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음과 부르심

<로마서 1:1-7>

1 그리스도 예수의 종인 나 바울은 부르심을 받아 사도가 되었습니다. 나는 하나님의 복음을 전하기 위하여 따로 세우심을 받았습니다.

2 이 복음은 하나님께서 예언자들을 통하여 성경에 미리 약속하신 것으로

3 그의 아들을 두고 하신 말씀입니다. 이 아들은, 육신으로는 다윗의 후손으로 태어나셨으며

4 성령으로는 죽은 사람들 가운데서 부활하심으로 나타내신 권능으로 하나님의 아들로 확정되신 분입니다. 그는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5 우리는 그를 통하여 은혜를 입어 사도의 직분을 받았습니다. 그것은 우리가 그 이름을 전하여 모든 민족이 믿고 순종하게 하려는 것입니다.

6 여러분도 그들 가운데 들어 있어서, 예수 그리스도의 부르심을 받은 사람이 되었습니다.

7 나는 로마에 있는 모든 신도에게 이 편지를 씁니다.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사랑하셔서 그의 거룩한 백성으로 부르셨습니다. 하나님 우리 아버지와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내려 주시는 은혜와 평화가 여러분에게 있기를 빕니다.

 

 

모여 기도하던 제자들에게 마침내 성령이 임했습니다.

성령으로 충만해진 그들은 말하기 시작했습니다.

하나님이 나사렛 예수를 통해 하신 큰 일을

성령이 말하게 하심을 따라 전하기 시작했습니다.

베드로가 말했고, 스데반이 말했습니다.

스데반은 그 때문에 죽임을 당했습니다.

그러나 그 메시지는 죽지 않았고 오히려 더 퍼져나갔습니다.

다시 다른 곳에서 빌립이 말했고,

또 다른 곳에서 베드로가 말했으며,

다시 또 수많은 곳을 다니며 바울이 말했습니다.

그리고 계속 계속 더 퍼져나가 오늘 우리에게까지 이르렀습니다.

그들이 말했던 이유는 명확했습니다.

그 메시지는 모든 사람을 위한 것이었기 때문입니다.

모두가 들어야 할 기쁜 소식이었기 때문입니다.

 

그 복음이 유대인을 넘어 이방인에게도 전파될 수 있도록

하나님께서 한 사람을 택해 사용하셨는데, 그가 바울이었습니다.

세 번에 걸친 바울의 전도여행을 통해

소아시아와 유럽 여러 곳에 교회들이 생겨났습니다.

때때로 그는 편지를 보내 그 교회에 필요한 메시지를 전했습니다.

그렇게 보내진 몇몇 편지들이 신약성서에 수록되어 있습니다.

로마서는 이 서신서들 중 맨 앞에 위치해 있습니다.

로마 교회는 바울이 개척한 교회가 아니었습니다.

세 번째 전도여행중 바울은 로마를 방문할 계획을 세웁니다.

먼저 예루살렘에서의 일을 마친 후 스페인으로 넘어가기 전에,

로마에 들러 그곳 성도들과 교제할 수 있기를 소망하며

미리 그곳에 써보낸 편지가 바로 로마서입니다.

 

오늘부터 설교와 성경공부를 통해 이 로마서를 깊이 살펴보고자 합니다.

긴 호흡이 필요합니다. 들으려는 마음이 필요합니다.

나 자신에게서 출발하여 이것 저것을 선택한 경우가 많았겠지만,

말씀을 들을 때는 하나님에게서 출발하려는 결단이 필요합니다.

진리는 단순하고 간결할 수 있어도

진리에 이르는 과정엔 진지함과 치열함이 요청됩니다.

하다못해 물건 하나를 사도 잘 사용하려면 인내하며 매뉴얼을 읽어야 하는데,

하나님과 인간, 세계와 역사의 의미를 밝혀주는 하나님의 진리 앞에서

대충 훑어보고 다 이해한듯 치우려는 마음으로 임하는 건 옳지 못합니다.

하나님은 말씀을 겸손히 듣고 간절히 받는 사람에게 은혜를 주십니다.

 

오늘 본문은 편지의 서두 부분입니다.

신학자 톰 라이트는 이 부분을 정교하게 설계된 일급 로켓 발사대에 비유합니다.

말하자면 이 첫머리에 앞으로 그가 말하려는 키워드들이 다수 담겨 있습니다.

 

나 바울은..

편지의 발신자 바울은 누구인가?

여러 대답이 나올 수 있을 것입니다.

유대인이다.. 길리기아 다소 출신이다.. 로마 시민이다..

예루살렘에서 자랐다.. 바리새파다.. 가말리엘의 제자다..

실상 이런 것들이 사람들이 자신과 타인을 규정하고 이해하는 방식입니다.

하지만 이런 정보들 가지고는 바울이 누구인가를 참으로 알지 못합니다.

그는 이미 그 너머에 존재하는 사람,

그런 것들이 더이상 의미없어져 버린 사람,

이제 자신을 새롭게 인식하며 사는 ‘새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 예수의 종

그는 자신을 이렇게 규정합니다.

이것은 4절 끝에 나오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라는 말과 짝을 이룹니다.

이제 바울은 자신을 예수 그리스도와의 관계 속에서 규정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의 주님 혹은 주인이시며,

바울 자신은 그분의 종, 그분을 섬기는 자라는 것입니다.

부르심을 받아 사도가 되었다

사도, ‘보냄받은 자’라는 뜻입니다.

그의 주인이자 왕이신 예수께서 그에게 사명을 맡겨 보내셨다는 것입니다.

‘종’은 매우 겸손한 칭호이며, 모든 그리스도인들에게 해당되는 단어입니다.

반면 ‘사도’는 대단한 권위를 나타내는 칭호이며,

특별한 사람들에게만 해당되는 단어입니다.

일반적인 사도의 자격요건은 이랬습니다.

예수께서 친히 부르시고 위임하신 사람들,

그리고 부활하신 주님을 목격한 사람들.

바울은 예수님의 열두 제자중 하나는 아니었지만,

그 역시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났고,

그분께 직접 복음 전파의 사명을 받았습니다.

그에게 이것은 너무도 확실한 체험이었지만,

아직 누군가에겐 미지의 사실이요 의혹일 수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그는 자신이 사도, 즉 보냄받은 자라는 걸 말해야 했습니다.

이유는, 그의 말을 듣는 사람들이 그것을 바울 자신의 말이 아니라,

그를 보내신 분 예수 그리스도의 말로 들어야 했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바울은 무엇을 위하여 보내심을 받았는가?

하나님의 복음을 위하여’

복음, 이것이 로마서의 핵심 키워드일 것입니다.

‘복음’은 단순히 기쁜 소식, 여러 기쁜 소식들 중에 하나가 아니라,

이미 그 단어 속에 오래 숙성된 심오한 의미를 내포한 말입니다.

그런데 그 앞에 ‘하나님의’ 라는 수식어가 붙어 있습니다.

하나님의 복음!

존 스토트는 이것을 다음의 한 문장으로 표현합니다.

복음의 기원은 하나님이다!

복음은 철저히 하나님에게서 비롯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주도권을 가지고 행하신 일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주어진 기쁜 소식입니다.

이 복음은 어떤 똑똑한 인간의 잡다한 사색이 아니며,

다른 종교들에 추가되는 또 하나의 종교도 아닙니다.

이제부터 바울이 상세히 말하려고 하는 그 복음은

이 세상에 속한 그 무엇으로부터 올 수 있는 것이 아니요,

오직 전적으로 다르게 존재하시는 분,

우리가 다 이해할 수 없고 소유할 수도 없는 분,

그러나 바로 그런 이유에서 구원이 그분에게서만 오는

바로 그 하나님의! 복음이라는 것입니다.

이 복음은 하나님께서 예언자들을 통해 성경에 미리 약속하신 것이라’

사도들에게 계시된 복음은 어느날 갑자기 뜬금없이 주어진 것이 아니란 것입니다.

어떤 의미에서 그 복음은 오래 전 선포된 것이 마침내 무르익어 성취된 것입니다.

오랫동안 비밀처럼 간직되어 왔던 예언자들의 말이 이제 다시 들리기 시작하고,

이미 오래 전에 선포되었으나 이해되지 않던 것들이 비로소 이해되기 시작합니다.

 

그렇다면 그 복음의 내용은 무엇인가?

이 복음은… 그의 아들에 관하여…’

이 아들이…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시니라’

복음은 하나님의 아들에 관해 이미 약속된 것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성취되었다는 기쁜 소식입니다.

예수 그리스도, 그가 하나님의 아들이고, 그가 우리의 주님이시다!

신학자 칼 바르트는 “이 이름 안에서 두 세계가 서로 만나고 헤어지며 두 영역이 교차되니

곧 미지(未知)의 영역과 기지(旣知)의 영역이 교차된다”고 말합니다. 이것이 무슨 뜻인가?

‘기지의 영역’이란 우리에게 이미 알려진 세계로서,

하나님에 의해 창조되긴 했으나 하나님과의 통일성을 잃고 이탈된 세계,

따라서 구원이 필요한 육의 세계, 시간의 세계, 사물의 세계, 인간의 세계,

곧 우리의 세계를 말합니다.

이 기지의 영역이 다른 미지의 영역, 즉 하나님의 세계,

근원적인 창조의 세계, 최후 구속의 세계와 만나는 교차선이

이제 예수 안에서, 즉 나사렛 예수, 역사적 예수,

육신으로는 다윗의 혈통에서 나신’ 그분을 통해 결정적으로 나타났다는 것입니다.

바울에 따르면 그 과정은 성령을 통해 이루어졌습니다.

성령으로는 그가 죽은 자들로부터 부활하심으로써 권능으로 하나님의 아들로 확정되셨다’

예수님은 이미 그 전부터 하나님의 아들로 존재하고 계셨지만,

부활을 통해 그가 하나님의 아들이심이 확실히 드러났다는 뜻입니다.

부활은 계시입니다. 감추인 비밀의 열림, 알려지지 않은 세계의 비침입니다.

부활은 그리스도 예수의 발견입니다. 부활로 예수는 메시아요 구원자임이 확증됩니다.

부활은 하나님의 현현입니다. 부활의 예수 안에서 우리는 하나님을 인식합니다.

이 부활 가운데서 성령의 새세계는 육의 옛세계와 접촉합니다.

그 새세계는 마치 하나의 접선이 원을 접촉하는 것과 같이

옛세계와 혼합되지 않으면서도 그것에 접하며 구원의 새 빛을 뿌립니다.

예수의 부활은 그의 제자들로 하여금 그분을 다시 새로운 빛 속에서 보게 합니다.

예수라는 ‘열린 틈’을 통해 우리의 세계에 새로운 계시와 구원의 빛이 비쳐듭니다.

그 빛 속에서 이제 예수는 그저 ‘다윗의 혈통에서 나신’ 이에 불과할 수 없습니다.

바울이 고백하듯, 그분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이처럼 복음이 하나님의 복음, 또 예수 그리스도에 관한 복음임을 밝힌 후,

바울은 다시 그 복음을 위한 그의 사도직에 대해 말합니다.

그로 말미암아 우리가 은혜와 사도의 직분을 받아’

그리스도의 은혜로 그가 ‘사도가 되는 과분한 특권’을 누리게 되었다는 뜻입니다.

어쩌면 그는 잘못된 열심 속에 예수 믿는 자들을 박해하던 자기를 부르셔서

예수 전하는 자로 세우신 주의 은혜를 생각하며 이 말을 하고 있는지 모릅니다.

우리 인생을 주의 부르심을 따라 살 수 있다는 것은 분명 큰 은혜일 것입니다.

그의 이름을 위하여 모든 이방인 중에서’

여기서 그가 ‘모든 이방인 중에서’ 라고 한 것은

그가 특별히 이방인의 사도로 부름받았기 때문이고,

또한 당시 로마의 그리스도인 다수가 이방인이었기 때문일 것입니다.

하지만 이어지는 편지 속에서 바울은 다시 복음을

‘모든 믿는 자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라 말할 것입니다.

복음은 모든 사람을 위한 것임을 그는 알고 있습니다.

믿어 순종하게 하나니’

복음이 전해지는 목적에 대한 언급입니다.

원문에 충실한 번역은 ‘믿음의 순종에 이르도록’이지만,

참되게 믿는다면 참되게 순종할 것이기에,

‘믿어 순종하게 한다’는 의역은 적절해 보입니다.

‘믿는다’는 것은 그 복음의 내용에 동의한다는 뜻만은 아닙니다.

일차적으로 그것은 복음 안에 담긴 하나님의 자비하심과 신실하심을 인식한다는 뜻이며,

바로 그렇게 됨으로써 이어 우리가 하나님께 신의(信義)로 반응하게 되는 것을 말합니다.

복음은 순종을 강요하지 않습니다.

다만 복음은 은혜와 진리의 빛을 비추고,

이로써 다시 길을 제대로 갈 수 있게 합니다.

이렇게 길을 제대로 가는 것, 그것이 순종입니다.

하나님은 온 세상 모든 사람이 그분께 돌아와 길을 제대로 가기를 바라십니다.

 

바울은 이 복음을 받아들인 로마의 그리스도인들을

예수 그리스도의 것으로 부르심을 받은 자’ 라 칭합니다.

이제 그들의 주인은 그들 자신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들을 부르신 예수 그리스도가 그들의 주인이라는 것입니다.

더이상 그들은 옛세계에 속해 있지 않다는 것입니다.

그리스도가 통치하는 새세계, 곧 하나님 나라의 백성이라는 것입니다.

바울은 그들을 만나본 적이 없기에 실제 그들이 어떤 사람들인지 잘 몰랐을 것입니다.

하지만 현재 그들이, 또한 우리가 어떤 상황, 어떤 모습이냐보다 더 중요한 사실은

‘하나님께서 그들을, 또한 우리를 어떤 사람으로 알고 있느냐’입니다.

그들에게도 우리에게도, 스스로를 규정할 가장 중요한 정체성은

내가 ‘그리스도인’이라는 정체성입니다.

부활 이후의 예수를 규정하는 말이 그저 ‘다윗의 혈통에서 나신 이’일 수 없는 것처럼,

또한 회심 이후의 바울을 규정하는 말이 그저 ‘바리새파 유대인’일 수 없는 것처럼,

예수를 믿고 순종하는 그리스도인들을 규정하는 말도 이전과 같을 수는 없습니다.

이제 우리에게서는 성령이 역사하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사랑하심을 입은 자’입니다.

또한 우리는 ‘성도로 부르심을 받은 자’, 즉 하나님의 거룩한 백성입니다.

이 규정 속에 담긴 풍성한 의미가 이어지는 서신 속에서 상술될 것입니다.

 

복음 안에서 모든 사람이 누리도록 약속되어 있으나,

실상 소수의 그리스도인들만이 누리는 복이 있습니다.

하나님 우리 아버지와 주 예수 그리스도로께서 내려 주시는 은혜와 평화’

저는 이 하나님의 복이 얼마나 좋은 것인지 깨달은 이후로

기회가 있을 때마다 사람들에게 이 말로 축복의 인사를 건넵니다.

우리 안에 은혜가 있으면 다른 것이 없어도 풍성합니다.

우리 안에 평화가 있으면 어떤 상황에도 우린 두렵지 않습니다.

세상에 이보다 좋은 복이 어디 있겠습니까!

깨닫는 사람이 사모하고, 사모하는 사람이 받아 누립니다.

하나님의 사랑하심을 받고 성도로 부르심을 받은 여러분 모두에게

하나님 우리 아버지와 주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은혜와 평화가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아멘.

 

기도하겠습니다.

사랑의 주님, 하나님의 복음에 감사드립니다. 우리에게 사랑을 베푸시고 거룩한 하나님의 백성으로 불러주시니 감사합니다. 당신의 말씀을 통해 우리가 복음을 더 깊이 깨닫게 하시고, 고귀한 부르심에 믿음의 순종으로 응답하며 살게 하여 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