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 마음에 맞는 사람

<사도행전 13:21-23>

21 후에 그들이 왕을 구하거늘 하나님이 베냐민 지파 사람 기스의 아들 사울을 사십 년간 주셨다가

22 폐하시고 다윗을 왕으로 세우시고 증언하여 이르시되 내가 이새의 아들 다윗을 만나니 마음에 맞는 사람이라 뜻을 이루리라 하시더니

23 하나님이 약속하신 대로 사람의 후손에서 이스라엘을 위하여 구주를 세우셨으니 예수라

 

하나님의 은혜와 평강이 성도 여러분과 함께하시길 기원합니다.

오늘 본문은 바울이 1차 전도여행 중에 비시디아 안디옥이란 도시의 회당에서 전한 메시지의 일부입니다.

본문에 두 이스라엘 왕의 이름이 언급되고 있는데, 바로 사울과 다윗입니다. 초대 왕 사울은 베냐민 지파 사람으로 기스의 아들이었고 이스라엘 왕으로 사십 년간 다스렸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 사울을 왕의 자리에서 끌어내시고 이새의 아들 다윗을 새 왕으로 세우셨습니다.

그리고 말씀하시기를 “내가 이새의 아들 다윗을 만나니 내 마음에 맞는 사람이라 내 뜻을 다 이루리라” 하셨습니다. 이 부분을 새한글성경은 이렇게 번역합니다: “내가 찾아냈다, 다윗을, 이새의 아들을. 내 마음과 같은 마음을 가진 사람이다. 그가 내 뜻을 모두 실행할 것이다.”

그 다윗에게 하나님은 약속하셨습니다: “내가 네 몸에서 날 네 씨를 네 뒤에 세워 그의 나라를 견고하게 하리라”(삼하7:12). 그리고 그 약속 대로 마침내 다윗의 후손에서 하나님이 구주(savior)를 세우셨는데, 그가 바로 예수 그리스도라고 바울은 말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러분은 어떤 사람이 되고 싶습니까? 혹은 어떤 삶을 살고 싶습니까? 아마 대부분의 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께 쓰임받는 삶을 살기 원할 것입니다. 자기 인생이 하나님 보시기에 가치 있고 의미 있는 인생이 되길 바랄 것입니다. 나를 통해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는 인생을 소망할 것입니다.

어떻게 하면 그렇게 될 수 있을까? 오늘 본문은 말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그분과 같은 마음을 가진 사람을 통해 그분의 뜻을 이루어가신다! 하나님 마음에 맞는 사람은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통로가 된다!

저와 여러분 모두 그런 사람이 될 수 있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그렇다면 하나님 마음에 맞는 사람, 하나님과 같은 마음을 가진 사람이란 어떤 사람을 말할까요?

구약성경 사무엘서는 사울의 인생과 다윗의 인생을 대조적으로 보여줍니다. 왕이 되기 전 사울은 뛰어난 젊은이였다고 합니다. 이스라엘 사람들 가운데 그보다 더 뛰어난 남자가 없었고, 그는 다른 사람들보다 어깨 위로 머리 하나만큼 더 컸다고 합니다. 처음에 그는 우쭐거리며 남 앞에 서기 좋아하는 대단한 야심가도 아니었고, 그를 무시하는 사람 앞에서도 혈기를 죽이고 잠잠할 줄 아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시간이 갈수록 사울은 점점 더 안 좋은 모습이 되어갑니다. 그가 왕이 되어 다스린 지 이 년째 되던 해, 이스라엘 군대는 블레셋 군대과의 전투를 앞두고 사무엘이 오기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정한 기한이 지나도록 사무엘이 오지 않자 사울은 번제와 화목제물을 자기에게 가져오라 명령하여 제 손으로 번제를 드려버립니다.

그가 번제 드리기를 마치자 사무엘이 왔습니다. 왕이 행하신 것이 무엇이냐, 사무엘이 묻자 사울이 대답합니다: “백성은 내게서 흩어지고 당신은 정한 날에 오지 아니하고 블레셋 사람은 믹마스에 모였음을 내가 보았으므로 … 내가 여호와께 은혜를 간구하지 못하였다 하고 부득이하여 번제를 드렸나이다”(13:11-12).

그러자 사무엘이 말합니다: “왕이 망령되이 행하였도다 왕이 왕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왕에게 내리신 명령을 지키지 아니하였도다 그리하였더라면 여호와께서 이스라엘 위에 왕의 나라를 영원히 세우셨을 것이거늘 지금은 왕의 나라가 길지 못할 것이라 여호와께서 왕에게 명령하신 바를 왕이 지키지 아니하였으므로 여호와께서 그의 마음에 맞는 사람을 구하여 여호와께서 그를 그의 백성의 지도자로 삼으셨느니라”(13:13-14).

그로부터 몇 년 후 하나님은 사무엘을 통해 다시 사울 왕에게 명령하십니다: “아말렉이 이스라엘에게 행한 일 곧 애굽에서 나올 때에 길에서 대적한 일로 내가 그들을 벌하노니 지금 가서 아말렉을 쳐서 그들의 모든 소유를 남지지 않고 진멸하라”(15:2-3) 그러나 이번에도 사울은 하나님께서 명령하신 대로 하지 않습니다. 아말렉의 모든 백성을 진멸한 후에 그들의 왕 아각과 그의 양과 소의 가장 좋은 것들을 남겨둡니다. 사무엘이 가서 “내 귀에 들려오는 이 양의 소리와 내게 들리는 소의 소리는 어찌 됨이니이까” 묻자, 사울은 이렇게 변명합니다: “그것은 백성이 당신의 하나님 여호와께 제사하려 하여 양들과 소들 중에서 가장 좋은 것은 남긴 것입니다”(15:15).

이에 사무엘이 간 밤에 하나님께 들은 말씀을 대언합니다: “왕이 스스로 작게 여길 그 때에 이스라엘 지파의 머리가 되지 아니하셨나이까 … 어찌하여 왕이 여호와의 목소리를 청종하지 아니하고 탈취하기에만 급하여 여호와께서 악하게 여기시는 일을 행하였나이까 … 여호와께서 번제와 다른 제사를 그의 목소리를 청종하는 것을 좋아하심 같이 좋아하시겠나이까 순종이 제사보다 낫고 듣는 것이 숫양의 기름보다 나으니 이는 거역하는 것은 점치는 죄와 같고 완고한 것은 사신 우상에게 절하는 죄와 같음이라 왕이 여호와의 말씀을 버렸으므로 여호와께서도 왕을 버려 왕이 되지 못하게 하셨나이다”(15:17-23)

이 말을 듣고 사울은 그제야 잘못을 시인하며 용서를 구합니다: “내가 범죄하였나이다 내가 여호와의 명령과 당신의 말씀을 어긴 것은 내가 백성을 두려워하여 그들의 말을 청종하였음이니이다”(15:24). 자신을 왕으로 세우신 하나님을 경외하며 그분의 말씀을 청종하는 일보다 왕에 대한 백성들의 평판을 더 의식하며 그들의 말을 더 청종했음을 시인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사울의 이 뉘우침이 그리 진실한 것이 아니었다는 사실이 그가 사무엘에게 요청하는 다음 말 속에 암시되고 있습니다: “내가 범죄하였을지라도 이제 청하옵나니 내 백성의 장로들 앞과 이스라엘 앞에서 나를 높이사 나와 함께 돌아가서 내가 당신의 하나님 여호와께 경배하게 하소서”(15:30). 여전히 그의 최대 관심은 사람들에게 높임을 받는 것, 그렇게라도 그의 왕권을 유지하는 데 있음을 봅니다.

사울의 문제는 그가 하나님을 ‘하나님’으로 대하지 않았다는 데 있습니다. 그는 하나님의 말씀보다 백성의 평판을 더 중시하였고,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는 통로로 자신을 하나님께 내어드리기보다 자신이 바라는 바를 이루는 통로로 하나님을 이용하고자 하였습니다. 그 결과 그는 이 일 이후에도 한동안 명목상 왕의 지위는 유지하였지만 하나님 보시기에 더이상 그는 이스라엘의 왕이 아니었습니다.

그로부터 얼마 후 하나님은 사무엘에게 말씀하십니다: “내가 너를 베들레헴 사람 이새에게로 보내리니 이는 내가 그의 아들 중에서 한 왕을 보았느니라”(16:1).  이새에게는 아들 여덟이 있었는데, 첫째부터 일곱째까지 모두 준수한 용모와 키를 가진 사람들이었지만 하나님은 사무엘에게 말씀하십니다: 내가 보는 것은 사람과 같지 아니하니 사람은 외모를 보거니와 나 여호와는 중심을 보느니라”(16:7). 결국 그날 기름부음을 받은 사람은 이새가 보여줄 생각도 하지 않은 그 집의 막내, 밖에서 양을 치고 있던 다윗이었습니다.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이가 그니 일어나 기름을 부으라”(16:12).

하나님은 이 다윗에게서 무엇을 보셨을까요? 하나님이 보신 그의 중심에는 무엇이 있었을까요? 다윗이 아직 소년일 때 전장에 있는 형들에게 양식을 전해주러 갔다가 그는 충격적인 장면을 목격합니다. 블레셋 장수 거인 골리앗 앞에서 이스라엘의 왕과 군대가 벌벌 떨고 있었습니다. 그 모습을 보고 다윗이 중얼거립니다: “이 할례 받지 않은 블레셋 사람이 누구이기에 살아 계시는 하나님의 군대를 모욕하겠느냐”(17:26).

이어 사울 왕 앞에서 말합니다: “주의 종이 아버지의 양을 지킬 때에 사자나 곰이 와서 양 떼에서 새끼를 물어가면 내가 따라가서 그것을 치고 그 입에서 새끼를 건져내었고 그것이 일어나 나를 해하고자 하면 내가 그 수염을 잡고 그것을 쳐죽였나이다 … 여호와께서 나를 사자의 발톱과 곰의 발톱에서 건져내셨은즉 나를 이 블레셋 사람의 손에서도 건져내시리이다”(17:34-37).

다윗은 아무 근거 없이 호언장담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가 일상 속에서 경험한 하나님, 이제껏 그와 함께하신 하나님이 어떤 분인 줄 아는 사람의 입에서 나온 믿음의 선포였습니다. 손에 물매를 가지고 큰 칼 든 장수 골리앗 앞에 나서며 다윗은 말합니다: “너는 칼과 창과 단창으로 내게 나아오거니와 나는 만군의 여호와의 이름 곧 네가 모욕하는 이스라엘 군대의 하나님의 이름으로 네게 나아가노라 … 전쟁은 여호와께 속한 것인즉 그가 너희를 우리 손에 넘기시리라”(17:45-47).

그 일 이후로 다윗이 백성들 사이에서 인기를 얻자 사울 왕은 그 다윗을 죽이려 하고, 이에 다윗은 쫓기는 자의 신세로 이십 여년을 살게 됩니다. 이미 소년 시절에 그는 사무엘로부터 왕으로 기름부름을 받았지만 그가 실제 왕위에 오르기까지 참으로 오랜 고난의 시간을 그는 지나야 했습니다.  그 이십 년의 시간 동안 이스라엘의 왕좌에 앉아 있던 사울은 그저 허울뿐인 왕이었지만 다윗은 하나님께서 기름부어 세우신 왕을 자신이 함부로 해할 수 없다며 그를 죽일 기회들이 있었음에도 그 원수 갚는 일을 하나님께 맡깁니다. 하나님의 사람으로서 자신이 해야 할 일과 하지 말아야 할 일을 구분할 줄 아는,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의 모습입니다.

이처럼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성급함’이 아니라 ‘성실함’입니다. 성급함은 내가 원하는 결과를 내가 바라는 때에 빨리 이루려는 태도, 내가 바라는 어떤 내 모습과 나를 재빨리 동일시하려는 태도로 나타납니다. 반면 성실함은 지금 내가 서 있는 자리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청종하는 태도, 그렇게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는 통로로 나를 내어드리려는 태도로 나타납니다. 성급한 사람은 남들과 다른 내가 되고자 그렇게 성급하게 움직이지만 아이러니하게도 그는 기껏해야 남들과 비슷한 사람이 될 뿐입니다. 반면 성실한 사람, 자신이 하나님 앞에 서 있는 존재임을 늘 인식하며 사는 사람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길에서 놀랍게도 그 누구와도 같지 않은 그 자신이 되며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져가는 통로로 독특하게 준비됩니다.    

왜 그 고난의 시간이 다윗에게 필요했을까요? 다윗이 다른 사람들보다 죄를 더 많이 지어서는 아닐 것입니다. 그 고난의 시간 속에서 하나님은 다윗을 진정 왕다운 왕으로 빚어가신 것입니다. 이미 왕의 자격을 상실한 사울이 왜 그 후로도 오랫 동안 그 자리에 앉아 다윗을 괴롭히도록 하나님은 놔두셨던 걸까요? 그 다음 왕으로 세우실 다윗 속에 있는 사울적인 요소들을 다 빼내기 위해서였을 것입니다. 내가 싫어하는 사람이 가진 그 못된 요소를 나도 가지고 있고, 내가 그 자리에 서면 나 또한 그런 사람이 될 수 있지 않겠습니까? 지금도 하나님은 그분이 사랑하시는 자녀들의 인생 속에서 그 일을 행하고 계시는지 모릅니다.

“주여 어느 때까지니이까, 어느 때까지니이까?” 견디기 힘들 때마다 다윗은 하나님께 호소하며 나아갔습니다. 그러나 끝날 것 같지 않던 그 고난의 시간이 마침내 끝나는 때가 왔습니다. 사울이 전장에서 죽었고, 다윗은 백성들의 지지를 받으며 왕위에 오릅니다. 하나님의 궤를 예루살렘 성 안으로 메어올 때 다윗은 힘을 다해 춤을 춥니다. 그 모습을 보고 심중에 업신여기는 아내 미갈을 향해 다윗은 말합니다: “이는 여호와 앞에서 한 것이라 그가 네 아버지와 그의 온 집을 버리시고 나를 택하사 나를 여호와의 백성 이스라엘의 주권자로 삼으셨으니 내가 여호와 앞에서 뛰놀리라”(삼하6:21).

이후 다윗은 자기는 화려한 백향목 궁에 사는데 하나님의 궤는 휘장 가운데 있다는 것이 마음에 걸립니다. 이에 나단 선지자에게 하나님의 전을 건축할 의사를 밝히지만 하나님은 이를 거절하시며 말씀하십니다: “네가 나를 위하여 내가 살 집을 건축하겠느냐 … 여호와가 너를 위하여 집을 짓고 네 수한이 차서 네 조상들과 함께 누울 때에 내가 네 몸에서 날 네 씨를 네 뒤에 세워 그의 나라를 견고하게 하리라”(삼하7:5,11,12).

물론 다윗은 완벽한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그도 실수한 적이 있었고 용서받기 힘든 죄를 범한 적도 있었습니다. 그의 부하 우리야의 아내 밧세바를 범하고, 이를 은폐하기 위해 우리야까지 죽게 한 사건이 그 대표적인 경우일 것입니다. 그 결과로 그는 밧세바에게서 난 아들을 잃습니다. 그러나 그 범죄 후에 하나님 앞에서 보인 반응에 있어서 그는 사울과 달랐습니다. 그 범죄로 인해 잃게 될 많은 것들 중에서 그가 결코 잃고자 하지 않았던 것은 그의 왕권도 아니고 사람들의 좋은 평판도 아니었습니다. 하나님의 얼굴, 하나님의 임재, 하나님 앞에 서는 일이었습니다.

그 상황을 배경으로 쓰여진 시편 51편에서 다윗은 고백합니다: “하나님이여 주의 인자를 따라 내게 은혜를 베푸시며 주의 많은 긍휼을 따라 내 죄악을 지워 주소서 … 하나님이여 내 속에 정한 마음을 창조하시고 내 안에 정직한 영을 새롭게 하소서 나를 주 앞에서 쫓아내지 마시며 주의 성령을 내게서 거두지 마소서 … 하나님께서 구하시는 제사는 상한 심령이라 하나님여 상하고 통회하는 마음을 주께서 멸시하지 아니하시리이다” 

사랑하는 여러분, 여러분은 사울 같은 인생을 원합니까, 다윗 같은 인생을 원합니까? 사울도 시작은 나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왕이 된 후에 그는 그를 통해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는 일보다 백성들에게 좋은 평판을 얻어 그의 왕위를 유지하는 일을 우선하였습니다. 하나님 앞에서 그가 누구인가보다 그가 유지하고 싶은 이상적 자아상에 더욱 집착하였습니다. 그리하여 그의 인생은 하나님 앞에서 실로 아무것도 아닌 껍데기에 집착하는 인생, 하나님의 뜻을 거스르는 방향으로 열심을 내는 어리석은 인생이 되고 말았습니다. 그는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함으로써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를 참으로 바르게 알 수 있는 기회들을 번번이 놓쳤습니다. 실수를 통해 배울 수도 있었지만 진정한 회개가 없었기에 그조차도 이루어지지 못했습니다. 그 결과 그의 마음은 하나님의 마음으로부터 계속해서 멀어져 갔고, 따라서 그의 열심은 하나님 보시기에 아무 의미없는 열심이 되고 말았습니다.

반면 다윗은 이해할 수 없는 그 오랜 고난의 시간 속에서도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려 애썼고, 그 과정에서 하나님을 새롭게 체험하며 하나님의 사람으로 더 온전히 빚어져갔습니다. 그 긴 고난의 시간 동안 어떤 의미에서 다윗이 한 일이라곤 하나님을 신뢰하고 의지하는 것, 그리고 그가 아는 하나님의 뜻을 따라 하나님의 사람으로서 해야 할 일을 하고 하지 말아야 할 일을 하지 않는 것 뿐이었는지 모릅니다. 그러나 이처럼 너무나 무력해 보이는 다윗의 인생 여정 속에서 하나님은 신비롭게 일하셨습니다. 아무것도 이루어지지 않는 것처럼 보이는 그 상황 속에서 하나님은 한 사람을 그분의 뜻이 이루어질 수 있는 그릇이자 통로로 아름답게 빚어가고 계셨습니다.

그렇습니다. 내가 대단한 일을 하고 있지 않은 상황 속에서도 하나님은 내 주위에서 보이지 않게 일하실 수 있습니다. 내가 하나님과 같은 곳을 바라보고 나아가며 내가 하나님과 같은 마음을 갖고 있다면 말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하나님은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내가 이새의 아들 다윗을 만나니 내 마음에 맞는 사람이라 내 뜻을 다 이루리라”

그러므로 오늘 내게 주어진 상황 속에서 늘 하나님 앞에서 살아가며 하나님의 뜻을 구하고 그 뜻에 순종하며 나아가는 우리 모두가 되길 바랍니다. 그 순종의 한 걸음이 하나님의 마음과 뜻을 더 온전히 경험하고 깨닫는 기회로 우리를 이끌 것입니다. 그 과정에서 우리의 마음은 점점 더 하나님의 마음과 같아지고, 우리의 삶은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는 통로가 될 것입니다.

“내가 찾아냈다, 다윗을, 이새의 아들을. 내 마음과 같은 마음을 가진 사람이다. 그가 내 뜻을 모두 실행할 것이다.” 이 다윗처럼 하나님 마음에 맞는 사람, 하나님과 같은 마음을 가진 사람을 지금도 하나님은 찾고 계실 것이며, 만약 찾으신다면 바로 그 사람을 통해 하나님의 뜻은 신비롭게 이루어져갈 것입니다. 저와 여러분이 그런 사람으로 하나님 앞에 설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