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인 예배 (2021년 10월 31일)
- 요한복음 14장 1-24절
- 설교자: 류광현 목사
- 아버지의 집, 예수님의 길 - 요14,1-24.docx
<요한복음 14:1-24>
1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 말라 하나님을 믿으니 또 나를 믿으라
2 내 아버지 집에 거할 곳이 많도다 그렇지 않으면 너희에게 일렀으리라 내가 너희를 위하여 거처를 예비하러 가노니
3 가서 너희를 위하여 거처를 예비하면 내가 다시 와서 너희를 내게로 영접하여 나 있는 곳에 너희도 있게 하리라
4 내가 어디로 가는지 그 길을 너희가 아느니라
5 도마가 이르되 주여 주께서 어디로 가시는지 우리가 알지 못하거늘 그 길을 어찌 알겠사옵나이까
6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
7 너희가 나를 알았더라면 내 아버지도 알았으리로다 이제부터는 너희가 그를 알았고 또 보았느니라
8 빌립이 이르되 주여 아버지를 우리에게 보여 주옵소서 그리하면 족하겠나이다
9 예수께서 이르시되 빌립아 내가 이렇게 오래 너희와 함께 있으되 네가 나를 알지 못하느냐 나를 본 자는 아버지를 보았거늘 어찌하여 아버지를 보이라 하느냐
10 내가 아버지 안에 거하고 아버지는 내 안에 계신 것을 네가 믿지 아니하느냐 내가 너희에게 이르는 말은 스스로 하는 것이 아니라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셔서 그의 일을 하시는 것이라
11 내가 아버지 안에 거하고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심을 믿으라 그렇지 못하겠거든 행하는 그 일로 말미암아 나를 믿으라
12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나를 믿는 자는 내가 하는 일을 그도 할 것이요 또한 그보다 큰 일도 하리니 이는 내가 아버지께로 감이라
13 너희가 내 이름으로 무엇을 구하든지 내가 행하리니 이는 아버지로 하여금 아들로 말미암아 영광을 받으시게 하려 함이라
14 내 이름으로 무엇이든지 내게 구하면 내가 행하리라
15 너희가 나를 사랑하면 나의 계명을 지키리라
16 내가 아버지께 구하겠으니 그가 또 다른 보혜사를 너희에게 주사 영원토록 너희와 함께 있게 하리니
17 그는 진리의 영이라 세상은 능히 그를 받지 못하나니 이는 그를 보지도 못하고 알지도 못함이라 그러나 너희는 그를 아나니 그는 너희와 함께 거하심이요 또 너희 속에 계시겠음이라
18 내가 너희를 고아와 같이 버려두지 아니하고 너희에게로 오리라
19 조금 있으면 세상은 다시 나를 보지 못할 것이로되 너희는 나를 보리니 이는 내가 살아 있고 너희도 살아 있겠음이라
20 그 날에는 내가 아버지 안에, 너희가 내 안에, 내가 너희 안에 있는 것을 너희가 알리라
21 나의 계명을 지키는 자라야 나를 사랑하는 자니 나를 사랑하는 자는 내 아버지께 사랑을 받을 것이요 나도 그를 사랑하여 그에게 나를 나타내리라
22 가룟인 아닌 유다가 이르되 주여 어찌하여 자기를 우리에게는 나타내시고 세상에는 아니하려 하시나이까
23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사람이 나를 사랑하면 내 말을 지키리니 내 아버지께서 그를 사랑하실 것이요 우리가 그에게 가서 거처를 그와 함께 하리라
24 나를 사랑하지 아니하는 자는 내 말을 지키지 아니하나니 너희가 듣는 말은 내 말이 아니요 나를 보내신 아버지의 말씀이니라
하나님의 은혜와 평강이 성도 여러분과 함께하시길 기원합니다.
오늘 본문은 수난과 이별의 때를 앞두고 예수께서 제자들과 나눈 대화입니다. 먼저 예수님이 말씀하시고, 제자가 질문하고, 예수님이 대답하시는 구조의 세 대화 꾸러미가 연이어 나오는데, 각각을 따로 떼어서 볼 수도 있겠지만, 오늘은 전체를 한 흐름 속에서 보았으면 하여 긴 본문을 다 읽었습니다.
먼저 예수께서 말씀하십니다.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 말라. 하나님을 믿고 또 나를 믿으라. 내 아버지 집에 거할 곳이 많다. 내가 너희를 위하여 거처를 예비하러 간다. 먼저 가서 너희를 위해 거처를 예비하면 내가 다시 와서 너희를 내게로 영접하여 나 있는 곳에 너희도 있게 하리라.”
이제 조금 있으면 예수님은 아버지 집으로 돌아가신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이것이 영원한 이별이 아님을 말씀하십니다. 아버지 하나님의 집에 그들이 있을 곳을 예비하시고, 다시 오셔서 그들을 거기로 영접하시리라 합니다. 그리고 덧붙이시는 말씀: “내가 어디로 가는지 그 길을 너희가 아느니라”
그러자 도마가 묻습니다: “주여 주께서 어디로 가시는지 우리가 알지 못하거늘 그 길을 어찌 알겠사옵나이까?” 도마는 자기 눈으로 보지 않은 것은 잘 믿지 않는 성격이지요. 예수님이 가시는 아버지 집이 어디 있는지, 또 어떤 곳인지 눈으로 본 적이 없는데, 어찌 거기 이르는 길을 알겠느냐는 질문입니다.
이에 예수께서 대답하십니다.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 예수님이 그 길이라는 것입니다. 아버지께 이르는 길, 아버지 집에 이르는 길이라는 것입니다. 그분은 진리의 길, 생명의 길이라 하십니다. 이 예수님의 길을 통하지 않고는 아버지 하나님께 이를 자가 없으리라 하십니다.
일전에 비슷한 설명을 드린 적이 있는데 한번 더 하겠습니다. 저 지중해 연안에 기가막힌 휴양지가 있답니다. 저도 그런 데가 있다는 얘기만 들었지, 아직 가본 적은 없습니다. 자, 제가 그곳에 가고자 할 때, 제게 꼭 필요한 것이 뭘까요? 그 휴양지에 대한 세부적인 설명? 잘 찍은 사진들? 그 지역 정보가 담긴 세부 지도? 있으면 좋겠죠. 하지만 없어도 큰 문제는 없어요. 오히려 가기 전에 너무 다 알고 가면 가서 느끼는 감동이 줄어들 수도 있겠죠.
하지만 그곳에 가고자 하는 사람에게 없어선 안 될 두 가지가 있습니다. 우선 허가. 들어가는 것이 허락되어야 합니다. 만약 그 나라에서 한국 여권 가진 사람 못 들어오게 하면 할 수 없어요. 못 가는 겁니다. 그리고 또 뭐가 필요할까요? 길을 알아야 합니다. 가는 길을 알아야 가죠. 차를 몰고 간다면 지도나 네비게이션이 있어야 하고, 비행기로 간다 해도 어떤 노선을 택해야 할지 알아야 합니다. 길을 알면 가요. 길을 모르면 못가요. 아무리 그 지역 세부 정보를 갖고 있어도 길을 모르면 거기 이를 수 없습니다.
예수님이 도마에게 하시는 말씀이 바로 이것입니다. 너희가 나를 통해 들었던 하나님 나라, 내 아버지 집에 대해 너희에게 중요한 것 두 가지를 말해줄께. 내가 먼저 가서 그곳에 너희 있을 곳을 마련해 놓을 거야. 그리고 거기로 너희를 맞아들일 거야. 그리고 또 하나. 너희가 그곳에 이르는 길을 나는 너희에게 알려줬어. 그 길은 바로 나야. 내가 길이야. 내가 걸어간 길을 잘 보고 따라오면 너희는 그곳에 이를 수 있어.
하나님의 나라를 자기 눈으로 볼 수 없기에 그 나라에 갈 수 없다 말하는 사람들에게 예수님이 주시는 답변이 이것입니다: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
이어 예수님은 말씀하십니다. “너희가 나를 알았더라면 내 아버지도 알았으리로다 이제부터는 너희가 그를 알았고 또 보았느니라” 그러자 빌립이 질문합니다. “주여 아버지를 우리에게 보여 주옵소서 그리하면 족하겠나이다” 예수님만으론 부족하단 얘긴가요. 아버지 하나님을 직접 자기 눈으로 본다면 인생 진짜 잘 살 것 같다는 얘기 같습니다.
이에 예수께서 답하십니다. “빌립아 내가 이렇게 오래 너희와 함께 있었는데 네가 나를 알지 못하느냐? 나를 본 자는 아버지를 보았거늘 어찌하여 아버지를 보이라 하느냐? 내가 아버지 안에 거하고 아버지는 내 안에 계신 것을 네가 믿지 아니하느냐?”
예수님이 하신 말씀과 행하신 일들은 그분 스스로 한 것이 아니라 아버지께서 그분 안에서 하신 것이라 하십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을 잘 보면 그와 함께하시는 아버지 하나님을 볼 수 있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한번 생각해보십시오. 하나님을 자기 눈으로 직접 본 사람이 하나님을 더 잘 알까요, 아니면 예수님을 잘 보고 아는 사람이 하나님을 더 잘 알까요?
전자일 거라 생각하기 쉽지만, 그렇지 않을 수 있습니다. 하나님을 안다는 것은 하나님의 외양을 안다는 뜻만은 아니기 때문입니다. 우리도 어떤 사람의 외모를 보았다고 해서 그 사람을 다 안다, 혹은 잘 안다 말하지 않습니다. 그 사람을 특징짓는 눈에 보이지 않는 다른 많은 요소가 있기 때문이죠. 오히려 그 사람을 잘 아는 다른 누군가의 설명과 증언을 통해 그 사람에 대해 더 잘 알게 될 수도 있습니다.
하나님이 왜 그분을 우리에게 직접 보여주시지 않는지에 대해서는 우리가 다 알기 어려운 부분이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확실한 것은, 하나님은 그분이 택하여 보내신 사람들을 통해 그분을 우리에게 나타내기 원하신다는 것입니다. 그 보냄받은 사람에게서 그를 보내신 하나님을 보고, 우리가 그 하나님께 나아오기를 바라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당신을 나타내시기 위해 당신의 아들 예수님을 보내주셨습니다. 요한복음 1장 18절에 “본래 하나님을 본 사람이 없으되 아버지 품 속에 있는 독생하신 하나님이 나타내셨느니라” 말씀합니다.
우리가 볼 수 없는 하나님, 그러나 존재하시며 나타내시는 하나님, 우리가 인생 여정의 끝에서 결국 만나게 될 하나님에 대해 그 아들 예수님보다 더 잘 알려줄 수 있는 이가 있을까요? 예수님은 그 아버지 하나님이 어떤 분이시며, 우리를 향한 그분의 마음과 뜻이 참으로 어떠한지 나타내시려고, 바로 그 목적으로 이 땅에 오신 분입니다.
이천 년 전 예수님의 제자들은 그들과 함께 계신 예수님으로부터 그와 함께하시는 아버지 하나님을 인식할 수 있었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들은, 예수님 떠나가신 지 이천 년이 지난 오늘을 사는 우리들은 어디서 어떻게 하나님을 인식할 수 있을까요?
예수님은 세 가지를 말씀하십니다. 첫째, 믿음의 기도! “나를 믿는 자는 내가 하는 일을 그도 할 것이요 또한 그보다 큰 일도 하리니 이는 내가 아버지께로 감이라 너희가 내 이름으로 무엇을 구하든지 내가 행하리라”
둘째, 보혜사 성령! “내가 아버지께 구하겠으니 그가 또 다른 보혜사를 너희에게 주사 영원토록 너희와 함께 있게 하리니… 그는 너희와 함께 거하심이요 또 너희 속에 계시겠음이라… 내가 너희를 고아와 같이 버려두지 아니하고 너희에게로 오리라”
셋째, 계명의 실천! “나의 계명을 지키는 자라야 나를 사랑하는 자니 나를 사랑하는 자는 내 아버지께 사랑을 받을 것이요 나도 그를 사랑하여 그에게 나를 나타내리라” 여기서 ‘계명’이란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주신 새 계명, 즉 ‘서로 사랑하라’는 계명을 말합니다. 요한복음 13장 34절에 “새 계명을 너희에게 주노니 서로 사랑하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말씀합니다. 이 사랑의 계명을 지켜 행하는 자에게 예수님은 그분을 나타내시리라 합니다.
아버지 하나님을 자기 눈으로 볼 수 없기에 하나님께 나아가기에 역부족이다 말하는 사람들에게 예수님이 주시는 답변이 무엇입니까? 예수님을 통해 하나님을 알 수 있다, 예수님을 눈으로 보지 못하는 오늘의 우리도 믿음의 기도, 보혜사 성령, 계명의 실천을 통해 예수님 안에 계신 하나님을 체험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자 가룟 유다 말고 다른 유다가 예수님께 묻습니다. “주여 어찌하여 자기를 우리에게는 나타내시고 세상에는 아니하려 하시나이까?” 왜 세상의 다수를 향하지 않으시고, 소수의 믿는 자들에게만 자기를 나타내려 하시느냐는 질문이죠. 예수님의 영향력이 세상에서 빠르게 확대되길 기대한 제자들에게 예수님 하시는 말씀은 좀 답답하게 느껴졌나 봅니다.
이에 예수님은 이렇게 대답하십니다. “사람이 나를 사랑하면 내 말을 지키리니 내 아버지께서 그를 사랑하실 것이요 우리가 그에게 가서 거처를 그와 함께 하리라” 예수님이 무슨 뜻으로 이 말을 하시는지 아시겠습니까? 하나님께서 세상에 그분을 나타내시는 방식을 말씀하고 계신 것입니다.
하나님은 예수님 사랑하는 마음으로 다른 사람을 사랑하는 이에게 오셔서 거처를 그와 함께하시리라 합니다. 그 사랑하는 이의 삶의 자리가 이 세상 속 하나님의 자리가 되리란 뜻입니다. 그리고 그것이 사람이 이 세상에서 하나님을 인식하는 방식이 되리란 뜻입니다.
세상에 예수님이 더 빨리 알려지길 바라는 마음에 사랑의 길이 아닌 다른 더 수월한 길이 없을까 생각하는 사람들에게 예수님은 ‘사랑의 복음이 사랑의 삶 속에서 전해져야 함’을 말씀하시는 것 같습니다.
제자의 길은 사랑의 길입니다. 예수님을 세 번 부인한 일로 송구한 마음에 물고기 잡으러 돌아간 시몬 베드로에게 부활하신 예수님이 다시 찾아가 물으신 것은 단 하나,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우리 입에서 나오는 멋진 말들, 우리가 가진 탁월한 자질과 능력, 우리가 행하는 좋은 일들… 하지만 바울은 무엇을 말합니까? “거기에 사랑이 없으면 아무것도 아니다!”
우리는 어떻게 사랑할 수 있을까? 사람 사랑하는 일도, 하나님 증거하는 일도, 모두 예수님 사랑하는 일에서 시작된다 합니다. 예수님을 보지도 못한 우리가 어떻게 예수님을 사랑할 수 있나? 이 기적같은 일이 실제 벌어지고, 이것은 예로부터 지금까지 많은 신자들 가운데서 사실입니다. “예수를 너희가 보지 못하였으나 사랑하는도다 이제도 보지 못하나 믿고 말할 수 없는 영광스러운 즐거움으로 기뻐하니 믿음의 결국 곧 영혼의 구원을 받음이라”(벧전2:8-9)
예수께서 우리를 어떻게 사랑하셨는지, 성경이 우리에게 밝히 알려주고 있지만, 만약 우리 주위에 그와 닮은 사랑 실천하는 사람이 하나도 없었다면, 오늘 우리는 이 자리에 없었을지 모릅니다. 예수님의 십자가 사랑이 또 다른 십자가 사랑을 낳고, 그 사랑이 계속 사람과 사람 사이에서 이어지고 이어져 오늘 우리에게까지 왔고, 그것이 하나님 사랑에서 발원한 것임을 마침내 우리가 깨달았을 때, 그때로부터 우리도 예수님 사랑하고 하나님 사랑하는 사람이 된 것입니다.
우리는 어떻게 사랑하며 살 수 있을까? “나를 사랑하는 자는 내 아버지께 사랑을 받을 것이요” 예수님 사랑하는 마음으로 다른 사람을 사랑하는 사람은 아버지 하나님의 사랑을 받으리라 합니다. 예수님이 그 아버지 사랑 안에서 끝까지 사랑의 길 걸어가셨던 것처럼, 오늘의 우리도 부어주시는 그 하나님 사랑 힘입어 예수님 가신 그 사랑의 길 따라갈 수 있을 것입니다.
오늘 본문 초두에서 예수님은 아버지의 집에 제자들을 위한 거처를 예비하시겠다 약속하시며 예수님의 길을 따라 아버지 하나님께 올 것을 말씀하셨습니다. 그런데 흥미롭게도 오늘 본문 말미에서 예수님은 그와 정반대 방향의 움직임을 말씀하십니다. 예수님의 길을 따라 사랑을 실천하며 아버지께로 나아가는 사람이 있는 곳에 하나님이 오시겠다, 거처를 그와 함께 하시겠다 하십니다. 말하자면 ‘그 길’에서 ‘그 집’을 경험하는 셈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여러분은 무엇을 위해 사십니까? 어디를 향해 어느 길로 걸어가고 계십니까? 예수님의 길을 따라가지 않고는 아버지 하나님께 올 수 없다 하십니다. 예수님 사랑하는 마음으로 서로 사랑하며 살아갈 때 그곳에 하나님이 오셔서 함께 하시며 그분을 세상에 나타내시겠다 하십니다. 이 말씀 따라, 아버지의 집을 사모하며 예수님의 길로 나아가는 우리 모두가 될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아멘.
기도하겠습니다.
사랑의 하나님 아버지, 예수님을 통해 우리에게 나타난 하나님의 사랑 다시금 마음에 새기며 감사를 드립니다. 그 예수님의 길을 따라 우리도 서로 사랑하며 세상에 하나님 잘 나타내며 살게 하여 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