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연합 예배 (2021년 10월 3일)
- 사도행전 17장 22-27절
- 설교자: 류광현 목사
- 2021.10.03 연합예배 설교문 - 행17 - 손신일 목사.docx
사도행전 17장 22-27절
바울이 아레오바고 가운데 서서 말하되 아덴 사람들아 너희를 보니 범사에 종교심이 많도다 내가 두루 다니며 너희가 위하는 것들을 보다가 알지 못하는 신에게라고 새긴 단도 보았으니 그런즉 너희가 알지 못하고 위하는 그것을 내가 너희에게 알게 하리라 우주와 그 가운데 있는 만물을 지으신 하나님께서는 천지의 주재시니 손으로 지은 전에 계시지 아니하시고 또 무엇이 부족한 것처럼 사람의 손으로 섬김을 받으시는 것이 아니니 이는 만민에게 생명과 호흡과 만물을 친히 주시는 이심이라 인류의 모든 족속을 한 혈통으로 만드사 온 땅에 살게 하시고 그들의 연대를 정하시며 거주의 경계를 한정하셨으니 이는 사람으로 혹 하나님을 더듬어 찾아 발견하게 하려 하심이로되 그는 우리 각 사람에게서 멀리 계시지 아니하도다
우리 꼬빌리시 야곱의 사다리 교회는 세가지 언어로 예배를 드리는데, 이는 하나님의 뜻 가운데 있는 은혜라 할 수 있겠습니다. 언어의 차이가 서로의 의사소통에 어려움을 주는 것은 사실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같은 믿음 안에서 주님의 한 몸을 이루어 가는 것은 하나님의 은혜가 아닐 수 없습니다. 언어의 차이가 어떻게 시작된지에 대해서는 창세기 11장에 있는 바벨탑 이야기가 말해 주고 있습니다. 이에 의하면, 인간의 말이 갈라짐이 인간의 교만 때문이라 합니다. 하늘까지 닿는 답을 세우려는 인간들을 하나님은 말을 안 통하게 함으로써 방해하신 것입니다. 그 결과 사람들은 온 지면에 흩어지게 되고, 다양한 언어를 쓰는 사람들이 세계에 나타났다고 합니다. 바벨이라는 도시 이름은 „여호와께서 거기서 온 땅의 언어를 혼잡하게 하시고, 또한 거기서 그들을 온 지면에 흩으셨다“(창11:9)는 데서 유래하는 것이죠. 온 지면에 각양의 민족이 살고, 다양한 언어와 문화가 생긴 원인은 바벨탑을 세우려고 한 인간의 오만을 꺾으신 하나님의 뜻에 있었다는 것입니다.
한편, 신약성경에서 사도 바울은 다른 관점에서부터 언어와 문화의 차이 안에 있는 하나님의 뜻에 대해 말하고 있습니다. 오늘의 사도행전 17장의 말씀은, 바울이 그리스의 아덴(아테네)에서 전도했을 때의 일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철학의 도시 아덴에서의 바울의 선교는 성공하지 못했습니다만, 아덴 사람들을 향한 바울의 말 속에, 오늘날의 우리 세계의 다양함 가운데 있는 하나님의 뜻을 깨닫는 실마리를 찾을 수 있겠습니다. 바울은 말합니다. „아덴 사람들아 너희를 보니 범사에 종교심이 많도다.“ 바울이 그렇게 말한 것은 아덴에서 다양한 우상들이 숭배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 중에는 „알지 못하는 신에게“라고 새겨진 제단도 있었다고 합니다. 수많은 우상들을 섬기는 모습을 보고, 종교심이 많다고 인정한 것입니다만, 바울은 그들에게 „너희가 알지 못하고 위하는 그것을 내가 너희에게 알게 하리라“ 말합니다. 그분은 바로 „우주와 그 가운데 있는 만물을 지으신 하나님“이라는 것입니다. 천지의 창조주가 되시는 분이 유일한 참된 하나님이십니다. 세계를 창조하신 분이시기에 천지의 주재이시며, 사람의 손으로 지은 성전에 계시지 않으시고, 무엇이 부족한 것처럼 사람의 손으로 섬김을 받으시는 분도 아닌 것입니다.
참 하나님은 결코 사람이 만들어낸 분이 아닙니다. 우주보다 먼저 계시고 천지만물을 창조하시고, 모든 사람에게 생명과 호흡과 다른 모든 것을 주시는 분이십니다. 사도 바울은 이 하나님께서 이 세상의 각기 다양한 모든 민족을 만드셨다고 말합니다. 26절 말씀 „인류의 모든 족속을 한 혈통으로 만드사 온 땅에 살게 하시고 그들의 연대를 정하시며 거주의 경계를 한정하셨으니” 말하자면, 하나님께서 세계 모든 민족의 흥망의 역사를 주관하고 계시다는 것입니다. 다양한 민족이 자아내는 인류의 역사는 바벨탑 이래 현재까지 계속 이어져 왔습니다만, 사도 바울은 거기에 깃든 하나님의 뜻을 말하고 있습니다. 27절 말씀 „이는 사람으로 혹 하나님을 더듬어 찾아 발견하게 하려 하심이로되 그는 우리 각 사람에게서 멀리 계시지 아니하도다“ 이 세상에 많은 민족이 존재하고 많은 언어가 쓰이는 것은, 이로써 우리 인생들이 하나님을 찾아 발견케 하시려는 하나님의 뜻이라는 것입니다. 더구나 그렇게 하시는 하나님은 „우리 각 사람에게서 멀리 계시지 아니하도다“ 하였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가까이 계시고, 우리가 그분을 찾아 발견하기를 원하고 계십니다. 그리고 그 참 하나님을 우리가 발견하도록 다양한 민족을 만들어 내시고 다양한 언어를 쓰게 하셨다는 것입니다. 이 세상에 다양한 언어가 있는 것은, 바벨탑 이야기에 의하면 우리 인간의 교만을 징계하기 위한 것이었습니다만, 바울은 거기에 사람들이 참 하나님을 찾고 발견하도록 하시는 하나님의 뜻을 본 것입니다. 이 세상에 다양한 민족이 있는 것은 서로가 다투고 우열을 가리기 위한 것이 아닙니다. 창조주이신 참 하나님을 찾고 발견케 하기 위함이라고 성경은 깨우쳐 주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왜 많은 민족이 있음으로써 하나님을 발견하게 된다고 할 수 있는지요? 한가지 생각할 수 있는 것은, 인간이 하나님을 아는 데에는 한계가 있다는 사실입니다. 우리의 사고, 우리의 이해는 우리의 언어에 의존하고 있습니다. 한국어를 모국어로 하는 사람은 한국어로 생각하고, 체코어를 모국어로 하는 사람은 체코어로 생각합니다. 그것은 우리가 한국어나 체코어, 일본어라는 하나의 언어의 틀 속에서 생각하고 이해하고 있음을 뜻합니다. 우리의 사고는 우리가 쓰는 언어로 말미암아 영향을 받고 제한되어 있는 것입니다. 성경 말씀을 통해 하나님을 알게 될 때, 한국어로 성경을 읽는다면 체코어나 일본어 성경을 읽는 사람과 똑 같은 이해를 한다고는 할 수 없을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각기 자기 민족의 언어로 이해하게 되는 것입니다만, 거기에는 번역이라는 작업이 꼭 들어가게 됩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인간의 말로 번역되는 시점에서 여러 해석이 스며들 수밖에는 없습니다. 말하자면,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직접 듣는 것이 아니라 각자의 언어로 해석해서 듣게 되는 것입니다. 그것은 또한 우리의 사고의 틀이 되는 언어와 문화가 하나님을 이해하는 데 영향을 끼치고 제한하고 있다는 것이기도 합니다. 그것도 한국어, 체코어, 일본어라는 각기 다른 틀 안에서 각기 다른 이해를 하고 있는 것입니다.
유한한 인간이 영원하신 하나님을 이해하는 데에는 한계가 있습니다. 한국어로 듣는 하나님의 말씀에는 한국어의 틀이라는 한계가 있고, 다른 언어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성경의 원어인 히브리어나 헬라어에도 그 언어의 한계가 있음은 다르지 않습니다. 어떤 언어도 하나님의 말씀을 나타내기에는 부족합니다. 그렇다고 한다면, 다양한 언어, 다양한 민족이 있다는 사실이, 하나의 언어, 하나의 민족밖에 없는 경우보다 하나님을 찾아 발견하는 데 큰 도움이 된다고 할 수 있지 않을까요? 한국어로 표현하지 못하는 하나님의 한 측면을 다른 언어가 표현할 수도 있습니다. 거꾸로 다른 언어로 표현하지 못하는 것을 한국어로 할 수도 있는 것입니다. 한국어의 „하나님“, 체코어의 „Bůh“. 일본어의 „가미“ 로는 각기 그 말로 나타나는 표상이 다를 것입니다. 제각기 „하나님“이라는 말의 배경에 있는 역사와 문화에 차이가 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그 차이가 있음으로 인해서, 하나님을 보다 더 잘 찾아 발견하는 가능성이 열리게 됩니다. 체코어로 찾지 못했던 하나님의 한 측면이 한국어나 일본어로 찾을 수 있다는 일이 있을 것이고, 그 반대도 마찬가지일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 인생들이 하나님을 찾아 발견하도록 많은 민족과 언어를 만들어 내셨습니다. 그렇다면, 각기 다른 언어를 가진 다양한 민족이 함께 하나님을 찾아 구하는 일을 하나님께서 원하신다고 할 수 있겠고, 또한 하나님의 은혜라 할 수 있겠습니다. 세상에 다양한 언어, 민족, 문화가 있다는 사실은, 거기에 상당하는 다양한 우상을 만들기 위함이 아닙니다. 그렇지 않고, 유일하신 참 하나님을 찾아 발견하기 위함입니다. 이 세상의 언어와 민족의 다양함 가운데 하나님을 찾게 하는 하나님의 섭리가 있는 것입니다. 이 세상의 다양성 가운데 있는 하나님의 은혜를 우리는 결코 잊어서는 안 될 것입니다. 다른 말을 쓰는 사람, 다른 문화를 가진 사람을 배제하는 일은 하나님의 뜻이 아닙니다. 다양한 언어와 문화를 가지고 함께 참 하나님을 찾아 발견하는 일이 하나님의 뜻입니다. 주님께서 우리와 가까이 계시며, 우리가 찾는다면 반드시 발견하도록 우리에게 다양한 언어, 다양한 민족, 다양한 은사를 베풀어 주셨습니다. 교만한 마음으로, 자기들만으로 하늘에 닿으려는 민족을 주님께서 꺾으실 것입니다. 주님은 다양한 우리들에게 각자의 은사를 가지고 주님의 한 몸을 이루기를 원하고 계십니다. 고린도전서 12장13절 말씀 „우리가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종이나 자유인이나 다 한 성령으로 세례를 받아 한 몸이 되었고 또 다 한 성령을 마시게 하셨느니라“ 우리의 다민족 다언어 신앙공동체가 각자의 다양한 은사를 나누면서, 주님의 뜻 가운데 한 몸을 이루어 나가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기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