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은 왜 십자가에서 죽으셨나

<누가복음 18:31-34>

31 예수께서 열두 제자를 데리시고 이르시되 보라 우리가 예루살렘으로 올라가노니 선지자들을 통하여 기록된 모든 것이 인자에게 응하리라

32 인자가 이방인들에게 넘겨져 희롱을 당하고 능욕을 당하고 침 뱉음을 당하겠으며

33 그들은 채찍질하고 그를 죽일 것이나 그는 삼 일 만에 살아나리라 하시되

34 제자들이 이것을 하나도 깨닫지 못하였으니 그 말씀이 감취었으므로 그들이 그 이르신 바를 알지 못하였더라

 

하나님의 은혜와 평강이 성도 여러분과 함께하시길 기원합니다.

오늘 본문은 예수님의 공생애 말미에 제자들과 함께 예루살렘으로 올라가던 때의 상황을 묘사합니다. 예수님은 예루살렘에서 겪게 될 일들을 알고 계셨습니다. 이방인들에게 넘겨져 모욕과 수난과 죽음을 당할 것임을 알고 계셨습니다. 하지만 삼 일 만에 다시 살아날 것도 알고 계셨고, 이를 제자들에게 미리 여러 차례 말씀하셨습니다. 하지만 제자들은 그 말의 의미를 전혀 깨닫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예수님은 왜 십자가에서 죽으셨나? 어쩌다 그렇게 됐나, 누가 그렇게 만들었나를 묻는 질문이라면 이렇게 간단히 답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처음에 유다가 제사장들에게 예수를 넘겨주었다. 다음에는 제사장들이 빌라도에게 예수를 넘겨주었다. 그후에 빌라도가 군병들에게 예수를 넘겨주었고, 그들은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박았다.

하지만 이것이 다가 아니라는 것을 우리는 압니다. 이 가운데 어느 한 가지도 하나님이 허락하지 않으시고 예수님이 수락하지 않았다면 결코 일어날 수 없었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유다가 예수님을 넘겨주기 전에, 제사장들이 예수님을 넘겨주기 전에, 또 빌라도가 예수님을 넘겨주기 전에, 예수님을 죄인들의 손에 넘겨준 이는 바로 그의 아버지 하나님이었습니다.

예수님은 단순히 죽임을 당한 것이 아니라 죽음을 향해 의식적으로 나아갔습니다. 하나님의 뜻을 거스른 결과로 죽음을 맞이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에 복종한 결과로 죽음을 맞이했습니다. 비록 그 일이 인간의 악함으로 인해 일어난 것이라 해도, 분명 하나님의 뜻 가운데서 일어난 일이었고, 그 뜻에 그리스도가 자발적으로 복종하여 일어난 일이었으므로, 그 죽음은 뜻이 있는 죽음, 목적이 있는 죽음이라 할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은 왜 십자가에서 죽으셨나’ 질문할 때, 우리는 단순히 그 죽음의 책임이 누구에게 있나를 묻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의 십자가에는 어떤 중요성이 있기에, 그 끔찍함과 수치와 고통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그 일을 계획하시고 예수님은 그 일을 겪으셨는지를 묻는 것입니다.

이에 대해 성경은 다음 네 가지를 우리에게 말해주고 있습니다. 첫째로, 예수님의 십자가 죽음은 우리를 위한 죽음이었습니다. 그것은 예수님 자신을 위한 자학적 죽음이 아니라 우리 모든 인간들을 위한 이타적 죽음이었습니다. 그 죽음을 통해 예수님은 우리가 다른 방법으로는 획득할 수 없는 유익을 우리에게 확보해 주고자 하셨던 것입니다. 예수님은, 선한 목자는 ‘양들을 위하여’ 곧 그들의 유익을 위하여 자기 목숨을 내놓는다고 말씀하셨습니다(요10:11). 또한 다락방에서 제자들에게 떡을 나누어 주시면서 예수님은 “이것은 너희를 위하여 주는 내 몸이라”(눅22:19) 말씀하셨습니다.

둘째로, 예수님의 십자가 죽음은 우리를 하나님께로 인도하기 위한 죽음이었습니다. 베드로전서 3장 18절에 말씀합니다: “그리스도께서도 단번에 죄를 위하여 죽으사 의인으로서 불의한 자를 대신하셨으니 이는 우리를 하나님 앞으로 인도하려 하심이라” 하나님에게서 멀어져 있던 우리가 다시 하나님 앞에 서게 되는 것, 이것이 구원입니다. 이 구원의 은사가 구속, 용서, 영생, 화목 등 여러 용어로 성경에 표현되어 있습니다.

셋째로, 예수님의 십자가 죽음은 우리의 죄를 위한 죽음이었습니다. 우리의 죄는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시고자 하는 은사를 받지 못하도록 가로막는 장애물이었습니다. 그러므로 그 은사가 우리에게 주어지기 위해서는 먼저 죄가 제거되어야 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자신의 죽음으로써 우리의 죄를 처리 혹은 없이하신 것입니다. 고린도전서 15장 3절에 “성경대로 그리스도께서 우리 죄를 위하여 죽으시고” 이 외에도 신약성경의 많은 구절들이 예수님의 죽음을 우리의 죄와 연결시켜 말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이 둘은 서로 어떤 연관이 있을까?

넷째로, 예수님의 십자가 죽음은 죄인인 우리의 죽음을 대신하신 죽음이었습니다. 우리가 지은 죄의 대가로 우리가 받았어야 할 형벌을 죄 없으신 예수님이 대신 받으신 것입니다. 요한복음 3장에서 예수님은 말씀하십니다. “모세가 광야에서 뱀을 든 것 같이 인자도 들려야 하리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요3:15) 광야에서 불뱀에 물려 죽어가던 사람들이 모세가 장대 위에 매단 놋뱀을 쳐다보고 살았던 것처럼, 십자가에 달린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바라보는 자는 살 것입니다.

요약하자면, 예수님은 우리를 위해, 우리의 유익을 위해 죽으셨습니다. 그분이 죽음으로써 확보하신 그 ‘유익’이 바로 우리의 구원이었습니다. 그것을 조달하기 위해 예수님은 우리의 죄를 처리하셔야 했습니다. 예수님의 십자가 죽음은 우리의 죄로 인해 우리가 담당해야 할 죽음을 그분이 대신 감당하신 죽음이었습니다.

제자들과의 마지막 유월절 만찬 자리에서 예수님은 떡 한 덩어리를 들어서 축사하시고, 그것을 떼어 제자들에게 나눠주시며 말씀하셨습니다. “이것은 너희를 위하여 주는 내 몸이라 너희가 이를 행하여 나를 기념하라”(눅22:19) 식후에 또한 예수님은 포도주 한 잔을 들어 감사기도 하시고, 그것을 그들에게 돌리시며 말씀하셨습니다: “이 잔은 내 피로 세우는 새 언약이니”(눅22:20) 혹은 “이것은 죄 사함을 얻게 하려고 많은 사람을 위하여 흘리는 바 나의 피, 곧 언약의 피니라”(마26:28)

이것은 참으로 의미심장한 행위요 말씀이었습니다. 왜냐하면 여기에는 예수님의 죽음에 대한 예수님의 자신의 견해가 담겨 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이 떡을 떼어 주시며 “이것은 너희를 위하여 주는 내 몸이라” 말씀하실 때, 그 떡은 잠시 후에 죽음으로써 그들에게 주어지는 그분의 몸을 대표하는 것이었습니다. 또한 예수님이 포도주 잔을 돌리시며 “이 잔은 내 피로 세우는 새 언약이라” 말씀하실 때, 그 포도주는 잠시 후에 죽음으로써 그들을 위하여 흘려질 그분의 피를 대표하는 것이었습니다.

바울과 누가의 기록에 따르면, 잔에 관한 예수님의 말씀은 그분의 ‘피’ 뿐만 아니라, 그분의 피와 연관된 ‘새 언약’을 가리켰으며, 또한 마태는 한 걸음 더 나아가 그분의 피는 ‘죄 사함을 얻게 하려고’ 흘려진 것이라 말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죽으시며 흘리신 피는 하나님과 그분의 백성 사이에 맺어질 새로운 협정을 인치는 새 언약의 피였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무슨 말인가?

수세기 전에 하나님은 아브라함과 언약을 맺으시고, 좋은 땅과 많은 자손으로 그에게 복 주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이후 하나님은 아브라함의 후손인 이스라엘 백성을 애굽에서 건져내신 후에, 시내산에서 이 언약을 갱신하셨습니다. 하나님이 그들의 하나님이 되며, 그들을 자기 백성 삼겠다고 맹세하셨습니다. 그리고 이 언약은 희생의 피로 확증되었습니다. 출애굽기 24장 8절: “모세가 그 피를 가지고 백성에게 뿌리며 이르되 이는 여호와께서 이 모든 말씀에 대하여 너희와 세우신 언약의 피니라”

이후 수백 년이 흐르는 동안 그 백성이 하나님을 버리고 그분의 언약을 어기며 그분의 형벌을 자초하자, 주전 7세기의 어느 날 다음과 같은 여호와의 말씀이 선지자 예레미야에게 임합니다: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보라 날이 이르리니 내가 이스라엘 집과 유다 집에 새 언약을 맺으리라 이 언약은 내가 그들의 조상들의 손을 잡고 애굽 당에서 인도하여 내던 날에 맺은 것과 같지 아니할 것은 내가 그들의 남편이 되었어도 그들이 내 언약을 깨뜨렸음이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그러나 그 날 후에 내가 이스라엘 집과 맺을 언약은 이러하니 곧 내가 나의 법을 그들의 속에 두며 그들의 마음에 기록하여 나는 그들의 하나님이 되고 그들은 내 백성이 될 것이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그들이 다시는 각기 이웃과 형제를 가리켜 이르기를 너는 여호와를 알라 하지 아니하리니 이는 작은 자로부터 큰 자까지 다 나를 알기 때문이라 내가 그들의 악행을 사하고 다시는 그 죄를 기억하지 아니하리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렘31:31-35)

그로부터 육백 년 이상 오랜 기다림의 시간을 지나 마침내 예수님의 입에서 그 날이 이르렀음이 선언되고 있었던 것입니다: 예레미야가 예언했던 새 언약이 이제 세워지려 하고 있다. 그 새 언약 속에 내포된 죄 사함의 복이 이제 효력을 발생하려 한다. 이 새 언약을 인 치고 죄 사함을 얻게 하는 제사는 내가 죽으면서 흘리는 나의 피가 될 것이다!

이것이 자신의 죽음에 대한 예수님의 견해였습니다. 그분이 십자가에서 흘리는 피가 하나님과 자기 백성 사이에 맺어진 새 언약을 그들 마음 속에 확증해주리라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가르치신 말씀, 제자들에게 주신 사랑의 새 계명이 새 언약의 규범이 되고, 예수님이 선포하신 복음, 심령이 가난한 자들을 하나님 나라에로 부르시는 그 은혜로운 초청이 새 언약의 백성들을 구성합니다. 그리고 예수님의 죽음, 그분이 십자가에서 흘리신 피가 그 새 언약 백성들 마음 속에 그들이 하나님의 사랑받는 자녀임을 확증해줍니다.

예수님은 왜 십자가에서 죽으셨나? 네 가지를 말씀드렸습니다. 그것은 우리를 위한 죽음이었고, 우리를 하나님께로 인도하기 위한 죽음이었으며, 우리 죄를 위한 죽음이었고, 우리의 죽음을 대신하신 죽음이었습니다. 그리고 이 모든 것 뒤에는 하나님의 사랑이 있었습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아멘.

기도하겠습니다.

사랑의 주님, 당신의 십자가 사랑에 감사합니다. 언제나 그 사랑 안에서 살게 하여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