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인 예배 (2020년 1월 12일)
- 마태복음 3장 13-17절
- 설교자: Daniel Ženaty 목사 (ECCB총회장)
- Korejský sbor Mt 3,13-17 - 한국어예배 20주년 기념예배 설교문 - 다니엘 제나티 목사.doc
Milí přátelé, sestry a bratři v Kristu, je mi velkou ctí, že vás mohu pozdravit jménem svým i jménem celé Českobratrské církve evangelické.
20 let se scházíte zde v Kobyliském sboru naší církve.
20 se zde zvěstuje svobodně evangelium.
그리스도 안에서 형제자매 된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제가 저 자신과 전체 체코형제복음교회의 이름으로 여러분에게 문안드릴 수 있게 된 것을 대단한 영예로 생각합니다.
지난 20년간 여러분은 우리 교회의 이 곳 꼬빌리시 공동체에서 모였습니다.
20년째 이 곳에서 복음을 자유롭게 증거하고 있습니다.
Síla toho zdůraznění – svobodně – je srozumitelná oběma našim národům. My v České republice jsme prožili dvě hrozné totality – a tak se radujeme z toho, že je nyní možné žít ve svobodě.
‘자유롭게‘라는 말에 놓인 강조점을 우리 두 민족은 쉽게 이해할 수 있습니다. 체코에서 우리들은 두 번의 끔찍한 독재체제를 경험했고, 그래서 이제 우리가 자유 속에서 살 수 있음에 기뻐합니다.
Vy poznáváte nesvobodu a totalitu na údělu svých sester a bratří v severní Koreji.
Tedy – vám, ani nám nehrozí nebezpečí, že bychom nerozuměli významu slova – svoboda. Že bychom necítili vděčnost za 20 let svobodného scházení a zvěstování evangelia.
여러분 역시 북한에 있는 여러분의 형제자매들이 처한 부자유와 독재의 상황을 알고 있습니다. 이제, 여러분이나 우리나, ‘자유‘라는 단어의 의미를 이해하지 못할 만큼, 자유롭게 모여 복음을 증거해온 지난 20년에 대해 감사를 느끼지 못할 만큼, 위험에 처해 있지 않습니다.
Ten text z evangelia podle Mt doporučuje církevní tradice číst tuto neděli po Vánocích. Jde o to, aby se sdělilo a potvrdilo, kdo je ten Ježíš, narozený v Betlémě. Kým je.
마태복음의 이 본문은 교회 전통이 성탄절 다음 주일에 읽도록 추천하는 본문입니다. 이 본문은 베들레헴에서 태어난 그 예수가 누구인가를 말해주고 확증해주는 본문입니다. 그는 누구입니까?
Pomocí nám je příběh, kdy se Jan Křtitel s Ježíšem setká. A odhalí tajemství. Ten Ježíš je Boží syn. Beránek světa, který snímá hřích světa. Chudoba v Betlémě, strašná smrt na kříži. A přesto, nebo právě proto, je to on. Beránek Boží. V jeho jménu má pokleknout každé koleno na nebi, na zemi, i pod zemí.
세례 요한이 예수를 만나는 이야기가 우리에게 도움을 줍니다. 거기서 비밀이 드러납니다. 그 예수는 하나님의 아들입니다. 세상 죄를 지고 가는 세상의 양입니다. 베들레헴에서의 비천함, 십자가에서의 끔찍한 죽음. 그럼에도 불구하고, 혹은 바로 그렇기 때문에, 그는 바로 그것, 하나님의 어린양입니다. 그의 이름에, 하늘과 땅과 땅 아래 모든 것이 무릎을 꿇어야 합니다.
Je to první informace evangelia o dospělém Ježíšovi.
Čteme – tu přišel Ježíš z Galileje k Jordánu za Janem. Tu přišel. Je v tom cosi svobodného. Nevíme o tom, že by předcházelo složité rozhodování, mám, nemám. Že by o to Jan usiloval, aby Ježíš přišel. Možná se tím chce povědět, že setkání s Bohem není založeno na lidské konstrukci, na lidských plánech a závazcích. My to můžeme připravit, ale jen když se k tomu přizná Bůh, má naše dílo pevné, Boží, základy.
이것이 성인 예수에 관한 복음서의 첫 번째 정보입니다.
예수께서 갈릴리로부터 요단 강의 요한에게로 왔다는 내용을 우리는 읽습니다. 그분이 거기로 왔습니다. 그 속에 자유로운 무언가가 있습니다. 그에 앞서, 가야 할지 말아야 할지에 대한 어려운 결심 과정이 있었는지 여부는 알 수 없습니다. 예수께서 오시도록 요한이 애를 썼는지 여부도 알 수 없습니다. 아마도 그는 다음을 말하고 싶었던 것 같습니다. 하나님과의 만남은 어떤 인간적 기획, 사람이 계획하거나 관여하는 바에 기초해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것을. 우리는 준비할 수 있지만, 하나님께서 그것을 인정하실 때에만, 우리의 일은 하나님을 통해 견고한 기초를 갖게 됩니다.
Podobně můžeme myslet na počátky vašeho scházení zde v Kobylisích. Byla to celá řada jmen, osobností, jednání. Díky Bohu za ně. A dnes už víme, že Duch svatý ta jednání podporoval, že to Bohu bylo milé. Radujeme se, že – zdánlivě jakoby nic, zlehka – a ono to stojí na Božích základech a vzájemné důvěře. Konáte svobodně bohoslužby ve své řeči, žijete spojeni Kristem jako bratři a sestry s kobyliským sborem naší církve. Buďme za tento dar vděční.
이 곳 꼬빌리시에 여러분의 모임이 시작된 것에 대해서도 우리는 비슷한 맥락에서 생각해볼 수 있습니다. 일련의 이름들, 사람들, 활동들이 있었을 겁니다. 그 모두가 하나님 덕분입니다. 오늘 우리는 성령께서 그 모든 일들을 도우셨고, 그래서 하나님께 좋은 것이 되게 하셨음을 압니다. 아무것도 아닌 듯 보이는 작은 것조차도, 그것이 하나님의 토대와 상호 신뢰 위에 서 있다는 사실로 인해 우리는 기뻐합니다. 여러분은 자기 언어로 자유롭게 예배를 드리고, 이 꼬빌리시 공동체와 더불어 그리스도를 통해 한 형제자매로 연결되어 살아갑니다. 이 선물에 대해 함께 감사하십시다.
Tu tedy přišel Ježíš z Galileje k Jordánu za Janem, aby se dal od něho pokřtít.
Jan správně rozpoznává, že zde z lidského pohledu něco nehraje. K němu přece přicházejí hříšníci. K němu, Janu Křtiteli, přicházejí lidé, jejichž vztah k Bohu je porušen, a tím i vztah k bližním a k sobě. Lidé kteří touží po změně.
이 때에 예수께서 갈릴리로부터 요단 강에 이르러 요한에게 세례를 받으려 하시니.
요한은 바르게 인식했습니다. 인간적인 관점으로는 설명되지 않는 무언가가 거기서 일어나려 하고 있었습니다. 그에게 오는 사람들은 확실히 죄인들이었습니다. 세례 요한에게 나아오던 그들은 하나님과의 관계가 깨어진 사람들, 또 그로 인해 이웃과의 관계, 자기 자신과의 관계에도 문제가 생긴 사람들, 그래서 변화를 갈망하던 사람들이었습니다.
Ale tento Nazaretský? Proč přichází? On je přece jiná kategorie. Je otázka, zda on vůbec křest potřebuje. Vlastně, by měl on křtít mě, říká Jan Křtitel, pak ano, pak by to mělo smysl. Ale takhle? A tak mu ve křtu bránil.
하지만 이 나사렛 사람은? 그는 왜 오는 걸까요? 그는 전혀 다른 범주에 속하는 사람입니다. 문제는 그가 과연 세례를 필요로 하는 사람인가 하는 점입니다. 사실, 그가 나에게 세례를 주어야 한다고, 요한은 말합니다. 그래야 말이 된다는 거죠. 그런데 이 상황은? 요한은 그 일을 거부하려 합니다.
A pak zazní první živé, přímé slovo, které Ježíš v Písmu řekne. Připusť to nyní. Připusť. Jane připusť, že Bůh jedná, a takhle to chce. Pohni v sobě něčím. Změň to, co si dosud myslíš.
그리고 이어서 성경에 기록된 예수님의 첫 번째 말씀, 그 입에서 생생하게 직접 나온 첫 말씀이 울려퍼집니다. 이제 허락하라. 그것을 허락하라. 이에 요한은 하나님께서 진행하시는 일, 그분이 원하시는 그것을 허락합니다. 무언가에 의해 자기 안에서 움직임이 일어납니다. 이제껏 네가 생각하던 것을 변화시켜라.
To není snadné. Něco si myslíme, k něčemu jsme dospěli, něčemu jsme věnovali energii, schopnosti, představy. Někdo jsme. Máme to nějak srovnané. Něco se nám do hlavy a představ vleze, něco ne. Nějak to funguje. Nic nepotřebujeme. Ať nám do toho nikdo nešťourá.
이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우리는 무언가를 생각하고, 무언가에 도달하고, 무언가에 에너지와 능력과 관심을 쏟아붓습니다. 우리는 그런 사람입니다. 그러한 선상에 있는 것이 우리입니다. 어떤 것은 우리 머리와 생각 속으로 들어오고, 어떤 것은 그러지 못합니다. 이 일은 꽤 잘 이루어지며, 다른 건 필요없습니다. 그 일에 누구도 우리를 방해하게 두지 않습니다.
A najednou požadavek, abychom to změnili. Připustili, že to může být jinak. Připustit, že Bůh může mít požadavek, abychom své představy opravili, nebo opustili.
그런데 갑자기 그걸 변화시킬 것을 요구받습니다. 그것이 다르게 되도록 허락하는 것을 요구받습니다. 하나님이 우리의 생각을 수정하거나 폐기하도록 요구하실 수 있음을 인정하라는 것입니다.
Konkrétně to může vypadat – připustit, že já jsem na tahu se smířením. Připustit, že já se musím změnit, a ne celá rodina, nebo lidé kolem mne. Připustit že děti jsou dospělé a mají svůj život. Uf. Je to dřina.
구체적으로 그것은 이와 같은 모습일 수 있습니다 – 내가 화해의 길로 움직이는 걸 허락하는 것. 내가 가족 전체나 내 주변 사람들이 아닌, 나 자신을 변화시키는 일을 허락하는 것. 내 아이가 성인이 되고 자기 인생 갖는 걸 허락하는 것. 물론 그것은 어려운 일입니다.
Ježíš pokračuje – připusť to nyní, neboť je třeba, abychom naplnili všechnu spravedlnost.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이제 허락하라 우리가 이와 같이 하여 모든 의를 이루는 것이 합당하니라.
Zvláštní slovo. To, co se při křtu či křtem stane naplní spravedlnost. Tento Boží syn, k němuž se Bůh z nebe přizná, půjde po zemi, bude kázat, odkazovat k onomu novém Božímu času. Bude ukřižován, zemře a bude vzkříšen. Tak se naplní, dovrší spravedlnost. Tak se dovrší život. Tak se spojí nebe se zemí. Život, který teď žijeme, se propojí s životem, který nás čeká. Tak získáme i my život – odpuštěním svých vin skrze toho Nazaretského Ježíše. To je naplněná Boží vůle o tomto světě. To je Boží spravedlnost.
이해하기 쉽지 않은 말씀. 세례 중에, 혹은 세례를 통해 어떻게 의를 이루게 된다는 말인가. 하나님께서 하늘로부터 인정하시는 그 하나님의 아들이 땅을 다니며 말씀을 전하고 새로운 하나님의 때를 말할 것입니다. 그는 십자가에 달릴 것이고 죽을 것이며 부활할 것입니다. 그렇게 의가 성취될 것입니다. 그렇게 삶이 완성될 것입니다. 그렇게 하늘이 땅과 연결될 것입니다. 지금 우리가 사는 삶은 우리를 기다리는 삶과 연결될 것입니다. 그렇게 우리도, 그 나사렛 예수를 통해 죄를 용서받음으로 생명을 얻을 것입니다. 이것이 이 세상을 향한 하나님의 뜻이 성취되는 모습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의입니다.
Jane, připusť, teď se to děje. Je zde Boží syn, a to co on udělá pro záchranu člověka úplně stačí.
요한, 이제 그것이 이루어지도록 허락하라. 여기 하나님의 아들이 있고, 그가 인간의 구원을 위해 하는 일은 완전히 충분한 것이다.
Jan pochopil, přijal Ježíšova slova a více mu nebránil. A pokřtil ho.
Když byl Ježíš pokřtěn, hned vystoupil z vody a hle, otevřela se nebesa a spatřil Ducha Božího, jak sestupuje jako holubice a přichází na něho. A z nebe se ozval hlas, tento je můj milovaný syn, jeho jsem si vyvolil.
요한은 이해했고, 예수님의 말씀을 받아들여, 더이상 그를 방해하지 않고, 그에게 세례를 베풀었습니다.
예수께서 세례를 받으시고 곧 물에서 올라오실 때, 하늘이 열리고 하나님의 성령이 비둘기 같이 내려 그의 위에 임하였습니다. 그리고 하늘로부터 소리가 들리길,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 즉 내가 선택한 자라.
I my jsme pokřtěni. Boží zaslíbení platí při každém z nás. Duch svatý sestoupil jako holubice na každého z nás.
우리도 세례를 받습니다. 하나님의 약속은 우리 각 사람에게도 유효합니다. 성령이 비둘기 같이 우리 각 사람 위에 내려오셨습니다.
To nám dává sílu spolehnout na Boha. Dává nám to sílu vidět utrpení lidí. Ať jsou blízko nás, nebo daleko. Smíme se modlit za ty, kdo žijí v nesvobodě. Smíme se modlit za zotročené v Severní Koreji. Za vězněné křesťany. Za trpící v Sýrii, za utištění napětí mezi Íránem a USA.
그분이 우리에게 하나님을 의지할 수 있는 힘을 주십니다. 그분이 우리에게 사람들의 고통을 볼 수 있는 힘을 주십니다. 우리 가까이에 있는 사람이든, 멀리 있는 사람이든 말입니다. 부자유 가운데 살아가는 이들을 위해 우리는 기도할 수 있을 것입니다. 북한에서 억눌려 살아가는 사람들을 위해서도 기도할 수 있을 것입니다. 감옥에 갇힌 그리스도인들을 위해, 시리아에서 고통을 겪는 사람들을 위해, 또 이란과 미국 사이의 긴장 완화를 위해서도 기도할 수 있을 것입니다.
Věříme, že Duch svatý nás vedl ke Kristu i v těch uplynulých 20 letech. Pevně věříme, že tak činí i dnes. A prosme ho, aby byl s námi každý další den naší existence.
성령께서 지난 20년 동안 우리를 그리스도께로 이끄셨음을 믿습니다. 우리는 또한 확고히 믿습니다. 오늘도 역시 그 일이 이루어지고 있다는 것을. 그리고 우리는 기도합니다. 우리가 앞으로 존재할 모든 날 동안 그분이 우리와 함께해주시기를.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