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인 예배 (2022년 7월 3일)
- 로마서 8장 28-30절
- 설교자: 류광현 목사
- 하나님의 선 - 롬8,28-30.docx
<로마서 8:28-30>
28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의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
29 하나님이 미리 아신 자들을 또한 그 아들의 형상을 본받게 하기 위하여 미리 정하셨으니 이는 그로 많은 형제 중에서 맏아들이 되게 하려 하심이니라
30 또 미리 정하신 그들을 또한 부르시고 부르신 그들을 또한 의롭다 하시고 의롭다 하신 그들을 또한 영화롭게 하셨느니라
하나님의 은혜와 평강이 성도 여러분과 함께하시길 기원합니다.
오늘 본문에는 ‘그리스도인’을 묘사하는 다양한 표현들이 나옵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그의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 “하나님이 미리 아신 자”, “미리 정하신 그들… 부르신 그들… 의롭다 하신 그들”과 같은 표현들입니다.
그리스도인은 누구입니까?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입니다. 하나님의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입니다. 하나님이 미리 아신 자입니다. 또한 하나님이 미리 정하시고 부르시고 의롭다 하신 사람들입니다. 만약 우리가 우리 자신을 그리스도인이라 생각하고 있다면, 이 말들이 의미하는 바를 제대로 이해할 필요가 있을 것입니다.
28절 말씀은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좋아하는 말씀 중 하나입니다.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의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 이 말씀은 무슨 뜻입니까? 그리스도인은 무슨 일을 하든 잘 될 거라는 뜻입니까? 아니면, 그리스도인에게 일어나는 모든 일은 결국 좋은 결과로 이어지리라는 뜻입니까?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룬다” 여기서 ‘선’이란 ‘좋은 것’(the good)을 말합니다. 그런데 무엇이 ‘좋은 것’이죠? 어떤 사람의 눈에는 좋은 것이 다른 사람의 눈에는 좋게 보이지 않는 경우가 있습니다. 지금은 좋은 것으로 보이지 않는 어떤 것이 나중에는 좋은 것이었음을 깨닫게 되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런데 본문에 ‘선’으로 번역된 좋은 것은 이처럼 개인의 취향과 관련된 주관적이고 상대적인 좋은 것을 말하는 것 같지 않습니다.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 여기서 ‘선’은 하나님의 관점에서 좋은 것, 즉 객관적이고 절대적인 의미에서 좋은 것을 의미합니다. 누구나 결국 좋은 것이라 인정하게 될 진짜 좋은 것, 즉 가장 좋은 결과를 의미합니다.
지금 우리에게 주어지는 것들, 벌어지는 상황들이 모두 우리 눈에 좋게 보이지는 않을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들은 그 모든 것이 하나님의 선하신 뜻 안에서 주어진 것임을 신뢰할 수 있습니다. 그 모든 것을 통해 하나님이 일하셔서 결국 우리를 최선의 결과로 이끄실 것임을 기대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가장 좋은 것을 이루시려는 뜻을 가지고 우리를 그분의 자녀로 부르셨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그 가장 좋은 것이란 무엇입니까? 하나님이 뜻하신 좋은 것, 우리에게 주어지는 모든 것을 통해 일하셔서 하나님이 결국 이루실 ‘선’이란 구체적으로 무엇을 말합니까? 29절을 보면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이 미리 아신 자들을 또한 그 아들의 형상을 본받게 하기 위하여 미리 정하셨으니 이는 그로 많은 형제 중에서 맏아들이 되게 하려 하심이니라”
여기 ‘미리 정하셨다’는 표현이 나옵니다. 무엇을 미리 정하셨다는 말입니까? 누가 구원 받을 자이고 누가 그렇지 않은지에 대해서입니까? 아닙니다. 바울은 여기서 그 얘기를 하고 있지 않습니다. 여기서 바울이 ‘미리 정하셨다’ 말하는 것은 하나님이 미리 아신 자들, 그리고 때가 되어 그리스도 안에서 부르신 사람들을 이후 그분이 어떤 목표점을 향해 이끄실 것인지를 미리 정하셨다는 뜻입니다. 즉 그들을 부르신 목적, 이루고자 하시는 최선이 그분 마음 속에 미리 정해져 있었다는 뜻입니다. 그것이 무엇입니까? 우리가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형상을 본받는 것입니다!
정리하자면 이렇습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그분을 알기 이전부터 우리를 미리 아셨습니다. 그리고 우리를 부르시기 전부터 미리 우리를 향한 뜻을 정해놓고 계셨습니다. 그것은 우리가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형상을 본받는 것입니다. 이 뜻을 가지고 우리를 그리스도 안에서 당신의 자녀로 부르셨고, 하나님과의 바른 관계 속에 세우셨으며, 그리스도의 형상을 따라 우리를 새롭게 빚어가심으로 우리를 영화롭게 하십니다.
이 사실을 아는 것은 너무나 중요합니다. 온 세상을 다스리시며 인간의 생사화복을 주관하시는 하나님이 우리 각 사람을 어떤 목적을 가지고 어떤 방향으로 이끄시는지를 알 때 우리는 우리에게 주어지는 모든 것, 우리 인생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들을 보다 온전한 시각과 태도로 바라보며 반응할 수 있게 됩니다.
생각해보십시오. 하나님이 언제나 내가 바라는 대로 움직이시나요? 지난 주 목요일에 몇 가지 처리할 일이 있어 시내에 나갔었습니다. 오전 10시 첫 번째 스케줄부터 삐걱거렸습니다. 너무나 불친절한 직원을 만났고, 나도 모르게 목소리가 커지며 화도 냈습니다. 예정보다 늦게 두 번째 스케줄 장소에 도착했습니다. 그날 꼭 처리해야 할 일이었는데, 자체 사정 때문에 처리해줄 수 없다, 월요일에 다시 오라는 말을 들었습니다. 월요일에는 출국해야 한다고, 어떻게 좀 안 되겠냐고 다시 한번 부탁해봤지만 소용없었습니다. 뭐하나 되는 일이 없는 날이구나, 기분이 좋지 않았습니다. 혼자 점심을 먹는데, 다행히 햄버거가 맛있었습니다. 기분이 좀 나아졌습니다. 세 번째, 네 번째 스케줄은 다행히 잘 처리되었습니다.
요는 이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바라는 그림대로, 우리가 생각하는 최선을 따라 우리의 삶을 인도하시지 않습니다. 그분이 생각하시는 최선을 따라 우리의 삶을 인도하십니다. 하나님이 우리의 삶에 우리가 원치 않는 상황들을 허락하시는 것은 우리를 골탕먹이기 위해서가 아닐 것입니다. 그분이 생각하시는 가장 좋은 결과를 위해서일 것입니다. 우리 안에 하나님의 형상이 예수님의 형상을 본받아 온전히 회복되기를 바라시기 때문일 것입니다.
목요일에 그 모든 스케줄을 마치고 집에 돌아오는데, 오전에 그 직원에게 화내며 반응했던 것이 계속 마음에 걸렸습니다. 내가 꼭 그래야만 했을까? 저를 돌아보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살면서 우리는 늘 나에게 호의적인 사람, 늘 내 마음에 드는 사람만 만나지 않습니다. 나를 힘들게 하는 사람, 나와 잘 맞지 않는 것 같은 사람도 만납니다. 하나님은 왜 그런 만남을 내게 허락하실까 생각해보신 적 있습니까?
선교사들이 선교지에 가면 제일 힘든 것이 동료 선교사들과의 관계라고 합니다. 참 이상합니다. 한 분 한 분 따로 만나보면 대부분 참 좋은 분들입니다. 그런데 따로 만나 얘길 들어보면 그보다 나쁜 사람들이 없습니다. 선교지에서의 그 소중한 시간을 왜 저런 비본질적인 문제로 낭비하며 살아갈까, 잘 이해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이해가 됩니다. 어쩌면 그것은 비본질적인 문제가 아닐지 모릅니다. 그 일들 속에서 자신이 어떤 존재인지 깨닫는 과정, 선교가 참으로 하나님의 선교임을 깨닫는 과정, 그리고 끊임없이 예수 그리스도의 형상을 본받는 과정, 어쩌면 그것이 신실한 복음의 일꾼으로 세워지는 데 꼭 필요한 과정인지 모릅니다.
인간에 대해 우리가 알아야 할 세 가지 중요한 사실이 있습니다. 첫째, 모든 인간은 하나님의 형상대로 창조된 존재들입니다. 둘째, 죄로 인한 타락으로 인간 안에 이 하나님의 형상은 온전치 못한 모습이 되었습니다. 셋째, 하나님은 그 아들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 안에 하나님의 형상을 온전히 회복해가고자 하십니다.
“이 사람을 보라!”(Ecce Homo) – 빌라도가 예수님을 가리키며 한 말입니다. 예수님을 보십시오. 거기에 회복되어야 할 우리의 모습이 있습니다. 바울은 하나님이 우리에게 그리스도를 보내신 것은 “그로 많은 형제 중에서 맏아들이 되게 하려 하심이라”고 말합니다. 저희 집 둘째 아이는 저희 집 첫째 아이를 보고 배우며 자랍니다. 이처럼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다운 모습으로 자라갈 수 있도록 하나님이 우리에게 보고 자랄 수 있는 견본으로 그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주신 것입니다.
러시아의 문호 도스토예프스키는 감옥에서 나온 뒤 폰비지나 부인에게 보낸 편지에서 자신의 삶을 “그리스도와 함께 가는 길”이라 요약하며 이렇게 말합니다: “저는 이 세상에 구세주(그리스도)보다 더 아름답고, 더 심오하고, 더 인정 많고, 더 이성적이고, 더 용감하고, 더 완벽한 존재는 없다는 것을 믿습니다. 저는 질투에 가까운 사랑을 품고 중얼거립니다. 그분과 같은 사람은 없을 뿐만 아니라 있을 수조차 없다고 말입니다. 저는 심지어 이렇게 말하고 싶습니다. 만일 누군가가 그리스도께서 진리 밖에 계심을 내게 증명한다면, 그리고 진리가 진정코 그리스도를 배제한다면, 저는 진리 대신 그리스도와 함께하는 길을 택하겠습니다.”
도스토예프스키의 말처럼 이 세상에 그리스도만큼 완벽한 인간은 다시 없을지 모르지만, 하나님은 우리 모두가 이 그리스도의 형상을 본받는 자들이 되길 원하신다는 것과, 그 방향으로 우리의 삶을 인도하신다는 사실을 기억하고 사는 일은 중요할 것입니다.
우리 안에 하나님의 형상이 회복되는 일은 온 세상을 원래의 창조 목적에 맞게 회복하고자 하시는 하나님께만 중요한 일이 아니라, 우리 각자가, 그리고 우리 서로가 하나님의 창조 목적에 맞게 복된 인생을 살아가기 위해서도 중요한 일입니다.
다들 열심히 삽니다. 다들 잘 해보려고 합니다. 좋은 아빠로, 좋은 엄마로, 좋은 남편으로, 좋은 아내로, 좋은 자녀로, 좋은 친구로, 좋은 이웃으로… 그런데 그게 쉽지 않습니다. 함께 행복하기 쉽지 않습니다. 우리가 조금만 더 지혜로울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요? 우리가 조금만 더 넓은 마음으로 상대방을 품어줄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요?
어떻게 그런 일이 가능할 수 있겠습니까? 그렇게 될 수 있도록 하나님께서 우리 주위에서 일하고 계신 것입니다. 우리가 그리스도의 형상을 닮아갈 수 있도록, 우리 안에 하나님의 형상이 회복될 수 있도록, 그리하여 우리가 예수님의 길을 따라 살아갈 수 있도록 그분의 방법으로 일하고 계신 것입니다.
초대교회 성도들은 박해의 상황 속에 있었습니다. 하나님이 사랑하시는 자녀들이 왜 그런 힘겨운 상황 속에 있어야 합니까? 바울의 대답은 그들이 하나님의 아들의 형상을 본받게 하기 위하여! 환난은 인내를, 인내는 연단을, 연단은 소망을 이룬다 합니다(롬5:3-4). 어떤 어려운 상황 중에도 낙심하지 않는 것은 “우리의 겉사람은 낡아지나 우리의 속사람은 날로 새로워지기” 때문이라 합니다(고후4:16).
바울은 삼위일체 하나님께서 우리를 돕고 계심을 말합니다. “성령도 우리의 연약함을 도우시나니 우리는 마땅히 기도할 바를 알지 못하나 오직 성령이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위하여 친히 간구하시느니라”(26). “죽으실 뿐 아니라 다시 살아나신 이는 그리스도 예수시니 그는 하나님 우편에 계신 자요 우리를 위하여 간구하시는 자시니라”(34)
또한 그리스도의 사랑이 성도의 능력임을 말합니다. “누가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으리요 환난이나 곤고나 박해나 기근이나 적신이나 위험이나 칼이랴… 그러나 이 모든 일에 우리를 사랑하시는 이로 말미암아 우리가 넉넉히 이기느니라 내가 확신하노니 사망이나 생명이나 천사들이나 권세자들이나 현재 일이나 장래 일이나 능력이나 높음이나 깊음이나 다른 어떤 피조물이라도 우리를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으리라”(35-39)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은 우리를 편한 길, 지금 당장 좋아보이는 길로 이끄시지 않고 우리가 그리스도의 형상을 본받아 그리스도처럼 살 수 있게 하는 길로 이끄신다는 것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성도의 특권은 내가 원하는 것을 남보다 쉽고 편하게 얻을 수 있는 특권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사랑 안에서 모든 어려움을 넉넉히 이기며 결국 하나님의 최선에 이를 수 있는 특권임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마지막으로 바울이 빌립보교회와 데살로니가교회 성도들을 축복하는 말로 여러분을 축복하며 설교를 마칠까 합니다: “너희 안에서 착한 일을 시작하신 이가 그리스도 예수의 날까지 이루실 줄을 우리는 확신하노라”(빌1:6) “평강의 하나님이 친히 너희를 온전히 거룩하게 하시고 또 너희의 온 영과 혼과 몸이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강림하실 때에 흠 없게 보전되기를 원하노라 너희를 부르시는 이는 미쁘시니 그가 또한 이루시리라”(살전5:23) 아멘.
기도하겠습니다.
사랑의 하나님 아버지,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게 하실 하나님을 신뢰합니다. 우리에게 주어지는 모든 것 속에서 우리가 그리스도의 형상을 본받게 하여 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