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연합 예배 (2022년 4월 3일)
- 누가복음 4장 3-12절
- 설교자: 손신일 목사
- 22.04.03 合同礼拝 한글 (1).docx
누가복음4장3-12절
마귀가 이르되 네가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어든 이 돌들에게 명하여 떡이 되게 하라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기록된 바 사람이 떡으로만 살 것이 아니라 하였느니라 마귀가 또 예수를 이끌고 올라가서 순식간에 천하 만국을 보이며 이르되 이 모든 권위와 그 영광을 내가 네게 주리라 이것은 내게 넘겨 준 것이므로 내가 원하는 자에게 주노라 그러므로 네가 만일 내게 절하면 다 네 것이 되리라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기록된 바 주 너의 하나님께 경배하고 다만 그를 섬기라 하였느니라 또 이끌고 예루살렘으로 가서 성전 꼭대기에 세우고 이르되 네가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어든 여기서 뛰어내리라 기록되었으되 하나님이 너를 위하여 그 사자들을 명하사 너를 지키게 하시리라 하였고 또한 그들이 손으로 너를 받들어 네 발이 돌에 부딪치지 않게 하시리라 하였느니라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주 너의 하나님을 시험하지 말라 하였느니라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하고 지금도 전쟁이 계속되고 있는 것은 전세계 사람들의 마음을 아프게 하고, 러시아에 대한 분노를 일으키고 있습니다. 러시아라고 하면, 일본에서는 그 문학에 매료되는 사람들이 적지 않습니다. 체코나 한국에서도 그렇겠습니다만, 톨스토이나 도스토예프스키의 장편소설은 전세계에서 많은 사람들의 영혼을 흔들고, 인간성 속에 담긴 고귀한 것으로 이끌어 주기도 합니다. 그러한 작품을 낳은 같은 러시아가 이웃 나라를 힘으로 정복하려고 하고, 수많은 군병들과 시민들이 전쟁의 희생이 되고 있는 것을 보면, 마음이 괴롭지 않을 수 없습니다. 어린 시절에, 톨스토이의 “바보 이반“이라는 민화풍의 이야기를 읽은 기억이 있습니다. 바보 이반에게는 마귀의 유혹이 조금도 통하지 않고, 반대로 마귀가 멸망해 버린다고 하는 이야기입니다. 이반에게는 두 명의 형이 있었는데, 하나는 군인이 되고, 하나는 상인이 됩니다. 둘 다 욕심이 많은 까닭에, 마귀의 계략에 쉽게 걸리고 맙니다. 하지만 부지런한 일꾼이자, 아무런 욕심도 없이 누구나 받아들이는 이반을, 마귀는 어떻게 해도 공략할 수 없었습니다. 이야기 후반에, 이반은 바보 같은 사람들만 사는 나라의 왕이 되는데, 마귀는 그 나라의 사람들을 빠뜨리기 위해, 머리를 써서 일하는 방법을 가르치려고 합니다. 머리를 쓰면 땀을 흘리고 일할 필요가 없어지고, 편하게 인생을 살 수 있다고 유혹합니다. 그러나 그 가르침은 바보 나라의 누구에게도 미치지 못했습니다. 그들이 마귀의 말을 이해할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마귀는 높은 망대 위에 서서, 사흘 내내, 제대로 먹지도 않으면서 연설을 한 나머지, 끝내 지쳐서 쓰러져 버리고, 망대 위에서, 거꾸로 되어, 한층, 한층 “머리“를 치면서 계단에 떨어지고, 마지막은 땅에 큰 구멍을 뚫어 사라져 버렸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선교활동을 시작하시기 전에 40일 동안 광야에 머무시고, 마귀로부터 시험을 받으셨습니다. 그때 마귀는 세 가지로 예수님을 유혹합니다. 첫 번째는 “네가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어든 이 돌들에게 명하여 떡이 되게 하라” 하는 유혹이었습니다. 하나님의 아들로서 그 능력으로 돌을 떡으로 바꾼다면, 양식의 문제가 해결되지 않느냐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주님께서는 신명기에 있는 말씀으로 그 유혹을 물리치십니다. “사람이 떡으로만 살 것이 아니라” 하셨습니다. 신명기 말씀에서는 그 뒤에 “하나님의 입으로부터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살 것이라” 하고 이어집니다. 돌을 떡으로 바꿨다고 해서 살아가는 모든 문제가 해결될 수 있는 것은 아니며, 사람이 살기 위해서는 하나님의 말씀을 양식으로 삼아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톨스토이의 이야기에서는, 상인이 된 이반의 형이, 나무 잎을 금화로 바꾸는 마귀의 힘에 의해, 오히려 신세를 망치게 됩니다. 떡이나 재물을 얼마든지 얻을 수 있다고 해서 반드시 행복해질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거기에는 오히려 탐욕이라는 마귀의 유혹이 숨어 있습니다. “하나님의 입으로부터 나오는 모든 말씀” – 그것을 듣는 귀를 가질지 아닐지가, 우리가 다다르는 곳을 크게 좌우하게 됩니다. 만약 하나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이려고 하지 않는다면, 마귀에게 영혼을 파는 것이나 마찬가지일 것입니다.
두 번째 유혹은 권위와 영광이라는 유혹이었습니다. 마귀는 예수님께 세상의 모든 나라들을 보여주고 말합니다. “이 모든 권위와 그 영광을 내가 네게 주리라 이것은 내게 넘겨 준 것이므로 내가 원하는 자에게 주노라, 네가 만일 내게 절하면 다 네 것이 되리라” 주님께서는 이 유혹도 신명기의 말씀으로 물리치십니다. “기록된 바 주 너의 하나님께 경배하고 다만 그를 섬기라 하였느니라” 이 세상의 귄위와 영광을 바라고 이 세상을 힘으로 지배하려고 하는 것은 마귀의 유혹이 아닐 수 없습니다. 군인이 된 이반의 형은, 지푸라기를 병사로 바꾸는 마귀의 힘으로 이웃 나라들을 공격하고 지배하게 됩니다만, 결국은, 힘을 가진 자의 오만으로 인해 멸망해 버립니다. 이 세상의 힘에 대한 숭배는 마귀의 유혹이며 우상숭배로서 하나님의 분노와 심판을 받게 될 것입니다. 부귀영화에 대한 동경은 인간 사회에 태어난 사람이라면 누구나 가질 수 있습니다. 상승하고자 하는 마음이 있기 때문에, 사람은 노력하고 이 세상에서의 열매를 얻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 사실이 바로 마귀의 유혹이 될 수 있다는 것은, 우리의 경험이 가르쳐 주고 있을 것입니다. “주 너의 하나님께 경배하고 다만 그를 섬기라” 이 말씀을 잊어버린다면, 언젠가 우상숭배의 죄에 물든 자기자신의 모습을 보게 될 것입니다.
마지막 유혹은 하나님을 시험하는 유혹이었습니다. 마귀는 예루살렘 성전 지붕 위에 예수님을 세우고 “네가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어든 여기서 뛰어내리라” 하고 말합니다. 하나님께서 반드시 천사들을 보내서 지켜 주실 것이라고, 성경의 말씀을 인용하면서 예수님을 꼬드기는 것이었습니다. 주님은 다시 신명기의 말씀으로 대답하십니다. “기록된 바 주 너의 하나님께 경배하고 다만 그를 섬기라 하였느니라” 이것은 이스라엘 백성이 광야의 ‘맛사‘라는 곳에서, 마시는 물이 없어서 모세에게 불평을 댔을 때 그들을 나무라는 말씀이었습니다. “너희가 맛사에서 시험한 것 같이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를 시험하지 말라” (신명기 6:16) 하나님을 시험하는 것은 불신앙의 죄라고 할 수 있습니다. 믿지 못하기 때문에 의심하는 것이고, 마귀는 우리에게 하나님을 의심하도록 유혹하는 것입니다. 바보 이반의 나라 사람들은 의심하는 일을 몰랐기 때문에 마귀의 유혹과는 무관했습니다. 마귀는 그들에게 머리를 써서 일할 것을 가르치지만, 그들은 무슨 뜻인 지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몸으로 일하는 일 외에는 생각할 수 없었던 것입니다. 우리는 어린 시절부터 머리를 써야 한다고 가르침을 받습니다만, 어쩌면 마귀의 유혹을 스스로 초래하고 있지 않을까 생각되기도 합니다. 머리를 쓰지 않으면 사람들에게 뒤처져 이 세상의 기준에서는 낙오자가 되어 버립니다. 다른 한편, 머리를 쓰면 쓸수록, 사람은 하나님께 의심을 갖게 되는 것이 아닌지요?
이반에게는 마귀의 유혹이 전혀 통하지 않았습니다. 그것은 그가 바보였기 때문이라 설명됩니다. 나뭇잎을 금화로 바꾸거나 짚을 병사로 만드는 일에, 이반은 전혀 관심이 없습니다. 다만 몸이 가루가 되도록 일하는 것 외에, 자신이 해야 할 일을 생각지도 못했습니다. 사람들이 구하는 것은 무엇이든 나누어 주었습니다. 권력을 잡겠다는 마음은 한 치도 없었습니다. 적들이 쳐들어와도 저항하지 않고, 그들이 하는 대로 둘 뿐입니다. 하지만, 사람을 죽이거나 사람을 착취하는 일은 확고하게 거절합니다. 또한, 하나님을 의심하는 일은 생각도 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사람들은 그를 바보라고 말합니다. 그렇지만, 사람들이 바보라고 하더라도, 하나님 보시기엔 하나님 뜻에 충실한 종일지도 모릅니다. 바보이기 때문에 마귀의 유혹을 물리칠 수 있다면, 사실은 바보가 아닐 수 있습니다. 분명히 그럴 것입니다. 이반의 나라에는 하나의 특별한 관례가 있었다고 합니다. 그것은, “어떤 사람이라도 손이 뻣뻣한 자는 식탁에 앉을 수 있지만, 그렇지 않은 자는 다른 사람이 먹고 남은 것을 먹어야 한다” 하는 것입니다. 온 세상이 이반의 나라처럼 된다면, 전쟁이 일어날 일은 결코 없을 것입니다. 하지만 세상이 이반의 나라처럼 되는 날은 결코 오지 않을 것입니다. 모두가 바보가 되지 않도록, 경쟁하면서 머리를 쓰고자 하는 것이 우리의 세상입니다. 말하자면, 이 세상은 마귀의 유혹에서 벗어날 수 없는 세상이기도 한 것입니다.
톨스토이는 만년에 비폭력주의자가 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바보 이반의 나라는 그의 이상(理想)의 나라이기도 했을 것입니다. 주님의 가르침에는 비폭력의 근거가 되는 말씀이 적지 않습니다. 산상수훈(山上垂訓)에 있는 “악한 자를 대적하지 말라 누구든지 네 오른편 뺨을 치거든 왼편도 돌려 대라” (마태5:39) 하는 가르침은, 그 필두가 되겠습니다. 하지만, 주님의 교회가 폭력을 완전히 부인하는 것은 아닙니다. 개신교 교회에는 비폭력을 주장하는 교파도 있는 반면에, 주류 교회가 정당한 방어로 인한 살인이나 전쟁을 금하지는 않습니다. 오히려 전쟁을 고무해 온 역사가 있습니다. 우크라이나에서 일어난 전쟁이 내 나라에서 일어난다면, 나는 어떻게 해야 할 지 생각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 대답은 쉽게 나오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다만, 비록 정의의 싸움이라는 명분이 주어졌다 하더라도, 전쟁이 마귀의 유혹임에 변함이 없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검을 잡든, 거절하든, 마귀의 유혹을 물리치려면 주님의 말씀을 마음에 새겨 둘 필요가 있습니다. “사람이 떡으로만 살 것이 아니라” “주 너의 하나님께 경배하고 다만 그를 섬기라” “주 너의 하나님을 시험하지 말라” 하나님의 말씀으로 마귀의 유혹을 물리치는 주님의 교회이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