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인 예배 (2022년 9월 25일)
- 디모데후서 1장 7-8절
- 설교자: 류광현 목사
- 하나님이 주시는 마음으로 - 딤후1,7-8.docx
<디모데후서 1:7-8>
7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것은 두려워하는 마음이 아니요 오직 능력과 사랑과 절제하는 마음이니
8 그러므로 너는 내가 우리 주를 증언함과 또는 주를 위하여 갇힌 자 된 나를 부끄러워하지 말고 오직 하나님의 능력을 따라 복음과 함께 고난을 받으라
하나님의 은혜와 평강이 성도 여러분과 함께하시길 기원합니다.
코비드 판데믹에 이어 우크라이나 전쟁… 삶을 어렵게 하는 요인들이 계속되고 있습니다. 러시아에 징집 명령이 내려졌다는 소식을 듣습니다. 종전을 기대하고 있었는데, 확전으로 가는 것 아닌가, 우려가 커집니다. 높아진 에너지 비용 때문에 올겨울을 걱정하는 분들이 많습니다. 지금도 이렇게 추운데, 한겨울에 가스 없이 살 수 있을까, 벌써부터 마음은 겨울입니다.
가정과 일터에 어려움이 찾아오고, 미래에 대한 불안과 염려가 엄습할 때, 우리 마음은 얼어붓고 좁아집니다. 어려운 이웃들에 대해 관대했던 마음도 당장 내가 죽겠다 싶으면 급격히 좁아지며 인색하게 변해갑니다.
저와 여러분은 어떻습니까? 그리스도인으로서, 하나님의 사람으로서, 오늘 우리는 어떤 마음으로, 무엇을 힘쓰며 살아야 할까요?
오늘 본문 디모데후서는 에베소 교회의 젊은 지도자 디모데를 교훈하고 격려하기 위해 사도 바울이 써보낸 두 번째 편지입니다. 바울에 의해 쓰여진 마지막 편지로 알려져 있습니다.
바울이 이 두 번째 편지를 쓸 당시 로마 제국 전역의 기독교 교회는 심각한 박해와 고난에 직면해 있었습니다. 황제 네로는 주후 64년 로마 대형 화재의 책임을 딴 데로 돌리고자 그리스도인들에 대한 대대적인 박해를 시작했고, 이 박해는 제국 전역으로 확산되어, 사회적 추방과 공개적 고문, 살해가 자행되었습니다.
이 당시 바울도 체포되어 투옥되었습니다. 가택연금 상태에서 계속 가르칠 수 있었던 1차 투옥 때와는 달리, 이 2차 투옥 때 바울은 유죄판결 받은 죄인 신분으로 차가운 지하감옥에 갇혀 있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읽고 쓰는 일은 여전히 허용되었지만 외로웠고 추웠습니다. 바울이 복음을 전하다 계속 고난을 겪는 것을 보며 그를 버리고 떠난 동역자들도 있었던 것 같습니다. 이에 그는 편지에서 디모데에게 그를 찾아와주길 요청합니다. “너는 어서 속히 내게로 오라… 네가 올 때에 내가 드로아 가보의 집에 둔 겉옷을 가지고 오라… 너는 겨울 전에 어서 오라”
하지만 이 편지는 절망적이지 않습니다. 바울은 자신이 평생에 걸쳐 헌신해 왔던 복음전도의 사명을 이 차세대 지도자 디모데가 계속 수행해 갈 것을 도전합니다. “너는 진리의 말씀을 옳게 분별하며 부끄러울 것이 없는 일꾼으로 인정된 자로 자신을 하나님 앞에 드리기를 힘쓰라”(2:15) 디모데에게 이 편지를 쓰고 몇 개월이 지나 바울은 로마 밖 오스티안 거리에서 참수되었다고 전해집니다.
디모데 역시 이 편지를 받을 당시 많은 어려움 속에 있었습니다. 사도 바울의 대리인으로 에베소에 파송되었던 그는 거짓선생들로 인해 혼란을 겪고 있던 그곳 교회를 말씀 안에서 바로 세우며 정비하는 책임을 맡았습니다. 하지만 그 일은 많은 긴장과 고통과 인내를 요하는 일이었습니다. 그 교회 안에는 그의 연소함을 업신여기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그가 전하는 메시지를 배척하며 시비거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그 때문인지 디모데는 지병에 시달리며 건강이 좋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바울은 이와 같은 고난의 상황을 하나님의 부재 상황으로 보지 않습니다. “이 고난을 받되 부끄러워하지 아니함은 내가 믿는 자를 내가 알고 또한 내가 의탁한 것을 그 날까지 그가 능히 지키실 줄을 확신함이라”(1:12). “복음으로 말미암아 내가 죄인과 같이 매이는 데까지 고난을 받았으나 하나님의 말씀은 매이지 아니하니라 그러므로 내가 택함 받은 자들을 위하여 모든 것을 참음은 그들도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구원을 영원한 영광과 함께 받게 하려 함이라”(2:9-10)
바울은 이 믿음과 소명이 디모데 안에도 있음을 확신합니다. “이는 네 속에 거짓이 없는 믿음이 있음을 생각함이라”(1:5) 그리고 도전합니다. “너는 내가 우리 주를 증언함과 또 주를 위하여 갇힌 자 된 나를 부끄러워하지 말고 오직 하나님의 능력을 따라 복음과 함께 고난을 받으라”(1:8) “우리가 주와 함께 죽었으면 또한 함께 살 것이요 참으면 또한 함께 왕 노릇 할 것이요 우리가 주를 부인하면 주도 우리를 부인하실 것이라 우리는 미쁨이 없을지라도 주는 항상 미쁘시니 자기를 부인하실 수 없으시리라”(2:11-13)
길은 정해졌습니다. 이것이 우리가 가야할 길입니다. 문제는 어떻게 우리가 그 길을 갈 수 있는가입니다. 하나님의 은사로! 하나님이 주시는 마음으로! 이것이 바울이 제시하는 답입니다. “그러므로 내가 나의 안수함으로 네 속에 있는 하나님의 은사를 다시 불일듯 하게 하기 위하여 너로 생각하게 하노니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것은 두려워하는 마음이 아니요 오직 능력과 사랑과 절제하는 마음이니”(1:6-7)
우리를 그분의 일로 부르신 하나님은 그 일을 감당할 수 있는 자질과 능력도 선물로 주십니다. 우리는 그 받은 선물을 구석에 처박아 두어선 안됩니다. 그 불씨를 꺼뜨려서는 안됩니다. 그 받은 은사를 다시 불일듯 일으켜 주의 뜻을 따라 사용해야 합니다.
거짓이 없는 믿음으로 주의 부르심을 따라 살고자 하는 그의 종들에게 하나님이 주시는 것은 두려워하는 마음이 아니라 능력과 사랑과 절제하는 마음이라 합니다. 여기 ‘두려워하는’에 해당하는 헬라어(데일리아스)는 ‘의기소침해 있거나 비겁한 상태’를 의미합니다. 우리가 어떤 상황에서 위축되거나 비겁하게 행동할 때 그 근저에는 두려움이 있습니다.
바울은 디모데가 위축되거나 두려움에 사로잡힐 수 있는 상황임을 알았습니다. 현실 권력에 의한 대대적인 박해가 행해지고 있었고, 그가 의지하며 따르던 영적 스승 바울도 감옥에 갇혀 있었습니다. 교회 내 거짓선생들에 맞서 진리를 수호하는 일은 아직도 진행형이었고, 이 상황에서 복음의 진리를 따라 행하는 것은 고난을 예고하는 일 같았을 것입니다.
하지만 바울은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마음은 두려움이 아니라 ‘능력’(두나미스)이라 합니다. 여기 ‘마음’(프뉴마)으로 번역된 단어는 ‘영’(spirit)으로도 번역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영은 두려움의 영이 아니라 능력의 영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거짓이 없는 믿음으로 주의 부르심을 따라 살고자 하는 그의 종들에게 성령을 통해 능력을 주십니다. 어떤 능력입니까? 고난과 역경이 예상되는 상황에서도 바른 가르침을 따르고, 바른 복음을 전하며, 옳은 일을 계속 행할 수 있는 담대함과 신실함의 능력입니다.
예수님의 겟세마네 기도에 대한 성부 하나님의 응답은 고난의 잔을 거두어가시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 고난의 길을 끝까지 걸어갈 수 있는 힘을 공급해주시는 것이었습니다. 죽음의 위협 앞에서도 개혁자 후스와 루터가 끝까지 진리의 편에 설 수 있었던 것도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두려움을 이길 신비한 힘을 공급해 주셨기 때문일 것입니다.
“하나님의 능력을 따라 복음과 함께 고난을 받으라!” 내가 무엇을 할 수 있는가를 생각하기 이전에 내가 무엇을 해야 하는가를 생각하고, 그것을 위해 하나님의 도우심을 구하는 것, 그것이 신앙인의 길일 것입니다.
또한 바울은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마음은 두려움이 아니라 ‘사랑’(아가페)이라 합니다. 요한일서 4장 18절에 “사랑 안에 두려움이 없고 온전한 사랑이 두려움을 내쫓는다” 말씀합니다. 기독교적 의미의 사랑은 사람이 의무적으로 행해야 할 윤리적 덕목이라기보다 일종의 관계 개념으로 이해되는 것이 보다 적절합니다. “나의 사랑 안에 거하라!” 내가 아버지의 사랑 안에 거하는 것 같이 너희도 나의 사랑 안에 거하라!” 이것이 예수님이 ‘사랑’에 대해 말씀하시는 방식입니다. 하나님 사랑 안에 거할 때 두려움은 물러가고 우리의 삶은 새로운 차원으로 열립니다.
여기서 사도 바울과 요한이 말하는 ‘사랑’은 이기적 ‘자기 사랑’이 아닙니다. 말세에 나타날 타락의 징후로 바울은 ‘자기 사랑’을 말합니다. “사람들이 자기를 사랑하며 돈을 사랑하며… 쾌락을 사랑하기를 하나님 사랑하는 것보다 더하며”(딤후3:2,4)
고린도전서 13장에서 바울은 아가페 사랑의 특징을 다음과 같이 설명합니다: “사랑은 오래 참고 사랑은 온유하며 시기하지 아니하며 사랑은 자랑하지 아니하며 교만하지 아니하며 무례히 행하지 아니하며 자기의 유익을 구하지 아니하며 성내지 아니하며 악한 것을 생각하지 아니하며 불의를 기뻐하지 아니하며 진리와 함께 기뻐하고 모든 것을 참으며 모든 것을 믿으며 모든 것을 바라며 모든 것을 견디느니라”
이런 사랑은 우리가 내 힘으로 실천해야 한다 생각하면 얼마나 막막하고 괴로운 일이겠습니까? 하지만 거짓이 없는 믿음으로 주님의 부르심을 따라 살고자 하는 사람에게 하나님께서 이 사랑의 마음을 주신다 합니다. 이 사랑은 내 상황이 좋을 때만 타인에게 선행을 베풀고 내 상황이 안 좋아지면 그 일을 중단하는 형태로 나타나지 않을 것입니다. 오히려 모두가 이기적으로 행하고 대다수 사람들의 마음이 차갑게 얼어붙을 때, 이 사랑이 그 마음에 역사하는 사람들의 삶은 그 자체로 세상에 복음이 될 것입니다.
또한 바울은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마음은 두려움이 아니라 ‘절제’ 혹은 ‘근신’이라 합니다. 이것은 ‘자기 통제’ 혹은 ‘건전한 생각’으로도 번역될 수 있는 단어입니다. 절제 역시 성령의 열매 중 하나입니다. 이에 바울은 14절에서 “우리 안에 거하시는 성령으로 말미암아 네게 부탁한 아름다운 것을 지키라” 권면합니다. 또한 “내게 들은 바 바른 말을 본받아 지키라”, “어리석고 무식한 변론을 버리라”, “청년의 정욕을 피하라”, “배우고 확신한 일에 거하라” 말합니다. 즉 바른 가르침, 건전한 생각을 따라 버릴 것은 버리고, 피할 것은 피하고, 지킬 것은 지키는 삶, 그것이 절제의 삶이라 할 것입니다.
그 어떤 일도 거저 되는 것은 없습니다. 노력이 요구됩니다. 병사로 모집된 자는 자기 생활에 얽매이지 않아야 합니다. 모집한 자에게 충성해야 합니다. 경기하는 선수는 법대로 경기해야 합니다. 그래야 승리의 관을 얻습니다. 농부에게 요구되는 것은 성실함입니다. 수고하는 농부가 곡식을 먼저 받는 것이 마땅합니다. 이처럼 거짓이 없는 믿음으로 주님의 부르심을 따라 살고자 하는 사람에게 하나님이 주시는 마음은 선한 목적을 위해 절제하는 마음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에게 주어진 이 어려운 시기에 우리는 어떻게 살아가야 할까요? 우리 마음이 차갑게 얼어붙지 않기를 바랍니다. 바울이 디모데에게 일깨워주고 있는 것처럼,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것은 두려워하는 마음이 아니요 오직 능력과 사랑과 절제하는 마음임을 기억합시다. 하나님이 주시는 그 마음으로 하나님께서 맡기신 사명 끝까지 충실히 감당해 나가는 우리 모두가 될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아멘.
기도하겠습니다.
사랑의 하나님 아버지, 우리에게 은혜를 베푸셔서 주님의 뜻을 따라 살고자 하는 마음을 주심에 감사합니다. 어렵고 힘든 상황 속에서 주님을 바라보는 사람들과 함께하시고 성령을 통해 능력과 사랑과 절제의 마음을 부어주셔서, 그 모든 상황 넉넉히 이기고 주님과 동행하는 기쁨을 누릴 수 있도록 은혜를 베풀어 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