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인 예배 (2019년 9월 29일)
- 에베소서 4장 25-32절
- 설교자: 류광현 목사
- 참된 것을 말하라 - 엡4,25-32.docx
<에베소서 4장 25-32절>
25 그런즉 거짓을 버리고 각각 그 이웃과 더불어 참된 것을 말하라 이는 우리가 서로 지체가 됨이라
26 분을 내어도 죄를 짓지 말며 해가 지도록 분을 품지 말고
27 마귀에게 틈을 주지 말라
28 도둑질하는 자는 다시 도둑질하지 말고 돌이켜 가난한 자에게 구제할 수 있도록 자기 손으로 수고하여 선한 일을 하라
29 무릇 더러운 말은 너희 입 밖에도 내지 말고 오직 덕을 세우는 데 소용되는 대로 선한 말을 하여 듣는 자들에게 은혜를 끼치게 하라
30 하나님의 성령을 근심하게 하지 말라 그 안에서 너희가 구원의 날까지 인치심을 받았느니라
31 너희는 모든 악독과 노함과 분냄과 떠드는 것과 비방하는 것을 모든 악의와 함께 버리고
32 서로 친절하게 하며 불쌍히 여기며 서로 용서하기를 하나님이 그리스도 안에서 너희를 용서하심과 같이 하라
교회는 이 땅에 존재하는 ‘그리스도의 몸’입니다.
교회가 ‘그리스도의 몸’다운 모습으로 세상에 드러날 때는 언제인가?
사랑 안에서 진리를 행할 때… (엡4:15)
교회가 그런 모습일 때, 세상은 교회를 통해 살아계신 그리스도를 볼 것입니다.
현실의 교회로부터, 또 사람으로부터, 우리는 실망하거나 낙심하게 될 때가 많지만,
희망은 언제나 하나님께 있습니다.
어느 시대에나 하나님은 ‘그분의 소리’를 듣고 반응하는 ‘한 사람’을 찾으시고,
그 사람을 통해 누구도 예상치 못한 새 일을 이루어가십니다.
오늘 본문에서 하나님은 사도를 통해 우리에게 말씀하십니다.
참된 것을 말하라!
참된 것을 말하라!
우리는 참된 것을 말하고 있습니까?
오늘의 교회는 참된 것을 말하고 있습니까?
내가 만나는 사람들에게 나는 참된 것을 말하고 있습니까?
‘참된 것을 말한다’는 것은 진실하게 말하는 것 그 이상일 것입니다.
속임 없이 말할 뿐 아니라 바른 것을 말한다는 것,
진실하게 말할 뿐 아니라 진리를 말한다는 의미일 것입니다.
거짓을 버리라 합니다.
거짓말, 속임수, 자기기만… 버리라 합니다.
거짓말은 고의적으로 속이려는 메시지입니다.
속인다는 것은 그릇된 것을 타인이 진실한 것으로 받아들이게 하는 일입니다.
우리는 남을 속일 뿐 아니라 자기 자신을 속이기도 합니다.
거기에 대해 전혀 모르는 것처럼 어떤 일을 하거나 하지 않고,
자신이 의롭다는 느낌과 자존감을 보호하기 위해 틀리게 기억하기도 합니다.
사람과 사람 사이에 끼어든 거짓은
상대방에게만이 아니라 자기 자신에게도 해를 가하고,
공동체 전체에도 해를 끼칩니다.
거짓말은 또다른 거짓말을 낳고,
거짓말 한 그 사람을 거짓의 노예로 만듭니다.
거짓의 결과는 진실과 신뢰의 상실입니다.
신뢰가 무너지면 공동체는 피상적인 관계로 빠져듭니다.
그렇게 거짓말은 그리스도의 몸의 급소를 찌릅니다.
무엇이 ‘거짓말’이고 무엇이 ‘진실’인가?
간단한 문제는 아닙니다.
중요한 질문이지만 위험한 질문이기도 합니다.
두 가지 기준을 언급할 수 있을 것입니다.
하나님 앞에서… 그리고, 사랑 안에서…
신학자 어거스틴은, 그 의도가 무엇이든간에
결코 거짓말을 해서는 안 된다고 보았습니다.
그에게 거짓말은 “하나님께 속한 것을 제 것으로 만드는 일”을 의미했습니다.
한편 20세기 독일의 신학자 디트리히 본회퍼는
나치즘의 거대한 거짓말이 사회 현실을 변형시키고 있고,
악에 저항하는 작은 행동들이 때때로 속임수에 휘말리는 모습을 보면서,
진리를 말하는 것은 단순히 도덕적 성품의 문제만이 아니라,
현실 상황에 대한 정확한 이해의 문제이기도 하다는 점을 절감했습니다.
가짜뉴스가 너무나 횡행하는 오늘의 우리 현실을 향해 시사하는 바가 있다 하겠습니다.
‘믿음을 해치는 거짓말’도 위험하지만, ‘사실을 해치는 거짓말’도 위험합니다.
하지만 진리와 진실함은 믿음과 사실 그 이상을 내포합니다.
진리를 아는 것, 진실과 거짓을 판정하거나 분별하는 일도 중요하지만,
우리가 거짓을 버리고 참된 것을 말하기 위해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자기 삶을 진리에 복종시키겠다는 확고한 의지입니다.
오늘날과 같이 이미지, 성공, 소송, 자기확신을 강조하는 사회 분위기 속에서는
진실함에 대한 관심과 열망이 점점 약화됩니다.
사람들은 “그 말이 사실이야?”라고 묻기보다 “그 말이 통할까?”라고 묻곤 합니다.
소송에 대한 두려움은 진실하게 말하고 행동하는 일을 더 어렵고 복잡하게 만듭니다.
최근의 자녀양육 철학은 아이가 자긍심을 갖도록 성과를 칭찬해주는 쪽으로 선회했는데,
인정의 말이 실제 성과와 진실히 연결되지 않으면 아이는 잘못된 방향으로 나갈 수 있습니다.
진실하게 말하는 일은 대가를 요구합니다.
진실을 말하는 사람과 진실을 받아들이는 사람 모두 불완전한 존재들이어서,
진실함을 향한 소망은 쉽게 어긋날 수 있습니다.
해결되지 않은 상처와 무의식적인 관계의 불편함도 진실함의 실천을 약화시킵니다.
목회자나 공동체가 어떤 사람에게 진실을 말하면서 그를 끝까지 붙들어 주려면,
믿음과 소망과 사랑에 기초한 깊은 헌신이 있어야 합니다.
이런 여러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참된 것 말하기를 포기하지 말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그런 삶으로 부르셨기 때문입니다.
어떻게 우리가 이 일을 잘 해낼 수 있을까?
거짓말을 못하도록 강제하는 것만으로는 충분치 않을 것입니다.
거짓말이 필요없는 관계적 환경을 조성하는 일이 중요할 것입니다.
우리는 왜 거짓말을 할까?
마크 냅이라는 분이 거짓말의 동기를 여러 가지로 제시했습니다.
처벌을 피하기 위해… 피해를 당하지 않기 위해… 스스로 보상을 얻기 위해… 다른 사람을 보호하거나 돕기 위해… 다른 이들로부터 칭찬을 받기 위해… 불편하고 당황스런 사회적 상황을 벗어나기 위해… 사생활을 유지하기 위해… 다른 사람들에게 영향력을 행사하기 위해… 사회적 기대를 충족시키기 위해… 재미를 위해.
거짓말은 관계를 무너뜨리는 요인이 되지만,
때때로 사람들은 관계를 유지하려는 목적으로 거짓말을 하기도 합니다.
진실을 말했을 때 치러야 할 대가가 두렵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만약, 진실을 말해도 안전하다고 느껴지는 공동체에 그가 속해 있다면,
사랑 안에서 진실을 말하고 짐을 함께 져주는 일에 헌신된 공동체에 그가 속해 있다면,
굳이, 관계 유지를 위해 거짓말을 할 이유는 없을 것입니다.
크로아티아의 신학자 미로슬라브 볼프는 말합니다.
다른 사람을 포용하고자 하는 의지가 없다면 사람들 사이에 진실은 존재하지 않을 것이고, 사람들 사이에 진실이 없다면 평화는 존재하지 않을 것이다.
그렇습니다. ‘참된 말’은 ‘사랑의 공동체’를 필요로 합니다.
‘사랑 안에서 참된 것을 말하라’는 말씀은
참된 것은 사랑 안에서 말해야 한다는 의미와 더불어,
참된 것을 말하는 일은 사랑 안에서 가능하다는 의미도 내포합니다.
그러므로 참된 것을 말하는 삶을 실천하기 위해 우리는
그것을 가능케하고 장려할 수 있는 공동체를 이루는 일에 다함께 헌신해야 합니다.
진실하게 말하는 것과 생각나는 모든 것을 말하는 것은 전혀 다릅니다.
진실을 말할 때는 언제나 용기와 더불어 절제와 분별이 요청됩니다.
공동체 안에서 다른 지제들을 향해 참된 것을 말한다는 것은
단순히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는 뜻만은 아닙니다.
본문 29절 함께 읽겠습니다.
“무릇 더러운 말은 너희 입 밖에도 내지 말고 오직 덕을 세우는 데 소용되는 대로 선한 말을 하여 듣는 자들에게 은혜를 끼치게 하라”
여기 ‘더러운 말’로 번역된 헬라어 ‘사프로스’는 썩은 나무나 열매를 묘사할 때 쓰입니다.
‘썩은 말’, 즉 상대에게 상처 주거나 해를 끼치는 말은 입 밖에도 내지 말라는 뜻입니다.
그런 말이 어떤 말들인지 31절에 여러 단어들로 표현되어 있습니다.
‘악독’ – 심술궂은 마음에서 나오는 불평과 냉소의 말을 말합니다.
‘노함’ – 격렬한 분노를 말합니다.
‘분냄’ – 음울한 적대감을 말합니다.
‘떠드는 것’ – 흥분하여 소리높이는 걸 말합니다.
‘비방하는 것’ – 뒤에서 나쁘게 말하는 것을 말합니다.
이런 것들을 모든 악의와 함께 버리라 합니다.
악을 바라고 꾀하는 마음에서 흘러나오는 그런 악하고 해로운 말들은
입 밖에도 내지 말라는 것입니다.
대신 어떻게 하라고 합니까?
“오직 덕을 세우는 데 소용되는 대로 선한 말을 하라”고 합니다.
상대방을 하나님의 사람으로 세우는 데 유익한 말을 하라는 것입니다.
누군가의 연약한 모습을 보았을 때,
그를 좌절시키거나 무너뜨리는 말을 하지 말고,
아직 그가 예수님 안에서 더 자라가야 할 부분이 무엇인가를 인식하고,
거기에 유익이 되는 선한 말을 해주라는 것입니다.
“듣는 자에게 은혜를 끼치게 하라” 합니다.
‘은혜’가 무엇입니까?
자격이 없는 자에게 값없이 주시는 하나님의 선물…
상대방이 그 말 들을 자격이 있어 그 말을 해주라는 뜻이 아닙니다.
어떤 즉각적인 대가나 보답을 바라고 그 말을 해주라는 뜻이 아닙니다.
내가 하나님께 받은 은혜를 생각하면서,
또한 내가 이전에 다른 누군가로부터 입은 은혜를 생각하면서,
나를 향해 오래 기다려 주셨던 주님의 은혜와 사랑을 기억하면서,
내 형제자매가 더 온전한 모습으로 설 수 있도록 선한 말로 도우라는 것입니다.
32절에, “서로 친절하게 하라” 합니다.
서로가 서로에게 하나님의 자비하심을 나타내라는 뜻입니다.
“불쌍히 여기라” 합니다.
긍휼은 상대방이 처해 있는 자리에 함께 서는 것입니다.
그 사람이 겪고 있는 연약함이나 곤경이 내 안에도 동일하게 존재함을 인식할 때,
우리는 하나님이 나를 불쌍히 여기시길 간구하는 마음으로 그를 불쌍히 여길 수 있습니다.
또한 “서로 용서하라” 합니다.
하나님이 그리스도 안에서 나를 용서하신 것을 생각하며 그리 하라 합니다.
친절한 말, 긍휼의 말, 용서의 말…
이런 말들은 내 형제자매를 하나님의 사람으로 세워가고 공동체에 덕을 세우는
‘선한 말’, ‘은혜를 끼치는 말’들이며,
‘참된 말’을 가능케 하는 안전하고 비옥한 토양이 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 앞에서 우리들의 말을 돌아봅시다.
참된 것을 말하라!
하나님은 우리가 거짓을 버리고 서로 참된 것을 말하길 원하십니다.
또한 더럽고 악한 말을 버리고 덕을 세우는 선한 말을 하길 원하십니다.
그것이 가능할 수 있는 진리와 사랑의 공동체 이루는 일에 우리가 다함께 헌신할 때,
우리의 입술이 바뀌고 우리의 관계가 바뀌고 우리의 삶이 바뀔 수 있을 것입니다.
하나님 앞에서, 그리고 사랑 안에서
늘 참된 것을 말하며 사는 우리 모두가 될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아멘.
기도하겠습니다.
사랑의 주님, 우리 자신과 교회를 당신의 사랑과 진리로 새롭게 하여 주옵소서. 우리가 거짓을 버리고 참된 것을 말하게 하옵소서. 우리가 모든 더럽고 악한 말을 버리고 공동체에 덕을 세우는 선한 말을 하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