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인 예배 (2021년 12월 26일)
- 시편 1:1-6
- 설교자: 류광현 목사
- 말씀의 시냇가에 서자 - 에필로그 - 시1,1-6.docx
<시편 1:1-6> (개역개정)
1 복 있는 사람은 악인들의 꾀를 따르지 아니하며 죄인들의 길에 서지 아니하며 오만한 자들의 자리에 앉지 아니하고
2 오직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여 그의 율법을 주야로 묵상하는도다
3 그는 시냇가에 심은 나무가 철을 따라 열매를 맺으며 그 잎사귀가 마르지 아니함 같으니 그가 하는 모든 일이 다 형통하리로다
4 악인들은 그렇지 아니함이여 오직 바람에 나는 겨와 같도다
5 그러므로 악인들은 심판을 견디지 못하며 죄인들이 의인들의 모임에 들지 못하리로다
6 무릇 의인들의 길은 여호와께서 인정하시나 악인들의 길은 망하리로다
하나님의 은혜와 평강이 성도 여러분과 함께하시길 기원합니다.
어느덧 1년이 지나고 2021년의 마지막 주일을 맞았습니다. 1년전과 지금, 겉으로 보이는 상황은 크게 달라진 것 같지 않습니다. 여전히 우리는 코로나로 인한 어려움 속에 있습니다. 그러나, 어쩌면 더 중요한 변화가 누군가의 마음 속에서는 일어났을 수 있습니다.
올해 우리는 이 시편 1편 말씀과 함께 한 해를 시작했습니다. 말씀의 시냇가에 서는 삶을 함께 노력했습니다. 본문 말씀의 요지는 간단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뿌리내리고 사는 사람이 복 있는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그가 ‘형통’의 복을 누리리라는 것입니다.
여기서 ‘형통하다’는 것은 삶에 어려움이 전혀 없다는 뜻이 아닙니다. 오히려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사는 사람은 세상에서 어려움을 더 겪기 십상입니다. 하지만 결국 그 사람은 잘 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그와 함께하시기 때문입니다.
요셉의 인생이 이 ‘형통’의 삶을 잘 보여줍니다. “요셉이 옥에 갇혔으나 여호와께서 요셉과 함께 하시고 그에게 인자를 더하사”(창39:20-21) ‘요셉’이란 이름의 뜻이 ‘더함’이죠. 하나님의 사람은 세상에서 손해보는 인생을 사는 것 같습니다만, 나중에 보면 그의 인생이 훨씬 더 풍성합니다. 하나님께서 그에게 더해주시는 것이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뿌리내리고 사는 사람이 복 있는 사람인 이유를 본문은 크게 세 가지로 말하고 있습니다. 첫째, 그 사람은 피해야 할 것을 피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둘째, 그 사람은 하나님의 돌보심을 받기 때문입니다. 셋째, 그 사람은 끝이 보장된 길을 가고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 하나 살펴보겠습니다.
첫째, 피해야 할 것을 피하며 사는 복. 본문 1절에 보면, 복 있는 사람은 다음 세 가지를 하지 않는 사람이라 합니다. 악인들의 꾀를 따르지 않는다, 죄인들의 길에 서지 않는다, 오만한 자들의 자리에 앉지 않는다. 다시 말해, 따르지 않아야 할 생각을 따르지 않고, 서지 말아야 할 길에 서지 않고, 앉지 말아야 할 자리에 앉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따르다, 서다, 앉다… 이 세 행위는 연쇄적으로 발생하기 쉽습니다. 어떤 생각을 따르다보면 어떤 길에 서게 되고, 그 길에 서서 가다보면 어떤 자리에 앉게 됩니다. 오늘 본문은 우리가 경계해야 할 최악의 상황을 암시합니다. 악인의 꾀를 따르다가 죄인의 길에 서고, 그 죄인의 길을 걸어가다가 오만한 자의 자리에 앉는 상황입니다.
여기서 ‘악인의 꾀’란 어떤 나쁜 의도를 가진 생각을 말할 것입니다. 어쩌면 그것은 세상에서 일반적으로 통용될 뿐 아니라, 심지어 ‘지혜로운’ 것으로 여겨지는 생각일 수도 있습니다. 누구나 이런 생각에 마음이 흔들릴 수 있지만, 실제 죄인의 길에 서는 것은 또다른 문제입니다.
길에 선다는 것은 어딘가를 향해 의지를 들여 나아간다는 뜻입니다. ‘죄인의 길이란 하나님의 마음과 뜻을 거스르는 길이라 할 것입니다. 바울이 회심 전에 그랬던 것처럼, 하나님과 정반대 방향으로 뭔가를 열심히 하는 모습입니다.
그런데 오만한 자의 자리에 앉는다는 것은 거기서 한 발 더 가는 것입니다. 그 틀린 것을 옳다 하는 자세입니다. 여기서 ‘오만한 자’란 거들먹거리며 조롱하는 사람을 말합니다. 하나님과 정반대 방향으로 가면서도 자기 문제를 인식하지 못하고, 오히려 잘 가고 있는 사람들을 조롱하며 핍박하는 삶의 모습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뿌리박고 사는 사람이 복 있는 사람인 이유는 이런 상태에 빠져들어가는 것을 하나님의 말씀이 막아주기 때문입니다. 본문 2절에, 복 있는 사람은 오직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여 그 율법을 주야로 묵상하는 사람이라 합니다.
묵상, 히브리말로 ‘하가’라 하죠. 원어의 뜻을 살려 새번역 성경은 ‘작은 소리로 읊조리다’로 번역하고 있습니다. 이건 단순히 암기를 위한 반복적인 읊조림을 말하는 게 아닙니다. 삶의 특정한 순간마다 말씀을 떠올리고 읊조리는 것을 말합니다. 지금 이 상황에서 하나님은 내가 어떻게 하길 원하실까, 하나님의 뜻이 뭘까, 무엇이 내가 따라야 할 생각이며 내가 서야 할 길일까, 말씀 안에서 생각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지식’과 ‘깨달음’의 차이를 아십니까? 어떤 말씀을 지식으로 아는 것과 깨닫는 것은 다른 차원의 일입니다. 지식으로 아는 것은 이미 있던 것들에 하나 더 보태지는 거죠. 깨닫는 것은 이미 있던 것들의 의미와 가치와 색깔이 새로워지는 것입니다. 내가 중요하게 생각하던 것이 어느 순간 전혀 중요한 것이 아님을 깨닫기도 합니다. 반대로 내가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던 것이 나에게 정말 중요한 것임을 깨닫기도 합니다. 하나님 말씀이 나의 진짜 고민, 진짜 마음, 진짜 생활 속으로 파고들어 역사하지 않으면 깨달음은 일어나지 않습니다. 지식은 우리 삶을 바꿀 힘이 없습니다. 그러나 깨닫게 되면 마음도 바뀌도 삶도 바뀝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 속에서 역사하는 방식을 히브리서의 이 말씀만큼 탁월하게 표현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살아 있고 활력이 있어 좌우에 날선 어떤 검보다도 예리하여 혼과 영과 및 관절과 골수를 찔러 쪼개기까지 하며 또 마음의 생각과 뜻을 판단하나니 지으신 것이 하나도 그 앞에 나타나지 않음이 없고 우리의 결산을 받으실 이의 눈 앞에 만물이 벌거벗은 것 같이 드러나느니라”
묵상은 바로 이 일이 일어나길 소망하는 몸짓입니다. 평소 말씀을 가까이 하며 살지 않던 사람이 삶의 특정한 순간에 말씀을 떠올리기란 쉽지 않습니다. 외국어를 습득하는 과정을 생각해보십시오. 어휘를 알고 문법을 알아도 특정한 순간에 말이 바로 나오지 않습니다. 그 언어의 장에 어느 정도 푹 잠겨 있을 때에만 그 상황에 맞는 말이 반사적으로 튀어나옵니다.
우리 삶 속에 말씀이 역사하는 방식도 마찬가지입니다. 평소 말씀을 가까이하며 살던 사람이 특정한 상황에 말씀을 떠올릴 수 있고, 그 말씀을 묵상하는 가운데 피해야 할 것을 피하며 바른 길로 나아갈 수 있습니다.
둘째, 하나님의 돌보심을 받는 복. 하나님의 말씀을 즐거워하여 주야로 묵상하며 사는 사람은 시냇가에 심은 나무가 철을 따라 열매를 맺으며 그 잎사귀가 마르지 아니함 같으니 그가 하는 모든 일이 다 형통하리라 말씀합니다.
시냇가에 심겨진 나무가 생명력을 유지하고 결실할 수 있는 비결은 다른 데 있지 않습니다. 서 있어야 할 곳에 서 있기 때문입니다. 생명의 근원에 뿌리박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 간단한 사실을 놓치고 사는 분들이 꽤 있습니다.
여러분 우리가 성경을 읽는 이유는 단순히 무엇이 옳은 것인가 알기 위함만은 아닙니다. 실제 그 옳은 길을 따라 살 수 있는 힘을 얻기 위한 목적도 있습니다.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알면서도 우리는 그렇게 살지 못할 때가 많습니다. 그런 일이 반복되다보면 하나님의 말씀도 부담으로 느껴지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런데 실제 매일 말씀 안에서 살아본 분들에게 물어보십시오. 말씀이 힘을 줍니다. 새 힘을 공급받습니다. 무거운 것을 혼자 들 때와 누군가의 도움을 받아 같이 들 때의 차이를 생각하셔도 좋겠습니다. 말씀 안에서 우리는 하나님의 돌보심과 도우심을 경험합니다. 삶이 가뿐해집니다.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삶이 자연스러워집니다.
시냇가에 심은 나무는 철을 따라 열매를 맺는다 합니다. 나무가 햇빛 받고 물 빨아들이며 자라고 열매맺는 과정은 자연스럽습니다. 그 생명 현상이 원활히 잘 이루어진 나무는 한여름 뜨거운 햇빛을 거뜬히 견디며 때가 되면 자연스럽게 열매를 맺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하나님께 맡기십시오. 내가 맺고 싶은 열매 하나님 도움으로 맺을 생각하지 말고, 하나님이 나에게서 그분의 열매를 맺으시도록 늘 하나님 안에 거하길 힘쓰십시오. 복 있는 사람은 서 있어야 할 곳에 서 있는 사람, 그래서 하나님의 돌보심 가운데 형통의 복을 누리는 사람입니다.
예수님도 같은 맥락에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내 안에 거하라 나도 너희 안에 거하리라 가지가 포도나무에 붙어 있지 아니하면 스스로 열매를 맺을 수 없음 같이 너희도 내 안에 있지 아니하면 그리하리라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라 그가 내 안에 내가 그 안에 거하면 사람이 열매를 많이 맺나니 나를 떠나서는 너희가 아무 것도 할 수 없음이라”(요15:4-5)
마지막 셋째, 끝이 보장된 길을 가는 복. 오늘 우리의 삶이 아무리 편하다 한들 그 끝이 멸망이라면 누가 그것을 복된 삶이라 하겠습니까. 반면 오늘 우리의 삶에 어려움이 있다 할지라도 그 끝이 영생이라면 우리는 기꺼이 견디며 그 길을 갈 수 있습니다.
본문 6절에 말씀합니다. “무릇 의인들의 길은 여호와께서 인정하시나 악인들의 길은 망하리로다” 처음부터 의인, 처음부터 악인은 없습니다. 악인들의 꾀를 따르고 죄인들의 길에 서고 오만한 자들의 자리에 앉다보면 그는 악인이 되는 것입니다. 이 길을 가는 사람들은 하나님의 심판을 견디지 못하리라 말씀합니다.
반대로 하나님의 말씀을 즐거워하여 주야로 그것을 묵상하며 하나님의 마음과 뜻을 따라 살기에 힘쓰는 인생이 있다면 그는 의인의 길을 가고 있는 것입니다. 이 의인의 길은 여호와께서 인정하시는 길이라 합니다. 약속이 있는 길, 하나님께 기억되는 삶의 길이라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은 끝을 아는 사람들입니다. 끝을 알고, 그 끝을 염두에 두고 오늘을 사는 사람들입니다. 이것은 정말 놀라운 특권이자 승리의 비결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에게 이 끝을 지속적으로 상기시켜줍니다. 우리가 어디를 향해 가고 있는지 일깨워주고, 이에 오늘을 어떻게 살아야 할지 깨우쳐줍니다.
끝을 안다고 해서 오늘이 의미없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종말의 빛 속에서 우리의 오늘은 새로워집니다. 헛된 것을 손에서 놓을 수 있게 되고, 정말 중요한 것을 붙잡을 수 있게 됩니다. 우리의 일터와 가정과 모든 인간관계 속에 새로운 숨결을 불어넣을 수 있게 됩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에게 주는 유익은 너무나 많지만, 저에게 한 가지만 얘기하라면, 저는 ‘자유’를 말할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를 자유케 합니다. 이 말이 의아하게 여겨지시는 분도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사실입니다. 예수님도 말씀하셨습니다: “너희가 내 말에 거하면 참으로 내 제자가 되고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롭게 하리라”(요8:31-32)
종교가 하나님의 말씀으로 사람들을 짓누르고 억압했던 역사 때문에 하나님 말씀을 무거운 짐처럼 여기는 경우가 있는데, 사실은 그렇지 않습니다. 진리는 사람을 자유케 하고, 예수님의 말씀은 우리를 진리로 인도합니다.
자유는 선택할 수 있는 옵션의 크기가 아닙니다. 자유는 얽매임 없이 마음속 깊은 갈망을 따라 행할 수 있는 능력입니다. 진정 자유로운 사람은 이 땅에 서 있을 곳 하나 없고, 당장 내 목에 칼이 들어와도, 자유를 행사합니다. 누구도 그에게서 그 자유를 빼앗을 수 없습니다.
하나님 말씀을 통해 우리는 내가 무언가에 얽매여 있음을 깨닫습니다. 내가 자유로운 상태가 아님을 깨닫습니다. 그리고 무엇을 붙들어야 할지를 깨닫습니다. 그리고 그것을 끝까지 붙들 수 있는 힘을 얻습니다. 그렇게 우리는 자유로운 삶으로 나아갑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그러므로 올초에 드렸던 말씀을 다시 드리며 오늘 설교를 마치고 싶습니다. 말씀의 시냇가에 서십시오! 2021년에만에 아니라 2022년에도, 그리고 그 이후에도 늘 하나님 말씀에 뿌리내리고 살아가는 우리 모두가 될 수 있길 바랍니다.
여러분, 올 한 해도 수고 많으셨습니다. 임마누엘의 예수님이 우리와 늘 함께하십니다. 사도 바울이 빌립보교회에 보낸 편지에 적힌 말로 여러분을 축복하며 설교를 마치고 싶습니다. “너희 안에서 착한 일을 시작하신 이가 그리스도 예수의 날까지 이루실 줄을 우리는 확신하노라” 아멘.
기도하겠습니다.
사랑의 주님, 올 한 해도 베풀어주신 은혜에 감사를 드립니다.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가 가운데 오신 예수님, 그렇습니다. 당신의 말씀은 진리이며 자유입니다. 늘 말씀의 시냇가에 서서 하나님 기뻐하시는 열매 많이 맺으며 사는 우리 모두가 되게 하여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