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뜻을 묻는 사람들에게

<에스겔 20: 1-5, 10-17, 30-32>

1 일곱째 해 다섯째 달 열째 날에 이스라엘 장로 여러 사람이 여호와께 물으려고 와서 내 앞에 앉으니

2 여호와의 말씀이 내게 임하여 이르시되

3 인자야 이스라엘 장로들에게 말하여 이르라 주 여호와께서 이렇게 말씀하셨느니라 너희가 내게 물으려고 왔느냐 내가 나의 목숨을 걸고 맹세하거니와 너희가 내게 묻기를 내가 용납하지 아니하리라 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4 인자야 네가 그들을 심판하려느냐 네가 그들을 심판하려느냐 너는 그들에게 그들의 조상들의 가증한 일을 알게 하여

5 이르라 주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셨느니라 옛날에 내가 이스라엘을 택하고 야곱 집의 후예를 향하여 내 손을 들어 맹세하고 애굽 땅에서 그들에게 나타나 맹세하여 이르기를 나는 여호와 너희 하나님이라 하였노라 [ … ]

10 그러므로 내가 그들을 애굽 땅에서 나와서 광야에 이르게 하고

11 사람이 준행하면 그로 말미암아 삶을 얻을 내 율례를 주며 내 규례를 알게 하였고

12 또 내가 그들을 거룩하게 하는 여호와인 줄 알게 하려고 내 안식일을 주어 그들과 나 사이에 표징을 삼았노라

13 그러나 이스라엘 족속이 광야에서 내게 반역하여 사람이 준행하면 그로 말미암아 삶을 얻을 나의 율례를 행하지 아니하며 나의 규례를 멸시하였고 나의 안식일을 크게 더럽혔으므로 내가 이르기를 내가 내 분노를 광야에서 그들에게 쏟아 멸하리라 하였으나

14 내가 내 이름을 위하여 달리 행하였었나니 내가 그들을 인도하여 내는 것을 본 나라들 앞에서 내 이름을 더럽히지 아니하려 하였음이로라

15 또 내가 내 손을 들어 광야에서 그들에게 맹세하기를 내가 그들에게 허락한 땅 곧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요 모든 땅 중의 아름다운 곳으로 그들을 인도하여 들이지 아니하리라 한 것은

16 그들이 마음으로 우상을 따라 나의 규례를 업신여기며 나의 율례를 행하지 아니하며 나의 안식일을 더럽혔음이라

17 그러나 내가 그들을 아껴서 광야에서 멸하여 아주 없이하지 아니하였었노라 [ … ]

30 그러므로 너는 이스라엘 족속에게 이르라 주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셨느니라 너희가 조상들의 풍속을 따라 너희 자신을 더럽히며 그 모든 가증한 것을 따라 행음하느냐

31 너희가 또 너희 아들을 화제로 삼아 불 가운데로 지나게 하며 오늘까지 너희 자신을 우상들로 말미암아 더럽히느냐 이스라엘 족속아 너희가 내게 묻기를 내가 용납하겠느냐 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내가 나의 삶을 두고 맹세하노니 너희가 내게 묻기를 내가 용납하지 아니하리라

32 너희가 스스로 이르기를 우리가 이방인 곧 여러 나라 족속 같이 되어서 목석을 경배하리라 하거니와 너희 마음에 품은 것을 결코 이루지 못하리라

 

하나님의 은혜와 평강이 성도 여러분과 함께하시길 기원합니다.

오늘 본문은 이스라엘 역사의 한 시점에 하나님의 뜻을 묻는 사람들에게 하나님께서 예언자를 통해 주신 말씀입니다. 이것을 일반화하여 모든 상황에 적용할 순 없겠지만, 이 말씀 속에 담긴 하나님의 마음과 뜻을 헤아려보는 일은 오늘의 우리에게도 필요한 일일 것입니다.

‘일곱째 해’라 함은 여호야긴 왕과 함께 제1차유다포로가 바벨론에 끌려온 지 7년째 되던 해를 말합니다. 그 해의 어느 날 이스라엘 장로들, 즉 바벨론 그발 강 가 포로 공동체 대표들이 하나님께 물으려고 에스겔을 찾아왔습니다.

무엇을 묻고자 했을까? 그때는 아직 유다가 완전히 망하기 전이었고, 유다인 중 일부만이 포로로 끌려와 있는 상황이었으므로, 아마도 그것은 언제쯤 그들이 고국에 돌아갈 수 있을지, 하나님의 구원이 언제 어떤 식으로 임할지에 대한 질문이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그들이 묻기를 용납하지 않겠다 하십니다. 그들이 묻고자 하는 바에 대답해줄 의향이 없다는 것입니다. 이유인즉슨, 그들은 하나님에게서 새로운 말씀을 받을 자격이 없다는 것입니다. 이미 주신 말씀을 우습게 여기며 살고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그들 마음 속 질문에 대한 대답 대신에 예언자로 하여금 다른 말씀을 전하게 하십니다. 그들과 그들의 조상들이 지금껏 행해온 가증한 일들을 알게 하십니다. 그 내용이 5절부터 32절까지 길게 이어지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애굽에서 구해내어 가나안 땅으로 인도하셨습니다. 그런데 그 과정에서 이스라엘은 지속적으로 하나님 대신 다른 우상을 섬기며 하나님의 진노를 불러일으켰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자기 이름을 위하여 계속해서 참고 그들과의 관계를 이어가셨습니다.

광야에서 하나님은 이스라엘과 언약을 맺으시고, “사람이 준행하면 그로 말미암아 삶을 얻을” 그분의 계명을 주셨습니다. 하지만 그들은 이 명령과 약속의 말씀들을 업신여기며 준행하지 않을 때가 많았고, 그것은 또다시 하나님의 진노를 불러일으켰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또다시 자기 이름을 위하여 그들을 진멸하지 않으시고, 단지 그 믿음 없는 세대에게만 약속의 땅에 들어가지 못하도록 벌을 내리셨습니다.

광야 사십년을 지나 새로운 세대에게 다시 하나님은 “사람이 준행하면 그로 말미암아 삶을 얻을” 그분의 말씀을 들려주시고, 그들이 가나안 땅에 들어가 하나님의 백성답게 살기를 기대하셨습니다. 하지만 세월이 흐르며 또다시 그들은 우상을 숭배하고 불의를 일삼으며 하나님의 진노를 불러일으켰고, 예언자들을 통해 하나님께로 돌이킬 것을 수차례 말씀하셨으나, 그들은 듣지 않았습니다.

그러다 결국 북이스라엘이 앗수르에게 멸망했고, 그 모습을 보고도 유다는 계속 어리석은 길로 행하다 바벨론의 침공을 받고 왕과 귀족들이 포로로 끌려가는 상황을 맞았습니다. 그런데 에스겔 말씀을 읽어보면, 그런 상황에서도 유다 백성들은 하나님께로 돌이키지 않고, 여전히 은밀한 우상숭배를 일삼고 있었습니다. 오히려 하나님이 그들을 돌아보지 않으시고 그 땅을 버리셨다고 말하면서, 다른 민족들이 섬기는 우상들에게 예배하고 있었습니다(겔8).

하나님은 그 이스라엘 장로들에게 이것을 말씀하시며 되물으십니다. 너희가 이처럼 조상들의 풍속을 따라 너희 자신을 우상들로 더럽히고 있는 마당에, 너희가 내게 묻는 것을 내가 용납해야 하겠느냐? 용납하지 아니하리라!

그들을 향한 ‘하나님의 뜻’이 뭐냐구요? 그들의 ‘거룩함’입니다! 그들이 하나님의 백성으로서의 거룩함을 회복하는 것입니다.

‘거룩’이란 말을 들으면 고리타분한 무언가를 연상하는 경우가 많은데, 사실 ‘거룩’은 다른 모든 피조물들과 구별되는 하나님의 하나님다운 속성, 보통의 사람들과 다르되 아주 훌륭하게 다른 그분의 속성을 말합니다.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을 우리가 ‘Holy Bible’, 즉 ‘거룩한 책’이라 부르는 것은, 이 성경 말씀이 하나님의 하나님다운 속성을 나타내고 있기 때문입니다. 마찬가지로, 우리가 하나님의 ‘거룩한’ 백성이 된다는 것은 하나님의 거룩하신 속성을 반영하는 사람들이 된다는 뜻입니다.

나는 너희가 나의 거룩함을 나타내는 거룩한 백성이 되길 원한다! 그것을 위해 너희를 구원하여 택하였고, 그것을 위해 너희에게 ‘사람이 준행하면 그로 말미암아 삶을 얻을’ 계명을 주었다. 그런데 너희 조상들이 그랬던 것처럼 오늘의 너희도 그 계명을 업신여기고 헛된 것에 너희 마음을 주며 너희 자신을 더럽히고 있다!

너희를 향한 나의 뜻은 다른 것이 아니다. 다시 나의 계명을 따라 행하며 너희 거룩함을 회복하는 것이다. 지금 너희가 처한 상황은 지금껏 너희가 행한 죄악의 결과다. 그럼에도 계속 너희가 그 길을 가겠다면 맘대로 해라. 하지만 나도 너희를 가만 놔두지 않을 것이다. 전에 너희 조상들을 심판한 것 같이 너희를 심판할 것이고, 너희가 너희 행위를 스스로 미워하기에 이르기까지 너희를 불로 연단할 것이며, 그 후에 다시 흩어진 너희 자손들을 모아 고국으로 인도해내어 그들을 통해 나의 거룩함을 나타낼 것이다!

우리는 오해하지 말아야 합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그분의 뜻을 알려주길 원치 않으시는 분이 아닙니다. 오늘 본문을 보면, 그들의 물음을 용납하지 않겠다 하신 하나님이 그걸로 끝내지 않으시고 한참을 더 말씀하십니다. 어쩌면 이 말씀은 그들이 듣고 싶었던 말이 아니었을지 모릅니다. 하지만 이것이 그들이 들어야 할 말이었습니다. 오늘의 그들을 향한 하나님의 뜻, 다시 거룩한 백성이 되기를 바라는 하나님의 마음이 이 말씀 속에 들어있습니다.

이것은 구약시대에만 적용되는 말씀이 아닙니다. 신약성경 데살로니가전서에서 사도 바울은 말합니다. “하나님의 뜻은 이것이니 너희의 거룩함이라”(4:3)

예수님을 구주와 주님으로 믿고 하나님의 백성이 된 오늘의 우리에게도 하나님의 뜻은 동일합니다. 그리스도의 길을 따르는 매일의 삶 속에서 우리가 하나님의 거룩하심을 나타내는 사람들이 되는 것입니다.

최근에 가족들과 함께 출애굽기를 읽으면서 하나님이 주신 계명 속에 담긴 그분의 마음과 뜻을 새롭게 깨닫고 있습니다. 일례로 안식일 계명을 생각해 보면,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에게 “안식일을 기억하여 거룩하게 지키라” 말씀하시면서, 그들이 그렇게 한다면 그들의 “소와 나귀가 쉴 것이며”, 또 “여종의 자식과 나그네가 숨을 돌리리라” 말씀하십니다(출23:12)

오늘의 소위 문명화된 사회 속에서도 살인적인 노동착취가 여전히 행해지고 있는데, 이 율법이 주어지던 당시에는 오죽했을까요? 종들, 이주민노동자들, 가축들… 아마도 그들은 쉼없는 노동을 강요받았을 것입니다.

그 시절에 이스라엘에게 주어진 이 안식일 계명은 생명 있는 모든 것들을 향한 하나님의 마음, 이 세상 다른 통치권력들과 구별되는 하나님의 거룩하심을 반영하는 말씀이었을 것입니다. 예수님 말씀처럼 이 안식일 계명은 참으로 ‘사람’을 위해 주어진 것임에 틀림없습니다.  

또한 하나님은 여섯 해 동안은 자기 땅에 파종하여 그 소산을 거두되 일곱째 해에는 갈지 말고 묵혀두라 하시며, 그 일곱째 해에 자기 밭이나 과수원에서 저절로 자라는 식물들에 손대지 말 것을 명령하십니다. 그렇게 함으로써 “네 백성의 가난한 자들이 먹게 하라 그 남은 것은 들짐승이 먹으리라” 말씀하십니다(출23:10-11)

이런 말씀들을 읽다보면 내가 하나님의 백성인 것이 얼마나 자랑스러워지는지 모릅니다. 우리 아버지 하나님에게서 우리가 경외심과 함께 인식하는 이 하나님다운 속성, 그것이 바로 하나님의 ‘거룩하심’입니다.

하나님의 백성으로 부름받은 사람들이 이 거룩하신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행할 때 그들에게서 나타나는 하나님 닮은 속성, 뭔가 이 세상에 속하지 않은 어떤 모습이 있습니다. 그것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바라시는 ‘하나님 백성의 거룩함’입니다. 우리가 이처럼 하나님의 거룩하심을 나타내는 사람들이 되는 것, 그것이 우리 모두를 향한 하나님의 뜻입니다.

이것을 놓치면, 하나님의 마음을 오해하거나, 하나님의 길에서 엇나가기 쉽습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편안함에 이르는 길로 인도하시지 않습니다. 거룩함에 이르는 길로 인도하십니다. 선지자 하박국의 고백처럼, 하나님은 우리의 힘이 되셔서, 우리의 발을 사슴과 같게 하사, 우리를 우리의 높은 곳으로 다니게 하실 것입니다.

물론 우리는 살면서 수많은 선택의 순간을 맞이하게 되고, 그때마다 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의 뜻을 묻지 않을 수 없습니다. 하나님, 이 길을 택해야 할까요, 저 길을 택해야 할까요? 하나님, 여기 있는 게 맞을까요, 저기 있는 게 맞을까요? 하나님, 이겁니까, 저겁니까?

돌이켜보면 저 역시 그런 질문들을 무수히 던졌던 것 같습니다. 그리고 어떤 의미에서 그런 질문들은 저를 하나님께로 이끌어주는 줄이 되기도 했던 것 같습니다. 그런데 지금 와서 생각해 볼 때, ‘지금 내가 이것을 택하느냐 저것을 택하느냐’보다 더 중요한 질문은 ‘지금 내가 하나님과의 관계 속에서 어디에 서 있느냐’인 것 같습니다.

오늘 본문에서처럼, 그 마음과 삶이 하나님에게서 떠나 있는 사람이 혹시나 해서 묻는 형식적인 질문에 하나님은 답해주실 의향이 없습니다. 그들에게 지금 우선적으로 필요한 것은 하나님께로 돌이키는 것입니다.

먼저 하나님 말씀에 귀기울이고, 그 말씀에 비추어 내 삶에 잘못된 것들을 바로잡고, 하나님의 뜻이 무엇이든 그것에 순종하겠다는 확고한 결단히 선 후에야, 하나님의 뜻을 바르게 분별하며 나아갈 수 있을 것입니다.

나의 삶이 하나님의 뜻대로 나아갈 수 있는 비결은 의외로 간단합니다. 지금 나의 삶을 지금 내가 아는 하나님의 뜻 위에 먼저 확고히 세우는 것입니다. 이미 주어진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지금 실천할 수 있는 일을 바로 실천하는 것입니다.

우리의 참된 미래는 오늘의 참된 회개에서 올 것입니다. 마치 이것은 사격의 0점조정과 같습니다. 먼저 우리의 마음과 삶이 성경에 계시된 하나님의 마음과 뜻에 일치되어 있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러면 그 다음 선택하거나 결정하는 일들은 자연스레 표적을 향해 바로 나아갈 확률이 높습니다.

오늘 내 마음이 하나님 말씀을 따라 바르고 분명한 원칙 위에 확고히 서 있다면, 우리는 내 앞에 주어지는 여러 가능성들 중에서 취할 수 있는 것과 취해서는 안 되는 것, 갈 수 있는 길과 가서는 안 되는 길을 보다 명확히 분별하며 나아갈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제가 여러 성도님들과, 특별히 젊은이들에게 꼭 드리고 싶은 말씀은 절대 성경 읽는 일을 대충 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성경, 절대 대충 읽어서 제대로 이해할 수 있는 책이 아닙니다. 그렇다고 안 읽어도 무방한 책도 아닙니다. 여러분이 성경을 어떻게 읽느냐가 여러분 인생을 좌우할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여러분의 인생을 거룩하게 형성하지 않는다면, 이 세상이 여러분의 인생을 이 세상 닮은 모습으로 형성할 것입니다.

제가 볼 때 오늘날 기독교인들에게서 나타나는 문제들의 원인은 그저 실천의 부족만이 아닙니다. 바른 실천의 근거와 동력이 되는 바른 이해의 부족, 성경을 잘못 읽고 하나님의 마음과 뜻을 잘못 이해하는 일들이 보다 근본적인 문제 같습니다. 다른 길이 없습니다.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하나님을 사랑하라 하신 것처럼,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성경 읽고 실천하며 살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뜻을 묻는 사람들에게 하나님은 그들이 듣고 싶었던 말 대신에 그들에게 정말 필요한 말을 들려주십니다. 당장 고국으로 돌아가는 일만을 소망하고 있는 사람들에게 하나님은 그보다 먼저 하나님께 돌아오는 일이 필요함을 말씀하십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바라시는 삶은 세상의 것을 좇으려는 마음과 하나님의 뜻을 따르려는 마음 사이에 어정쩡하게 서서 이리저리 요동하는 삶이 아닙니다. 먼저 하나님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고, 다른 모든 것에 대한 하나님의 돌보심과 채우심을 경험하는 삶입니다.

“굳게 믿지 아니하면 굳게 서지 못하리라”(사7:9)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것은 두려워하는 마음이 아니요 오직 능력과 사랑과 절제하는 마음이라”(딤후1:7) 했습니다.

이미 주신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뜻을 바로 알고, 믿음으로 담대히 하나님의 뜻을 이루며 살아가는 우리 모두가 될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기도하겠습니다.

사랑의 하나님 아버지, 나의 욕망과 계획으로 가득차 있는 우리 마음에 당신의 말씀의 빛을 비춰주셔서 우리가 하나님의 마음과 뜻을 따라 나아가게 하여 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