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연합 예배 (2020년 3월 1일)
- 요한복음 9장 1-7절
- 설교자: 손신일 목사
- 20.03.01 合同礼拝 한글.docx
<요한복음 9장 1-7절>
- 예수께서 길을 가실 때에 날 때부터 맹인 된 사람을 보신지라
- 제자들이 물어 이르되 랍비여 이 사람이 맹인으로 난 것이 누구의 죄로 인함이니이까 자기니이까 그의 부모니이까
-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이 사람이나 그 부모의 죄로 인한 것이 아니라 그에게서 하나님이 하시는 일을 나타내고자 하심이라
- 때가 아직 낮이매 나를 보내신 이의 일을 우리가 하여야 하리라 밤이 오리니 그 때는 아무도 일할 수 없느니라
- 내가 세상에 있는 동안에는 세상의 빛이로라
- 이 말씀을 하시고 땅에 침을 뱉어 진흙을 이겨 그의 눈에 바르시고
- 이르시되 실로암 못에 가서 씻으라 하시니 (실로암은 번역하면 보냄을 받았다는 뜻이라) 이에 가서 씻고 밝은 눈으로 왔더라
지금 세계는 신형 코로나바이러스의 확산을 두려워하고 있습니다. 중국의 우한에서 시작하여 일본과 한국에서도 환자가 늘어나고 있으며 여러 나라에서 입국제한 등의 조치가 취해지고 있습니다. 체코는 아직 환자가 안 나온 것으로 알려지고 있습니다만, 이탈리아에서 확산된 상황에서 앞으로 어떻게 대처해 나가야 하는지 정치적인 판단이 요구되는 시점에 있습니다.
신형 코로나바이러스의 감염자는 당분간 사회로부터 격리됩니다. 감염의 확산을 막기 위해 필요한 조치입니다만, 한편으로 감염자의 인권을 침해할 우려가 있는 것도 부정할 수 없습니다. 일본에서는 대형 크루즈선에서의 집단감염에 대한 대처방법이 문제가 되었습니다.
구약성경 레위기13장에 피부병에 관한 규정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에 의하면, 피부에 습진 등의 이상이 생기고 피부병이 의심되었을 때에는, 제사장에게 가서 그 병이 부정한지의 판단을 받게 되어 있습니다. (한글 성경의 ‘나병’이라는 표현은 정확하지 않은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제사장이 판단을 유예한 경우에 환자는 7일간 격리됩니다. 격리 후에 다시 제사장이 진단하여 증상이 나아지면 정하다는 판정을 받고 격리에서 풀려나게 됩니다만, 나아지지 않았을 경우에는 다시 7일간의 격리를 받게 되어 있습니다.
피부병이 치유되어서 ‘정하다’는 판정을 받은 자는, 정결함을 받을 자의 의식을 치러서 정해진 예물을 드려야 했습니다. 레위기14장에 이에 대한 자세한 규정이 기록되어 있습니다만, 우리는 레위기의 규례와는 상관없이 살고 있습니다.
하지만, 감염병자를 격리한다는 점에서 보면, 현대의 삶이 레위기의 규례와 전혀 무관하다고는 말할 수 없을 것 같습니다. 다만, 감염에서 치유 받아서 격리에서 풀릴 수 있는지를 판단하는 것은 제사장이 아니라 의사가 되었으며, 치유되어서 하나님께 드리는 정결함을 받는 자의 의식은 없어졌습니다.
감염자를 격리시키는 일은 감염의 확산을 막기 위하여 필요한 조치입니다. 그러나 감염자의 격리가 의학적인 근거없이 행해진 역사를 우리는 가지고 있으며, 그 대표적인 사례가 한센병(나병)환자의 격리입니다.
한센병은 나병이라 불려 왔고, 레위기에서 말하는 부정한 피부병과 동일시되기도 하였습니다. 성경 안에 ‘나병’이라는 표현이 있어서, 일부의 성경해석이 한센병 환자에 대한 차별을 조장하지 않았을까 하는 반성도 하고 있습니다.
일본에서는 근대국가가 형성된 후, 한센병 환자에 대한 격리정책이 취해져 왔습니다. 2차대전 후에도 격리정책이 이어지고 환자들의 인권이 침해되고 있었는데, 1996년에 겨우 환자를 격리시키는 법이 파기됩니다. 그러나 법과는 달리 지금도 호텔의 숙박거부 등의 차별이 남아 있는 것이 현실입니다.
한센병은 건강한 사람에게 감염되지 않는다고 증명되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센병 환자에 대한 차별의식은 사라지지 않고 있습니다. 그 이유는, 감염병에 대한 본능적인 공포인지, 아니면 차별하는 대상을 구해야만 하는 인간의 습성이라 해야 하는지요?
체코의 역사에서는, 14세기에 페스트가 유행했을 때, 프라하에서 3천명이나 되는 유대인이 학살당했던 일이 있었다고 합니다. 당시의 유대인들은 유대인 지구에 격리되었습니다만, 기독교신자가 아니라는 것과 이민족이었던 것이 박해와 차별에 알맞은 표적이 되고 말았습니다. 정체를 알 수 없는 병마에 대한 공포가 사회에 광기를 가져왔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이번 신형 코로나바이러스의 확산을 계기로, 유럽에서 아시아인에 대한 차별이 드러나고 있다고 합니다. 외국인에 대한 차별은 어느 나라에도 숨어 있기 마련입니다만, 감염병의 유행이라도 있으면 곧바로 표면에 나타나게 된다는 것은 고금동서 변하지 않는 현상입니다.
우리 사회는 어떤 종류의 병을 가진 사람들을 격리하고 있습니다. 보흐니쩨병원에 격리되어 있는 환자들에 대해서는 필요한 조치라고 보고 있습니다. 감염병환자의 격리도 같습니다. 하지만, 격리보다도 더 중요한 것은 환자들을 보는 눈과 접하는 태도가 되겠습니다.
비록 세상이 편견과 차별로 흘러간다 하더라도, 주님의 교회는 민족이나 병을 인해서 사람을 차별하는 일이 있어서는 안 될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복음은 사람을 차별하지 않기 됩니다. 환자를 격리시켜야만 한다고 해도, 그들에게 편견을 가지거나 차별하는 것을 주님은 결코 허락하시지 않을 것입니다.
날 때부터 맹인 된 사람에 대해서 제자들이 예수께 물었습니다. “이 사람이 맹인으로 난 것이 누구의 죄로 인함이니이까 자기니이까 그의 부모니이까” 당시의 사람들은 날 때부터의 장애는 누군가의 죄로 인한 것이라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주님께서 대답하셨습니다. “이 사람이나 그 부모의 죄로 인한 것이 아니라 그에게서 하나님이 하시는 일을 나타내고자 하심이라”
제자들과 당시의 사람들에게, 이 주님의 말씀은 큰 놀라움이었으며 동시에 눈을 뜨게 하는 말씀이었을 것입니다. 눈이 안 보이는 분에게는 문자 그대로 복음의 말씀이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주님의 이 말씀은 병이나 장애가 있는 사람을 모든 죄책감으로부터 해방하고, 그들에게 향해 있던 편견과 차별을 몽땅 근거 없는 것으로 만들기 때문입니다.
나아가서, 병이나 장애가 하나님의 일을 나타내기 위한 것이라고 한다면, 그것은 저주도 재앙도 아니고, 오히려 하나님의 축복의 통로라고도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인간 사회로부터 격리되는 병이나 장애는 결코 누군가의 죄의 결과가 아니라 하나님의 뜻이 나타나기 위한 것이라고 주께서 말씀하셨던 것입니다.
“때가 아직 낮이매 나를 보내신 이의 일을 우리가 하여야 하리라 밤이 오리니 그 때는 아무도 일할 수 없느니라 내가 세상에 있는 동안에는 세상의 빛이로라”
때는 절박합니다. 주님의 교회는 빛이신 주님과 함께 하나님의 일을 행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일은 사람들의 눈을 여는 것과도 비유됩니다. 주님께서 침으로 진흙을 비벼서 눈먼 자의 눈에 바르시고는, 실로암 못가로 가서 씻으라 하셨습니다. ‘실로암’은 보냄을 받았다는 뜻입니다.
‘보냄을 받았다’ 하는 이름의 연못에서 주님이 바르신 흙을 눈에서 씻자 그 맹인은 볼 수 있게 되었습니다. 눈이 열리고 그 사람 또한 하나님으로부터 보냄을 받은 자로서 세상을 향하게 된다는 것이겠습니다. 빛의 주님으로 말미암아 눈을 열게 된 자는 빛의 주님으로부터 보냄 받은 자로 세상을 섬기게 되는 것입니다.
레위기는 피부병을 앓고 ‘부정하다’고 선고된 자가 치유되고 정결함을 받을 때 정해진 의식을 행하도록 명하고 있었습니다. 실로암 연못에서 눈을 씻는 일이 정결함을 받을 자의 의식과 같은 것이었다고 이해해도 틀리지는 않을 것입니다. 이 의식으로 정결함을 받고 하나님께 보냄 받은 자가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십자가의 복음을 믿는 믿음 가운데 세례를 받아 죄에서 벗어납니다. 주님의 은혜로 정결함을 받아 하나님의 일에 나서기 위해서 세상으로 보냄 받습니다. 주님의 교회는 주닝의 은혜 가운데 정결함을 받고 있는 것이며, 부정한 자를 격리시켜서 정결한 것은 아닙니다.
주님의 십자가 아래, 부정하다고 격리 받아야 할 사람은 한 사람도 없습니다. 주님의 십자가는 모든 중간에 막힌 담을 헐어 없앱니다. 우리 마음 속에 숨어 있는 편견이나 차별을 깨끗이 씻어내는 것이 주님의 십자가입니다. “하나님께서 깨끗하게 하신 것을 네가 속되다 하지 말라” (행10:15)
역사상 여러 감염병이 인간 사회를 위협해 왔습니다. 이번 신형 코로나바이러스도 사람들을 공포에 몰아 큰 혼란을 가져오고 있습니다. 신속하게 감염환자를 격리시키고 바이러스가 확산하지 못하도록 하는 일이 당면한 과제인 것은 틀림없습니다.
하지만, 감염병이 가져오는 재앙은 병 그 자체로 끝이 아닙니다. 한센병이나 에이즈 등 근거 없는 편견과 차별을 배양하는 토양이 되기도 합니다. 새로운 감염병에 대한 공포심은 사람들을 패닉으로 빠지게 합니다. 현대 사회에서는 페스트에 대한 공포로 인해서 유대인들을 학살한 것과 같은 일은 있을 수 없다고 단언할 수 있는지요?
주님의 교회에 맡겨진 일은, 지금의 감염병 사태가 사람들 마음에 편견과 차별을 심어 놓지 않도록 하나님의 말씀을 전할 일이 되겠습니다. 바이러스 확산을 계기로 차별을 조장하는 사람들을 향해서는 단호하게 선포해야 할 것입니다. “이 사람이나 그 부모의 죄로 인한 것이 아니라 그에게서 하나님이 하시는 일을 나타내고자 하심이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