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인 예배 (2022년 10월 16일)
- 창세기 2장 7절
- 설교자: 류광현 목사
- 살아있다는 것 - 창2,7.docx
<창세기 2:7>
여호와 하나님이 땅의 흙으로 사람을 지으시고 생기를 그 코에 불어넣으시니 사람이 생령이 되니라
하나님의 은혜와 평강이 성도 여러분과 함께하시길 기원합니다.
인간이란 어떤 존재일까?
무거운 철학적 주제처럼 보이는 이 질문이 때로 우리의 일상생활 속에서 누군가를 향해, 혹은 나 자신을 향해 던져질 때가 있습니다.
때로 인간은 못해낼 일이 없겠다 싶을 정도로 한없이 대단한 것 같습니다. 하지만 때로 인간은 지극히 작은 일 하나도 해내지 못하는 나약한 모습입니다.
또한 어떤 상황에서 인간은 한없이 선하게 행동하지만, 또한 일순간 한없이 악랄한 모습으로 돌변하기도 합니다.
같은 사람이 누군가에게는 한없이 좋은 사람으로, 다른 누군가에게는 한없이 나쁜 사람으로 인식되기도 합니다.
성경은 인간에 대해 무엇을 말하고 있을까?
오늘 본문은 인간이 하나님에 의해 창조된 존재임을 말합니다. “여호와 하나님이 땅의 흙으로 사람을 지으시고”
우리는 창조되었습니다. 우리는 피조물입니다. 이 기초적인 신앙적 진술 속에 우리가 자기충족적인(self-sufficient) 존재가 아니라는 진리가 요약되어 있습니다.
우리 인간은 스스로 존재하지 못합니다. 하나님 없이 누구도 스스로 존재할 수 없습니다.
인간됨의 시작은 하나님의 창조입니다. 우리를 존재케 하시는 하나님께로 향하지 않고 인간은 결코 인간됨을 시작할 수도 인간다움을 성취할 수도 없습니다.
성경은 인간이 ‘땅의 흙으로’ 지음받았음을 말합니다. 원재료가 땅의 흙이라는 것입니다. 이 점에서 인간은 다른 동물들과 차이가 없습니다.
창세기 2장 19절에 보면, 하나님은 각종 들짐승과 공중의 각종 새를 ‘흙으로’ 지으셨다 합니다. 원재료가 같은 것입니다.
그러나 인간을 다른 동물들과 구별짓는 요소가 그 뒤에 언급됩니다: “생기를 그 코에 불어넣으시니 사람이 생령이 되니라”
여기 ‘생기’로 번역된 말을 NIV 영어성경은 “the breath of life”로 표현합니다. 생명의 숨이란 뜻입니다.
모양은 만들어졌으나 아직 살아있지 않은 자기 피조물 속에 하나님이 그분의 숨을 불어넣어 살아있게 하십니다. 흙은 땅의 것이지만 생기는 이 땅의 것이 아닙니다. 너머의 것입니다.
‘생령’이란 말은 ‘a living being’, 살아있는 존재란 뜻입니다. 하나님이 그분의 숨을 불어넣으실 때까지 인간은 아직 살아있는 존재가 아닙니다.
인간을 다른 피조물들과 구별되는 특별한 존재이자 살아있는 존재로 만드는 것, 그것은 생기, 생명의 숨, 하나님의 숨입니다.
인간 창조에 관한 이 성경말씀이 우리에게 주어진 이유는 단순히 첫 인간이 그렇게 창조되었다는 것을 말해주고자 함이 아닐 것입니다.
인간이 어떤 존재인지, 어떻게 존재하게 되었고 어떻게 살아있을 수 있는지를 바로 알려주고자 함일 것입니다.
인간은 하나님 없이 존재할 수 없고, 또 살아있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 말씀으로부터 ‘살아있다는 것’의 의미를 생각합니다.
살아있다는 것은 ‘은혜’입니다.
삶은 선물입니다. 우리에게 주어진 생명은 또한 우리에게 주어진 은혜입니다.
삶을 사랑하는 사람은 하나님의 은혜가 우리의 존재에 선행하고 있음을 인식합니다.
도스토예프스키의 소설 <까라마조프가의 형제들>에서 알료사 까라마조프가 그의 형 이반을 허무주의에서 구출하고자 설득하는 말은 ‘삶을 사랑하라’는 것입니다.
삶을 사랑하는 사람은 그렇게 살아있다는 것이 은혜임을 직감적으로 깨닫기 때문입니다.
우리 안에 있는 바로 그 생명에 의해 우리는 살아계신 하나님 안에 뿌리박고 있습니다.
인간은 하나님으로부터 생명과 은혜를 동시에 받습니다. 처음부터 은혜는 내가 존재한다는 사실 자체 속에 내재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그 은혜로운 생의 선물에 대한 감사는 어떠한 고난과 허무도 이겨낼 수 있는 신비한 능력이 됩니다.
살아있다는 것은 또한 ‘함께 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과 함께 있고, 다른 사람들과 함께 있고, 또 다른 피조물들과 함께 있다는 뜻입니다.
사람을 지으시고 그 코에 그분의 숨을 불어넣으신 하나님은 우리와 함께 있기 원하시는 하나님입니다.
여기서 ‘함께 있다’는 말은 인격적(personal) 관계성을 의미합니다.
장소적으로 함께 있지만 사실상 따로 있는 것과 마찬가지인 관계가 있습니다. 반면, 장소적으론 떨어져 있지만 사랑 안에서 깊게 연합되어 사실상 함께 있는 것과 마찬가지인 관계도 있습니다.
살아있다는 것은 그저 숨을 쉬고 있다는 의미만은 아닙니다. 엄밀한 의미에서 살아있다는 것은 하나님과, 다른 사람들과, 또 다른 피조물들과 그런 인격적 관계성 속에 있다는 뜻입니다.
“하나님이 자기 형상 곧 하나님의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시되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시고”(창1:27)
많은 신학자들이 여기 ‘하나님의 형상대로’라는 말을 관계적 개념으로 이해합니다.
성부, 성자, 성령 삼위일체 하나님의 신비로운 사랑의 교제, 그 인격적 관계성을 반영하는 모습으로 살아가는 것, 거기에 다른 피조물과 구별되는 인간성의 본질이 있고, 하나님의 인간 창조 목적이 있다는 것입니다.
요한복음 17장에 기록된 예수님의 대제사장적 기도 속에 인간을 창조하신 하나님의 뜻, 인간 세상에 자기 아들을 보내신 하나님의 뜻, 그리고 교회를 향한 하나님의 소망이 잘 담겨 있습니다. 예수님은 이렇게 기도하십니다:
“아버지여, 아버지께서 내 안에, 내가 아버지 안에 있는 것 같이 그들도 다 하나가 되어 우리 안에 있게 하사 세상으로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을 믿게 하옵소서 내게 주신 영광을 내가 그들에게 주었사오니 이는 우리가 하나가 된 것 같이 그들도 하나가 되게 하려 함이니이다”(21-22)
마지막으로, 살아있다는 것은 또한 ‘사명’입니다.
할 일이 있다는 것, 주어진 생의 시간 속에서 하나님의 뜻을 따라 이루어갈 일이 있다는 뜻입니다.
흙으로 사람을 지으시고 생기를 불어넣어 살게 하신 하나님은 이어 그들에게 살 곳을 예비하시고 먹을 것을 제공하실 뿐 아니라 하나님의 동산을 경작하며 지키는 사명을 맡기십니다.
창세기 1장에서 하나님이 그분의 형상을 따라 사람을 창조하셨다는 말씀 뒤에 따라나오는 내용 역시 복을 주시며 사명을 맡기셨다는 것입니다: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 땅을 정복하라, 바다의 물고기와 하늘의 새와 땅에 움직이는 모든 생물을 다스리라”(28)
은혜는 생명과 연결되어 있을 뿐 아니라 또한 사명과도 연결되어 있습니다. 하나님의 형상으로서의 인격적 관계성 역시 사명과 연결되어 있습니다.
그 은혜 안에서 우리는 하나님이 맡기신 사명을 감당할 수 있고, 그 자유와 사랑의 인격적 관계성을 통해서만 그 사명을 바르게 감당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인간에게 자유의지를 주셨습니다. 인간에게 자유를 주는 일은 매우 위험할 수 있는 일이었지만 하나님은 기꺼이 그 모험을 감행하셨습니다. 그 이유는 생명을 주는 사랑만이 자유롭게 살아있는 존재, 또 자유롭게 사랑하는 존재를 창조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전능성의 극점에는 역설적으로 하나님의 자기-제한이 있습니다. 하나님은 인간이 그분을 사랑하도록 강압하는 것 외에 무엇이든 다 하실 수 있는 분입니다.
사랑하기에 그분은 비우시고 자기를 뒤로 물리십니다. 우리에게 자유롭게 사랑할 수 있는 공간을 주시기 위함입니다. 하나님의 자기-제한은 그분의 전능성 안에서 새 일을 이루어가시는 하나님의 창조적 행동입니다.
그리스도를 통해 하나님은 모든 인간에세 새로운 살 길을 열어 주십니다. 사랑의 길입니다. 자유롭게 사랑할 수 있는 길입니다. 사랑 안에서 하나님과, 다른 사람들과, 또 다른 모든 피조물들과 연합을 이루는 길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살아있다는 것은 은혜가 아닙니까? 오늘 내가 살아있음 속에서 나를 지으신 하나님의 사랑의 손길을 느낄 수 있길 바랍니다.
살아있다는 것은 또한 함께 있다는 뜻이 아닙니까? 하나님의 숨, 그분의 영이 내 속에 나와 함께하십니다. 그 하나님 안에서 우리를 지으신 이의 뜻이 온전히 성취되기를 소망합니다.
또한 살아있다는 것은 사명, 즉 할 일이 있다는 뜻이 아닙니까? 우리를 살리기 위해 그리스도께서 행하신 일을 생각합시다. 그 사랑이 우리 안에서도 역사하기를 소망합니다.
도스토예프스키의 소설에 등장하는 한 인물의 고백처럼 언젠가 우리는 고백하게 될 것입니다: “모든 것은, 나의 하나님, 당신 안에 있습니다. 나 자신도 당신 안에 있습니다. 나를 받으소서.”
우리를 그분의 형상을 따라 지으시고 살아있게 하시는 우리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