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 마음으로

<예레미야 29:10-14>

10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니라 바벨론에서 칠십 년이 차면 내가 너희를 돌보고 나의 선한 말을 너희에게 성취하여 너희를 이 곳으로 돌아오게 하리라

11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너희를 향한 나의 생각을 내가 아나니 평안이요 재앙이 아니니라 너희에게 미래와 희망을 주는 것이니라

12 너희가 내게 부르짖으며 내게 와서 기도하면 내가 너희들의 기도를 들을 것이요

13 너희가 온 마음으로 나를 구하면 나를 찾을 것이요 나를 만나리라

14 이것은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나는 너희들을 만날 것이며 너희를 포로된 중에서 다시 돌아오게 하되 내가 쫓아 보내었던 나라들과 모든 곳에서 모아 사로잡혀 떠났던 그곳으로 돌아오게 하리라 이것은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하나님의 은혜와 평강이 성도 여러분과 함께하시길 기원합니다.

오늘 본문은 바벨론에 포로로 끌려간 유다인들에게 선지자 예레미야가 편지로 전한 하나님 말씀의 일부입니다.

이 편지에서 예레미야는 거짓 선지자 하나냐의 말처럼 ‘2년 안에’가 아니라, 무려 ‘칠십 년이 꽉 차야’ 하나님이 새로운 변화를 일으키실 것이라 말합니다.

“바벨론에서 칠십 년이 차면 내가 너희를 돌보고 나의 선한 말을 너희에게 성취하여 너희를 이 곳으로 돌아오게 하리라”(10)

이 칠십 년은 땅의 모든 나라가 바벨론을 섬겨야 할 기간으로, 거의 한 세대에 달하는 매우 긴 시간이지만, 또한 끝이 예정된 시간입니다.

그 칠십 년이 차면 유다인들은 그들이 살던 땅으로 돌아오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은 선지자를 통해 그 일을 미리 알려주심으로, 그 일이 하나님에 의해 계획되고 성취되는 일임을 후에 그들이 깨닫게 하십니다.

하지만 이 칠십 년 포로생활은 하나님의 백성 안에 오해와 절망을 불러일으킬 수 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그들을 향한 하나님의 생각이 어떤 것인지 알려주십니다.

“너희를 향한 나의 생각을 내가 아나니 평안이요 재앙이 아니니라 너희에게 미래와 평안을 주는 것이니라”(11)

나라의 멸망과 칠십년 포로, 이것의 의미는 무엇입니까? 재앙입니까? 불운입니까? 내쳐짐입니까? 잊혀짐입니까?

하나님은 아니라 하십니다. 그들을 아주 버리셨다는 뜻도 아니고 해롭게 하겠다는 뜻도 아니라 하십니다. 오히려 평안, 즉 샬롬을 위해서라 하십니다. 그들이 참된 평화를 누리게 하기 위함이라 하십니다.

하나님은 자기 백성을 혼내는 것으로 역사가 끝나길 바라지 않으십니다. 그것을 넘어서는 더욱 선한 계획을 가지고 계십니다. 그분의 생각, 그분의 계획은 우리에게 미래와 희망을 주는 것이라 하십니다.

오늘 우리가 처한 상황 속에서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져봅시다. 오늘을 사는 우리에게 진정 미래와 희망을 주는 생각은 무엇일까요? 괜찮아. 좋아질 거야. 다시 예전과 같이 살 수 있게 될 거야. 이건 잠시 지나가는 소낙비일 뿐이야… 이런 생각일까요?

지구환경이 급격하게 나빠지고 있다는 얘기 다들 들으셨을 겁니다. ‘기후위기’를 넘어 ‘기후붕괴’라는 말이 나오고 있습니다. 임계점을 넘어섰다는 표현도 씁니다. 지금의 코로나 상황도 인간의 과도한 욕심이 부른 결과요 지구생태계 붕괴의 징후로 보기도 합니다.

기술은 나날이 발전해가고 내 옆에 놓여 있는 물건들은 분명 이전보다 양질의 것인데, 과연 우리의 삶은 나날이 더 나아져가고 있는 걸까?

정보의 홍수, 언제든 마음만 먹으면 검색이 가능한 스마트 기기를 늘 손에 쥐고 살아가면서, 덩달아 나도 그만큼 스마트한 존재가 된 듯 착각하기도 하지만, 과연 그 많은 정보, 지식의 근접성이 나를 더 나은 삶, 더 나은 미래로 이끌어주고 있는 것일까?

뉴 노멀, 새로운 삶의 질서, 근본적인 방향전환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들립니다. 지금의 코로나 상황이 ‘마지막 경고’이자 ‘마지막 기회’일지 모른다 말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동시에, 과연 우리가 돌이킬 수 있을까, 새로워질 수 있을까, 인류가 과연 그 일을 해낼 수 있을까, 회의적으로 보는 시각도 있습니다.

아마도 우리는 모두가 좋게 바뀌는 것을 기대하긴 어려울 것입니다. 하지만 어떤 사람, 혹은 어떤 사람들이 좋게 바뀌는 것은 기대해볼 수 있을 것입니다. 하나님은 언제나 한 사람에서 시작하시는 것 같습니다. 하나님께 참되게 반응하는 한 사람, 그것을 시작점으로 삼아 새로운 역사를 일구어 가십니다.

그러므로 세상에 그런 괜찮은 사람이 적다는 사실에 절망하기보다, 내가 그 한 사람이 되기롤 소망하는 일이 우리에게 더 필요할 것입니다. 우리 하나님 나라 백성들에게 맡겨진 사명은 이 땅에 완벽한 하나님 나라를 건설하는 일이 아닙니다. 내 삶의 자리에 임하여 있는 하나님 나라를 진솔하게 증거하며 사는 일입니다.

그렇다면 우리에게 미래와 희망을 주는 하나님의 생각, 하나님의 계획이란 무엇을 말하는 것일까요? 한 마디로 그것은 우리가 “온 마음으로” 하나님을 찾고 만나게 되는 일입니다.

포로살이가 끝나고 원래 있던 삶의 자리로 돌아오게 되는 일이 핵심 같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이 마음만 먹으면 지금 당장에라도 하실 수 있는 일입니다. 하지만 그들이 전심으로 하나님을 찾게 되는 일, 그것은 마음을 찢는 아픔과 새로 빚어지는 시간을 필요로 하는 일입니다.

그들이 진심으로 뉘우치고, 새 마음, 온 마음으로 하나님께 돌아오게 되는 일, 그것이 핵심입니다. 그것이 그들에게 진정 미래와 희망을 주는 것입니다.

“너희가 내게 부르짖으며 내게 와서 기도하면 내가 너희들의 기도를 들을 것이요 너희가 온 마음으로 나를 구하면 나를 찾을 것이요 나를 만나리라”(12-13)

이것은 앞에 11장에서 유다 백성이 부르짖더라도 여호와께서 듣지 아니하리라 하셨던 말씀을 뒤집는 말씀입니다. 유다 멸망 직전 바벨론 침략의 상황 속에서 하나님은 말씀하셨습니다: “그들이 그 고난으로 말미암아 내게 부르짖을 때에 내가 그들에게서 듣지 아니하리라”(11:14)

하지만 칠십 년 포로살이를 겪으면서 그들이 다시 부르짖을 때 하나님은 그들의 기도를 들으시고 만나 주시겠다 말씀하십니다. 이 구절을 히브리어 본문의 어순과 뉘앙스를 살려 다시 번역하면 이렇습니다: “너희가 나를 찾아 만나리라. 너희가 전심으로 찾으면!”

이 말씀은 다음 몇 가지 사실을 알려줍니다. 첫째, 우리가 하나님을 만나는 일은 하나님께서 우리를 만나주셔야 가능한 일입니다. 둘째, 우리가 온 마음으로 하나님을 구할 때 하나님은 우리를 만나주시겠다 합니다. 셋째, 그처럼 온 마음으로 하나님을 구하고 만날 때에야 우리에게는 미래와 희망이 있을 것입니다.

예레미야 24장 6-7절에서 하나님은 또한 말씀하십니다. “내가 그들을 돌아보아 좋게 하여 다시 이 땅으로 인도하여 세우고 헐지 아니하며 심고 뽑지 아니하겠고 내가 여호와인 줄 아는 마음을 그들에게 주어서 그들이 전심으로 내게 돌아오게 하리니 그들은 내 백성이 되겠고 나는 그들의 하나님이 되리라”

온 마음으로 하나님을 찾는 일, 내가 마음만 먹으면 할 수 있는 일 같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습니다. 진실한 회개, 진실한 기도, 그것도 은혜입니다. 바벨론 포로살이, 그 고난의 시간이 지나고 하나님께서 그들을 다시 돌아오게 하실 때, 하나님은 그들에게 그분이 하나님이신 줄 아는 마음을 그들에게 주셔서, 그들이 전심으로 하나님께 돌아오게 하시겠다 말씀하십니다.

여러분, 생각해보십시오. 만약 우리 각자가 바라는 대로 모든 게 다 이루어진다면, 과연 우리는 온 마음으로 하나님을 찾을 수 있을까요? 천만에요. 그럴리가요. 우리가 그런 사람들이 아니라는 걸 경험적으로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이 일하시는 방식을 다 이해하지 못합니다. 매일 성경을 읽고 질문을 올려주는 아이가 자주 하는 질문 패턴이 있습니다. “예수님이 이렇게 하시면 사람들이 더 잘 믿을 것 같은데 예수님은 왜 그렇게 안 하시죠?” 생각해보면 답은 의외로 간단합니다. 우리가 효과적이라고 생각하는 그 방식이 하나님 보시기에는 전혀 효과적이지 않은 거죠.  

사람들이 하나님을 두려워하고 그 앞에 엎드리게 만드는 일은 하나님 편에선 너무나 쉬운 일입니다. 세상 모든 사람이 듣도록 하늘에서 호통 한번만 치셔도 될 일입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바라시는 것이 우리의 진실한 사랑의 반응이라면요?

사람들이 예수님을 하나님의 아들로 인정하게 만드는 일은 예수님 편에선 너무나 쉬운 일이었을 겁니다. 마귀의 제안대로, 돌로 빵을 만들고, 성전 꼭대기에서 멋진 쑈 한번만 보여줘도 될 일이었겠죠. 하지만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신 목적이 우리 각 사람에게 하나님의 마음을 나타내기 위함이었다면요?

세상의 눈으로 볼 때 예수 십자가만큼 어리석고 미련한 것이 또 없을 것입니다. 하지만 고린도전서에서 바울은 말하죠. “십자가의 도가 멸망하는 자들에게는 미련한 것이요 구원을 받는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능력이라”(1:18)

“나는 너희들을 만날 것이며 너희를 포로된 중에서 다시 돌아오게 하되 내가 쫓아 보내었던 나라들과 모든 곳에서 모아 사로잡혀 떠났던 그곳으로 돌아오게 하리라”(14)

유다 백성을 이방 나라로 쫓아 보내신 것도 하나님이셨고, 그들을 모아 떠났던 그곳으로 되돌아오게 하실 분도 하나님이시라는 것입니다. 히브리어 표현 그대로 옮기자면, “그들의 운명을 되돌리시겠다”는 선언입니다.

하나님께서 하시고자 하면 누가 막을 수 있겠습니까! 그런데 살면서 우리는 또한, 하나님께서 하실 줄 알았는데 하시지 않은 상황으로 인해 낙심할 때가 있습니다. 그럴 때 우리는 오늘 말씀을 늘 다시 되새겨보면 좋을 것입니다.

“너희를 향한 나의 생각을 내가 아나니 평안이요 재앙이 아니니라 너희에게 미래와 희망을 주는 것이니라 너희가 내게 부르짖으며 내게 와서 기도하면 내가 너희들의 기도를 들을 것이요 너희가 온 마음으로 나를 구하면 나를 찾을 것이요 나를 만나리라”

사무엘상 16장 7절에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사람은 외모를 보거니와 나 여호와는 중심을 보느니라” 하나님께서 사무엘을 다윗에게로 이끄신 것은 아무도 주목하지 않던 그 베들레헴 목동의 마음이 하나님을 향해 있는 것을 보셨기 때문일 것입니다.

신앙의 원리는 참 단순하면서도 오묘합니다. 갈라디아서 6장 7절에서 바울은 말합니다. “스스로 속이지 말라 하나님은 업신여김을 받지 아니하시나니 사람이 무엇으로 심든지 그대로 거두리라”

이것은 열심히 노력하지 않고 좋은 결과 얻기를 기대하지 말라는 메시지가 아닙니다. 내 마음이 어디를 향해 있는지, 무엇을 위해 심고 있는지, 하나님 앞에서 잘 생각해보며 살라는 뜻입니다.

“자기의 육체를 위하여 심는 자는 육체로부터 썩어질 것을 거두고 성령을 위하여 심는 자는 성령으로부터 영생을 거두리라”(8) 바로 이런 의미에서 우리는 심는대로 거둘 것입니다.

입교교육 시간에 우리 자녀들에게 강조했던 말이 있습니다. “한 마디 기도를 하더라도 진실하게 하면 좋겠다. 마음을 담아라. 하나님 앞에서 중요한 것은 기도의 문구가 아니라 기도에 담긴 마음이다. 마음을 드려라.”

누구든 하나님께 기도할 수 있습니다. 누구든 온 마음으로 하나님을 찾으면 하나님을 만날 수 있습니다. 이 점에서 하나님은 사람을 차별하지 않으십니다. 하지만 누구나 하나님을 만날 수는 없습니다. 누구나 기도한다고 하나님을 만나는 건 아닙니다. 온 마음으로 드리는 기도에 하나님은 응답하십니다. 이 점에서 하나님은 기도를 차별하십니다.

이처럼 하나님의 관심이 우리 마음에 있다면, 하나님께서 우리 주위에서 하시는 일들은 우리 마음의 변화에 초점이 맞춰져 있을 확률이 높습니다. 우리에게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것 같은 때에도 어쩌면 하나님은 우리 마음의 밭이 기경되도록 소리없이 일하고 계시는지 모릅니다. 이것을 알지 못하면, 우리 삶은 늘 하나님과 엇박자로 돌아갈 수밖에 없습니다.

다니엘은 이 예레미야의 예언이 적힌 책을 접하고 전심으로 하나님께 기도했습니다. 자기 민족의 죄악을 참회하고, 오직 하나님의 큰 긍휼을 의지하여 약속대로 구원해주시길 간구했습니다. 하나님은 마치 그 순간만을 기다려오셨다는 듯, 그가 “기도를 시작할 즈음에” 천사 가브리엘을 그에게로 보내십니다.

마침내 칠십 년이 찼을 때, 하나님은 새로 들어선 제국 페르시아 왕 고레스의 마음을 움직이셔서 유다 포로를 고국으로 되돌리게 하시고 그들이 그 땅에 성전을 다시 세울 수 있게 하십니다.

이스라엘 역사 가운데 일하셨던 하나님이 오늘을 사는 우리 하나님의 자녀들 가운데서도 일하시는 줄 믿습니다.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생각은 진정 우리에게 미래와 희망을 주는 것입니다. 온 마음으로 우리가 하나님을 구하며 기도할 때, 하나님은 들으시고 만나주시겠다 말씀하셨습니다.

기도하겠습니다.

사랑의 하나님 아버지,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생각이 어떤 것인지 말씀해 주시니 감사합니다. 아무 일도 일어나는 것 같지 않은 때에도 사람 마음의 그릇은 이런 저런 모습으로 빚어지고 있는 줄 믿습니다. 우리가 온 마음으로 하나님을 구하며 만날 수 있도록 은혜를 베풀어 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