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합예배-Ondřej Kolář

 

Na prvním místě žádám, aby se konaly prosby, modlitby, přímluvy, díkůvzdání za všechny lidi, za vládce a za všechny, kteří mají v rukou moc, abychom mohli žít tichým a klidným životem v opravdové zbožnosti a vážnosti. To je dobré a vítané u našeho Spasitele Boha, který chce, aby všichni lidé došli spásy a poznali pravdu. Je totiž jeden Bůh a jeden prostředník mezi Bohem a lidmi, člověk Kristus Ježíš, který dal sám sebe jako výkupné za všechny, jako svědectví v určený čas.

1 그러므로 내가 첫째로 권하노니 모든 사람을 위하여 간구와 기도와 도고와 감사를 하되

2 임금들과 높은 지위에 있는 모든 사람을 위하여 하라 이는 우리가 모든 경건과 단정한 중에 고요하고 평안한 생활을 하려 함이니라

3 이것이 우리 구주 하나님 앞에 선하고 받으실 만한 것이니

4 하나님은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으며 진리를 아는 데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

5 하나님은 한 분이시요 또 하나님과 사람 사이에 중보도 한 분이시니 곧 사람이신 그리스도 예수라

6 그가 모든 사람을 위하여 자기를 속전으로 주셨으니 기약이 이르면 증거할 것이라

 

1) Sestry a bratři, z takových křesťanů by měl mít každý politik radost. Dělají totiž přesně to, co od nich očekává. Žijí tichým a spořádaným životem, dobrovolně se podřizují světské vládě, do ničeho jí nemluví, neprotestují, nedělají potíže, zkrátka: do politiky se nepletou a nechávají vládce klidně vládnout. A nejen to: Svou úctu a podřízenost vůči nim dávají najevo také tím, že se za ně modlí, aby se jim lépe vládlo. Jedinou starostí křesťanů má být spása duše, veřejné věci je možné svěřit jiným.

 

형제 자매 여러분, 정치인은 다음과 같은 크리스천들을 기뻐할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러한 크리스천들은 정치인이 바라는 바 정확하게 바로 그것을 행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정치인들이 좋아하는 크리스천들은 조용하고 질서정연한 삶을 살며, 자발적으로 세속정부에 복종하며, 세속정부에 대해 아무것도 말하지 않고, 아무 문제도 만들어내지 않는 크리스천들입니다. 간단하게 말해서, 정치에 휘말려들지 않고 모든 것을 정부가 알아서 다스리도록 내버려 두는 크리스천들입니다. 그뿐만이 아닙니다. 정치인이 좋아하는 크리스천들은 정치인을 위해 그가 더 잘 다스리도록 기도함으로써 정치인을 향해 그들의 존경과 복종을 보여줍니다. 정치인이 좋아하는 크리스천들이 오직 걱정하는 것은 영혼의 구원이고 그 밖의 모든 공적인 것들은 정치인에게 맡기는 크리스천들입니다.

 

2) Takovýto pohled na vztah rané církve ke světské vládě by byl ovšem velmi povrchní a zjednodušující. Především pomysleme na to, jak omezené možnosti ovlivňovat státní správu tehdejší lidé měli. Přesvědčení, že vláda vychází z vůle občanů, že každý člověk může a má zasahovat do politického dění, ať už při svobodných volbách, nebo aktivním vstupem do politiky, se prosadilo až o mnoho století později. O všeobecných lidských právech a svobodách si tehdy mohli nechat jenom zdát. Co vlastně mohli tehdejší křesťané dělat, pokud chtěli vyjádřit nesouhlas s počínáním vládců? Jediný způsob protestu byla otevřená neposlušnost, tedy porušování zákonů. Například mohli odmítnout zaplatit daň císaři. To ovšem byl – a také dnes je – velmi závažný a odvážný krok. Kdo se k němu uchýlil, musel počítat s neporovnatelně tvrdší odvetou režimu, než když dnes, ve stále ještě svobodné společnosti, někdo vyjde na náměstí demonstrovat.

 

초대교회와 세상정부 간의 관계에 대한 이러한 관점은 물론 아주 피상적이고 단순한 것입니다. 제한적인 힘을 갖고 있었던 그 당시의 사람들이 어떻게 국가의 다스림에 영향을 끼쳤어야만 했을까요. 자유 선거와 정치적인 참여로 정부는 국민들의 의지로부터 나오고, 각 개인이 정치적인 활동에 개입할 수 있다는 확신은 여러 세기가 흐르고 난 뒤에 정착되었습니다. 그러나 초대교회 당시 인권과 자유는 한낮 꿈에 지나지 않았습니다. 그러면 정치인의 행위에 대해 불만을 표시하고자 했을 때 초대교회 당시 사람들은 무엇을 할 수 있었을까요. 저항의 유일한 방법은 불순종, 즉 법을 어기는 것이었습니다. 예를들어, 로마황제에게 세금을 바치는 것을 거부할 수 있었습니다. 이러한 행위는 물론 오늘날도 마찬가지지만 그 당시로서는 아주 심각한 행위였으며 또한 용기를 필요로 하는 행위였습니다. 그 당시 황제로부터 일탈한 사람은 오늘날 자유로운 사회속에서 사는 사람, 광장에 나가 데모할 수 있는 그런 사람에 비해 국가권력로부터 비교할 수 없는 혹독한 보복을 당해야만 했습니다.

 

3) V prvních desetiletích církve vnímali křesťané Římskou říši jako dobrý, ba dokonce požehnaný prostor pro šíření evangelia po celém světě. Tehdejší stát byl sice z dnešního pohledu nepochybně diktaturou, ale zajišťoval svým občanům určité bezpečí, ochranu a zákonný rámec. Někteří dokonce optimisticky hovořili o věčném míru, zajištěném již císařem Augustem. Zpočátku křesťané neměli mnoho důvodů takovému státu vyhlásit neposlušnost. Spíš ho přijímali s vděčností. Římané navíc po jistou dobu pokládali církev pouze za jednu z mnoha židovských skupin – a židovské náboženství bylo v říši tolerováno. Toto celkem pokojné soužití mezi církví a státem ovšem – jak známo – netrvalo věčně, stejně jako netrval věčně římský mír.

 

초대교회 수 십 년 동안 초대교회 교인들은 로마제국을 선한 것으로 인식하였습니다. 심지어 로마제국을 온 세상을 향해 복음을 확장하기 위한 축복된 공간으로 생각했습니다. 그 당시 로마제국은 오늘날의 관점에서 보면 물론 독재국가였습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백성들에게 안전과 보호, 법적 체계를 보장해주었습니다. 심지어 어떤 이들은 영원한 평화와 같은 낙천적인 말을 했으며 아우구스투스 황제에 의해서 이미  영원한 안전이 보장됐음을 말하기도 했습니다. 초대교회 교인들은 이러한 로마제국에 대해 불순종을 선포할 이유가 없었습니다. 오히려 로마제국을 감사함으로 받아들였습니다. 로마인들은 이에 한 발 더 나아가 일정기간 동안 초대교회를 유대 여러 그룹 중에 – 로마제국에서 유대교는 호의적으로 받아들여졌는데 – 이러한 유대 여러 그룹중에 한 그룹 정도로 여겼습니다. 물론 우리가 알다시피 로마제국의 평화가 영원히 지속되지 못했던 것처럼 교회와 로마제국의 평화로운 공생이 영원히 지속되지는 못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정기간 평화로운 공생관계를 유지했습니다.

 

4) Apoštol vyzývá své adresáty k přímluvným modlitbám za vládce a všechny, kdo mají v rukou moc. Nejsou sice jediní, za koho se křesťané mají přimlouvat, ale jsou tu zvlášť zdůrazněni. Aby křesťané mohli žít klidným životem, je nutné, aby stát plnil své poslání. Za to se přimlouvali křesťané v prvním století, za to prosíme také dnes. Modlitba za vládce ale nemusí být nutně jen projevem loajálnosti či slepé poslušnosti. Když se přimlouváme třeba za lidi žijící v nenávisti nebo válkách, pak přece nechceme, aby zloba a vraždění dál pokračovaly, ale naopak aby ustaly. Stejně tak přímluva za vládce není schválení a posvěcení všech jejich činů. Proto prosíme, aby jim Bůh dal moudrost, spravedlnost a odvahu.

 

사도바울은 디모데가 일하는 교회 교인들에게 정부와 손에 권력을 가진 모든 사람들을 위해 중보기도할 것을 권면합니다. 물론 손에 권력을 쥔 사람들만을 위해 크리스천들이 중보기도해야 하는 것은 아니지만 여기서는 손에 권력을 쥔 사람들에 대한 중보기도가 강조되어 있습니다. 크리스천들이 고요한 삶을 살기 위해서 국가가 국가의 사명을 잘 완수하도록 중보기도하는 것은 중요한 일입니다. 초대교회 교인들이 권력자들을 위해 기도했던 것처럼 오늘날 우리도 권력을 잡은 자들을 위해 기도해야 합니다. 그러나 중보기도가 권력자들을 위한 충성이나 맹목적인 순종의 표시가 될 수는 없습니다. 예를들어 우리가 증오심과 전쟁 속에서 살아가는 어떤 통치자들을 위해서 중보기도를 한다면 우리는 그들이 계속해서 분노를 표출하고 살인을 저지르도록 기도할 것이 아니라 그러한 행동을 그만두도록 기도해야 합니다. 통치자들을 위한 중보기도는 또한 그들의 모든 행동들에 대한 승인과 인정이 아닙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지혜와 정의와 용기를 주시도록 기도해야 합니다.

 

5) Pozornému čtenáři navíc neunikne, že jsou tu různí mocnáři jednoznačně zařazeni mezi lidi. Co je pro nás samozřejmost, nebylo rozhodně samozřejmostí ve starověku. Ani císař, ani jiní pozemští králové nejsou bohové, polobohové či vtělení bohové, ale právě jen lidé, kterým byla svěřena velká moc. Tato moc z nich nedělá žádné nadlidi, nevybavuje je nadpřirozenými schopnostmi, nevyvyšuje je zásadně nad ostatní. Přestože se sami nechávají označovat božskými tituly, přestože po svých poddaných vyžadují, aby s nimi jednali jako s bohy, přestože se staví do role spasitelů – nic takového nejsou. Křesťané na tuto hru nesmějí přistupovat. Je jen jediný Bůh, je jen jediný Spasitel.

 

한 걸음 더 나아가 세심한 독자는 여러 국가들에 다양한 절대군주들이 있다는 것을 놓치지 않습니다. 오늘날 우리에게 당연한 것이 고대시대에는 전혀 당연한 것이 될 수 없는 것이 있었습니다. 황제도 여러 왕들도 그들이 신들이거나 반신들 또는 화신들이 결코 아니며 단지 그들에게 큰 권력이 맡겨진 사람들일 뿐입니다. 그들로부터 나오는 권력은 인간적은 것을 초월하는 어떤 것이 아니며 또한 초자연적인 능력도 아니며 다른 사람들 위로 높이 올려질 그 무엇이 아닙니다. 비록 스스로 신적인 호칭으로 불려지기를 원할지라도, 그들을 신들로 여기도록 지배받는 자들에게 요구할지라도, 그리고 구원자와 같은 역할을 하는 사람들로 세워질지라도 그들은 결코 신적인 존재들이 아닌 것입니다. 크리스천들은 이러한 요구에 현혹되지 말아야 합니다. 오직 한 하나님과 한 구원자가 있을 뿐입니다.  

 

6) S tím souvisí další nenápadná zmínka: Když autor listu doufá, že budou křesťané moci žít tichým životem v pravé zbožnosti, vyvolává to dojem, že se mají stáhnout kamsi do ústraní, aby byli co nejméně na očích, nijak nevyčnívali a neprovokovali a hleděli si svého. Slovo „zbožnost“ ovšem v té době označovalo také veřejné připojení k oficiálnímu náboženství. Zbožný byl ten, kdo se povinně podroboval různým státním kultům. To ale nepochybně není ona pravá zbožnost, o které tento list hovoří. Pravá zbožnost náleží pravému Bohu. A tím není nikdo z vládců. Jedině Bůh sám, zjevený v Ježíši Kristu, je hoden pravé zbožnosti. Co se ale stane, když budou vládcové od křesťanů vyžadovat pravou zbožnost v tom státním, oficiálním pojetí? Jak se křesťané zachovají, když se úcta k císaři dostane do konfliktu s úctou ke Kristu? Odpověď dobře známe. Křesťané byli prohlášeni za bezbožné, za ateisty. Dějiny prvních století církve jsou také dějinami jejího pronásledování.

 

이와 관련하여 또 다른 언급이 있습니다: 편지의 저자가 크리스천들이 참된 경건 속에서 고요한 삶을 살 수 있을 것을 바랄 때, 이러한 삶은 눈에 띄지 않고, 전혀 모나지 않고, 또 스스로를 격동시키지 않고, 오직 자신의 일에만 신경쓰며 은둔적인 삶이어야 한다는 인상을 줄 수 있습니다. 초대교회 당시 경건이라는 단어는 공식적인 종교 즉, 황제숭배에 대한 공개적인 참여를 의미했습니다. 경건하다는 것은 국가적 다양한 문화들에 의무적으로 복종하는 것을 의미했습니다. 그러나 의심의 여지없이 이러한 뜻의 경건은 오늘 본문이 말하고 있는 진정한 경건이 아닙니다. 참된 경건은 참된 하나님께 속한  것입니다. 어떠한 통치자도 경건의 대상이 될 수 없습니다. 오직 하나님 홀로,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자신을 나타내신 하나님만이 경건의 대상이 될 수 있는 분이십니다. 그러나 통치자들이 크리스천들로부터 위에 언급된 국가적 다양한 문화들에 대한 의무적 복종과 같은 경건을 요구하면 어떻게 될까요? 황제에 대한 숭배와 그리스도에 대한 경배가 충돌할 경우 크리스천들은 어떻게 행동해야 될까요. 이에 대한 대답을 우리는 잘 알고 있습니다. 초대교회 당시 황제숭배를 하지 않는 크리스천들은 경건하지 않는 자들로 여겨졌으며, 무신론자들로 낙인찍히게 되었습니다. 이런 사실을 통해 볼 때 초대교회의 역사는 박해의 역사이기도 한 것입니다.

 

7) Je totiž jeden Bůh a jeden prostředník mezi Bohem a lidmi, člověk Kristus Ježíš, který dal sám sebe jako výkupné za všechny, říká autor listu. Tato věta platí v každé době, za každého režimu. Co znamená pro nás, na to nám ovšem bible žádnou přesnou odpověď nedává. Světské vládě jistě náleží vděčnost. Vděčnost za to, že dává společnosti pravidla. Kdyby stát nebyl, proměnila by se společnost v nelítostné bojiště všech proti všem, kde vítězí ti silnější, bezohlednější, mocnější a bohatší. Stát a jeho instituce jsou hrází proti chaosu a libovůli – sice nedokonalou a selhávající, ale přece zabraňující alespoň tomu nejhoršímu.

 

그러므로 이제 편지의 저자는 하나님과 우리들 사이에 중보자는 오직 한 분 하나님, 모든 사람을 위해 자신을 드리신 구속자이신 사람이신 예수님 한 분 만이 하나님과 우리들 사이에 중보자가 되심을 말합니다. 이러한 사실은 시대를 막론하고 어떤 국가에서나 진리입니다. 물론 이러한 사실에도 불구하고 성경은 우리가 한 국가 속에서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 하는 것까지 세세한 대답을 주고 있지는 않습니다. 한가지 분명한 것은 우리는 세상 권력에 대해서 감사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공동체를 질서있게 하는 것에 대해 감사해야 합니다. 만약 국가가 없다면 세상은 힘이 더 세고, 무자비하고, 더 강하고, 더 부자인 자가 이기는 만인의 만인에 대한 무자비한 전쟁터로 변하고야 말것입니다. 국가와 국가의 제도는 물론 완벽하지 않고 때로 실패할 때도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혼돈과 무질서 등 최악의 상황을 막는 방파제입니다.

 

8) Vděčnost vůči státu nám ovšem nemá zavřít ústa, když vládcové svou moc zneužívají. Když stát přestává být ochranou proti zlu a stává se jeho nástrojem. Když se moc soustřeďuje do rukou jednoho člověka či jedné strany. Když je pošlapáváno právo a slabí se ho nemohou domoci. Když jsou umlčováni ti, kdo mají jiný názor. Dnes je na světě jen málo států, kde ze sebe vládcové dělají bohy. Ovšem spasitelské ambice má dnes mnoho politiků – a mnoho lidí je v této snaze podporuje a utvrzuje. Je ale jen jeden Bůh a jeden Spasitel, slyšeli jsme dnes. To sice není politický program, který by nám dal odpověď na každou společenskou otázku. Je to ale jasné varování – nejen vládcům tohoto světa, kteří jednou budou před Bohem skládat účty za své vládnutí, ale také nám. Abychom je kontrolovali a stanovili jejich vládě jasné hranice. A jistě také abychom se za ně modlili, protože to potřebují stejně jako my ostatní. Amen.

 

우리가 국가에 대해 감사하게 생각한다는 것이 통치자들이 그들의 권력을 남용했을 때 침묵하는 것까지 의미하는 것은 아닙니다. 국가가 악에 대항하는 국가 고유의 의무를 다하지 않거나 오히려 악의 도구로 전락되어도 우리가 침묵해야 된다는 것은 아닙니다. 권력이 한 사람 또는 한 정당의 손에 집중되어도 침묵해야 된다는 것은 아닙니다. 정당한 권리가 짓밟히고 약자들이 정당한 권리로부터 소외되고 소수의견들에 침묵이 강요되어도 침묵해야 된다는 것은 아닙니다. 오늘날의 세상에서 통치자들이 자신을 신으로 만드는 일은 거의 없습니다. 그러나 오늘날에도 많은 통치자들이 여전히 그들의 마음 속에 메시야적 야심을 갖고 있고 통치자 주변 사람들이 이를 지지하고 동조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오늘 말씀을 통해 한 하나님, 한 구원자가 계실 뿐임을 깨닫게됩니다. 진정한 구원은 공동체의 여러 문제들에 대해 해결책을 내놓는 정치적인 프로그램과 같은 그런 것이 아닙니다. 오늘 말씀은 모든 통치자들, 심지어 그들이 손에 쥐고 있는 권력에 대해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야 될 모든 통치자들과 우리에 대한 경고의 말씀입니다. 우리는 통치자들을 통제해야 합니다. 그들의 권력이 무한하지 않다는 한계를 설정해야 합니다. 그리고 우리가 기도가 필요한 것처럼 통치자들도 똑같이 기도가 필요한 자들이라는 것을 알아 그들을 위해 기도해야 합니다. 아멘.

(번역: 김영만 선교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