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연합 예배 (2023년 4월 2일)
- 요한복음 17장 1-8절
- 설교자: Ondřej Kolář 목사
- 2023년 4월 연합예배 설교문 - 꼴라즈 목사.docx
<요한복음 17: 1-8>
J 17,1-8 Po těch slovech Ježíš pozvedl oči k nebi a řekl: “Otče, přišla má hodina. Oslav svého Syna, aby Syn oslavil tebe, stejně, jako jsi učinil, když jsi mu dal moc nad všemi lidmi, aby vše, co jsi mu svěřil, dal jim: život věčný. A život věčný je v tom, když poznají tebe, jediného pravého Boha, a toho, kterého jsi poslal, Ježíše Krista. Já jsem tě oslavil na zemi, když jsem dokonal dílo, které jsi mi svěřil. A nyní ty, Otče, oslav mne svou slávou, kterou jsem měl u tebe, dříve, než byl svět. Zjevil jsem tvé jméno lidem, které jsi mi ze světa dal. Byli tvoji a mně jsi je dal; a tvoje slovo zachovali. Nyní poznali, že všecko, co jsi mi dal, je od tebe; neboť slova, která jsi mi svěřil, dal jsem jim a oni je přijali. V pravdě poznali, že jsem od tebe vyšel, a uvěřili, že ty jsi mě poslal.
1 예수께서 이 말씀을 하시고 눈을 들어 하늘을 우러러 가라사대 아버지여 때가 이르렀사오니 아들을 영화롭게 하사 아들로 아버지를 영화롭게 하게 하옵소서
2 아버지께서 아들에게 주신 모든 자에게 영생을 주게 하시려고 만민을 다스리는 권세를 아들에게 주셨음이로소이다
3 영생은 곧 유일하신 참 하나님과 그의 보내신 자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이니이다
4 아버지께서 내게 하라고 주신 일을 내가 이루어 아버지를 이 세상에서 영화롭게 하였사오니
5 아버지여 창세 전에 내가 아버지와 함께 가졌던 영화로써 지금도 아버지와 함께 나를 영화롭게 하옵소서
6 세상 중에서 내게 주신 사람들에게 내가 아버지의 이름을 나타내었나이다 저희는 아버지의 것이었는데 내게 주셨으며 저희는 아버지의 말씀을 지키었나이다
7 지금 저희는 아버지께서 내게 주신 것이 다 아버지께로서 온 것인줄 알았나이다
8 나는 아버지께서 내게 주신 말씀들을 저희에게 주었사오며 저희는 이것을 받고 내가 아버지께로부터 나온 줄을 참으로 아오며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줄도 믿었사옵나이다.
1 Ježíš bilancuje. Bilancujeme obvykle na konci jednoho období a na začátku jiného. Před spaním si připomínáme, co nám uplynulý den přinesl a vzal, co jsme stihli a nestihli, co se nám povedlo a co ne. Podobně třeba na konci roku, při ukončení nějaké akce či projektu a také na sklonku života.
오늘 본문에서 예수님은 결산을 하고 계십니다. 우리는 통상 한 기간이 끝나고 다른 기간이 시작될 때 결산을 합니다. 잠자리에 들기 전에 우리는 오늘 하루가 우리에게 무엇을 가져다 주었는지 또는 무엇을 가져갔는지, 따라 잡은 것은 무엇이고 그렇지 못 한 것은 무엇인지, 잘 되어가고 있는 것, 그렇지 못 한 것은 무엇인지 떠올려 보기도 합니다. 이와 비슷하게 연말에도, 이벤트나 어떤 프로젝트의 끝에도, 인생의 황혼녘에도 우리는 결산을 합니다.
2 Ježíš vidí, že jeho životní cesta se chýlí ke konci, a proto se ohlíží zpět, svým učedníkům udílí poslední ponaučení i zaslíbení. Současně připravuje sebe i své blízké na svou smrt – tak, jak my to už moc neumíme. Kdysi se lidé modlili: od náhlé a nenadálé smrti ochraňuj nás, Pane. Zemřít bez dostatečné přípravy, bez možnosti smíření s Bohem, s bližními a i se sebou samotným bylo považováno za neštěstí. Dnes si naopak obvykle přejeme, aby všechno vzalo co nejrychlejší konec, nejlépe ve spánku, bez dlouhého trápení, ale také bez možnosti dohnat aspoň něco ztoho, co jsme zanedbali – zejména vůčisvým nejbližším.
예수님께서 당신의 삶의 여정이 기울어져 가는 것을 보시고 뒤를 돌아보시며 제자들에게 마지막 교훈과 약속의 말씀을 전해 주십니다. 동시에 주님은 당신 스스로를 또는 주변 사람들을 당신의 죽음에 준비가 되어 있게 하십니다. 과거에 사람들은 „주님, 갑작스럽고 예상치 못한 죽음으로부터 우리를 보호해 주세요“ 라고 기도하였습니다. 과거에는 사람들이 충분한 준비 없이, 하나님과 이웃들과 자기 자신과 화해할 수 있는 가능성 없이 죽는 것을 불행으로 여겼습니다. 반면에 오늘날 우리는 과거와는 반대로 가장 짧은 시간에 모든 것이 끝나는 삶을 바랍니다. 가장 좋은 것은 잠을 자다가, 긴 고통 없이, 우리가 소홀히 했던 것, 특히 이웃들에게 그렇게 했던 것에 대해 무엇인가 해야 된다는 부담감 없이 모든 것이 끝나기를 바랍니다.
3 Ježíš bilancuje před Bohem. Svůj život hodnotí ne podle svých představ o zdařilém životě, ale podle toho, jak oslavil svého nebeského Otce. Co v mém životě sloužilo k Boží slávě? Opět otázka, která je nám spíš vzdálená. My se ptáme obvykle jinak: co jsme vživotě dokázali, jakou kariéru jsme udělali, kam jsme se vyšplhali na společenském žebříčku. A jistě taky jak se nám dařilo v našem osobním životě, jak jsme vychovali děti, jak vydrželo naše manželství. Vcentru jsme my sami: naše plány, seberealizace, zážitky.
예수님은 하나님 앞에서 결산을 하고 계십니다. 주님은 세상적으로 성공적인 삶에 따라 당신의 삶을 평가하지 않으시고 어떻게 하늘 아버지를 영화롭게 하였는지에 따라 당신의 삶을 평가하십니다. 내 삶을 어떻게 사는 것이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삶일까요? 다시 말씀 드리지만, 이 질문은 우리와 상당히 거리가 먼 질문입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다른 방법으로 묻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통상 우리의 삶에서 무엇을 이루었는지, 어떤 경력을 쌓았는지, 사다리 구조적인 사회 속에서 어디까지 올라갔는지 묻습니다. 어떤 성공을 거뒀는지, 어떻게 자녀들을 양육했으며, 부부관계는 어떠했는지 묻습니다. 모든 것의 중심에는 우리 즉, 우리의 계획들과 자아실현, 우리의 경험들이 있습니다.
4 Když se řekne sláva, možná pomyslíme na různé takzvané celebrity. Jenže po slávě touží tak trochu každý znás. Dnes je podmínkou úspěchu umět se prosadit, být na očích, udělat si jméno. Zkrátka: být někdo. Komu se to podaří, ten má vočích společnosti hodnotu, ten má šanci uspět v nemilosrdné soutěži všech se všemi. Nestačí jen umět a znát, je potřeba být nadto aspoň trochu slavný.
영광이라는 것을 생각할 때 우리는 다양한 셀럽들을 떠올릴지 모르나 사실 우리 모두도 영광을 갈망합니다. 오늘날 성공의 조건은 자기를 주장할 줄 알고, 스포트라이트를 받고, 자기의 이름을 빛낼줄 아는 것입니다. 한마디로 말해서, 그 무엇이 되는 것입니다. 사회적으로 가치있는 사람으로 주목을 받고, 만인에 대한 만인의 무자비한 경쟁에서 성공할 수 있는 기회를 갖고 있는 사람이 성공한 사람입니다. 무엇을 할 수 있고 무엇을 아는 것으로 충분하지 않고 그런 것을 넘어 실제적으로 조금이라도 유명해져야 합니다.
5 Podíváme-li se ale na Ježíšův příběh, pozorujeme zvláštní nepřímou úměrnost: čím víc v něm bylo Boží slávy, tím méně tam bylo jeho vlastní slávy. Čím více miloval Boha, tím méně lpěl na svém vlastním životě. Ježíš oslavoval Boha svou pokorou a službou druhým. A právě tím zvěstoval: Bůh se k vám sklání, Bůh je láska.
그러나 우리가 예수님의 이야기를 보면 특이한 반비례의 관계를 보게 됩니다. 즉, 예수님 안에 하나님의 영광이 많으면 많을수록 예수님의 영광은 적어지는 그러한 반비례의 관계를 보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더욱 더 사랑하면 사랑할수록 주님은 당신의 삶에 덜 얽매이셨습니다. 주님은 당신의 겸손과 다른 사람을 섬기는 것을 통해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셨습니다. 그리고 바로 이러한 삶을 통해 하나님께서 우리를 굽어 살펴보고 계심을, 하나님은 사랑이심을 전파하셨습니다.
6 Ježíšova „výroční zpráva“ za jeho veřejné působení vypadá na první pohled neradostně. Takto by žádná firma nechtěla dopadnout. V kolonce „příjmy“ či „zisky“ je prázdno. Zato výdajů a ztrát je nepočítaně. A přece slyšíme, že Ježíš na konci svého života nekončí v dluzích. Své poslání totiž naplnil. Přesněji řečeno: téměř naplnil, protože ten poslední krok má ještě před sebou. Přichází jeho hodina. Podle světských měřítek ho nyní čeká bankrot. Avšak teprve pak bude moci říci: dokonáno jest. Na kříži utrpí tu největší ztrátu, ale zároveň naplno zjeví, kdo je Bůh – ten, který se na cestě za námi vzdává všeho.
공생애에 대한 예수님의 „연례 보고서“는 언뜻 우울해 보입니다. 어떤 회사도 이런 보고서를 원치 않습니다. „수입“ 또는 „수익“ 열이 비어 있고 반면에 수많은 비용과 손실만 있는 보고서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주님께서 당신의 생의 마지막까지 빚으로 생을 마감하지 않으셨음을 듣습니다. 예수님은 당신의 사명을 완수하셨습니다. 더 정확히 말하자면, 예수님은 당신의 사명을 거의 완성하셨습니다. 왜냐하면 당신 앞에 아직 한 발자국을 남겨놓고 계셨기 때문입니다. 이제 때가 이르렀습니다. 세상적인 기준으로 볼 때 예수님은 지금 파산의 위기에 놓여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십자가 사건 후에 비로소 „다 이루었다“ 말씀하실 수 있으실 것입니다. 예수님은 십자가 상에서 큰 고통을 당하셨지만 동시에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 즉, 우리를 얻기 위해 모든 것을 포기하시는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 명백히 드러내셨습니다.
7 Při svém bilancování Ježíš nezapomíná ani na ty, kdo tu po jeho odchodu zůstanou. To jsou Ježíšovi učedníci. Slyšeli jsme, že přijali jeho svědectví o Bohu, zachovali je a uvěřili, že je Ježíš od Boha poslán. Jestliže někdo opravdu utrpí vážnou a – jak se zdá – přímo nenahraditelnou ztrátu, pak jsou to především oni.
주님은 결산을 하시면서 당신이 떠난 후에도 남아 있을 사람들을 결코 잊지 않으셨는데 그 사람들은 주님의 제자들입니다. 우리는 본문을 통해 주님의 제자들이 하나님에 대한 주님의 증언을 들었고, 그 증언의 말씀을 간직했으며, 주님께서 하나님으로부터 보내심을 받으신 분이시라는 것을 믿었다는 것을 보았습니다. 만약 어떤 사람이 정말로 큰 고통을 당했다면, 그 무엇으로도 보상할 수 없는 큰 손실을 입었다면, 그 사람들은 우선 예수님의 제자들입니다. (주님께 인생을 걸고 좇았는데 주님께서 십자가 상에서 죽으시고 제자들과 더이상 함께 하시지 못 할 것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8 Právě proto se Ježíš za ně a za nás modlí. Svou přímluvu ovšem začíná zvláštními slovy: Otče, oslav svého Syna. To na první poslech jako prosba o jakousi nápravu či aspoň zmírnění křivd, jež musel Syn zde na zemi vytrpět. Jako by Ježíš říkal: Prozatím jsem všechno dělal pro tvou slávu, Bože, ale teď je na čase, abys na oplátku ty udělal něco pro mě. Ve skutečnosti však Syn nežádá žádné spravedlivé odškodnění. Nechce si slávu nechat pro sebe jako zaslouženou odměnu, ale otevírá ji pro nás, kteří jsme se jí tolik vzdálili a vůbec si ji nezasloužíme. Do Boží slávy totiž máme být vtaženi i my.
그리고 바로 그런 이유 때문에 예수님은 제자들을 위해, 우리를 위해 기도하십니다. 예수님은 당신의 독특한 언어로 중보기도를 시작하십니다: „아버지, 당신의 아들을 영화롭게 하소서“. 이 중보기도는 얼핏 보기에 주님께서 이 땅에서 겪어야 했던 고통을 없애주시거나 최소한 완화해 주시기를 요구하는 기도 같습니다. 마치 예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시는 것 같습니다: „하나님, 저는 당신의 영광을 위해 모든 것을 하였습니다. 아버지, 그러나 지금은 당신이 나를 위해 무엇인가를 보상하셔야 하는 시간입니다“. 그러나 사실 아들은 어떤 정당한 보상도 요구하지 않습니다. 아들은 스스로를 위해 받아야 할 댓가처럼 영광을 구하지 않으시고 영광을 받기에는 너무나 거리가 먼 우리를 위해서, 영광을 받을 아무런 자격이 없는 우리를 위해 그 영광을 열어 놓으십니다. 말하자면, 하나님의 영광으로 주님처럼 우리 또한 이끌려 들어가야 하는 것입니다.
9 Když jsme tedy byli zahrnuti do Boží slávy, měla by znás přímo vyzařovat. Co to ale znamená? Odpověď najdeme vJežíšově příběhu. On byl ztělesněním Boží slávy právě tím, že svou vlastní slávu nevyhledával, nezakládal si na ní, ba přímo ji odmítal. Neukazoval na sebe, ale na svého Otce. Jeho jméno chtěl svým životem vyvyšovat. Ježíšova sláva proto nikoho neoslňovala a nesrážela k zemi, ale naopak prosvěcovala naše temnoty a ukazovala cestu ven. Ježíšova velikost a moc se zjevila ve společenství s bezmocnými a neslavnými. K tomuto úkolu nás Ježíš povolal a poslal do světa.
만약 우리가 하나님의 영광으로 이끌림 바 되었다면 하나님의 영광이 우리로부터 직접 발산되어야 합니다. 무슨 의미입니까? 우리는 그 답을 예수님의 이야기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자신의 영광을 구치 않으시고, 자신의 영광을 중요하게 생각지도 않으시며, 오히려 거부하심으로써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셨습니다. 예수님은 자신을 가리키지 않으시고 하나님을 가리키셨습니다. 예수님은 자신의 삶을 통해 하나님을 높이기를 원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의 영광은 어느 누구도 현혹시키거나 실족시키지 않았으며, 오히려 어둠을 밝히고 나갈 길을 보여주었습니다. 예수님의 위대함과 능력은 힘없고 보잘것 없는 이들과의 교제 속에 잘 나타나 있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일로 예수님은 우리를 부르시고 세상으로 보내셨습니다.
10 Jak se ale zachovali jeho učedníci? Jedno znejvětších, ba dokonce možná vůbec největší selhání církve spočívalo vtom, že začala dělat pravý opak toho, co dělal Ježíš. Místo aby oslavovala Boha, uzurpovala si jeho slávu pro sebe a učinila sama ze sebe nositelku božské velikosti, důstojnosti a ovšem i moci. Místo Božího jména vyvyšovala jméno své a pěstovala svou vlastní důležitost. A kdo smýšlel jinak, byl umlčován. A tak při pohledu do dějin církve můžeme vnímat paradox – paradox, jemuž ale ve světle Ježíšovy cesty dobře rozumíme. Právě v dobách své největší světské slávy, moci, rozmachu, prosperity se církev Bohu povážlivě vzdalovala, duchovně strádala a upadala. A naopak v dobách útisku a pronásledování měla Bohu obzvlášť blízko a vydávala cenné duchovní plody – z doby nedávno minulé třeba krásné písně, které odolávají času a různým společenským změnám.
그러나 예수님의 제자들은 어떻게 행동했습니까? 교회의 가장 큰 실패 중의 하나, 아니 교회의 가장 큰 실패는 예수님께서 행하신 일과 정확히 정반대되는 일을 하기 시작했다는 것입니다. 교회는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대신에 오히려 자신을 위해 하나님의 영광을 가로채고, 스스로를 하나님의 위대함과 위엄과 능력의 담지자로 자처했습니다. 교회는 하나님의 이름 대신에 스스로의 이름을 높이고 스스로의 중요성을 키웠습니다. 그리고 교회에 반하는 다른 생각을 갖고 있는 사람들에게는 침묵을 강요하였습니다. 교회의 역사 속에서 우리는 역설, 예수님께서 가신 길의 빛에 비추어 볼 때 잘 드러나는 역설을 감지할 수 있습니다. 가장 큰 세상적 영광과 능력과 성장과 번영의 때에 교회는 심각하게 하나님으로부터 멀리 떨어져 있었고, 영적으로 고통을 받았고 쇠퇴하였습니다. 반면에 억압과 박해의 때에 교회는 특히 하나님과 가까웠고, 사회적 다양한 변질에 저항하는 아름다운 노래와 같이 귀한 영적 열매를 맺었습니다.
11 Účast na Boží slávě nás tedy nepozdvihuje do triumfálních výšek, ale naopak nás přivádí na Ježíšovu cestu pokory, ke službě potřebným. Boží sláva se nezjevuje vnazdobených chrámech, ale třeba u nemocničního lůžka, kde bereme za ruku trpícího. Církev zde na zemi není na vítězném tažení, ale je poslána právě za těmi poraženými.
그러므로 하나님의 영광에 참여한다는 것은 우리가 세상적 승리의 자리로 끌어 올려지는 것이 아니라, 반대로 예수님의 겸손의 길로, 궁핍한 이들의 섬김의 자리로 인도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영광은 화려한 성전에 나타나지 않고, 예를 들어 고통받는 사람의 손을 잡아주는 병원의 침대에 나타납니다. 승리자들이 아니라 패배자들에게 보내진 무리들의 모임이 이 땅에 있는 교회인 것입니다.
12 Paradox slávy, který platí pro církev, platí také pro každého z nás a má určovat naše osobní bilancování. Je přirozené, že naplněný život spatřujeme v úspěších, zdraví, v plnění všech našich přání. Hledáme vlastní slávu. Na čem ale skutečně záleží, je, zda sloužíme Boží slávě. Naším úkolem má být tuto slávu zjevovat – a tak zjevovat ostatním lidem Boží milosrdenství. Dokážeme být takovými svědky? Dokážeme být Božím světlem pro druhé? Amen.
교회에 적용되는 영광의 역설은 우리 각자에게도 적용되며 이 역설에 따라 우리는 우리 각자의 삶을 결산해야 합니다. 우리는 자연스럽게 성공, 건강, 우리의 모든 소망의 성취를 성공한 삶이라고 생각합니다. 우리는 우리 자신의 영광을 구합니다. 그러나 진정 승리한 삶은 우리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사느냐 그렇지 않느냐에 달려 있습니다. 우리의 삶은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삶이어야 하고 다른 사람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비를 드러내는 삶이어야 합니다. 그러한 증인들임을 증명해 낼 수 있겠습니까? 다른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빛들임을 증명해 낼 수 있겠습니까?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