인가?
그 두려운 상황에서 다윗은 어떻게 하였을까요?
기도했을 것입니다. 속으로 간절히 하나님의 도우심을 구하고 있었을 것입니다.
“하나님, 지금 내가 의지할 수 있는 것은 당신밖에 없습니다. 나를 도와주세요.”
9절에서 시인은 말합니다.
“내가 아뢰는 날에 내 원수들이 물러가리니 이것으로 하나님이 내 편이심을 내가 아나이다”
같은 사건을 배경으로 씌어진 시편 34편 4절에도 말씀합니다.
“내가 여호와께 간구하매 내게 응답하시고 내 모든 두려움에서 나를 건지셨도다”
그 기도에 하나님이 응답하시고 두려움에서 건지셨다 합니다.
어떤 방식으로 하나님은 응답하셨을까요?
4절을 보시기 바랍니다.
내가 하나님을 의지하고 그 말씀을 찬송하올지라
내가 하나님을 의지하였은즉 두려워하지 아니하리니
혈육을 가진 사람이 내게 어찌하리이까
여기 ‘하나님을 의지한다’는 말에 어떤 말이 붙어 나오고 있습니까?
그 말씀을 찬송하올지라
잘 이해되지 않았습니다. 이게 무슨 뜻이지?
‘하나님을 찬송한다’는 말은 많이 들어봤지만,
‘하나님의 말씀을 찬송한다’는 말은 낯설고 어색했습니다.
그래서 그냥 하는 말이겠거니 넘어가려 했는데,
뒤에 10절에 보니까, 이 말이 다시 두 번씩이나 반복해서 나오는 걸 보고,
아, 여기 뭔가가 있구나, 결코 그냥 하는 말이 아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내가 하나님을 의지하여 그의 말씀을 찬송하며
여호와를 의지하여 그의 말씀을 찬송하리이다
다윗이 두려운 상황 속에서 하나님을 의지하며 드렸던 기도에 대한 응답은
어떤 스펙터클한 기적에 의한 갑작스런 상황 변화가 아니라
어느 순간 그의 마음에 임한 ‘하나님의 말씀’이 아니었을까요?
이미 알고 있던 어떤 말씀이 문득 마음에 또렷이 떠오른 것이었는지,
아니면 새로운 하나님의 음성을 마음으로 들었던 것인지는 확실치 않지만,
그 순간 다윗은 ‘그 말씀’, 응답으로 주어진 그 하나님의 말씀을 믿음으로 붙들었고,
이를 통해 두려움에서 해방될 수 있었던 게 아닐까요?
그렇다면 그 말씀은 어떤 말씀이었을까요?
정확히 알 순 없지만, 4절 하반절이 힌트가 될 수 있겠습니다.
혈육을 가진 사람이 내게 어찌하리이까
아마도 그것은 어떤 인간도 하나님의 뜻을 거슬러 행할 수 없음을 일깨워주는 말씀,
만물의 생사화복에 대한 주권과 권능이 하나님께 있음을 일깨워주는 말씀이었던 것 같습니다.
어쩌면 시편 62편 11절에서 다윗이 언급하는 말씀이 바로 그 말씀이었을 수도 있겠습니다.
“하나님이 한두 번 하신 말씀을 내가 들었나니 ‘권능은 하나님께 속하였다’ 하셨도다”
아마도 다윗은 많은 말씀을 머리로 알고 있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가 여기서 ‘들었다’ 말하는 말씀은 그 ‘아는’ 말씀들과는 차원이 다릅니다.
우리도 옆에 늘 성경책을 두고 살고, 또 머리에 여러 말씀들을 저장하고 살지만,
그 가운데 내 삶에 특별한 의미와 함께 기억되고 있는 말씀은 소수일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다윗이 여기서 ‘들었다’ 하는 말씀은
삶의 결정적인 순간에 그의 마음에 들려와 역사했던 한 말씀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 말씀이 무엇입니까?
권능은 하나님께 속하였다
쉽게 얘기하면, ‘그거 다 내 소관이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셨다는 것입니다.
내 허락 없인 아무것도 안돼… 그리고 내가 하고자 하면 누구도 막을 수 없어…
그런 의미 아니겠습니까?
정확히 이 말씀이든, 아니면 유사한 다른 어떤 말씀이든,
다윗이 하나님을 의지하고 그 말씀을 찬송하였다는 것은
그가 그 두려움의 순간에 온 신경을 그 하나님 말씀에 집중시켰다는 것,
그 하나님 말씀 속에 담긴 ‘인자와 위엄과 진리’에 경탄하고 기리며 드높였다는 것,
그가 잠시 자기 마음에 두었던 다른 모든 사람의 말들을 부러 떨쳐버리고,
오직 그 하나님의 말씀만을 경외하며 붙들고 의지하려 했다는 뜻이 아닐까요?
사람의 말을 듣고 마음에 둠으로 두려움에 빠졌었던 그가
이제 하나님의 말씀만을 마음에 둠으로 두려움에서 벗어났던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도 이렇게 두려움을 극복할 수 있을 것입니다.
두려워하는 날에는 하나님을 의지하고 기도하십시다!
그리고 그 기도의 응답으로 주어지는 하나님의 말씀을
다른 그 어떤 사람의 말보다 드높이며 붙들고 의지하십시다!
그러면 두려움에서 벗어나, 실족하지 않고, 가야할 길로 갈 수 있을 것입니다.
이를 위해 평소에 기도하고 말씀 보는 일을 꾸준히 하시면 좋겠습니다.
특히 ‘두려워하는 날’에는 더욱 의지를 드려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기도 안 하다 갑자기 앉아 기도하려면 잘 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그래도 포기치 말고 마음을 하나님께 모으며 하루 또 하루 계속 기도를 이어가면
어느 순간 기도의 길이 잡히고 기도 중에 하나님의 임재를 경험할 수 있을 것입니다.
말씀 묵상도 마찬가지입니다.
말씀 안 읽다가 오랜만에 성경을 펼치면 말씀이 눈에 잘 안 들어올 수도 있습니다.
그래도 포기치 말고 하루 또 하루 계속 말씀을 읽어나가면,
어느 순간 말씀이 눈에 들어오고 하나님의 음성을 가까이 들을 수 있을 것입니다.
가드 왕 아기스 앞에서 위기에 처해 있던 다윗은 이후 어떻게 됐을까요?
사무엘상 21장 13절에 이렇게 기록돼 있습니다.
(다윗이) “그들 앞에서 그의 행동을 변하여 미친 체하고 대문짝에 그적거리며 침을 수염에 흘리매”
다윗은 갑자기 태도를 바꾸어 미친 사람처럼 행동했고,
아기스는 그를 미치광이로 오인하고 내쫓아버립니다.
그렇게 다윗은 위기를 모면하고 다른 데로 떠나게 됩니다.
결과적으로 그것은 지혜로운 행동이었다 할 것입니다.
대단한 사람으로 인식되면 죽을 판이었으니까요.
궁금한 것은, ‘어떤 마음으로 다윗은 그런 행동을 취했을까’ 하는 것입니다.
두려워서 미친 체 한 것일까?
아니면, 두려움에서 벗어났기에 그렇게 할 수 있었던 것일까?
우리말 개역개정 성경은 전자의 느낌으로 번역하고 있습니다: “두려워하여… 미친 체…”
하지만 이 사건을 배경으로 씌어진 두 시편은 후자의 해석을 지지하는 것 같습니다.
다윗은 하나님을 의지하여 기도하고 말씀을 붙들면서 두려움에서 벗어났고,
이에 사람 앞에서의 부끄러움도 감수할 수 있었다는 것입니다.
시편 34편 5절에 말씀합니다.
“그들이 주를 앙망하고 광채를 내었으니 그들의 얼굴은 부끄럽지 아니하리로다”
사람이 두려울 때 흔히들 취하는 행동은 무엇일까?
그 두려움의 대상 앞에 엎드려 충성을 서약하며 선처를 구하는 것일 겁니다.
하지만 다윗은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다.
차라리, 아니 기꺼이, 그 인간 권력자 앞에서 미친 사람처럼 되었습니다.
그 ‘거룩한’ 존전을 그야말로 난장판으로 만들어 버렸습니다.
두려움에 사로잡힌 자가 과연 이 대담한 행위를 할 수 있을까요?
오히려 두려움에서 벗어난 자,
하나님을 경외함으로 사람에 대한 두려움을 극복한 자,
눈 앞에 권력자를 한낫 혈육을 가진 사람의 하나로 보게 된 자가 아니라면,
그처럼 자유롭고 대담하게 행동하긴 어려웠으리라, 저 개인적으론 생각됩니다.
하나님을 의지하여 두려움에서 벗어난 사람만이 갈 수 있는
한 차원 높은 믿음의 길이 분명 있을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누구나 살면서 두려움의 순간을 맞지만,
거기에 모두가 똑같이 반응하며 살지는 않을 것입니다.
내가 두려워하는 날에는 내가 주를 의지하리이다
내가 하나님을 의지하고 그 말씀을 찬송하올지라
내가 하나님을 의지하였은즉 두려워하지 아니하리니
혈육을 가진 사람이 내게 어찌하리이까
두려워하는 날에 하나님을 의지하고 승리하는 우리 모두 모두가 될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아멘.
기도하겠습니다.
사랑의 주님, 우리가 두려워하는 날에 주님을 의지하겠습니다. 우리가 삶 속에서 주님을 찾게 하시고 당신의 말씀을 듣게 하옵소서. 그리하여 두려움을 이기고 당신의 길로 나아가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