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인 예배 (2018년 4월 29일)
- 마태복음 5장 10-11절
- 설교자: 류광현 목사
- 복 있는 사람 - 8. 의를 위해 박해받은자 자 - 마태복음 5장 10-11절.docx
남유다 말기에 활동했던 선지자 예레미야는 더 극심한 박해를 겪어야 했습니다. 초기에 그의 메시지는 유다 백성들에게 회개를 촉구하는 데 맞춰졌었지만, 이에 대해 그들이 계속해서 부정직하고 불성실한 태도로 반응하자, 이후 그의 메시지는 조국의 멸망을 예언하는 내용으로 바뀌게 됩니다.
하나님께서 바벨론이라는 몽둥이를 사용해 자기 백성을 심판하시리라는 것입니다. 물론 예레미야는 하나님께서 맡기신 말씀을 우직하게 그대로 전했을 뿐입니다. 그러나 그런 불길한 메시지를 외쳐대니, 왕과 백성들이 좋아할 리 없습니다. 이에 거짓 선지자들이 일어나 왕이 듣기 좋은 가짜 예언을 늘어놓습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며 결국 상황은 예레미야가 예언한 대로 흘러갑니다. 바벨론이 유다를 쳐서 이기고, 잠정적으로 허수아비 왕 시드기야를 세웁니다. 어느날 이 시드기야 왕이 조용히 예레미야를 불러 요청합니다.
“우리를 위하여 우리 하나님 여호와께 기도하라”
그는 바벨론에 반역을 꾀할 요량으로 하나님의 축복을 기대했던 것입니다. 아무리 예레미야가 듣기 싫은 메시지만 전해도, 그가 하나님의 사람인 것을 이 왕도 알았던 것이고, 때문에 중요한 순간에는 그를 찾게 되었던 것입니다. 하지만 예레미야는 그 기대를 저버리고 또다시 불길한 예언을 전합니다.
“갈대아인이 다시 와서 이 성을 치고 빼앗아 불사를 것입니다.”
그 후에 관리들이 왕에게 나아와 예레미야에게 벌을 내릴 것을 요청합니다. 그가 계속 불길한 것만을 말하여 백성들 마음을 약하게 한다는 이유였습니다. 왕이 허락하자, 그들은 예레미야를 깊은 구덩이에 던져 넣습니다. 그렇게 구덩이 속 진창에 빠져 아무 살 소망이 없게 된 예레미야를 이번엔 왕궁 내시였던 구스인 에벳멜렉이 왕에게 간청하여 구출해냅니다. 유다의 왕과 관리와 백성들 모두가 하나님의 뜻을 거슬러 예레미야를 박해하는 상황에서, 이처럼 하나님은 한 이방인을 통해 의외의 방법으로 당신의 종을 구원하셨던 것입니다. 여러분, 예레미야가 박해를 받은 것은 그가 하나님의 뜻을 거슬렀기 때문입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그가 하나님의 뜻을 앞세우며 사람들의 뜻을 거슬렀기 때문이었습니다. 이처럼 박해는 그 자체가 목적이 아니라, 사람의 뜻보다 하나님의 뜻을 앞세우는 삶에 뒤따르는 결과입니다.
이 외에도 하나님의 사람들이 의를 위해 박해받은 예를 열거하자면 끝이 없을 것입니다. 다니엘의 세 친구,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는 바벨론 왕의 금신상에 절하길 거절했고, 그 때문에 풀무불에 던져지게 된 상황에서 왕에게 말합니다.
“왕이여 우리가 섬기는 하나님이 계시다면 우리를 맹렬히 타는 풀무불 가운데에서 능히 건져내시겠고 왕의 손에서도 건져내시리이다”
더 중요한 것은 그 다음 말입니다.
“그리 하지 아니하실지라도 왕이여 우리가 왕의 신들을 섬기지도 아니하고 왕이 세우신 금신상에게 절하지도 아니할 줄을 아옵소서” (단3:18)
“그리 하지 아니하실지라도” 하나님의 의에 대한 그들의 헌신은 이미 죽음을 정복하고 있습니다.맹렬히 타는 풀무불에 던져진 그들은 이후 어떻게 되었을까요? 불이 그들의 몸을 해하지 못하고 멀쩡한 모습으로 그들은 살아 나옵니다. 이에 그 이방나라의 왕이 소리높여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의 하나님을 찬송할지로다 그가 그의 천사를 보내사 자기를 의뢰하고 그들의 몸을 바쳐 왕의 명령을 거역하고 그 하나님 밖에는 다른 신을 섬기지 아니하며 그에게 절하지 아니한 종들을 구원하셨도다” (단3:28)
시편 34편 19절에 말씀합니다.
“의인은 고난이 많으나 여호와께서 그의 모든 고난에서 건지시는도다”
하나님의 의에 헌신한 사람들은 이렇게 고백합니다.
“여호와는 내 편이시라 내가 두려워하지 아니하리니 사람이 내게 어찌할까” (시118:6)
그렇다면 우리는 ‘하나님의 의’, ‘하나님이 옳다 하시는 바’를 어떻게 알 수 있을까? 물론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을 통해 알 수 있습니다. 따라서 하나님의 의를 위해 살고자 하는 사람은 성경을 가까이 해야 할 것입니다.
하지만 성경의 그 모든 구절들을 우리 머리 속에 다 넣고 있지 않아도, 우리가 ‘하나님의 의’를 바르고 명료하게 알고 행할 수 있는 길이 있습니다. 바로,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보며 따르는 길입니다. 그분은 인간의 몸을 입고 이 땅에 오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며, 죄인들을 대신해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부활하신 우리의 구주와 주님이시며, 우리의 의로움을 위해 계시된 ‘새로운 하나님의 의’입니다. 예수님이 걸어가신 길은 ‘하나님이 옳다 하시는 바’를 따라 나아간 길이었습니다. 그의 인격과 삶이 ‘하나님이 옳다 하시는 바’를 드러냅니다. 그의 죽음과 부활 속에서 ‘하나님이 옳다 하시는 바’가 성취되었습니다. 따라서 그분을 바라보며 따라가는 삶은 하나님의 ‘의를 위하여’ 살아가는 삶이 됩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은 당신을 따르는 자들에게 11절에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나로 말미암아 너희를 욕하고 박해하고 거짓으로 너희를 거슬러 모든 악한 말을 할 때에는 너희에게 복이 있나니”
‘예수님으로 말미암아 받는 박해’가 곧 ‘의를 위하여 받는 박해’가 되리라는 뜻입니다. 예수님 자신도 하나님의 의를 위해 나아가는 길에서 박해를 받으셨습니다. 사람들은 그에게 죄를 찾을 수 없었지만 억지로 죄를 씌워 십자가에 못박았습니다. 하지만 그분은 부활하셨고, 결국 그분 가신 길이 옳고 복된 길이었음이 드러났습니다. 예수님이 받으신 박해가 하나님의 역설적인 구원의 진리를 드러내는 통로가 된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예수님을 따르는 우리들 예수님 때문에 비방과 박해를 받을 수 있습니다. 디모데후서 3장 12절에서 사도 바울은 말합니다.
“무릇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경건하게 살고자 하는 자는 박해를 받으리라”
예수님은 후에 제자들이 받을 박해를 예상하시며 이렇게 권면하십니다.
“몸은 죽여도 영혼은 능히 죽이지 못하는 자들을 두려워하지 말고 오직 몸과 영혼을 능히 지옥에 멸하실 수 있는 이를 두려워하라” (마10:28)
또한 주님은 “너희를 박해하는 자를 위하여 기도하라”(마5:44)고도 말씀하셨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