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인 예배 (2021년 11월 28일)
- 마태복음 25장 14-30절
- 설교자: 류광현 목사
- 착하고 충성된 종 - 마25,14-30.docx
<마태복음 25:14~30>
14 또 어떤 사람이 타국에 갈 때 그 종들을 불러 자기 소유를 맡김과 같으니
15 각각 그 재능대로 한 사람에게는 금 다섯 달란트를, 한 사람에게는 두 달란트를, 한 사람에게는 한 달란트를 주고 떠났더니
16 다섯 달란트 받은 자는 바로 가서 그것으로 장사하여 또 다섯 달란트를 남기고
17 두 달란트 받은 자도 그같이 하여 또 두 달란트를 남겼으되
18 한 달란트 받은 자는 가서 땅을 파고 그 주인의 돈을 감추어 두었더니
19 오랜 후에 그 종들의 주인이 돌아와 그들과 결산할새
20 다섯 달란트 받았던 자는 다섯 달란트를 더 가지고 와서 이르되 주인이여 내게 다섯 달란트를 주셨는데 보소서 내가 또 다섯 달란트를 남겼나이다
21 그 주인이 이르되 잘하였도다 착하고 충성된 종아 네가 적은 일에 충성하였으매 내가 많은 것을 네게 맡기리니 네 주인의 즐거움에 참여할지어다 하고
22 두 달란트 받았던 자도 와서 이르되 주인이여 내게 두 달란트를 주셨는데 보소서 내가 또 두 달란트를 남겼나이다
23 그 주인이 이르되 잘하였도다 착하고 충성된 종아 네가 적은 일에 충성하였으매 내가 많은 것을 네게 맡기리니 네 주인의 즐거움에 참여할지어다 하고
24 한 달란트 받았던 자는 와서 이르되 주인이여 당신은 굳은 사람이라 심지 않은 데서 거두고 헤치지 않은 데서 모으는 줄을 내가 알았으므로
25 두려워하여 나가서 당신의 달란트를 땅에 감추어 두었었나이다 보소서 당신의 것을 가지셨나이다
26 그 주인이 대답하여 이르되 악하고 게으른 종아 나는 심지 않은 데서 거두고 헤치지 않은 데서 모으는 줄로 네가 알았느냐
27 그러면 네가 마땅히 내 돈을 취리하는 자들에게나 맡겼다가 내가 돌아와서 내 원금과 이자를 받게 하였을 것이니라 하고
28 그에게서 그 한 달란트를 빼앗아 열 달란트 가진 자에게 주라
29 무릇 있는 자는 받아 풍족하게 되고 없는 자는 그 있는 것까지 빼앗기리라
30 이 무익한 종을 바깥 어두운 데로 내쫓으라 거기서 슬피 울며 이를 갈리라 하니라
하나님의 은혜와 평강이 성도 여러분과 함께하시길 기원합니다.
어떤 사람이 타국에 가면서 자기 종들을 불러 재산을 맡기고 떠났습니다. 각각 금 다섯 달란트, 두 달란트, 한 달란트를 주었습니다.
‘달란트’는 당시에 사용된 화폐 단위입니다. 한 달란트는 6,000 데나리온, 1 데나리온이 당시 일용직 노동자의 하루 품삯이었으니, 6,000 데나리온이면 6,000면 분의 하루 임금에 해당하는 거액입니다.
오늘날로 치면, 2021년 최저시급이 9,000원 정도니까, 하루 8시간 노동한다 치면, 하루 임금이 7만원 정도, 곱하기 6,000이니까, 한 달란트는 4억이 넘는 엄청난 가치입니다. 그러니 두 달란트는 8억이 넘고, 다섯 달란트는 20억이 넘는 거죠.
그런데 이런 큰 돈을 나눠주면서 주인은 아무 말도 안 했습니다. 그냥 주는 것이니 마음대로 쓰라고도 안 했고, 이것을 밑천으로 더 벌어보라는 말도 안 했습니다. 그런데 돌아와서 셈을 하자고 합니다.
와서 보니 다섯 달란트 받았던 종은 열 달란트로 돈을 불렸고, 두 달란트 받았던 종은 네 달란트로 돈을 불렸습니다. 그런데 한 달란트 받았던 종은 돈을 땅에 묻어두었다가 꺼내서 한 달란트 그대로 내놓았습니다.
앞의 두 종은 주인에게 칭찬을 받았습니다. “잘하였도다 착하고 충성된 종아 네가 적은 일에 충성하였으매 내가 많은 것을 네게 맡기리니 네 주인의 즐거움에 참여할지어다!” 반면 돈을 땅에 파묻은 종은 그 돈마저 빼앗기고 쫓겨났습니다.
이 이야기를 들려주시며 예수님은 우리에게 무엇을 말씀하고자 하신 걸까요?
두 가지 힌트가 있습니다. 우선, 오늘 본문 바로 앞 마태복음 24장에는 세상 끝에 예수님이 다시 오실 것을 예고하는 말씀이 나옵니다. 이로 볼 때, 오늘 본문에 주인은 다시 오실 예수님을 나타낸다는 것을 어렵지 않게 유추할 수 있습니다.
또 하나의 힌트는 마태복음 25장 1절에 나옵니다. “그 때에 천국은 … 과 같다 하리니” 앞에 열 처녀 비유와 마찬가지로 이 달란트 비유 역시 천국, 즉 하나님 나라의 비밀을 알려주는 이야기입니다. 특별히 ‘그 때에’ 천국에서 있을 일, 즉 예수님이 다시 오시는 날에 우리가 하나님 나라에서 경험할 일에 대한 비유 말씀입니다.
이런 맥락에서 볼 때 오늘 본문의 메시지는 다음과 같이 요약될 수 있을 것입니다.
주님께 받은 것으로 착하고 충성되게 행하며 산 사람은 주님 다시 오실 때 칭찬을 받고 주님과 더 많은 좋은 것을 공유하게 될 것입니다. 반면에, 주님께 받은 것으로 악하고 게으르게 행하며 산 사람은 주님 다시 오실 때 책망을 받고 빼앗김과 쫓겨남을 경험하게 될 것입니다.
결국 오늘 본문의 이야기는 자신을 주님의 종이라 생각하는 사람들이 주님의 다시 오심을 믿고 기다리며 이 땅에서 어떻게 살아야 할 지를 교훈하는 말씀이라 할 것입니다.
어떻게 살아야 할까? 앞에 열 처녀 비유의 메시지는 명확합니다. 깨어 준비하며 기다리라! 그런데 이 달란트 비유의 메시지는 한번에 명확히 드러나지 않습니다. 뭘 어떻게 하라는 뜻인지 바로 확 이해되지 않습니다. 하나하나 곱씹어 보아야 의미의 심층이 드러납니다.
먼저 종들이 주인에게 받은 것에 대해 생각해봅시다.
우리는 흔히 그들이 받은 것이 ‘달란트’라고 생각하지만, 앞에서 말씀드린 바와 같이 달란트는 그저 화폐단위일 뿐입니다. 이 ‘달란트’라는 말에서 유래한 영어단어 talent가 ‘재능’이라는 뜻으로 쓰이므로, 그들이 주인에게 받은 것을 ‘재능’으로 한정하는 경우가 있는데, 이는 적절치 않아 보입니다.
15절에 보면 주인은 그 종들에게 “각각 그 재능대로” 다섯 달란트, 두 달란트, 한 달란트를 주었다 하는데, 그들이 받은 것을 ‘재능’이라 규정하면, ‘각각 그 재능대로 재능을 받았다’는 이상한 말이 되어 버립니다.
달란트를 ‘재능’으로 규정할 때 문제는 또 있습니다. 주님께 칭찬받은 종들은 받은 것을 두 배로 늘린 사람들이었죠. 그럼 그들이 재능을 두 배로 늘려서 주님께 칭찬받았단 말인가요? 노래 잘 하는 재능을 부여받은 사람은 노래를 두 배로 잘 해서 칭찬받고, 언어적 재능을 부여받은 사람은 언어를 두 배로 잘 해서 칭찬받는다는 말인가요?
제 생각엔, ‘달란트’란 말 대신에 ‘종들이 주인에게 받은 것’이라는 표현을 사용하는 것이 혼동을 피하는 길일 것 같습니다.
종들이 주인에게 받은 것은 똑같지 않았습니다. 다섯, 둘, 하나. 차등이 있었죠. 그것은 주인의 결정이었습니다. 기준은 뭐였나요? 각각 그 재능대로!
여기서 ‘재능’이란 ‘다루거나 사용할 수 있는 능력’을 의미합니다. NIV 영어성경은 ability, 체코어 성경은 schopnost라는 단어를 쓰고 있습니다. 무슨 뜻입니까? 주인은 각 사람의 ‘역량’을 고려하여 그가 감당할 만큼 맡겼다는 뜻입니다.
다섯 달란트 받고 다섯 달란트 남긴 종이나, 두 달란트 받고 두 달란트 남긴 종이나, 주인에게 들은 칭찬과 보상의 말은 동일합니다. 둘 다 각자의 역량 안에서 최선을 다했다는 것을 주인이 인정해주고 있는 것입니다.
이렇게 볼 때 종들이 주인에게 받은 것은 ‘우리 각 사람이 주님께 선물로 받은 모든 것’을 의미할 수 있을 것입니다. 우리가 주님께 받은 생명, 물질, 사람, 복음, 은사, 말씀, 성령, 직분, 사명 등. 우리 각 사람이 받은 것에는 모두에게 공통되게 주어진 것도 있고, 사람마다 다르게 지닌 것도 있습니다. 생명이나 복음이 전자라면, 은사나 직분은 후자에 해당할 것입니다.
앞에서 저는 ‘한 달란트’가 얼마나 거액의 가치를 갖는지 말씀드렸습니다. 주님께 아무리 적게 받은 사람도 그처럼 받은 것이 많다는 뜻일 겁니다. 우리가 주님께 받은 것 속에는 눈에 보이지 않는 것, 아직 잠재된 것들도 포함될 것입니다. 그 모든 것은 ‘주님이 우리 각자의 역량을 고려하여 넉넉히 나눠주신 주님의 것’이란 말씀입니다.
이렇게 보면, 처음 다섯 달란트에 추가된 나중 다섯 달란트, 처음 두 달란트에 추가된 나중 두 달란트의 의미가 분명해집니다. 그들이 불린 것은 자기 재능이 아닙니다. ‘주인의 소유’입니다. 주인의 것을 늘린 것입니다.
예를 들어, 주어진 하나님의 말씀을 부지런히 읽고 묵상하며 깨달은 바를 참되게 나누며 사는 사람이 있습니다. 이를 들은 사람 중에 진리를 깨닫고 하나님께 나아온 사람이 있다고 칩시다. 이 경우 말씀을 전한 사람이 처음 주님께 받은 선물은 말씀이죠. 그리고 그 말씀을 이해하고 전달하는 능력입니다. 그런데 이를 사용하여 그가 나중에 주님께 내어드린 것은 무엇일까요? ‘사람’입니다. 그가 전한 말씀을 듣고 진리를 깨달아 하나님께 속하게 된 사람입니다.
이것이 나중 다섯 달란트, 또 나중 두 달란트의 의미가 아닐까요? 말씀이 투자금이 되어 사람을 얻었습니다. 종의 수고를 통해 주님의 소유가 불어난 것입니다.
마태복음 25장의 후반부에는 양과 염소 비유가 나옵니다. 세상 끝에 주님이 영광 중에 오셔서 모든 민족을 그 앞에 모으고 목자가 양과 염소를 구분하듯 사람들을 구분하시리라는 말씀입니다.
그때 하나님 나라를 상속받을 사람들에게 주님은 말씀하시리라 합니다. “내가 주릴 때에 너희가 먹을 것을 주었고 목마를 때에 마시게 하였고 나그네 되었을 때에 영접하였고 헐벗었을 때에 옷을 입혔고 병들었을 때에 돌보았고 옥에 갇혔을 때에 와서 보았느니라”
이에 의인들은 놀라며 되물을 것입니다. “우리가 언제 주님께 그런 일을 했나요?” 그러면 주님은 말씀하실 것입니다. “너희가 여기 내 형제 중에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한 것이 곧 내게 한 것이니라”
그 날에 의인들은 자신들이 주님께 받은 것으로 돌보고 섬겼던 작은 자들이 어느덧 주님 옆에 있는 것을 볼 것입니다. 주님의 소유가 그렇게 늘어나 있는 것을 보며 기뻐할 것입니다.
그들에게 ‘주님의 것’과 ‘나의 것’의 구분은 의미가 없습니다. 주님의 것이 나의 것이며, 나의 것이 주님의 것입니다. “주인이여 내게 다섯 달란트를 주셨는데 보소서 내가 또 다섯 달란트를 남겼나이다” 이 종의 말이 제게는 이런 뉘앙스로 들립니다. “주님, 제게 다섯 달란트 주셨잖아요? 보세요, 이제 나의 것, 아니 주님의 것이 두 배가 되었어요!”
반면 한 달란트 받았던 자는 와서 이렇게 말합니다. “당신의 달란트를 땅에 감추어 두었었나이다 보소서 당신의 것을 가지셨나이다” 그는 ‘자신의 것’과 ‘주님의 것’을 구분합니다. 어떤 태도일까요? 나도 당신의 것 터치하지 않을 테니, 당신도 나의 것 터치하지 마세요! 나도 당신에게 손해 끼치지 않을 테니, 당신도 나에게 손해 끼치지 마세요!
앞에 24장에 보면 주인이 더디 오리라 생각하며 동료들을 때리고 허구헌 날 술친구들과 먹고 마시는 악한 종이 나옵니다. 지금 이 달란트 비유 속 세 번째 종은 그처럼 주인의 사람들을 괴롭히거나 주인의 소유를 축내는 사람은 아닙니다. 하지만 주님은 이처럼 마음이 주인과 하나되지 못한 종에게도 동일하게 ‘악한 종’이란 표현을 사용하십니다.
주님의 종이 어찌 주님과 마음이 하나되지 못할까? 그 원인 중 하나는 주님에 대한 오해에서 비롯됩니다. 주님께 받은 한 달란트를 땅에 묻어둔 이유를 그는 이렇게 설명합니다. “당신은 굳은 사람이라 심지 않은 데서 거두고 헤치지 않은 데서 모으는 줄을 내가 알았으므로 두려워하여 나가서 당신의 달란트를 땅에 감추어 두었었나이다”
여기 ‘굳은’으로 번역한 헬라어 ‘스크레로스’는 ‘박정하고 포악하며 거칠다’는 의미를 갖습니다. 자신이 심지도 않은 밭에서 작물을 거두어 가져오라 요구하는 포악한 사람, 자신이 씨뿌리지 않은 땅에서 곡식을 거두라 말하는 비상식적인 사람으로 주인을 생각했다는 것입니다. 주인의 소유를 축냈다고 혼날까 두려워 돈을 땅에 묻어두었다는 것이죠.
하지만 그는 정말 주인을 그런 존재로 생각한 것일까요? 정말 그렇게 오해한 것일까요? 주인은 말합니다. “악하고 게으른 종아 나는 심지 않은 데서 거두고 헤치지 않은 데서 모으는 줄로 네가 알았느냐 그러면 네가 마땅히 내 돈을 취리하는 자들에게나 맡겼다가 내가 돌아와서 내 원금과 이자를 받게 하였을 것이니라”
주인은 그 종의 속을 간파한 것입니다. 실제로 그 종은 주인을 그처럼 무서운 존재로도 생각하지 않았다는 것을. 그는 지금 그저 상황을 모면하기 위해 핑계를 대고 있을 뿐이라는 것을.
갈라디아서 6장 7-9절에 말씀합니다. “스스로 속이지 말라 하나님은 업신여김을 받지 아니하시나니 사람이 무엇으로 심든지 그대로 거두리라 자기의 육체를 위하여 심는 자는 육체로부터 썩어질 것을 거두고 성령을 위하여 심는 자는 성령으로부터 영생을 거두리라 우리가 선을 행하되 낙심하지 말지니 포기하지 아니하면 때가 이르매 거두리라”
우리는 주님이 어떤 분이신지 바로 알아야 합니다. 사도 바울이 말하듯 주님의 인자하심과 준엄하심, 둘 다를 생각하며 살아야 합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작은 실수도 용납하지 않으시는 매정한 분이 아닙니다. “사랑 안에 두려움이 없고 온전한 사랑이 두려움을 내쫓는다”(요일4:18) 하였습니다. 주님의 십자가 사랑이 우리 마음에 있을 때, 우리는 두려움 없이 주님의 일을 내 일처럼 감당할 수 있습니다.
다섯 달란트 받은 사람과 두 달란트 받은 사람은 “바로 가서” 장사하여 이윤을 남겼다 합니다. 그들은 바로 갔습니다. 그들은 왜 바로 갔을까요? 자신에게 그분의 소유를 맡기신 주인의 뜻을 이해했기 때문에. 또한 주인이 어떤 분인지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일 것입니다.
이처럼 주님이 다시 오실 때까지 이 땅에서 착하고 충성된 종으로 살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하나님의 마음과 뜻을 잘 아는 일이 중요합니다. 늘 안타깝게 생각하는 것은, 하나님의 마음과 뜻을 알 수 있는 길이 주어져 있음에도 많은 사람들이 그 일에 힘쓰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자기 인생이 걸려 있는 일인데도, 그 만큼 중요하게 여기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달란트 비유는 돈 잘 버는 것을 장려하는 내용도 아니고 이윤을 얻기 위해서는 모험이 필요하다는 메시지를 전하는 이야기도 아닙니다. 주님과 어떤 관계에 있느냐가 우리의 오늘을 결정하고 또한 미래를 결정할 것임을 알려주는 이야기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주님이 착하고 충성된 종이라 부르시는 사람은 어떤 사람입니까? 주님과 한 마음 한 뜻을 품고 이 땅을 사는 사람, 주님이 맡겨주신 모든 것으로 주님이 기뻐하시는 일을 내 일처럼 행하며 사는 사람일 것입니다.
그들에게 주님은 말씀하십니다. “잘하였도다 착하고 충성된 종아 네가 적은 일에 충성하였으매 내가 많은 것을 네게 맡기리니 네 주인의 즐거움에 참여할지어다” 우리 모두 이 복을 누리는 사람들이 될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아멘.
기도하겠습니다.
사랑의 주님, 주님의 오심을 기다리며 우리가 어떻게 살아야 할지를 알려주시는 당신의 말씀을 들었습니다. 우리가 당신의 마음과 뜻을 바로 알게 하시고, 주님이 우리 각자에게 맡겨주신 것으로 착하고 충성된 종의 삶을 살게 하여 주시옵소서. 살아계신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