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합예배 설교 – 2018. 05. 06

성경본문: 창세기 33장 1-11절

1. 오늘 본문은 오랜 타향살이 후에 고향으로 돌아오는 야곱이 그의 형 에서를 만나는 장면을 보여줍니다. 20년만의 만남이었습니다. 두 형제는 서로를 끌어안고 입을 맞추고 감격에 겨워 함께 웁니다. 그것은 단순한 만남이 아니라, 마음과 마음의 만남이었고, 오랫동안 미루었던 화해가 마침내 이루어지는 순간이었습니다.

2. 지난 4월 27일 한반도에서도 남북한 정상간에 감격적인 만남이 있었습니다. 2000년과 2007년에도 남한 대통령이 평양을 방문해 남북정상회담을 가진 적 있었지만, 그렇게 북한 지도자가 분단선을 넘어와 회담을 갖는 건 1953년 분단 이후 처음이었습니다. 그날 아침 남북을 가르는 분단선 앞에서 양측 지도자는 서로 만나 웃으며 악수를 나눴습니다. 이어 북측 지도자가 먼저 분단선을 넘어 왔고, 이어 즉흥적으로 남측 지도자를 이끌어 북쪽으로 다시 함께 넘어갔다 넘어왔습니다. 그 모습을 지켜본 사람들은 탄성을 질렀습니다. 한 뉴스 앵커의 말을 빌리자면, 그것은 “지난 65년간 남북을 갈라놓았던 그 분계선이란 것이 그처럼 서로가 마음먹기에 따라서는 얼마나 무의미하고 보잘 것 없는 선에 지나지 않는가 하는 것을 보여주는” 장면이었습니다.

3. 화해 그 자체를 반대할 사람은 아마 별로 없을 것입니다. 다만, 그 화해로 가는 길에서 치러야 할 대가를 생각할 때, 그럼에도 그 길을 가야 하는지, 그 길의 끝에서 과연 보람을 느낄 수 있을지, 확신하지 못하는 사람이 많을 뿐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원하든 원치 않든, 하나님은 궁극적으로 우리를 화해로 이끄시는 분입니다. 야곱과 에서를 화해로 이끄신 분도 하나님이시고, 요셉과 그의 형들을 화해로 이끄신 분도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은 또한 그리스도 안에서 세상이 자기와 화목하게 하셨으며, 또 우리에게 화목하게 하는 직분을 맡기셨습니다(고후5:19).

4. 그렇다고 하나님이 지금 당장 우리에게 화해를 강요하시진 않는 것 같습니다. 화해 그 자체가 목적이었다면 에서와 야곱이 그 순간을 위해 이십 년이나 기다려야 할 이유는 없었을 것입니다. 그 이십 년은 성숙을 위한 시간이었습니다. 그 성숙을 위한 인생수업이 어느 정도 마쳐졌을 때, 그리고 그들이 다시 만나기를 포기하지 않았을 때, 마침내 그들은 화해할 수 있게 되었던 것입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과 그의 후손들을 온 세상을 위한 축복의 통로로 부르셨고, 이를 위해 먼저 그들 안에서 화해와 성숙을 위해 일하셔야 했습니다. 그리고 같은 이유로 하나님은 우리 안에서도 그런 식으로 일하실 수 있습니다.

5. 그렇다면 야곱과 에서가 화해를 이루기까지 그 이십 년의 시간 동안 하나님은 그들 안에서 무슨 일을 하셨을까? 우선, 하나님은 그들을 ‘자족할 줄 아는 사람’으로 만들어가셨습니다. 9절에서 에서가 야곱에게 말합니다: “내 동생아 내게 있는 것이 족하니 네 소유는 네게 두라” 11절에서 야곱도 에서에게 말합니다: “내 소유도 족하오니 청하건대 내가 형님께 드리는 예물을 받으소서” 이 모습은 그들의 과거를 생각하면 많이 달라진 모습입니다. 일찍이 야곱은 아버지와 형을 속이고 형이 받을 복을 가로챈 사람이었습니다. 그리고 에서는 그 빼앗긴 것에 분노하여 야곱을 죽이려 했던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이제 그들은 달라져 있습니다. 자족할 줄 아는 사람들이 되어, 서로를 후히 대하고 있습니다.

6. 형을 피해 외삼촌 라반의 집으로 간 야곱은 그 후 이십 년간 그 집 가축 돌보는 일을 합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야곱이 이르는 곳마다 복을 주셔서 수효가 번성케 하십니다. 하지만 라반은 야곱에게 약속한 품삯을 열 번이나 변경하는 등 속임수를 일삼습니다. 전에 속임수로 남의 복을 가로챘던 야곱이 이제 남의 속임수에 자기 복을 빼앗기는 상황이 된 것입니다. 그 과정에서 야곱은 깨달아갑니다. 진정한 복은 그런 눈에 보이는 것들이 아니라, 그와 함께 하시는 하나님 자신이라는 것을 말입니다. “그러할지라도 내 아버지의 하나님은 나와 함께 계셨느니라”(31:5b) 즉, 사람이 속임수로 남의 소유물을 빼앗을 수는 있어도, 그와 함께 하시는 하나님을 빼앗을 수는 없다는 것… 이 깨달음 속에서 비로소 그는 자족하며 너그러운 사람이 되어갔던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