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인 예배 (2019년 6월 9일)
- 시편 17:1-15
- 설교자: 류광현 목사
- 주의 기이한 사랑을 나타내소서 - 시편17,1-15.docx
<시편 17편 1-15절>
1 여호와여 의의 호소를 들으소서 나의 울부짖음에 주의하소서 거짓 되지 아니한 입술에서 나오는 나의 기도에 귀를 기울이소서
2 주께서 나를 판단하시며 주의 눈으로 공평함을 살피소서
3 주께서 내 마음을 시험하시고 밤에 내게 오시어서 나를 감찰하셨으나 흠을 찾지 못하셨사오니 내가 결심하고 입으로 범죄하지 아니하리이다
4 사람의 행사로 논하면 나는 주의 입술의 말씀을 따라 스스로 삼가서 포악한 자의 길을 가지 아니하였사오며
5 나의 걸음이 주의 길을 곧게 지키고 실족하지 아니하였나이다
6 하나님이여 내게 응답하시겠으므로 내가 불렀사오니 내게 귀를 기울여 내 말을 들으소서
7 주께 피하는 자들을 그 일어나 치는 자들에게서 오른손으로 구원하시는 주여 주의 기이한 사랑을 나타내소서
8 나를 눈동자 같이 지키시고 주의 날개 그늘 아래에 감추사
9 내 앞에서 나를 압제하는 악인들과 나의 목숨을 노리는 원수들에게서 벗어나게 하소서
10 그들의 마음은 기름에 잠겼으며 그들의 입은 교만하게 말하나이다
11 이제 우리가 걸어가는 것을 그들이 에워싸서 노려보고 땅에 넘어뜨리려 하나이다
12 그는 그 움킨 것을 찢으려 하는 사자 같으며 은밀한 곳에 엎드린 젊은 사자 같으니이다
13 여호와여 일어나 그를 대항하여 넘어뜨리시고 주의 칼로 악인에게서 나의 영혼을 구원하소서
14 여호와여 이 세상에 살아 있는 동안 그들의 분깃을 받은 사람들에게서 주의 손으로 나를 구하소서 그들은 주의 재물로 배를 채우고 자녀로 만족하고 그들의 남은 산업을 그들의 어린 아이들에게 물려 주는 자니이다
15 나는 의로운 중에 주의 얼굴을 뵈오리니 깰 때에 주의 형상으로 만족하리이다
하나님의 사람들이 하나님의 사람 답게 살 수 있는 비결은 무엇일까?
그것은 그들 안에서 역사하는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그것은 나 자신이나 다른 사람의 눈에 즉각적으로 보이진 않지만,
결정적인 순간마다 확실하게 역사하는 사랑,
우리를 구원으로 이끄는 사랑입니다.
그래서 시인은 그 사랑을 ‘주의 기이한 사랑’이라 한 것 같습니다.
7절에, “주께 피하는 자들을 그 일어나 치는 자들에게서 오른손으로 구원하시는 주여 주의 기이한 사랑을 나타내소서”
그런데 이 주님의 사랑은 어느 특정한 순간에만 우리와 함께하는 것일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그 주님의 사랑은 주님을 사랑하는 사람들과 늘 함께할 것입니다!
그 한결같은 사랑이 결국 그들을 구원의 길로 인도할 것입니다.
그들의 기도에, 그들의 걸음에, 그들의 갈망에 그 주의 기이한 사랑이 역사함으로
그들의 기도는, 그들의 걸음은, 그들의 갈망은 여느 사람의 것과 차이를 드러내고,
그들의 삶을 하나님의 사람다운 기이한 능력의 삶으로 이끌어갈 것입니다.
오늘 본문의 표제를 보면 ‘다윗의 기도’라 되어 있습니다.
아시다시피 다윗은 고난을 많이 겪은 사람이었습니다.
하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사실이 있는데,
그는 그 고난의 현실 속에서 기도했던 사람이라는 사실입니다.
고난이 다윗을 다윗답게 빚어냈다는 말은 부분적으로만 옳습니다.
그 고난 중에 그가 기도로 하나님께 나아가지 않았다면,
그는 그와 같은 모습으로 빚어질 수 없었을 것입니다.
지금 내가 하나님과, 또 다른 사람들과 어떤 관계 속에 있느냐가
궁극적으로 나의 참모습을 형성하고, 또 드러낼 것입니다.
본문 1절에 “거짓 되지 아니한 입술에서 나오는 나의 기도”라는 표현이 있습니다.
어떤 기도가 좋은 기도일까요?
거짓 되지 아니한 입술에서 나오는 기도,
진실한 마음에서 흘러나오는 기도,
그것이 하나님께서 귀 기울여 들으실 기도라는 것입니다.
기도하려고 앉았는데, 내 마음이 겉도는 것 같은 느낌일 때가 있습니다.
내 마음이 하나님을 정면으로 향하지 못하고 빗겨 서 있는 느낌일 때가 있습니다.
기도 중에 내 입술이 무언가를 말하고 있지만,
거기 내 진심이 담긴 것 같지 않은 느낌일 때가 있습니다.
가식적이고 싶어서 가식적인 것이 아니라,
거짓말처럼 참말하기, 참말처럼 거짓말하기에 길들여진 우리 입술이
어느덧 진심으로 말하는 법을 잠시 잊어버렸기 때문은 아닐까?
하지만 포기하지 않고 다시 또 다시 하나님께 나아가다 보면,
우리는 잃어버린 기도의 언어를 다시 찾을 수 있게 될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기도는 하나님 앞에 진심으로 나아가는 일입니다.
사랑하는 사람들끼리의 대화에서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진실함일 것입니다.
서로 진실하지 않은 관계는 오래가지 못하고 건강하기 어렵습니다.
그 속에 하나님 사랑이 흐르고 있는 사람은 하나님께 진실하게 말하고 싶을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마음을 있는 그대로 들여다 보시는 분이며,
기도는 그런 하나님 앞에 서는 일입니다.
기도 중에 꼭 많은 말이 필요한 건 아닐 것입니다.
내 마음 깊은 곳에서 하나님을 향해 흘러나오는 진실한 말 한 마디여도 족할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와 그 진심어린 소통을 하시려고 우리에게 성령을 보내주셨습니다.
로마서 8장 26-27절에 말씀합니다.
“이와 같이 성령도 우리의 연약함을 도우시나니 우리는 마땅히 기도할 바를 알지 못하나 오직 성령이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위하여 친히 간구하시느니라 마음을 살피시는 이가 성령의 생각을 아시나니 이는 성령이 하나님의 뜻대로 성도를 위하여 간구하심이니라”
성령 안에서, 거짓 되지 아니한 입술로 하나님께 기도하는 우리 모두가 될 수 있길 바랍니다.
이어 5절에 “나의 걸음이 주의 길을 굳게 지키고”라는 표현이 있습니다.
어떤 걸음이 복된 삶의 걸음일까요?
주의 길을 굳게 지키는 걸음이 복된 걸음입니다.
인생길을 가는 동안 우리는 수많은 고난과 위험과 유혹의 상황을 만납니다.
때로는 황당하고 억울하고 화나는 상황도 만날 것입니다.
그 때마다 주의 말씀을 따라 내 마음과 걸음을 굳게 지키지 않으면,
우리 역시 포악하고 교만한 길로 휩쓸려 버리고 말 것입니다.
‘주의 길’이란 하나님이 기뻐하시고 인정하시는 길을 말합니다.
하나님은 그분의 말씀을 통해, 또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우리가 마땅히 가야할 길을 알려 주셨습니다.
그것은 단순히 옳은 길이기만 한 것이 아니라,
우리가 참으로 살 길이요, 후회하지 않을 복된 길입니다.
때로 그 길을 따르는 것은 어리석어 보이기도 하고 무력해 보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믿음과 소망 가운데 그 길을 걸을 때 주님의 기이한 사랑이 역사합니다.
당장엔 세상적으로 약게 행동하는 사람이 유리하고 이기는 것 같아도,
결국엔 하나님 사랑 의지하고 주의 길을 굳게 지키는 사람이 영광을 얻을 것입니다.
다윗은 고난 가운데서도 주의 길을 굳게 지키려 애쓰며 기도합니다.
“나를 눈동자 같이 지키시고 주의 날개 그늘 아래에 감추사… 나를… 악인들과… 원수들에게서 벗어나게 하소서”
주님의 길을 따르며 그분을 피난처로 삼을 때 우리는 가장 안전할 것이고,
악인의 손에서만이 아니라 악의 덫으로부터도 벗어날 수 있을 것입니다.
어쩌면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많은 말씀이 아니라,
우리를 주의 길로 이끌고 붙들어 줄 ‘한 말씀’일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에게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그 말씀에 대한 어떤 심오한 해석이 아니라,
그 말씀에 순종하려는 단호한 의지와 결단일 것입니다.
물론 삶은 복잡하고 어렵습니다.
그래서 많이 고민하고 많은 걸 고려해야 합니다.
그러나 무엇보다 먼저 내 안에 말씀에 순종하려는 단호한 결심이 서 있을 때,
적어도 우리의 고민과 고려는 순종할 수 없는 이유는 찾는 데 허비되지 아니하고,
순종을 위한 최선의 한 걸음을 내딛는 데 기여할 수 있을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예수님의 길 위에 세우시려고 우리에게 성령을 보내주셨습니다.
요한복음 14장 26절에서 예수님은 말씀하셨습니다.
“보혜사 곧 아버지께서 내 이름으로 보내실 성령 그가 너희에게 모든 것을 가르치고 내가 너희에게 말한 모든 것을 생각나게 하리라”
성령 안에서 늘 주의 길을 굳게 지키며 걸어가는 우리 모두가 되길 바랍니다.
마지막으로, 우리는 무엇을 갈망하며 살아야 할까 생각해봅니다.
14절에 “이 세상에 살아 있는 동안 그들의 분깃을 받은 사람들”이라는 표현이 나옵니다.
이 세상에서의 수고의 대가를 이 세상에서 받아 누리고자 하는 사람들을 말합니다.
이 땅에서 부자가 되거나 유명해지는 것을 목표로 달려가는 사람들…
인생의 목적을 여기서 누릴 거 다 누리고, 남은 건 내 자식이 누리게 하는 데 두고 사는 사람들을 말합니다.
다윗은 하나님께 기도합니다: “그들에게서 주의 손으로 나를 구하소서”
그들의 길을 따르지 않게 해달라는 간구입니다.
그 사람이 사랑하고 욕망하는 것이 그 사람이 어떤 사람인가를 나타낸다는 말이 있습니다.
그럼 다윗이 사랑하고 욕망하던 것은 무엇인가?
15절에, “나는 의로운 중에 주의 얼굴을 뵈오리니 깰 때에 주의 형상으로 만족하리이다”
다윗이 갈망하는 것은 ‘주의 재물’이 아니라 ‘주의 얼굴’입니다.
하나님으로부터 얻는 무언가가 아니라 하나님 그분입니다.
그가 소망하는 것은 주님 앞에 설 때 떳떳하게 그분의 얼굴을 뵙는 것,
밤이 지나고 아침이 되어 깨어날 때 거리낌없이 그분을 뵙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으로서 우리는 무엇을 갈망하며 살 것인가?
이 땅에서 영원히 살 것 아니지 않습니까?
하나님께서 이제 그만 오라 하시면 가야 하지 않습니까?
지금 우리 눈에 보이는 것들은 결코 영원할 수 없는 것,
언젠간 사라질 것이며, 다 두고 가야 할 것입니다.
영원한 것은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영원한 것은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영원한 것은 하나님의 나라입니다.
확실한 것은 결국 우리 모두가 하나님 앞에 서게 되리란 사실입니다.
그때 여러분은 어떤 모습으로 그분의 얼굴을 뵐 것입니까?
하나님은 우리 마음이 그분을 향하게 하시려고 우리에게 성령을 보내주셨습니다.
로마서 5장 5절에 말씀합니다.
“소망이 우리를 부끄럽게 하지 아니함은 우리에게 주신 성령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 마음에 부은 바 됨이니”
성령은 우리 마음에 하나님 사랑을 부어주십니다.
성령 안에서 하나님을 갈망하고, 그 사랑에 만족할 수 있는 우리가 되길 바랍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은 성령강림절입니다.
약속대로 성령이 오셨고, 성령을 받은 사람들은 새로워졌습니다.
오늘의 우리도 새로워질 수 있습니다.
성령 안에서 새로워질 수 있습니다.
우리의 기도가 성령 안에서 진실한 기도가 될 수 있길 바랍니다.
우리의 걸음이 성령 안에서 주의 길을 굳게 지키는 걸음이 되길 바랍니다.
그리고 우리의 갈망이 성령 안에서 무엇보다 하나님을 향하고,
하나님 사랑에 만족하며 하나님 나라를 먼저 구하는 삶이 될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아멘.
기도하겠습니다.
사랑하는 주님, 우리에게 당신의 기이한 사랑을 나타내 주소서. 그 사랑 안에서 우리가 거짓 되지 않은 입술로 기도하게 하시고, 주의 길을 굳게 지키며 걸어가게 하시고, 무엇보다 주님을 갈망하며 살게 하여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