땅끝까지이르러/(26) 프라하 꼬빌리시 교회 이야기 (8)
“안녕하세요?” “감사합니다.” 유창한 한국말로 꼬빌리시 체코 교우들이 인사를 건네면 자연스럽게 “도브리-덴” “뎨꾸이” 대답을 하는 한국 교우들이다. 예배가 끝나면 예배당 뒤쪽에 마련된 커피와 차 그리고 다과를 나누며 서로 인사를 나눈다. 간단한 대화 이상을 넘어가지 못하는 언어의 장벽을 느끼지만 서로를 생각하는 따뜻한 마음을 가로막는 장애물은 없다.
타민족이 어울려 사도들의 고백대로 “거룩한 공회” 즉 하나의 교회를 고백하고 실천하는 현장이 바로 프라하 꼬빌리시 교회이다. 하나의 교회를 이루기 위해 체코와 한국인 신자들에게 우선 필요한 것은 어려운 에큐메니칼 신학을 이해하고 적용하는 일이 아니라 매우 현실적인 문제들을 극복하는 것이었다. 함께 예배 드리기 위해 한국인들은 이상한 쉰내를 참아야 하고 체코인들은 역겨운 마늘냄새를 내색하지 않아야 한다.
그리고 신앙을 이성적으로 접근하는 체코 기독교인들과 감성적으로 접근하는 한국인 기독교인들은 예배와 설교 등 모든 교회생활의 차이를 서로 받아들일 수 있어야 한다. 체코 기독교인들은 예배예전을 마치 우리나라 유교의 제사의식처럼 예전의 순서와 절차 그리고 그 내용들을 소중하게 다루기 때문에 감성적 요소가 많은 한국 교회들의 예배에 익숙한 우리 한국 교우들에게는 지루하고 건조하게 느껴진다. 그런가 하면 반대로 한국인들의 예배는 그들에게 너무 가볍게 느껴진다. 한국인들에게 체코 목회자의 설교는 무언가 내용은 있는데 결론이 없이 느껴지고 반대로 체코 교인들에게 나의 설교는 너무 선동적으로 느껴진다.
서로 경쟁하듯 신앙생활을 하는 개교회주의에 익숙한 한국인 교우들에게는 교구중심의 체코교회가 나태해보이고, 늦은 저녁시간에도 불구하고 한국인 교우들 가정을 방문하는 나의 목회활동을 체코교우들은 신기하게 생각한다.
프라하 꼬빌리시 교회 안에서 서로 다른 민족이 하나의 교회를 고백한다는 것은 단순히 피상적으로 국적과 생김새와 피부색깔과 문화의 다름을 넘어 실제의 삶에서 사고방식, 삶의 습관 심지어 신앙의 방식의 차이를 인정하고 수용하는 것을 의미한다. 다른 신앙의 경험에 대해 배타적이지 않고 수용하는 법을 배워가는 우리들은 초교파로 모이는 한국인 교우들 내부에서 서로를 받아들이는 일정한 규범을 형성하였고 나아가 활기 없이 죽은 교회 같지만 천년이 넘는 기독교역사의 뿌리에서 흘러나와 끈적끈적 이어져 가는 체코 교우들의 신앙의 모습을 발견할 수 있기에 꼬빌리시의 한국인들은 다른 한국인들 처럼 유럽교회를 경솔하게 판단하지않는다. 오히려 연약한 체코교회이지만 그들이 지니고 있는 신앙의 저력을 미래의 세계교회를 위한 하나님의 선물로 바라보며 그들을 위해 기도하고 그들과 함께하고 호흡하려는 자세를 갖게 되었다.
그러한 의미에서 프라하 꼬빌리시의 한국 교우들은 내가 존경하는 체코 선교사들이며 나의 선교 동역자들이다. 이들이 불씨가 되어 체코개혁교도들의 가족모임처럼 변해버린 체코교회가 자신들의 폐쇄성을 극복하고 세상을 향해 스스로 열린 공간 “오픈 하우스”가 되어 세상이 새롭게 교회를 인식하고 복음에 대해 그들이 마음 문을 연다면 그것이 바로 체코선교이다.
600년의 체코개혁교회의 역사에서 네 차례 큰 박해를 겪는 동안 체코개혁교도들은 생존을 지상목표로 삼고 살아왔기에 유대인 게토처럼 체코개혁교도들의 게토가 되어버린 체코교회에 한국인 기독교인들이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한 가족이 되어 하나의 교회를 이루고 있다는 사실 자체가 이미 체코교회에 던지는 선교적 의미가 적지않다. 우리교회의 일거수 일투족이 300여개의 체코전국교회들의 시선을 끌고 있다. 그리고 이웃나라 독일에서 년간 한 두 차례 독일 목회자들이 그룹을 만들어 우리교회를 방문하여 이런 저런 모습을 살펴보고 돌아간다. 시간이 흐를수록 프라하 꼬빌리시 교회에서의 활동이 더욱 무거운 책임감으로 느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