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인 예배 (2024년 3월 24일)
- 요한복음 5장 1-18절
- 설교자: 류광현 목사
네가 낫고자 하느냐 -요5,1-18.docx
<요한복음 5:1-18>
1 그 후에 유대인의 명절이 되어 예수께서 예루살렘에 올라가시니라
2 예루살렘에 있는 양문 곁에 히브리 말로 베데스다라 하는 못이 있는데 거기 행각 다섯이 있고
3 그 안에 많은 병자, 맹인, 다리 저는 사람, 혈기 마른 사람들이 누워 [물의 움직임을 기다리니
4 이는 천사가 가끔 못에 내려와 물을 움직이게 하는데 움직인 후에 먼저 들어가는 자는 어떤 병에 걸렸든지 낫게 됨이러라]
5 거기 서른여덟 해 된 병자가 있더라
6 예수께서 그 누운 것을 보시고 병이 벌써 오래 된 줄 아시고 이르시되 네가 낫고자 하느냐
7 병자가 대답하되 주여 물이 움직일 때에 나를 못에 넣어 주는 사람이 없어 내가 가는 동안에 다른 사람이 먼저 내려가나이다
8 예수께서 이르시되 일어나 네 자리를 들고 걸어가라 하시니
9 그 사람이 곧 나아서 자리를 들고 걸어가니라 이 날은 안식일이니
10 유대인들이 병 나은 사람에게 이르되 안식일인데 네가 자리를 들고 가는 것이 옳지 아니하니라
11 대답하되 나를 낫게 한 그가 자리를 들고 걸어가라 하더라 하니
12 그들이 묻되 너에게 자리를 들고 걸어가라 한 사람이 누구냐 하되
13 고침을 받은 사람은 그가 누구인지 알지 못하니 이는 거기 사람이 많으므로 예수께서 이미 피하셨음이라
14 그 후에 예수께서 성전에서 그 사람을 만나 이르시되 보라 네가 나았으니 더 심한 것이 생기지 않게 다시는 죄를 범하지 말라 하시니
15 그 사람이 유대인들에게 가서 자기를 고친 이는 예수라 하니라
16 그러므로 안식일에 이러한 일을 행하신다 하여 유대인들이 예수를 박해하게 된지라
17 예수께서 그들에게 이르시되 내 아버지께서 이제까지 일하시니 나도 일한다 하시매
18 유대인들이 이로 말미암아 더욱 예수를 죽이고자 하니 이는 안식일을 범할 뿐만 아니라 하나님을 자기의 친 아버지라 하여 자기를 하나님과 동등으로 삼으심이러라
하나님의 은혜와 평강이 성도 여러분과 함께하시길 기원합니다.
오늘 본문은 예수께서 삼십팔 년 된 병자를 고쳐주시는 내용입니다.
명절에 예루살렘에 올라가신 예수님은 양문 곁 베데스다 연못가를 지나가십니다.
그곳에는 행각(colonade) 다섯이 있었고, 그 안에 각종 병자들이 누워 있었습니다.
많은 병자가 거기 누워 있었던 이유가 오늘 본문 3-4절에 나옵니다.
[물의 움직임을 기다리니 이는 천사가 가끔 못에 내려와 물을 움직이게 하는데 움직인 후에 먼저 들어가는 자는 어떤 병에 걸렸든지 낫게 됨이러라]
여기 괄호가 쳐져 있는 이유는 가장 권위 있는 사본에 이 부분이 없기 때문입니다. 성서학자들은 이 괄호 안의 내용이 후대에 다른 사본에 첨가된 것으로 봅니다. 본문 7절에 나오는 병자의 말에 부연설명이 필요하다 생각되었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 병자들이 거기 있었던 이유는 기적적인 치유에 대한 희망 때문이었다는 것입니다.
천사가 못에 내려와 물을 움직일 때에 가장 먼저 그 못에 들어가기 위해서, 그렇게 그 경쟁에서 승리해 병낫길 소망하며 그 베데스다 연못가에 진치고 기다리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베데스다’란 이름은 히브리어로 ‘자비의 집’이란 뜻입니다. 어떤 의미에서 그곳은 병자에게 자비가 베풀어지는 곳이었지만, 또 다른 의미에서 그곳은 자기가 살기 위해 남을 제쳐내야 하는 무자비한 곳이었습니다.
거기 서른여덟 해 된 병자가 있었습니다. 그가 어떤 병을 앓고 있었는지는 나오지 않습니다. 그보다 중요한 정보는 그가 병으로 누워 있은지 이미 오래 되었다는 점입니다.
예수께서 그 누운 것을 보시고 병이 벌써 오래 된 줄 아시고 말씀하십니다: “네가 낫고자 하느냐?”
예수님은 왜 그 병자에게 이것을 물으셨을까요? 병자가 낫고자 하는 건 당연한 일 아닐까요? 그러니까 낫길 소망하며 거기 누워 있었던 것 아니겠습니까?
왜 이런 당연한 걸 물으셨을까, 처음엔 잘 이해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이제는 알겠습니다. 그거 당연한 거 아닙니다! 병자라고 해서 다 낫고자 하는 것은 아닙니다.
그 치유가 고통을 수반한다면, 그 치유가 모험을 수반한다면, 그 치유의 과정에서 예상치 못한 믿음의 행동이 요구된다면, 그 치유로 가는 길에서 이미 가지고 있는 어떤 것을 포기해야 한다면, 그래도 모든 병자가 그 치유의 길을 선택할까요?
그 예수님의 질문에 그 삼십팔 년 된 병자는 이렇게 대답합니다: “주여 물이 움직일 때에 나를 못에 넣어 주는 사람이 없어 내가 가는 동안에 다른 사람이 먼저 내려가나이다”
예수님은 참으로 그가 낫길 원하는지, 그 의향을 물으셨는데, 이 병자는 자신이 이제껏 나을 수 없었던 이유를 말하며 신세한탄을 합니다: 내가 이제껏 나을 수 없었던 이유는 물이 움직일 때에 나를 못에 넣어 주는 사람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늘 그 경쟁에서 뒤쳐졌기 때문입니다.
자기보다 더 잘 걷는 사람은 물이 움직이는 그 순간에 재빨리 몸을 움직여 못에 뛰어드는데, 자기는 그러지 못해 여지껏 이 모양 이 꼴이라는 것입니다. 자기보다 경제적 형편이 좋은 사람은 돈 주고 사람을 사서 남보다 빨리 못에 들어가는데, 자기는 그러지 못해 여지껏 이 모양 이 꼴이라는 것입니다.
그는 여전히 낫기를 희망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의 상상력은 그 베데스다의 세계 속에 갇혀 있습니다. 그가 상상할 수 있는 치유와 구원이란 그저 남들보다 먼저 그 베데스다 못에 뛰어드는 것, 그 가혹한 경쟁에서 요행히 승리하는 것 뿐입니다. 그 이외의 것을 그는 상상할 수 없습니다.
이런 그의 모습은 그에게 치유가 필요한 부분이 육체적 질병만이 아니었음을 보여줍니다. 이렇게 피해의식에 젖어 있는 사람이 과연 육체적 질병이 낫는다 하여 행복한 삶을 영위할 수 있을까요? 그가 행복할 수 없는 이유는 그 베데스다 세계 바깥에도 얼마든 존재할 것입니다.
이렇게 그의 병이 오래된 줄을 예수님은 아셨습니다. 그의 육체적 질병만이 아니라, 그 베데스다의 세계 속에서 살아온 그 오랜 시간이 그를 정신적으로도 깊이 병들게 하였음을 예수님은 보셨습니다.
그래서 물으신 것입니다: “네가 낫고자 하느냐?” 어느덧 흐릿해진 그의 마음 속 진정한 갈망을 다시금 일깨워주고자 하신 것입니다. 오직 예수님만이 그에게 온전한 치유를 베푸실 수 있는 분이었고, 그에게 진정 필요한 것이 그것이었기 때문입니다.
자기 신세를 한탄하는 병자를 향해 예수님이 이어서 하신 말은 어줍잖은 위로의 말이 아니었습니다. 믿음의 행동을 요구하는 도전의 말이었습니다: “일어나 네 자리를 들고 걸어가라!” 몇 일이나 몇 달, 혹은 몇 해도 아니고, 무려 삼십팔 년이나 눕거나 기어서만 생활하던 그에게 이제껏 할 수 없었던 일을 하도록 시키신 것입니다.
이 예수님의 말씀에 병자는 당황했을 것입니다. 내 상태를 모르고 저 말을 하시는 건가? 어쩌면 그가 예수님에게 내심 기대하고 있던 것은 다른 방식의 도움이었는지 모릅니다. 예를 들어, 물이 움직일 때 재빨리 그를 들어 못에 넣어 주는 것, 아니면 그 일이 가능할 수 있는 삶의 조건을 그에게 만들어주는 것.
그러나 예수님의 입에서 나온 말은 전혀 예상 밖의 것이었습니다: “일어나 네 자리를 들고 걸어가라!” 지난 주일 설교본문 속 왕의 신하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오늘 본문 속 병자 역시 자신의 기대와 계획의 틀 속에서 움직이지 않는 예수님을 마주하고 있습니다. 경쟁과 요행이 지배하는 그 베데스다의 세계가 약속하는 구원이 아니라 완전히 새로운 방식의 구원의 길로 예수님은 그를 초청하고 계십니다.
“일어나 네 자리를 들고 걸어가라 하시니 그 사람이 곧 나아서 자리를 들고 걸어가니라” 일어난다는 것은 병이 낫는 일을 수반합니다. 병이 낫지 않았다면 그는 일어날 수 없었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그는 나은 후에 일어났을까요? 아니면 일어나면서 나았을까요?
“나아서 자리를 들고 걸어가니라” 이 9절 말씀 속에 ‘일어나’라는 말이 빠져 있음을 봅니다. 만약 나은 후에 일어났다면 “나아서 일어나 자리를 들고 걸어가니라”라고 했을 것입니다. 다시 말해 본문은 그 사람이 일어난 것을 나은 뒤의 일로 묘사하지 않는 것입니다.
이로 보건대, 그 병자는 자신이 나았음을 확인하고 그 다음에 몸을 일으켰다기보다는, 예수님 말씀에 반응하여 몸을 일으키는 움직임 속에서 거의 동시적으로 자신이 나았음을 확인한 것이 아닐까 생각됩니다.
‘일어나’라는 말에 이어 예수님은 “네 자리를 들고 걸어가라”는 말도 하십니다. 육체적 질병의 치유만 생각하셨다면 그저 일어나라는 말씀만으로 충분했을 것입니다.
뒤에 이어지는 내용을 보면, 그 사람이 그렇게 자기 자리를 들고 걸어나감으로 인해 아주 골치아픈 상황이 펼쳐집니다. 그 사람이 안식일에 해서는 안 되는 행동을 했다며 유대인들이 그를 비난합니다. 그리고 그 일을 지시했다는 이유로 예수님에게는 박해가 시작됩니다. 이것을 예상 못한 바 아니었을 텐데, 그런데도 예수님은 왜 굳이 “네 자리를 들고 걸어가라” 하셨던 걸까요?
여기서 ‘자리’란 매트, 침상, 그가 이제껏 누워 있던 자리를 말합니다. 그 베데스다의 세계 속에서 그가 차지하고 있던 한 자리입니다. 어쩌면 그것은 이 세상 속에서 그가 가까스로 확보하고 살던 유일한 한 자리였을지 모르겠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그 자리를 들고 걸어가라 지시하신 것입니다. 이제 나았으니 그 베데스다의 세계에서 나오라, 더는 그곳에 미련을 두지 마라, 이전과는 다른 삶을 살라는 의미가 아니었겠습니까! 그가 수많은 실패와 낙심 속에서도 어쩔 수 없이 미련을 두고 몸담고 살던 그 세계에서 그를 불러내어 새로운 세계, 더 나은 삶의 길로 인도하시려는 도전의 말씀 같습니다. 이것까지 이루어져야 그에게 온전한 치유가 가능할 수 있으리라 생각하신 것 아닐까요?
여러분, 우리가 몸담고 살아가는 오늘의 이 세계가 저 베데스다의 세계를 닮아 있지 않습니까? 요행과 경쟁이 지배하는 세계, 모두가 한 점을 향해 일제히 돌진하는 세계, 대부분의 사람들이 끊임없이 실패와 좌절을 경험해야만 하는 세계, 그 경쟁에서 승리하는 것 외에는 그 어떤 구원의 길, 행복의 길도 상상하지 못하는 닫힌 세계 말입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려는 구원은 그 닫힌 세계 속에서의 구원이 아니라는 것을 우리는 알아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려는 구원은 우리가 속해 있던 죄악된 세계, 표적을 빗나가는 화살처럼 하나님의 뜻에서 멀어진 세계로부터의 구원입니다. 거기에서 우리를 불러내어 이전엔 상상도 할 수 없었던 새로운 세계, 하나님의 나라, 새로운 생명의 삶으로 우리를 인도하시는 구원입니다.
이것은 그리스도인이 이 세상을 떠나야 한다는 뜻도 아니고 세상을 등진 삶을 살아야 한다는 뜻도 아닙니다. 이 세상이 제시하는 틀을 따라 이 세상에 속한 삶을 살지 않고 그리스도의 복음 안에서 마음이 새롭게 되어 하나님 나라에 속한 삶을 산다는 뜻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그리스도인은 일차적으로 세상으로부터 불러내어진 사람들이며, 그렇게 주님 안에서 새롭게 되어 다시 세상으로 보냄받아 살아가는 사람들입니다.
그리스도인이 교회에만 있어서는 안 된다, 세상 속으로 들어가야 한다는 말을 합니다. 틀린 말이 아닙니다. 예수님은 그분을 따르는 자들에게 세상의 소금과 빛이 될 것을 말씀하셨습니다. 문제는 그리스도인이 세상 속에서 빛과 소금이 되는 것은 자동적으로 일어나는 일이 아니라는 점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또한 “너희 속에 있는 빛이 어둡지 아니한가 보라” 말씀하신 것입니다. 또한 “소금이 그 맛을 잃으면… 다만 밖에 버려져 사람들에게 밟힐 뿐이라” 하신 것입니다.
간혹 예수 믿는 사람들의 소망과 목표가 다른 세상 사람들과 별반 다르지 않은 경우를 봅니다. 돈 많이 벌고, 좋은 대학 가고, 편하게 살고, 남는 것 있으면 없는 사람들 좀 도와주고… 만약 우리가 이 세상에 속하여 구원에 대한 우리의 상상력이 이 세계 안에 갇혀 있다면, 우리가 추구하며 사는 것, 심지어 우리가 주님께 구하는 것 역시 그 좁고 왜곡된 범주를 벗어나지 못할 것입니다. 세상 사람들이 다 경쟁하며 추구하는 그것을 주님 도움 받아 얻으려 하는 삶을 벗어나지 못할 것입니다.
그런데 삶은 여러분이 바라는 대로 흘러가지 않을 것입니다. 예수님은 우리가 기대하고 계획한 틀 속에서 움직이지 않으십니다. 우리의 진정한 치유를 위해 어떤 믿음의 행동을 요구하십니다. 내가 전에 속해 있던 세계를 떠나게 하십니다. 그 안에서 내가 확보하고 있던 어떤 것을 포기하게 하십니다. 그리하여 전에 의지하던 것들에 미련을 두지 않게 하시고 하나님 안에서 우리의 삶이 완전히 새로 빚어지게 하십니다. 왜냐하면 그것이 진정 더 나은 삶을 위한 길이기 때문입니다.
오늘 본문 뒷부분에도 중요한 내용이 많지만, 시간이 많이 갔기에 이제 말씀을 맺겠습니다.
오늘은 고난주간의 시작인 종려주일, 예수께서 어린 나귀를 타고 사람들의 환호를 받으며 예루살렘에 입성하신 것을 기억하는 날입니다. 그분은 왕으로 이 땅에 오셨지만, 전쟁에 능한 왕가의 군마가 아닌 짐 싣는 동물인 어린 나귀를 타고 입성하셨습니다. 그리고 사람들이 바라고 기대한 대로 헤롯 왕궁을 향해 가지 않으시고 우리 모든 죄인을 구원하시려 골고다 십자가를 향해 나아가셨습니다.
이제 우리는 모든 것을 예수 십자가와 부활의 빛 속에서 다시 봅니다. 저 베데스다의 세계 속에 있던 한 병자에게 “네가 낫고자 하느냐” 물으셨던 것처럼 예수님은 오늘의 우리에게도 물으십니다: 네가 낫고자 하느냐? 그리고 참으로 낫고자 하는 자들에게 또한 말씀하십니다: “일어나 네 자리를 들고 걸어가라!”
이 두 말씀은 우리를 온전한 치유, 진정한 구원으로 인도하는 은혜로운 초청의 말씀입니다. 이 말씀에 응답하여 주님이 부르시는 곳으로 나아가는 우리 모두가 될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아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