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인 예배 (2021년 6월 27일)
- 누가복음 12:54-13:9
- 설교자: 류광현 목사
- 너희도 만일 - 눅13,1-9.docx
<누가복음 12:54-13:9>
12:54 또 무리에게 이르시되 너희가 구름이 서쪽에서 이는 것을 보면 곧 말하기를 소나기가 오리라 하나니 과연 그러하고
55 남풍이 부는 것을 보면 말하기를 심히 더우리라 하나니 과연 그러하니라
56 외식하는 자여 너희가 천지의 기상은 분간할 줄 알면서 어찌 이 시대는 분간하지 못하느냐
57 또 어찌하여 옳은 것을 스스로 판단하지 아니하느냐
58 네가 너를 고발하는 자와 함께 법관에게 갈 때에 길에서 화해하기를 힘쓰라 그가 너를 재판장에게 끌어 가고 재판장이 너를 옥졸에게 넘겨 주어 옥졸이 옥에 가둘까 염려하라
59 네게 이르노니 한 푼이라도 남김이 없이 갚지 아니하고서는 결코 거기서 나오지 못하리라 하시니라
13:1 그 때 마침 두어 사람이 와서 빌라도가 어떤 갈릴리 사람들의 피를 그들의 제물에 섞은 일로 예수께 아뢰니
2 대답하여 이르시되 너희는 이 갈릴리 사람들이 이같이 해 받으므로 다른 모든 갈릴리 사람보다 죄가 더 있는 줄 아느냐
3 너희에게 이르노니 아니라 너희도 만일 회개하지 아니하면 다 이와 같이 망하리라
4 또 실로암에서 망대가 무너져 치어 죽은 열여덟 사람이 예루살렘에 거한 다른 모든 사람보다 죄가 더 있는 줄 아느냐
5 너희에게 이르노니 아니라 너희도 만일 회개하지 아니하면 다 이와 같이 망하리라
6 이에 비유로 말씀하시되 한 사람이 포도원에 무화과나무를 심은 것이 있더니 와서 그 열매를 구하였으나 얻지 못한지라
7 포도원지기에게 이르되 내가 삼 년을 와서 이 무화과나무에서 열매를 구하되 얻지 못하니 찍어버리라 어찌 땅만 버리게 하겠느냐
8 대답하여 이르되 주인이여 금년에도 그대로 두소서 내가 두루 파고 거름을 주리니
9 이 후에 만일 열매가 열면 좋거니와 그렇지 않으면 찍어버리소서 하였다 하시니라
하나님의 은혜와 평강이 성도 여러분과 함께하시길 기원합니다.
우리 주위에서 일어나는 일들에 대해 우리는 의미와 이유를 알고싶어 합니다. 벌써 1년 이상 계속되고 있는 코로나 대유행도 그렇고, 지난 주간 체코 호도닌 지역에서 발생한 토네이도 재난도 그렇고, 그것이 왜 일어났고, 왜 희생자들이 발생했는지, 우리는 알고싶습니다.
때때로 영향력 있는 위치에 있는 분들이 나름의 해석을 내놓습니다. 그것이 사람들에게 도움이 될 때도 있지만, 어떤 경우는 혼란만 가중시키고 또다른 상처를 남기기도 합니다. 우리 주위에서 일어나는 일들에 대해 우리는 내가 모르는 부분이 있을 수 있음을 인정하는 일이 필요할 것입니다. 일반화할 수 없는 특수성의 영역을 염두에 둘 필요가 있습니다.
그럼에도 우리는 궁금합니다. 답답합니다. 이 시대 우리 주위에서 일어나는 일들에 대해 예수님이라면 어떤 말씀을 하실까 궁금했습니다. 그래서 말씀을 들춰봤습니다. 오늘 본문 말씀이 생각났습니다. 예수님은 날씨에 대해 얘기하십니다. 재난의 상황에 대해 언급하십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초점을 맞추고 있는 부분은 일반적인 사람들의 관심과는 좀 다른 것 같습니다.
모인 무리에게 말씀하십니다. “너희는 구름이 서쪽에서 이는 것을 보면 곧 ‘비가 오겠다’고 말한다. 과연 그렇다. 또 바람이 남쪽에서 불어오면 ‘날씨가 몹시 덥겠다’고 말한다. 과연 그렇다. 그런데 이 위선자들아, 너희가 천지의 기상은 분간할 줄 알면서 어찌 이 시대는 분간하지 못하느냐? 어찌하여 옳은 것을 스스로 판단하지 아니하느냐?”
그 시대, 혹은 이 시대가 어떤 시대이길래, 사람들이 이를 분간하지 못한다 하시는가? 이어지는 58-59절에 힌트가 있습니다. 메시지성경은 이를 다음과 같이 번역합니다. “가령 법정으로 끌려갈 때 너희는 너희를 고소한 자와 도중에 타협하기로 결심할 것이다. 사건이 재판관에게까지 가면, 감옥에 갇히고 한 푼도 남김없이 벌금을 다 내야 할 것을 너희가 알기 때문이다. 내가 너희에게 요구하는 것은 바로 그런 결심이다.”
무슨 뜻입니까? 그 시대, 아니 이 시대는 우리 모두가 의로우신 재판장 하나님 앞에 서기 직전의 상황이라는 것입니다. 우리 모두는 누군가에게 갚을 수 없는 빚을 지고 있는 사람들이라는 것입니다. 이대로 재판정에 들어서면 결과는 뻔합니다. 하지만 아직 기회가 있습니다. 거기 이르기 전, 최종선고가 내려지기 전, 그 재판정을 향해 가는 길에서 극적인 화해가 이루어질 수 있음을 예수님은 일깨워주십니다.
우리가 바로 그 상황에 서 있다는 것입니다. 지금 여기서 우리가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비참한 결말에 이를 수도 있고, 극적인 화해와 구원에 이를 수도 있는 상황이라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오심은 종말이 이 세상에 들어온 것을 의미합니다. 그분이 종말입니다. 그분에 대한 우리의 반응이 곧바로 우리의 결국입니다. 그분의 초청을 받아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면 구원입니다. 그분의 초청을 거부하고 그 밖에 서 있으면 파멸입니다.
“때가 찼고 하나님의 나라가 가까이 왔으니 회개하고 복음을 믿으라!”(막1:15) 예수님이 전하신 이 메시지가 이 시대의 의미를 규정합니다. 이 하나님 나라의 근접성은 우리의 즉각적 반응, 급진적 회심을 요구합니다. 지금입니다. 지금 돌이켜야 합니다. 지금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야 합니다.
다음에? 다음에 하면 된다구요? 어쩌면 그럴 수도 있겠죠. 하지만 기회가 또 올까요? 다음이 우리에게 있을까요? 끝을 우리가 정할 수 있습니까? “어찌하여 옳은 것을 스스로 판단하지 아니하느냐?” 단호한 결심이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언제나 지금이 최종일 수 있음을 생각하며 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 때 마침 두어 사람이 예수님께 와서 말합니다. “빌라도가 어떤 갈릴리 사람들의 피를 그들의 제물에 섞었습니다.” 무슨 얘기일까요? 유다총독 빌라도가 명령을 내려, 희생제물을 드리고 있던 갈릴리 사람들을 학살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들의 제물이 그들의 피로 물들었다는 것입니다.
이 사건의 의미와 이유는 무엇일까요? 그 갈릴리인들의 죄가 부른 당연한 결과일까요? 아니면, 하나님의 백성이 이방인 권력자에게 수모를 당하고 있는 현실을 보여주는 그 시대의 상징적 사건일까요?
하지만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너희는 그 살해당한 갈릴리 사람들이 다른 모든 갈릴리 사람보다 더 나쁜 죄인들이라고 생각하느냐? 그렇지 않다. 너희도 만일 회개하지 않으면 다 이와 같이 망하리라!”
또 이어서 말씀하십니다. “얼마전 실로암 탑이 무너져 치어 죽은 열여덟 사람이 예루살렘에 거주하는 다른 모든 사람보다 죄가 더 있는 줄 아느냐? 그렇지 않다. 너희도 만일 회개하지 않으면 다 이와 같이 망하리라!”
죄가 재앙의 원인이 될 수 있지만, 재앙을 겪는다고 다른 사람보다 더 큰 죄인이란 뜻은 아니란 것입니다. 그들에게 왜 그런 재앙이 닥쳤는지, 왜 그리 갑작스레 죽음에 이르렀는지, 우리는 알 수 없습니다. 예수님도 거기에 대해선 말씀하지 않으십니다. 삶은 불확실하고, 죽음은 예측할 수 없으며, 심판은 피할 수 없습니다. 이것이 인생입니다. 이것이 인간입니다.
예수님께서 초점을 맞추고 계신 것은 다른 부분입니다. 죽음은 기회의 상실입니다. 더이상 돌이킬 수 있는 기회가 없어진 상황입니다. 이제 심판대 앞에 서는 일만 남겨둔 상황입니다. 우리가 기억해야 할 사실은 이것입니다. 누구에게나 언제든 그런 재앙의 순간, 죽음의 때는 예기치 않게 닥칠 수 있다는 것. 기회의 문이 나에게 언제까지나 열려 있지는 않으리라는 것.
하지만 살아 있다는 것은 아직 돌이킬 수 있는 기회가 남이 있다는 뜻입니다. 아직 그대가 살아 있다면, 지금 즉시 하나님께로 온전히 돌아서라! 무엇이 옳은 길인지 생각하고 지금 즉시 그 일을 하라! 예수님은 말씀하십니다.
모든 관계의 회복은 하나님과의 관계의 회복에서 시작될 것입니다. 회개는 우선 하나님께로 돌아서는 일이며, 이어서 모든 잘못 가던 길에서 돌아서는 일입니다. 하나님을 나의 창조자요 구원자로 바르게 알고 믿을 때, 우리는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다른 모든 피조물들과의 바른 관계 속에 설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 모든 것을 온전히 회복해가시는 하나님의 역사에 동참할 수 있습니다.
회개는 실제적인 삶의 변화를 수반합니다. 예수님 가신 삶의 길을 따라가기로 굳게 결심하고, 어떤 손해와 희생이 따르든 감내하며 옳은 일을 실천하는 것, 그것이 참다운 회개입니다. 그것이 지금 바로 우리가 결단하고 행해야 할 일입니다.
내가 목표하는 것을 이루려고 수단방법을 가리지 않는 것, 이를 ‘목적성의 강박’이라 합니다. 구원은 이 목적성의 강박에서 해방되는 일을 포함합니다. 내가 욕망하고 목표하는 것을 이루려고 내 주위 사람들, 생명들에게 차별과 폭력을 가하는 생활방식을 철저히 거부하는 것, 그것이 예수님 가신 정의로운 평화의 길입니다.
이어 예수님은 이런 이야기를 들려주십니다. “한 사람이 자기 포도원에 무화과나무를 심었다. 그가 그 나무에 무화과가 있을까 해서 다가가 보니, 하나도 없었다. 이에 포도원지기에게 말했다. ‘어찌된 일인가? 내가 삼 년을 와서 이 나무에서 열매를 찾았으나 하나도 얻지 못했다. 찍어 버려라! 뭐하러 좋은 땅만 버리겠는가?’ 그러자 포도원지기가 말했다. ‘일 년만 더 관심을 기울여 보겠습니다. 제가 그 둘레를 파고 거름을 주겠습니다. 그럼 내년에는 열매를 맺을지 모릅니다. 그렇지 않거든, 그때 찍어버리십시오.’”
우리에게 예수님을 보내주신 하나님은 우리에게 또 한번의 기회를 주시는 자비의 하나님이십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구원을 위해 이 땅에 오셨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심판대에 이르기 전 우리에게 화해의 기회, 회개의 기회를 주시려고 우리 가까이로 오셨습니다. 이를 위해 지금도 그분은 우리 가까이에서 일하고 계실 것입니다.
하지만 우리는 또한 기억해야 합니다. 심판은 연기된 것이지 취소된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심판대 앞으로 가는 길에 있습니다. 우리에게 기회로 주어진 시간은 길지 않습니다. 언제 끝이 올 지 알 수 없습니다. 하나님께로 온전히 돌이킬 때에만 우리 인생의 나무에 좋은 열매가 맺힐 것입니다. 우리는 그 열매를 들고 하나님 앞에 서야 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 주위에서 일어나는 비극적인 일들의 의미와 이유에 대해 우리는 다 알지 못합니다. 하지만 오늘 본문을 통해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알려주시는 것이 있습니다. “너희도 만일 회개하지 아니하면 다 이와 같이 망하리라!” 그러므로 그대가 아직 살아 있다면, 무엇이 옳은 길인지 생각하고, 지금 즉시 하나님께로 온전히 돌아서라!
기도하겠습니다.
사랑의 주님, 우리가 망하길 원치 않으시고 돌이켜 구원받길 원하시는 주님의 마음이 당신의 십자가로 나타났습니다. 우리가 살아 있는 동안, 그 돌이킬 수 있는 기회의 시간에, 무엇이 옳은 길인지 생각하고, 하나님께로 온전히 돌이키는 우리 모두가 되게 하여 주옵소서. 살아계신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