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의의 재물로 친구를 사귀라

인용이 좀 길었습니다만, 필요한 내용이라 생각되어 나누었습니다. 이 또한 하나의 관점이므로, 굳이 이 내용을 다 받아들여야 할 의무는 없을 것입니다. 다만 오늘 말씀과 관련해서 개인적으로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누군가가 하나님과 사람에게, 혹은 나에게 큰 잘못을 저질렀을 때, 그를 미워하거나 미워하기를 즐기지 않고, 그런 마음이 들 때마다 계속해서 그것을 쳐내려 노력하는 일, 어쩌면 그것이, 우리 하나님의 청지기들이 주인에게 빚진 자들에게 행할 수 있고, 또 행해야 하는 일 중 하나가 아닐까? 그 사람이 영영 그 상태로 있지 않고 치유되어 다시 좋게 되기를 바라는 마음을 품는 것, 어떤 의미에서 그것은, 본문에 청지기가 그 빚진 자들에게 깍아 주었던 기름 오십 말, 밀 이십 석과 같은 의미가 아닐까? 그것이 그 빚진 자들과 주인의 관계를 완전히 해결해주지는 못할지라도, 영영 회복될 수 없을 것 같던 그 관계에 작은 회복의 단초나마 제공할 수 있는 어쩌면 예상치 못한 기적을 낳을 수 있는 변화의 시작점이 될 수도 있지 않을까?

“지극히 작은 것에 충성된 자는 큰 것에도 충성되고 지극히 작은 것에 불의한 자는 큰 것에도 불의하니라”

여기 ‘지극히 작은 것’이란 일차적으로 재물, 즉 돈을 말하겠지요. 세상에서는 돈이 ‘최고’라고 하는데, 예수님 보시기엔 반대인 것 같습니다. 우리가 누군가를 미워하거나 미워하길 즐기지 않으려는 노력 또한, 이 ‘지극히 작은 것’ 안에 포함될 수 있지 않을까요? 내가 그 ‘지극히 작은 것’에 대해 얼마나 하나님 앞에 충성된 모습으로 사는가?

이것은 매우 중요한 문제입니다. 왜냐하면 그것이 이후의 많은 것들을 미리 말해주고 또한 결정하기 때문입니다. 그 작은 것에 충성된 사람은 보다 ‘큰 것’에도 충성되리라 말씀하십니다. 하나님께서 어떤 사명을 맡기시더라도 역시 충성되게 감당하리라는 뜻입니다.

“너희가 만일 불의한 재물에도 충성하지 아니하면 누가 참된 것으로 너희에게 맡기겠느냐”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더 좋은 것들은 사실 눈에 보이지 않는 것들입니다. 우리에게 주신 은혜와 진리의 복음이 그렇고, 각 사람에게 주시는 은사가 그렇습니다. 하나님은 바른 물질관, 바른 인간관, 바른 가치관을 가진 사람에게 그 더 좋고 참된 것도 맡기셔서 나누게 하실 것입니다.

“너희가 만일 남의 것에 충성하지 아니하면 누가 너희의 것을 너희에게 주겠느냐”

이 땅에서 우리가 얻게 되는 재물은 진정한 내 것이 아닙니다. 우리에게 영원히 주어지리라 약속된 것은 하나님의 나라입니다. 이 땅에서 내게 맡겨진 재물, 내게 주어진 권한을 충성되게 사용한 하나님의 청지기들은 마침내 영원한 하나님 나라에서 그들에게 예비된 ‘자신의 것’을 받아 누리게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은 우리가 이 땅에서 살아갈 때 다음을 꼭 명심하라 하십니다.

“집 하인이 두 주인을 섬길 수 없나니 혹 이를 미워하고 저를 사랑하거나 혹 이를 중히 여기고 저를 경히 여길 것임이니라 너희는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길 수 없느니라”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는 하나님의 청지기들입니다.

“불의의 재물로 친구를 사귀라”

이 예수님 말씀을 마음에 새기고 이 땅에서 하나님의 충성된 청지기로 살아가며 우리 안에 임한 하나님 나라를 신실하게 증거하는 우리 모두가 될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