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령 충만을 받으라

성령 충만을 구한다는 것은 성령의 은사나 능력을 구한다는 의미 이전에, 오직 예수님 한 분만을 구한다는 뜻입니다. 예수님께서 나를 온전히 주관해주시길 구한다는 뜻입니다. 성령을 통해 예수님 사랑 안에 온전히 거하며, 그분 말씀에 온전히 순종할 수 있길 구한다는 뜻입니다. 결국 성령 충만이란, 그리스도에 대한 온전한 순종을 통해 그리스도의 인격과 능력이 내 속에서 밖으로 흘러나가게 되는 것이라 하겠습니다.

자 그렇다면, 중요한 질문은 이것입니다. 여러분은 그리스도께서 성령을 통해 여러분을 온전히 다스려주시길 진정 원합니까? 여러분은 성령 안에서 그 무엇보다 주님 말씀에 순종하며 살길 진정 바랍니까? 여러분이 지금 그렇게 할 수 있느냐를 묻는 것이 아닙니다. 여러분이 성령의 도우심 가운데 그렇게 되기를 정말 바라느냐를 묻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가진 능력에 대해 질문하는 것이 아닙니다. 여러분이 가진 갈망에 대해 질문하는 것입니다. 이 갈망을 가진 사람만이 진정 성령 충만을 경험할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서 사도 바울은 성령 충만이 지혜로운 삶의 비결이라고 말합니다. 이 에베소서의 수신자들은 이미 성령 안에서 예수를 주로 고백하게 된 사람들이었습니다. 하지만 그들 중 어떤 이는 시간이 흐르며 점점 어리석은 삶으로 나아갔던 것 같습니다. 그 마음이 욕심을 따라 허망한 데 이끌렸습니다. 또한 은혜에 대한 감사가 식어지고 불평이 잦아졌습니다.

그들에게 바울은 “잠자는 자여 깨어서 죽은 자들 가운데서 일어나라 그리스도께서 너에게 비추이시리라” 말씀합니다. 그리고 우리를 구원하는 참 지혜의 길이 어디에 있는지 다시금 생각해 보라고 권면합니다.

“그런즉 너희가 어떻게 행할지를 자세히 주의하여 지혜 없는 자 같이 하지 말고 오직 지혜 있는 자 같이 하여 세월을 아끼라 때가 악하니라”

현실이 만만치 않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악한 세상 속에 살고 있다는 것입니다. 무엇이 지혜로운 삶의 길인지 자세히 주의하여 생각하고 애쓰지 않으면 헛되고 무익한 일들에 마음을 빼앗기며 세월을 낭비하게 되리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어리석은 자가 되지 말고 오직 주의 뜻이 무엇인가 이해하라” 말씀합니다. 그리고 이를 위해 “성령으로 충만함을 받으라” 권면합니다.

오직 성령을 통해서만 우리는 하나님의 뜻을 바로 이해하고 실천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성령으로 충만할 때 우리는 잘못된 길에서 벗어날 수 있습니다. 성령으로 충만할 때 우리는 하나님 주시는 좋은 것들을 잘 받을 수 있습니다. 또한 성령으로 충만할 때 우리는 담대히 예수님의 길로 나아갈 수 있습니다. 고린도전서 2장 9-10절에서 바울은 매우 의미심장한 말을 합니다.

“기록된 바, 하나님이 자기를 사랑하는 자들을 위하여 예비하신 모든 것은 눈으로 보지 못하고 귀로 듣지 못하고 사람의 마음으로 생각하지도 못하였다 함과 같으니라 오직 하나님이 성령으로 이것을 우리에게 보이셨으니 성령은 모든 것 곧 하나님의 깊은 것까지도 통달하시느니라”

오늘날 우리는 너무나 복잡다단한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각각의 상황 속에서 무엇이 바른 판단이고 바른 실천인지 분별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우리의 인간적인 지혜만으로는 ‘하나님께서 자기를 사랑하는 자들을 위하여 예비하신 것’들을 깨닫기 어렵다고 합니다. 오직 하나님의 깊은 것까지도 통달하시는 성령께서 우리 마음에 빛을 비춰주셔야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은혜로 주시는 것들을 알 수 있다 하십니다.

찰스 스윈돌 목사는 월요일 아침에 세상 속에 세워지는 강단이 있음을 교인들에게 강조했습니다. 목사는 주일 아침에 교회 안에 세워진 강단에 올라가 복음을 전하나 교인들은 월요일 아침에 세상 속에 세워진 강단에서 그들의 삶과 인격으로 복음을 증거한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말처럼 쉽지 않다는 걸 여러분도 잘 아실 것입니다. 그러나 죄와 사망의 권세를 깨뜨리신 부활의 주님이 성령으로 우리와 함께 하시면 이 사명을 능히 감당할 수 있는 하늘의 생명력이 주어질 것입니다. 성령충만한 이들의 모습에는 죄악의 어둠을 밝히고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섬광이 번뜩입니다. 참으로 그들의 삶과 인격은 세상을 감화시키는 가장 강력하고 아름다운 설교가 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시시때때로 우리 가까에게 계신 성령님께 귀를 기울여야 합니다. 성령 안에서 하나님의 지혜를 구해야 합니다! 처음엔 그렇게 해도 아무 응답이 없는 듯 느껴질 수 있습니다. 하지만 계속 그렇게 하다보면 점점 하나님의 음성에 민감한 사람이 되어갈 것입니다.

모든 것을 하나님의 관점에서 바라보려는 태도를 갖게 되고, 하나님의 말씀을 더욱 신뢰하게 되며, 매순간 하나님께 집중하며 교제하는 일이 자연스러워지게 될 것입니다. 여러분, 잠시라도 좋습니다. 때때로 잠시 멈춰 서서 하나님께 집중해 보십시오. 아무 말 하지 않아도 됩니다. 그냥 침묵 가운데 성령님과 함께 있으십시오. 그 잠깐의 침묵과 교제가 삶에 새로운 활력과 지혜를 불어넣을 수 있습니다.
오늘 본문에서 바울은 성령 충만과 술 취함을 비교하고 대조합니다. 술에 취한 사람이 알코올의 지배를 받는 것처럼, 성령으로 충만해진 사람은 그리스도의 지배를 받습니다. 때문에 성령 충만과 술 취함은 공존할 수 없습니다. 무언가 다른 것에 취한 사람은 성령으로 충만해질 수 없습니다. 따라서 그리스도께 온전히 순종하고자 하는 사람은 다른 것에 취해 있는 삶으로부터 결연히 돌아서야 합니다. 술에 취한 사람은 정면을 똑바로 응시하지 못합니다. 걸음도 똑바로 걷지 못합니다. 마찬가지로 무언가에 취해 있는 사람, 무언가 다른 것을 탐닉하거나 거기에 얽매여 있는 사람은 그리스도 안에 진리의 길을 제대로 응시하지 못합니다. 또한 거기를 향해 똑바로 걸어가지 못합니다. 하지만 성령 안에 있는 사람은 진리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똑바로 바라볼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분 가신 길로 순종하며 담대히 나아갈 수 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성령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가장 좋은 선물입니다(눅11:13). 예수님은 우리가 성령 안에서, 성령의 지혜를 따라, 성령의 능력으로 살길 원하십니다.

어쩌면 우리는 자신의 한계를 절감한 후에야 성령의 도우심을 구할 지 모릅니다. 그래서 어떤 분은 성령 충만을 “실패한 이들을 위한 은혜”라 하였습니다.

그렇다면, 진정 겸손해진 사람이 성령 충만의 은혜를 구할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그 사모하는 영혼을 만족케 하실 것입니다.

“술 취하지 말라 이는 방탕한 것이니 오직 성령으로 충만함을 받으라!”

저와 여러분의 매일의 삶 속에 이 성령 충만의 은혜가 가득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