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인 예배 (2018년 5월 13일)
- 누가복음 16장 1-13절
- 설교자: 류광현 목사
- 불의의 재물로 친구를 사귀라 - 누가복음 16장 1-13절.docx
그런데 이 부자 주인이 하나님이라고 가정해봅시다. 실제로 하나님은 온 세상 모든 것의 주인이시니까요. 그럼 이해되지 않던 것들이 이해되기 시작합니다. 하나님이라면 이 청지기의 행동을 칭찬하실 수 있겠습니다. 하나님의 최대 관심은 재물을 늘리는 데 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이 세상에서 보는 대부분의 부자 주인들과 달리, 하나님의 최대 관심은 그분이 지으신 사람, 혹은 피조물들이 하나님과의 관계를 회복하고 구원을 얻는 데 있습니다. 하나님이 최고의 가치를 두시는 것은 돈이 아닙니다. 사람, 혹은 생명입니다. 본문에 청지기는 주인이 맡긴 재물을 가지고 사람을 얻으려 했습니다. 물론 그는 이기적인 목적으로 그렇게 했습니다. 윤리적으로만 보자면, 그는 분명 ‘옳지 않은’ 청지기입니다. 여기서 그가 칭찬 받을 수 있는 근거가 있다면 오직 하나, 그가 주인이 바라는 방향으로 일을 처리했다는 점일 것입니다. 주인에게 너무 큰 빚을 져서 갚을 엄두를 못내고 있던 사람들, 그래서 주인 앞에 서는 게 두려워 마음만 졸이고 있던 사람들, 그들이 그 줄여진 빚 때문에 그들에 대한 주인의 호의를 확인하고, 다시 주인과의 관계를 회복하며 구원받을 계기를 만들었다는 점, 그것이 이 청지기가 주인이신 하나님께 칭찬받은 이유가 아닐까요?
예수님은 이 비유 속 청지기를 통해 하나님의 자녀들을 교훈하고자 하십니다. 이처럼 세상 사람들도 재물보다 사람에게 투자하는 게 더 이득이라는 것, 당장에 재물을 손해보더라도 사람 마음을 얻는 게 지혜로운 일임을 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오히려 하나님의 자녀들이 그걸 잊어버리고 행할 때가 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맡기신 것들로 다른 이의 구원을 위해 섬기도록 부름받은 사람들이 오히려 그 물질에 집착하며 그들을 하나님에게서 더 멀어지게 할 때가 있다는 것입니다.
“불의의 재물로 친구를 사귀라”
여기 ‘불의의 재물’이란 말은 ‘세속적인 재물’, ‘부정직한 재물’로도 번역될 수 있겠습니다.이 세상의 재물은 신뢰할 만한 것이 못된다는 것입니다. 영원히 지속될 것도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러니 그걸 주인으로 삼아 섬기는 게 얼마나 어리석은 일입니까? 그걸 목적으로 삼아 살지 말라는 것입니다. 다만 그것은 더 가치 있는 것을 위해 쓰이면 그만입니다. 그러므로 이 말씀을 의역하면 이런 얘기가 될 것입니다. 너 자신을 위해서라도 그 돈이란 놈으로 친구를 사귀어라! 그 별볼일 없는 녀석을 너무 대우해주지 말고, 다만 그것을 귀하디 귀한 사람 얻는 일에 아낌없이 써라!
이 말씀과 관련해 두 가지를 더 언급할 필요가 있겠습니다. 우선, 여기서 ‘친구를 사귀라’는 말은 그를 ‘내 사람’으로 만들라는 뜻이 아닙니다. 돈으로 상대를 휘어잡아 그가 내 말을 듣지 않을 수 없게 만들라는 뜻이 아닙니다. 그 물질을 가지고 그도 나처럼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있도록 섬기라는 뜻입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억지로 떠밀려 들어가는 나라가 아니라, 그 나라의 향기를 맡은 사람들이 스스로 자기를 던져 들어가는 나라입니다. 또한 “불의의 재물로 친구를 사귀라”는 이 말씀은 이 세상에서의 유익이나 보상을 바라고 그렇게 하라는 뜻이 아닙니다. 영원한 하나님 나라에서의 유익를 생각하며 그리 하라는 뜻입니다.
“그리하면 그 재물이 없어질 때에 그들이 너희를 영주할 처소로 영접하리라”
이 땅에서 내게 주어진 물질을 하나님 나라를 위해 잘 썼던 사람들은 그 나라에 예비된 영원한 집에 들어갈 때 친구들의 환영과 영접을 받으리라 하십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는 하나님의 소유물을 맡은 그분의 청지기들입니다. 청지기에게 요청되는 가장 중요한 자질은 무엇일까요? 그 주인이 어디에 가치를 두고 있는지를 바르게 알고 일하는 것입니다. 주인의 소유를 주인이 가치 있게 여기는 일에 잘 쓰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청지기인 우리들은 하나님께서 각자에게 맡겨주신 것들로 주위 사람들 하나 하나를 소중히 여기며 섬길 수 있어야 할 것입니다. 특별히 더 어려운 처지에 있는 사람에게, 세상에서 작다 일컬음을 받는 이웃에게, 나에게 하등 이득이 될 것 같지 않은 사람에게(눅14:12-14), 오히려 더 마음을 쓰며 나눔을 실천할 수 있어야 할 것입니다.
여기서 한 걸음만 더 나아가 보십시다. 우리가 주위 사람들과 나눌 수 있는 것이 비단 물질만은 아닐 것입니다. 이 이야기 속 ‘빚진 자’들을 우리는 비유적인 의미로 이해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성경은 사람이 하나님께 지은 ‘죄’를 하나님께 진 ‘빚’으로 표현하기도 합니다.
그렇다면 여기 주인에게 기름 백 말, 밀 백 석 빚진 자들을 하나님께 큰 죄를 지어 그 앞에 나아갈 엄두를 못내는 사람들로 볼 수도 있겠습니다. 그들에게 하나님의 청지기인 우리들이 할 수 있고 또 해야 할 일이 있을까요?
다시 앞에 청지기의 상황으로 돌아가봅니다. 본문에 청지기는 사람들이 주인에게 진 빚의 양을 자기 임의로 줄여주었습니다. 직장을 짤릴 위기에 처한 사람이 취할 수 있는 행동이 단지 그것뿐이었을까요? 어쩌면 그는 다시 주인에게 잘 보이려고 그 빚진 자들을 닥달할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지금 당장 그 빚을 전부 다 갚으라면서 무자비하게 독촉할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의 선택은 다른 것이었고, 주인은 그 일에 책망은커녕 칭찬을 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