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인 예배 (2022년 7월 24일)
- 요한복음 15장 12-16절
- 설교자: Ondřej Kolář 목사
- 2022년 7월 24일 주일예배 (꼴라쥬목사님 설교).docx
요15, 12-16
12 내 계명은 곧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하는 이것이니라
13 사람이 친구를 위하여 자기 목숨을 버리면 이에서 더 큰 사랑이 없나니
14 너희가 나의 명하는 대로 행하면 곧 나의 친구라
15 이제부터는 너희를 종이라 하지 아니하리니 종은 주인의 하는 것을 알지 못함이라 너희를 친구라 하였노니 내가 내 아버지께 들은 것을 다 너희에게 알게 하였음이니라
16 너희가 나를 택한 것이 아니요 내가 너희를 택하여 세웠나니 이는 너희로 가서 과실을 맺게 하고 또 너희 과실이 항상 있게 하여 내 이름으로 아버지께 무엇을 구하든지 다 받게 하려 함이니라
Milujte se navzájem tak, jako jsem já miloval vás. K tomuto Ježíšovu slovu přece není potřeba nic dodávat. Je vněm shrnuto vše podstatné, co křesťan potřebuje vědět. A přece: Lehce se to řekne, hůř se to udělá. Ježíš to ovšem skutečně udělal: miloval nás tak, že se pro nás vzdal všeho. Byl tu pro nás bez výhrad, bez všech podmínek. A právě vtom jej máme následovat.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예수님의 이 말씀에 무엇을 덧붙일 수 있겠습니까. 그 안에 그리스도인이 알아야 할 필수적인 모든 것이 다 들어 있습니다. 그러나 주님의 이 말씀은 말하기는 쉬워도 실천하기는 어렵습니다. 물론 예수님은 이 말씀 그대로 행하셨습니다. 주님은 우리를 사랑하셔서 우리를 위해 모든 것을 내어 놓으셨습니다. 예수님은 아무런 전제조건 없이 무조건적으로 우리를 사랑하셨습니다. 그리고 바로 그 점에 우리가 주님을 본받아야 하는 이유가 있는 것입니다.
Biblický oddíl, který jsme právě slyšeli, nám žádnou definici lásky nepřináší. Především a nejvíce je ujištěním: Vězte, že jste milováni. I když se vám samotným třeba láska nedaří. Vždyť ještě dříve, než jste vůbec začali jeden druhého milovat, Bůh si vás zamiloval. Ještě dříve, než Bohu odpovím svou vírou, je tu přece již Boží oslovení. A dokonce ještě dříve, než Boží slovo v Ježíši vstupuje do světa, je tu Boží rozhodnutí pro mě. Bůh si nás vyvolil. Mnohem dřív, než přijde mé rozhodování, má víra, můj křesťanský život – je tu Boží zájem o mě. Láska tedy není vprvé řadě úkol, povinnost či životní poslání, ale dar. Něco, čím jsme všichni vybaveni, co si neseme vsobě.
오늘 우리가 들었던 본문 말씀은 사랑에 대한 정의 같은 것을 우리에게 가르쳐 주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오늘 본문이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우리에게 사랑에 대한 확신을 가르쳐 주고 있기 때문입니다. 먼저 우리는 우리가 사랑을 잘 하지 못하고 있더라도 사랑받고 있는 존재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다른 사람을 사랑하기 훨씬 전에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셨기 때문입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하나님께 믿음으로 응답하기 훨씬 전에 하나님께서 먼저 우리의 이름을 아셨기 때문입니다. 심지어 예수님께서 말씀이 육신이 되셔서 이 땅에 오시기 훨씬 전에 나에 대한 하나님의 작정하심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부르셨습니다. 나의 결심, 나의 믿음, 나의 그리스도인으로서의 삶이 있기 훨씬 전에 나에 대한 하나님의 관심이 있었습니다. 그러므로 사랑은 먼저 숙제, 의무, 사명 같은 것이 아니라 선물입니다. 사랑은 우리 모두에게 이미 주어져 있는, 우리 안에 내재되어 있는 그러한 무엇인 것입니다. (사랑은 doing에 앞서 being?)
I když někdo vBoha a Boží lásku nevěří, přece má tuto zkušenost. Vždyť žijeme z toho, že jsme lásku někdy a nějak přijali – od svých rodičů, prarodičů, sourozenců, přátel, životních partnerů. A kdo byl a je milován, sám dokáže milovat. Komu bylo odpuštěno, ten sám dokáže odpouštět. Ským byli jiní trpěliví, ten umí sám trpělivost projevit. Kdo někdy na sobě pocítil věrnost druhého člověka, ten sám o věrnost usiluje. Vše dobré, co jsme od druhých přijali, se v nás shromažďuje a přetrvává, aby to jednou vydalo své plody. Nemusím asi dodávat, že to žel platí i o tom zlém, co jsme přijali – vždyť tak často ubližují právě ti, jimž kdysi bylo ublíženo, kteří nebyli dostatečně milováni.
누군가 하나님과 하나님의 사랑을 믿지 않는 사람일지라도 사랑에 대한 경험을 갖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언젠가 어떻게든 사랑을, 우리의 부모로부터, 조부모로부터, 형제, 친구들, 인생의 동반자들로부터 사랑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사랑을 받았고 지금도 사랑을 받고 있는 사람은 다른 사람을 사랑할 수 있습니다. 누군가로부터 용서를 받았던 사람은 누군가를 용서할 수 있습니다. 누군가가 나를 참고 기다려 줬다면 나도 누군가를 참고 기다려 줄 수 있고, 누군가로부터 신뢰를 받아 본 사람은 누군가를 신뢰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다른 사람들로부터 받은 모든 선은 우리 속에 축적이 되어 있다가 어느 순간 열매들로 나타납니다. 이와는 반대로 우리가 받은 모든 악도 불행하게도 그대로 나타납니다. 결국 언젠가 상처를 받았고 사랑받지 못 한 사람들이 다른 사람들에게 상처를 줍니다.
Proto Ježíš říká: zůstaňte vmé lásce. To je přece velké ulehčení a povzbuzení: lásku nemusíte složitě hledat, ona už je tady, mezi vámi a ve vás, Bůh ji do vás vložil. Vždyť už jen to, jací jste, vaše jedinečnost, je svědectvím o této Boží lásce, která vás utvořila do neopakovatelné podoby. Teď už stačí jen dál žít vtom a z toho, co vám bylo darováno. To, co jste od Boha dostali, máte rozvíjet a vzájemně sdílet. To, kým každý z vás jste, si nemáte nechávat sami pro sebe, ale dávat jeden druhému. Vaše obdarování, vlastnosti, schopnosti a zkušenosti.
그러므로 예수님께서 „나의 사랑 안에 거하라“고 말씀하십니다. 주님의 이 말씀은 큰 짐을 덜어주시는 말씀이요 용기를 북돋워주시는 말씀입니다. 다시 말해, 우리는 사랑을 힘들게 찾을 필요가 없습니다. 사랑은 이미 여기, 우리들 사이에, 우리들 안에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사랑을 우리들 안에 새겨 놓으셨습니다. 왜냐하면, 당신의 어떠함, 당신의 독특한 그러함이 반복될 수 없는 독특한 당신으로 만들어 온 하나님의 사랑에 대한 증거입니다. 그러므로 이제는 선물로 주어진 그 당신으로, 그 당신으로부터 계속 살아 나가는 것으로 족합니다. 당신은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당신만의 것을 발전시키고 나누어야 합니다. 우리 모두 각자가 나인 그것 즉, 나의 재능, 나의 자질과 능력, 경험을 나를 위한 것으로 두지 말고, 다른 사람들에게 나눠줘야 합니다.
Zůstávat vlásce tedy znamená trvale rozmnožovat Boží lásku. Napodobovat ji, podle svých možností ji opakovat, nechat ji proudit do všech oblastí života, vnášet ji do všech situací, v nichž se ocitneme. Když Ježíš říká, že máme nést ovoce, buďme si vědomi toho, že to původně není naše ovoce, ovoce naší láskyplnosti. Je to spíše Boží ovoce, které ale v nás dále dozrávalo tím, jak jsme ho pěstovali a rozvíjeli ve svých vztazích.
그러므로 사랑 안에 거한다는 것은 하나님의 사랑을 배가시켜 가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모방하고, 힘 닿는 데까지 반복하고, 삶의 모든 영역에 흐르게 하고, 우리가 처한 모든 상황에 들어 오도록 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우리가 열매를 맺어야 한다고 말씀하실 때, 그것은 본래 우리의 열매, 우리의 사랑의 열매가 아닙니다. 이는 오히려 우리가 서로의 관계 속에서 그 열매를 어떻게 가꿨고 어떻게 발전시켜 나갔는가를 통해 우리 안에서 계속 무르익어 가는 하나님의 열매입니다.
Možná to všechno zní trochu obecně. Jak se taková láska projevuje? Co je tím ovocem? Nikdo nemá větší lásku než ten, kdo položí život za své přátele, říká Ježíš.
Snad si řekneme, že tu Ježíš zachází zbytečně do extrému – proč hned myslet na nejhorší? Copak se láska projeví jen tehdy, když hrozí vážné nebezpečí, když se člověk musí rozhodovat mezi životem a smrtí? Vždyť většinu života – a většinu svých vztahů – člověk prožije spíš v dobách relativně obyčejných, v každodennosti. I tehdy a právě tehdy máme projevovat lásku, byť třeba není až tak heroická, zato je ale trpělivá a oddaná.
모든 것이 약간 일반적으로 들릴 수도 있겠습니다. 이러한 사랑은 어떻게 나타나겠습니까? 그러한 사랑의 열매는 무엇입니까? 주님께서 사람이 친구를 위하여 자기 목숨을 버리면 이에서 더 큰 사랑이 없느니라 말씀하십니다. 아마 우리는 여기서 왜 즉시 최악의 상황을 말씀하시는가 하면서 예수님께서 극단적으로 말씀하신다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사랑은 심각한 위험이 있을 때, 사람이 삶과 죽음 사이에서 자신을 결정해야 할 때만 나타납니까? 왜냐하면 사람의 대부분의 삶, 대부분의 관계는 비교적 평범한 시간, 평범한 일상생활 속에서 이루어집니다. 그리고 바로 그 때에 우리는 우리의 사랑을 나타내야 합니다. 그러한 사랑은 영웅적이지 않을 수 있지만 인내와 헌신이 필요한 사랑입니다.
A přece se říká, že vnouzi poznáš přítele. Stejně tak by se dalo říci, že vnouzi poznáš lásku – a v té nouzi nejvyšší můžeš poznat lásku nejhlubší. Tehdy láska projde zkouškou. Tehdy se ukáže, jaká vlastně celou dobu byla. Když jsi poctivě pokládal, tedy odevzdával svůj život ve věcech malých, jsi pak připraven ho položit i ve věcech velkých.
어려울 때 친구를 알아본다는 말이 있습니다. 그렇듯이 사랑도 어려울 때 알아볼 수 있고, 가장 어려울 때 가장 깊은 사랑을 알아 볼 수 있습니다. 그 때 사랑은 시험을 통과하게 되고, 그 때 그동안의 사랑이 어떠한 사랑이었는지 드러나게 됩니다. 당신이 작은 일들에 당신의 삶을 내려놓고 최선을 다했을 때, 당신은 큰 일들에도 당신의 삶을 내려놓을 준비가 되어 있는 것입니다.
Položit život, dát sebe sama, být tu cele pro druhého. To je ta pravá láska, to je kristovská, Boží láska. Vpravdě miluje ten, kdo dokáže zapomenout na svůj vlastní prospěch, a myslí na dobro toho druhého. Miluje ten, kdo na první místo neklade požitky a radosti, které mu ze vztahu plynou, ale uvažuje hlavně o tom, jakou radost by mohl přinést tomu druhému. Miluje ten, kdo se pro druhého dokáže mnohého vzdát, vkrajním případě i vlastního života. Podle toho se poměřuje láska.
당신의 삶을 내려놓고, 당신 자신을 내어주며, 전적으로 다른 사람을 위하는 것, 그것이 진정한 사랑이요, 그리스도적인 사랑이며,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하나님은 자신의 유익을 잊고, 다른 사람의 선을 생각하는 사람을 사랑하십니다. 하나님은 인간관계에서 계산적인 쾌락과 즐거움에 첫자리를 두지 않고 어떻게 하면 다른 사람을 기쁘게 할 수 있는 가를 중요하게 생각하는 사람을 사랑하십니다. 하나님은 다른 사람을 위해 많은 것을 포기할 수 있는 사람, 결국에는 목숨도 내어놓을 수 있는 사람을 사랑하십니다. 사랑은 이렇게 평가 됩니다.
Ježíš říká: Nazval jsem vás přáteli, neboť jsem vám dal poznat všechno, co jsem slyšel od svého Otce. Té pocty být nazván Božím přítelem se v izraelském lidu dostalo jen nemnohým – Abrahamovi a Mojžíšovi. Určitě není náhodou, že oběma bylo dáno nahlédnout do Božích úmyslů. Mojžíš viděl Boha tváří vtvář na hoře Sínaj – přímo se tu píše: „jako když někdo mluví se svým přítelem“ – a přijal od něj jeho zákon. Abraham dokonce přímo zasahoval do Božího rozhodování při hledání hrstky spravedlivých v Sodomě.
예수님께서 너희를 친구라 하였노니 내가 내 아버지께 들은 것을 다 너희에게 알게 하였음이니라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의 벗이라 칭함을 받는 영예는 이스라엘 백성 중에서 소수인 아브라함과 모세에게만 주어졌습니다. 이 두 사람에게 하나님의 마음을 들여다 보는 것이 허락되었다는 것은 분명 우연이 아닙니다. 모세는 시내산에서 하나님을 대면하여 보았고 이 모습을 „사람이 그의 친구에게 말할 때처럼“ 하나님께서 모세와 대면하셨다고 묘사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모세는 하나님으로부터 율법을 받았습니다. 아브라함은 소돔에서 소수의 의인을 찾는 데 심지어 하나님의 결정에 직접 개입하기까지 하였습니다.
A nyní máme do společenství Božích přátel patřit také my. Skrze Krista víme, co činí nebeský Otec. Jsme vtaženi do jeho příběhu. A nemáme tam být jen figurkami, které Bůh tahá zaprovázky. Směli jsme totiž nahlédnout do Božích tajemství. Jsme dokonce jejich správci, říká apoštol Pavel. Sami se tedy podílíme na tom, jaký bude úděl Boží věci ve světě. Jsme Božími partnery, spolupracovníky na Boží stavbě, nejen otroky, kteří slepě vykonávají, co je jim přikázáno. Až tak daleko zašla Boží láska, že nás postavila do této důstojné role.
그리고 이제 하나님의 친구들로 이루어진 공동체에 우리도 속해야 합니다. 그리스도를 통해 우리는 하늘에 계신 아버지께서 하시는 일을 압니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써 내려가시는 이야기 속으로 들어가야 합니다. 그리고 그 이야기 속에서 우리는 끈을 잡아 당기면 움직이는 꼭두각시처럼 있어서는 안됩니다.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비밀을 들여다 볼 수 있습니다. 사도 바울은 심지어 우리가 하나님의 비밀을 맡은 청지기들이라고 말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께서 이 세상에서 이루시고자 하시는 일들에 지분을 갖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건축하시고자 하시는 집을 지음에 있어서 우리는 명령된 것만 맹목적으로 수행하는 종들이 아니라 하나님의 파트너들이요 하나님의 동역자들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이 이렇게 중요한 역할을 수행하는 데까지 우리를 세운 것입니다.
Když je někdo pouze služebník, pak také nemá žádnou odpovědnost. Je jasné, že všechny úspěchy, ale hlavně pak neúspěchy padají na hlavu jeho pána. Služebník se může vymluvit, že já nic, já jen plním to, o čem rozhodl někdo jiný. To už ale teď pro nás neplatí. I my rozhodujeme o tom, co přispívá vdaném okamžiku, vdané zcela konkrétní záležitosti k rozmnožení Boží lásky na zemi, a co jí naopak brání. Rozhodujeme, kde máme sami sebe nasadit, koho se zastat, koho podporovat, kde kritizovat, kde protestovat. Tisíc a jedna věc, kde musíme sami myslet, zapojit vlastní předvídavost, kreativitu, fantazii.
만약에 어떤 사람이 종이면 그에게는 책임도 없습니다. 종에게 있어 모든 성공들과 특히 모든 실패들은 주인의 책임입니다. 종은 나는 아무 것도 아니고 누가 결정한 것을 나는 수행했을 뿐이라고 변명을 댈 수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종이 아닙니다. 이 세상의 삶을 살아가면서 주어진 순간 구체적으로 닥친 일에 대해 무엇이 하나님의 사랑에 더 크게 기여할 수 있고 반대로 무엇이 하나님의 사랑을 막는 것인지를 우리는 결정해야 합니다. 우리는 어느 편에 서야 할지, 누구를 지지하고 지원해야 할지, 어디를 비판하고 어디를 향해 항의해야 할지 결정해야 합니다. ???
Je nám dán velký prostor, který máme zaplnit vlastními činy – podobně, jako to činili velcí Boží přátelé Mojžíš a Abraham, i mnozí jiní. Bezvýhradná láska, která se po nás žádá, není jen pocit, ale náročně rozhodování a jednání vodpovědnosti za Boží svět. Jsme-li Kristovými přáteli, pak nestačí jen říkat: Pane, Pane – a přitom nečinit vůli nebeského Otce. Přátelé se poznají tím, že jeden při druhém stojí. A tak i na nás má být znát, že Kristu patříme.
하나님의 위대한 친구였던 모세와 아브라함이 그랬고 다른 많은 사람들이 그랬던 것처럼 우리에게는 우리 자신의 행동으로 채워야 하는 넓은 공간이 주어져 있습니다. 우리에게 요구되는 조건없는 사랑은 감정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이 세상을 책임지고자 하는 힘든 결단과 행동입니다. „주여 주여“ 부르면서 하늘 아버지지의 뜻을 행하지 않는다면 이는 그리스도의 친구들인 우리들에게 합당한 모습이 아닙니다. 친구는 한 사람이 다른 사람 옆에 서 있을 때 친구가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러한 사랑이 우리가 그리스도께 속해 있음을 드러냅니다.
Největším porušením přátelství, je – jak známo – zrada. V dějinách církve nacházíme mnoho takových zrádců, Petrem počínaje a kolaboranty srůznými nelidskými režimy konče. Ale dějiny jsou také plné opravdových Božích přátel, kteří obětovali vlastní pohodlí, postavení nebo i život, aby prokázali, že Bohu patří celou svou duší a celým svým srdcem. Myslím, že dnešní těžké časy jsou – navzdory všemu hroznému – dobrou příležitostí utvrdit se v tom, komu patříme, kdo je náš přítel, a jak toto přátelství osvědčit vůči našim bližním. Amen.
친구됨에 있어 가장 큰 방해는 잘 알려진 대로 배신입니다. 우리는 교회 역사 속의 베드로 뿐만 아니라 이 땅의 역사 속에서도 여러 비인간적인 정권들에 협력하였던 많은 배신자들을 찾아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역사 속에는 또한 온 마음과 온 영혼으로 자신이 하나님께 속해 있음을 증명하기 위해 자신의 안락함과 지위 심지어 자신의 목숨까지도 희생한 진정한 하나님의 친구들로 가득 차 있습니다. 오늘날 우리는 여러모로 힘든 시기를 보내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런 모든 위협에도 불구하고 힘든 이 시기가 오히려 우리가 누구에게 속한 사람들인지, 누가 우리의 친구인지 그리고 어떻게 우리의 친구됨을 우리의 이웃들에게 드러낼 수 있는지 하는 것들을 증명해 낼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된다고 생각합니다. 아멘!
(번역: 김영만 선교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