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인 예배 (2020년 8월 16일)
- 로마서 3장 19-24절
- 설교자: 류광현 목사
- 예수 그리스도 - 하나님의 의 - 롬3,19-24.docx
<로마서 3:19-24> – 개역개정
19 우리가 알거니와 무릇 율법이 말하는 바는 율법 아래에 있는 자들에게 말하는 것이니 이는 모든 입을 막고 온 세상으로 하나님의 심판 아래 있게 하려 함이라
20 그러므로 율법의 행위로 그의 앞에 의롭다 하심을 얻을 육체가 없나니 율법으로는 죄를 깨달음이니라
21 이제는 율법 외에 하나님의 한 의가 나타났으니 율법과 선지자들에게 증거를 받은 것이라
22 곧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모든 믿는 자에게 미치는 하나님의 의니 차별이 없느니라
23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더니
24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속량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은혜로 값 없이 의롭다 하심을 얻은 자 되었느니라
하나님의 은혜와 평강이 여러분과 함께하시길 기원합니다.
앞에서 바울은 모든 사람이 죄 아래에 있다고 선언했습니다. 율법을 알지 못하는 이방인들만 죄에 사로잡혀 있는 것이 아니라, 율법을 통해 무엇이 바른 길인지 아는 유대인들도 죄의 권세 아래 있다는 것입니다.
본래 율법은 죄로 물든 세상을 바로 잡기 위해 주어졌던 것인데, 그 율법 아래 있는 사람들조차 죄에 사로잡혀 버리면서, 이제 율법은 사람을 죄에서 구원하는 기능을 하지 못하고, 정죄와 심판에 근거를 제공하는 역할에 머물게 됩니다.
온 세상이 유죄로 판명되어 하나님의 심판을 받아 마땅하게 되었다, 누구도 율법의 행위로 하나님 앞에 의롭다 하심을 얻을 수 없다, 율법으로는 그저 죄를 깨달을 뿐이라고 바울은 말합니다.
이런 장면을 연상할 수 있겠습니다. 온 세상 모든 사람이 하나님의 법정에 피고인으로 소환되어 있고, 율법이라는 이름의 검사가 각 사람의 죄를 지적하며 기소합니다. 피고인들에게는 자신을 변호할 기회가 주어지지만, 제기된 증거들이 너무도 확실하고 무거워 아무도 입을 열지 못합니다.
사도 바울은 여기까지 가차없이 몰고 온 것입니다. 하나님 대신 우상을 숭배하고 온갖 나쁜 짓을 저지르는 자들은 ‘핑계치 못한다’(1:20). 다른 이의 잘못은 잘도 지적하면서 정작 자기도 같은 일을 행하는 자들은 ‘핑계치 못한다’(2:1).
모두가 죄 아래에 있다! 모두가 율법의 정죄 아래에 있다! 모두가 하나님의 심판 아래에 있다! 이것이 인류가 처한 곤경이며, 우리 각자가 처한 현실입니다.
그런데 이것은 또한 하나님 자신이 처한 곤경이기도 했습니다. 이제 하나님은 어떻게 하셔야 하는가? 이스라엘 민족과 율법을 통해 세상을 구원하시려는 계획이 그처럼 수포로 돌아간 듯한 상황에서, 이제 하나님은 어떻게 하셔야 하는가?
이제는… But now… 그러나 이제는… 이 짧은 전환구와 함께 비로소 바울은 복음의 핵심을 말하기 시작합니다.
이제는 율법 외에 하나님의 한 의가 나타났으니… 하나님께서 친히 다시 움직이셨다! 새로운 하나님의 의가 이제 다시 나타났다!
‘하나님의 의’라는 말이 생소할 것입니다. 히브리 배경에서 ‘의’라는 말은 관계적 개념입니다. 한 사람이 다른 사람과의 관계에서 약속한 것을 지키고 의무에 충실할 때 이를 ‘의롭다’ 합니다.
바로 이런 의미에서 하나님은 ‘의로우신’ 분입니다. 율법의 언약을 통해 이스라엘의 하나님이 되시겠다 약속하신 하나님은, 그후로 계속해서 그 언약을 따라 이스라엘을 돌보시고 구원하셨으며, 바로 그런 식으로 하나님의 의를 나타내셨습니다.
이스라엘이 그 언약에 충실하지 못했을 때에도, 하나님은 그분의 의를 변함없이 나타내셨고, 이를 통해 자기 백성을 다시 또다시 바로 세워주고자 하셨습니다.
그런데 이제 새로운 하나님의 의가 나타났다고 합니다. 이스라엘을 넘어 모든 사람을 구원하여 다시 바로 세우시는 하나님의 의로운 행동이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이 나타났다는 것입니다.
이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은 기존의 율법과 구별되는 것이면서, 또한 그것과 연속선상에 있다고 바울은 말합니다. 이 복음은 이스라엘의 선지자들이 전에 예언했던 일이 이제 실제로 일어난 것이며, 하나님께서 이전의 약속을 성취하시면서 더 나은 약속에로 초대하시는 사건이란 것입니다.
이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나타난 새로운 하나님의 의, 새 언약, 하나님의 복음에 관해 오늘 본문에서 바울은 세 가지 중요한 사실을 말해줍니다.
첫째로, 예수 그리스도는 인류의 죄 문제에 대한 하나님의 해결책입니다.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더니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속량으로 말미암아…
여기 아폴리트로시스apolytrosis – ‘속량’이란 단어가 나옵니다. ‘구속’redemption이라 번역되기도 합니다. ‘팔렸던 노예나 물건을 값을 치르고 되사는 것’을 뜻하는 단어입니다.
이스라엘 사람 중 하나가 가난하게 되어 다른 사람에게 종으로 팔리면, 그 형제나 친척 중 하나가 값을 지불하고 그를 자유케 해줄 수 있었는데, 이것이 ‘속량’(구속)입니다.
과거 이집트 파라오 아래 있던 히브리 노예들을 속량하신 하나님(출15:13), 또 바벨론 포로 이스라엘을 속량하여 고국으로 돌려보내신 하나님이(사43:1), 이제 다시 죄의 권세 아래 팔려 있는 우리 모두를 속량하여 하나님의 것으로 돌리신다는 것입니다.
이 속량을 위한 값으로 지불되는 것을 일컬어 ‘속전’이라 합니다. 죄에 포로된 우리를 속량하여 다시 하나님께 속하게 하시려고,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가 속전으로 지불되었습니다.
그가 우리 모든 죄인을 대신하여 십자가에 달렸습니다. 죄 아래에 팔린 모든 사람을 그 압제에서 해방하려고, 그가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내어주었습니다(막10:45).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속량으로 말미암아…
죄의 권세 아래 있던 우리 모두가 자유케 될 수 있다는 것, 이것이 복음입니다!
둘째로,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를 다시 바로 세우시는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값 없이 의롭다 하심을 얻은 자 되었느니라…
‘의롭다 하심을 얻는다’는 말은, 죄 아래 있던 우리를 속량하신 후에, 또한 의롭다 선언하시며 다시 하나님 앞에 서게 하신다는 뜻입니다. 팔렸던 데서 해방해 주시는 것만도 과분한데, 우리와의 관계를 다시 시작하신다는 것입니다.
어떤 근거에서 하나님은 그렇게 하십니까? 의로우신 하나님이 불의한 자를 의롭다 선언하는 일이 어떻게 가능합니까?
이 질문에 대한 하나님의 대답은 ‘십자가’입니다. 하나님께서 ‘경건치 않은 자를 의롭다 하실’(4:5) 수 있는 근거는 ‘그리스도께서 경건치 않은 자를 위하여 죽으셨다’(5:6)는 것입니다.
인류 역사상 가장 위대하고 심오한 노래가 구약성경 이사야 53장에 나옵니다. 고난 받는 종의 노래… 그는 실로 우리의 질고를 지고 우리의 슬픔을 당하였거늘 우리는 생각하기를 그는 징벌을 받아 하나님께 맞으며 고난을 당한다 하였노라…
하나님의 종이 대신 당하는 고난과 죽음이 다른 많은 사람을 의롭게 하는 길이 되고, 하나님의 뜻을 성취하는 길이 된다는 이 심오한 사상이, 이미 이스라엘의 한 선지자를 통해 예언되었고, 바로 그 길을 따라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가 걸어갔습니다.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 때문이었고,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 때문이었습니다. 그가 징계를 받으므로 우리는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으므로 우리는 나음을 받습니다.
나의 의로운 종이 자기 지식으로 많은 사람을 의롭게 하며 또 그들의 죄악을 친히 담당하리로다…
‘값없이 의롭다 하심을 얻었다’고 바울이 말할 때, 여기서 ‘값없이’란 말은 우리 입장에서 그렇다는 것입니다. 하나님 입장에서는 더없이 비싼 값을 치르셨지만, 우리 입장에서는 아무 공로 없이 공짜로 얻게 된다는 말입니다.
그러므로 바울은 ‘하나님의 은혜’를 말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구원은 전적으로 그분의 선물이라는 것입니다. 이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은 우리에게 다시 시작하자 하십니다. 이 복음 안에 깃든 하나님의 은혜가 전에 엇나갔던 우리를 다시 바로 세우는 구원의 능력이 됩니다.
“그리스도인은 우리가 선하기 때문에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시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먼저 우리를 사랑하셨기 때문에 우리를 선하게 만드신다고 생각합니다. 창 자체가 밝아서 햇빛을 끌어당기는 것이 아니라, 햇빛이 먼저 창을 비추었기 때문에 밝아지는 것처럼 말입니다.”(Lewis)
마지막으로, 우리가 구원받는 길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모든 믿는 자에게 미치는 하나님의 의니 차별이 없느니라…
하나님의 의는 자기 백성을 구원하고자 뛰어드시는 하나님의 의로운 행동이므로, 그 하나님의 의가 미친 곳에 하나님의 구원이 임합니다.
새로운 하나님의 의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나타났습니다. 이천 년 전 골고다 언덕 십자가에 달린 한 죄없는 죄수를 통해, 하나님은 온 인류의 구원을 위한 결정적인 일을 행하셨습니다.
이후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바라시는 것은 이것을 믿는 것입니다. 그리스도가 우리를 위해 죽임을 당했으며, 그 죽음이 우리의 죄를 씻어 주었고, 그가 죽음으로써 죽음의 세력이 힘을 잃었다는 것, 이것을 믿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모두를 사랑하셔서 행하신 이 일을 믿음으로 받아들이며, 이것을 토대로 그분과의 관계를 다시 시작하는 것입니다.
우리 죄에 대한 대가를 하나님의 아들이 대신 치르고 죽으셨다는 이 엄청난 사실이 우리 안에 믿음을 불러일으킬 때, 우리는 다시 태어나고 다시 바로 설 수 있습니다.
그 새로운 하나님의 의는 모든 믿는 자에게 미친다 합니다. 유대인이든 이방인이든, 죄를 많이 지었든 적게 지었든, 그 사람이 누구든 간에, 이 예수 사건이 바로 나를 위한 것이었음을 믿는 모든 자에게 구원이 임할 것입니다.
구원은 얽매였던 것에서 해방되는 일입니다. 팔려 있던 곳에서 벗어나는 일입니다. 닫혀 있던 눈이 열리는 것이며, 할 수 없던 일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구원은 어그러진 상태에서 온전케 되는 일입니다. 죽을 것이 살아나는 일입니다. 원래 있어야 할 곳으로 옮겨지는 일이며, 이전과는 다른 생명으로 살게 되는 일입니다. 구원은 하나님 품에 안기는 것, 그래서 진정한 자아를 찾게 되는 일입니다.
복음이 그것을 약속합니다. 복음이 그것을 가능케 합니다. 복음을 믿을 때 그 일이 이루어집니다. 그래서 복음은 하나님의 능력입니다. 사람을 구원하는 하나님의 능력입니다.
모든 사람이 죄 아래 있기에, 모든 사람이 구원을 필요로 하며, 그러므로 모든 사람이 믿어야 합니다!
믿음의 대상은 예수 그리스도, 그가 우리의 길이요 진리요 생명입니다! 그를 믿는 자는 구원을 얻을 것입니다. “주 예수를 믿으라 그리하면 너와 네 집이 구원을 받으리라”(행16:31)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사도 바울이 전하는 복음을 잘 들으셨습니까?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의 의가 새로이 나타났습니다. 죄 아래에 있는 우리 모두를 다시 바로 세우기 위한 하나님의 의로운 행동이 나타났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인류의 죄 문제에 대한 하나님의 해결책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를 다시 바로 세우시는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구원받는 길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참으로 믿고 하나님의 구원을 경험하는 우리 모두가 될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아멘.
기도하겠습니다.
사랑의 하나님 아버지, 당신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우리에게 베풀어주신 구원의 은혜에 감사드립니다. 우리를 죄의 권세에서 해방하기 위해 그가 우리 대신 십자가에 달렸음을 참으로 믿게 하시고, 이 은혜의 복음 안에서 하나님의 구원을 온전히 경험하게 하여 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