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인 예배 (2003년 07월 27일)
- 출20:8-11
- 설교자: 이종실
030727 (여섯번째 삼위일체 주일)
본문: 출애굽기 20:8-11
제목: 우리가 주의 날을 지키면 주의 날이 우리를 지킵니다.
<본문>
8 안식일을 기억하여 거룩히 지키라
9 엿새 동안은 힘써 네 모든 일을 행할 것이나
10 제 칠일은 너의 하나님 여호와의 안식일인즉 너나 네 아들이나 네 딸이나 네 남종이나 네 여종이나 네 육축이나 네 문안에 유하는 객이라도 아무 일도 하지 말라
11 이는 엿새 동안에 나 여호와가 하늘과 땅과 바다와 그 가운데 모든 것을 만들고 제 칠일에 쉬었음이라 그러므로 나 여호와가 안식일을 복되게 하여 그 날을 거룩하게 하였느니라
<설교>
오늘은 안식일에 대한 십계명의 네번째 계명에 대해 함께 생각해보겠습니다.
우리는 이 말씀을 이미 6월 마지막 주 설교본문으로 읽었습니다.
그때 십계명은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하는 신자의 삶의 구체적인 방법으로서 안식일 계명에 대해 언급하였습니다.
그러나 오늘 안식일 계명에 대해 반복해서 다시 한 번 더 강조하려고 합니다.
저는 여러분들과 함께 교회로 모이면서 고민을 한 것이 이 해외에서 한인교회가 과연 우리들에게 어떤 의미가 있는 것인가 하는 것입니다.
많은 한인교회들이 자신의 존재의 의미를 선교에 두고있습니다.
이 점에 있어서 우리 교회도 예외가 아닙니다.
저희들은 우리 교회의 선교적 존재 의미와 관련한 교회론을 숙고하였습니다.
대부분 해외의 한인교회들은 선교를 위해 현지교회와 파트너쉽의 관계를 갖습니다.
그러나 저희 꼬빌리시의 체코인들과 우리 한국인들은 사도들의 신앙고백을 따라 모든 민족의 교회는 하나의 교회(거룩한 공회)라는 고백에서 시작하였습니다.
진정한 코이노니아의 교회입니다.
함께 세례를 베풀고 함께 성만찬 식탁을 나누고있습니다.
교회당을 월세를 주고 받는 관계가 아니라 하나님의 집, 같은 하나님의 자녀들인 우리들의 집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선교활동보다 선교하는 체코교회의 비전과 변화를 제시하는 일을 우선하였습니다.
그
래서 유럽의 유럽교회들과 유럽의 한인교회들이 2년전(2001년) 스위스 제네바 존 녹스 국제 개혁센터에서 세계개혁교회연맹의
Mission in Unity 분과 주관으로 열린 재 유럽 한인교회와 유럽교회 컨퍼런스에서 우리 프라하 꼬빌리시 교회의 존재와
발자취를 주목하기 시작하였습니다.
유럽교회들은 우리 큰 교회들이 감히 생각 조차도 못한 일을 작은 체코교회와 체코의 소수 민족의 디아스포라들이 감당하고 있다고 놀라와 했습니다.
저는 선교를 위한 우리들의 노력은 세계교회와 유럽의 한인교회들에게 새로운 비전과 도전을 주는 바른 방향성을 가졌다고 믿고 있습니다.
저는 선교와 관련한 교회론과 더불어 목회적인 차원에서의 교회론에 대해 동시에 고민을 하고있습니다.
저희들은 신앙의 배경들이 매우 다양합니다.
교단이 다양합니다.
우리 교회는 장로교단, 성결교단, 감리교단, 순복음교단, 침례교단 그리고 카톨릭 신자들이 함께 모입니다.
보수적인 분들 진보적인 분들, 다양한 신학적 신앙양태의 스펙트럼이 있습니다.
신앙의 연륜도 천차만별입니다.
체코에 거주하는 목적도 매우 다양합니다.
작년에 주일 평균 회집 인원이 45-50명쯤 되었습니다.
작년에 떠나신 분들이 27분이고 새로 오신 분들이 21분이었습니다.
예배인원수의 절반이 바뀌었습니다.
우리교회는 한국의 교회들과는 물론이거니와 일반 해외 교회들과도 비교할 때 매우 특수한 상황 안에 있는 교회입니다.
이런 특수한 상황의 교회를 어떻게 목회할 것인지 신학교에서 가르친 적도 그리고 저는 배운 적도 없습니다.
이러한 목회의 경험을 서술한 참고서도 시중에서 찾아보기가 그리 쉽지않았습니다.
특
수한 상황 안에 있는 교회를 바르게 섬기 위해서 노심초사하며 조그마한 자료라도 모으고 해외 목회자들의 경험을 듣고 그것을 숙고하고
그리고 우리교회의 상황과 빗대어 생각도 하고 우리 교회를 방문하는 평신도들에게 많은 질문을 하면서 자신의 교회에 대한 평신도의
입장을 듣는 일들을 게을리하지 않고있습니다.
성경말씀 안에서 이러한 고민과 숙고를 통해 세워진 저의 목회의 방향을 몇 차례에 걸쳐 목회 서신을 발표하였고 그 내용을 간추려 교회의 신앙생활과 생활실천목표로 삼고있습니다.
그리고 그 숙고된 원칙들을 따라서 목회를 하려고 지금까지 노력하고있습니다.
그렇지만 목회적인 관점에서의 교회론에 대한 정립은 제게 여전히 많은 숙제가 남아 있습니다.
그
런데 이번에 몇 주간에 걸쳐 출애굽기의 십계명을 설교를 하면서 체코의 우리 한인교회의 특수한 상황 안에서 목회란 결국 교우들에게
하나님의 은혜를 깨우쳐주고 그 은혜에 응답하는 삶을 살도록 도와주는 것이 가장 우선되어야 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앞으로 이 부분에 대해 더 깊이 연구를 하여 목회적 차원의 교회론을 정립해 볼 생각입니다.
여기서 안식일을 지키는 것은 하나님의 은혜를 깨닫고 응답하는 신자의 삶의 종합입니다.
안식일을 지켜야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를 생각할 수 있는 시간이 있습니다.
8절에서 하나님은 안식일을 기억하여 거룩하게 지키라고 말씀하십니다.
지난번 설교에서 안식일 이라는 단어의 뿌리는 멈추라는 단어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은 우리들에게 멈추라! 쉬어라! 아무 일도 하지 말라! 하고 명령하십니다.
그 이유가 오늘 본문 11절에 기록되어있습니다.
이는 엿새 동안에 나 여호와가 하늘과 땅과 바다와 그 가운데 모든 것을 만들고 제 칠일에 쉬었음이라 그러므로 나 여호와가 안식일을 복되게 하여 그 날을 거룩하게 하였느니라
안식일 계명의 근거로 천지창조의 하나님의 일을 하나님은 거론하고있습니다.
다시 말씀드려 안식일은 천지창조의 하나님의 일을 기억하는 날입니다.
창세기 1장은 아주 감동적으로 하나님의 천지창조에 대해 묘사하고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인간을 만드시고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그 우주만물 가운데에 인간을 두셨습니다.
천지만물이 만들어지는 그때에 사람은 아직 존재하지 않았습니다.
인간은 일하지 않았고 하나님이 일하셨습니다.
우리가 스스로 자기 자신에게 생명을 불어 넣어주지 못합니다.
인공호흡기를 폐에 넣고 인간의 병든 신체부위를 바꾸는 기술이 발달해도 인간은 생명을 새롭게 만들 수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의 필요를 준비하시고 그리고 우리를 살게 하십니다.
하나님의 창조를 믿지않는 사람 그 누구도 생명을 유지하기 위해 자신의 모든 필요를 스스로 충족하지 못합니다.
간략하게 묘사된 오늘 말씀의 천지창조는 이 세상을 보존하며 우리를 그 곳에서 살게 하시는 하나님의 일과 충만하신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에 대한 설명입니다.
안식일은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로 충만한 하나님의 일을 생각하는 날입니다.
그 날을 우리에게 명령하신 이유는 우리의 참된 쉼을 위해서 입니다.
히브리 기자는 4장에서 우리는 그의 안식에 들어갈 약속이 남아있다(히 4:1)고 하였습니다.
히브리 기자에게 안식은 영생 구원의 미래의 소망입니다.
그래서 믿음이 없이는 이 안식에 참여하지 못한다고 하였습니다.
안식에 들어갈 자들이 남아 있거니와 복음 전함을 먼저 받은 자들은 순종치 아니함을 인하여 들어가지 못하였으므로 (히 4:6)
그래서 히브리 기자는 11절에서 우리들에게 안식에 들어가기를 힘쓰라고 권면하고 있습니다.
이
미 그의 안식에 들어간 자는 하나님이 자기 일을 쉬심과 같이 자기 일을 쉬느니라 그러므로 우리가 저 안식에 들어가기를 힘쓸지니
이는 누구든지 저 순종치 아니하는 본에 빠지지 않게 하려 함이라 하나님의 말씀은 살았고 운동력이 있어 좌우에 날선 어떤 검보다도
예리하여 혼과 영과 및 관절과 골수를 찔러 쪼개기까지 하며 또 마음의 생각과 뜻을 감찰하나니 지으신 것이 하나라도 그 앞에
나타나지 않음이 없고 오직 만물이 우리를 상관하시는 자의 눈앞에 벌거벗은 것 같이 드러나느니라 (히 4:10-13)
십계명은 출애굽기와 동시에 신명기에서도 나옵니다.
신명기의 안식일 계명의 이유는 출애굽기와 매우 다릅니다.
신명기 5장 15절에 나옵니다.
너는 기억하라 네가 애굽 땅에서 종이 되었더니 너의 하나님 여호와가 강한 손과 편 팔로 너를 거기서 인도하여 내었나니 그러므로 너의 하나님 여호와가 너를 명하여 안식일을 지키라 하느니라
출애굽기의 안식일은 천지창조의 하나님의 일과 관련이 있는 반면에 신명기의 안식일은 출애굽의 구원의 하나님의 일에 근거하고 있습니다.
다시 말씀드려 성서의 안식일은 창조와 구원의 하나님의 일을 기억하는 날입니다.
이 세상은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로 가득찬 하나님의 창조로 이루어졌습니다.
동시에 이 세상은 하나님을 배반하고 하나님의 사랑을 거부하여 고난과 고통으로 가득 차있습니다.
그래서 세상은 하나님의 구원이 필요합니다.
이것이 구약의 이스라엘 민족들의 모습이며 동시에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 안에 살면서도 늘 그 하나님을 배반하고 그의 사랑과 은혜를 거부하는 우리들의 일그러진 자화상입니다.
애굽 땅의 노예들이 하나님의 권능의 손으로 구원 받듯이 세상의 맘몬 신과 온갖 유혹과 욕망의 굴레를 벗어나지 못하는 우리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의 능력으로 존재의 의미를 되찾게 되었습니다.
구원받은 이스라엘 민족들이 깨달은 바가 무엇이었습니까?
천지를 지으신 창조자 하나님이 권능의 손과 팔을 자신들에게 펴신 것을 깨달았습니다.
그래서 그들에게 천지창조의 설명은 단지 이 세상이 어떻게 생겨났는가를 가르치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천지를 지으신 전지전능하신 하나님의 권능의 손과 팔을 그들은 자신들의 구원의 역사 속에서 살아 움직이는 체험을 하였던 것입니다.
이것을 체험한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구원의 날을 기억하는 날로서 안식을 지킬 것을 하나님은 명령하셨습니다.
이 세상은 하나님의 것이며 자신의 사랑의 대상이 바로 이 세상임을 하나님은 이스라엘 민족들에게 깨우쳐 주셨습니다.
그리고 안식을 지킴으로서 세상을 향한 하나님의 사랑을 이 세상 속에서 계속해서 드러내 보이시길 원하고 계신 것입니다.
그래서 안식일은 하나님의 창조와 구원의 하나님의 일을 기억하는 날입니다.
우리는 매일 우리 자신의 일에 몰두하며 살아갑니다.
그래서 때론 자신이 잘한 일을 자랑스럽게 생각하고 또 실수한 일에 부끄러움을 느낍니다.
그러나 안식일은 하루를 온전히 하나님의 일을 기억하는 날입니다.
우리는 일주일의 일곱번째 날이 아니라 첫번째 날을 거룩하게 구분하고있습니다.
이것은 초대교회시대부터 내려오는 전통입니다.
이 날을 주의 날(주일)이라고 불렀습니다.
그 이유는 이 날이 그리스도의 부활을 기억하는 날이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는 세상의 어린이 처럼 어머니의 태에서 태어났습니다.
십자가에서 흘리신 유월절 어린양 그리스도의 보혈로 죄 용서가 이루어졌습니다.
그리스도의 부활은 제자들에게 나타났고 그들은 부활의 증인들이 되었습니다.
그리스도의 이 사건은 분명히 이 세상은 하나님의 것이며 하나님의 사랑의 대상임을 보여주었습니다.
그리스도의 이 사건은 하나님은 구원의 하나님이시며 우리를 죄와 사망의 권세로부터 구해주신 분이심을 분명히 보여주었습니다.
그래서 부활을 기억하는 주의 날이 하나님의 은혜를 기억하는 날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이 날은 안식일과 다르지않습니다
오히려 이 주님의 날 주일은 안식일의 의미를 완성시키는 날입니다.
안식일은 하나님께서 우리 믿는 이들에게 허락하신 최고의 선물입니다.
선물이면서 동시에 하나님의 명령입니다.
이에 대해 마가복음 2장 27절에 나오는 예수님의 표현에 따르면
안식일은 사람을 위하여 있는 것이요 사람이 안식일을 위하여 있는 것이 아니니(막 2:27)
안식일은 우리 믿는이들을 위해 있습니다.
우리 신자들이 이 날을 지키면 안식일 즉 주의 날이 우리 신자들을 지켜줍니다.
주의 날은 우리에게 주신 하나님의 선물입니다.
이 선물을 소중하게 여기시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진심으로 원합니다.
마가복음 3장 1-5절에 나오는 예수님의 안식일 논쟁에 관한 이야기는 안식일이 하나님의 선물이란 의미를 우리들이 분명히 이해하도록 돕습니다.
예
수께서 다시 회당에 들어가시니 한편 손 마른 사람이 거기 있는지라 사람들이 예수를 송사하려 하여 안식일에 그 사람을 고치시는가
엿보거늘 예수께서 손 마른 사람에게 이르시되 한 가운데 일어서라 하시고 저희에게 이르시되 안식일에 선을 행하는 것과 악을 행하는
것, 생명을 구하는 것과 죽이는 것, 어느 것이 옳으냐 하시니 저희가 잠잠하거늘 저희 마음의 완악함을 근심하사 노하심으로 저희를
둘러 보시고 그 사람에게 이르시되 네 손을 내밀라 하시니 그가 내밀매 그 손이 회복되었더라 (막 3:1-5)
이 말씀에서 저희들은 악의와 증오로 안식일을 지키는 사람들의 모습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그들은 세상에서 악한 사람들이 아니었습니다.
세계의 평화와 질서를 위협하는 소위 악의 축에 속한 부류도 아니었습니다.
그들은 안식일 율법을 엄격히 지켜보려고 노력하는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들은 제 칠일은 너의 하나님 여호와의 안식일인즉 … 아무 일도 하지 말라는 율법을 문자 그대로 받아 안식일에 금할 일의 세심한 부분까지 토론을 하는 사람들이었습니다.
불행히도 그들에게 안식일은 하나님의 선물이 아니라 하나님의 짐이 되었습니다.
그들의 눈은 오로지 안식일에 금지된 일만 보았지 하나님의 은총의 일을 보지 못했습니다.
사랑하고 존경하는 교우여러분,
저와 여러분들은 안식일 즉 주의 날을 하나님의 선물로 받아들이고 있습니까?
아니면 이 날에 보기 싫은 사람들과 함께 자리를 같이해야 되는 고역의 날입니까?
나 같은 죄인도 용납하시고 받아주신 우리 주 여호와 하나님의 구속의 은총의 기쁨으로 이날을 맞이하십니까?
아니면 회당을 찾아온 예수를 바라보는 바리새인들처럼 미움과 악의와 증오와 질투로 이날을 맞이하십니까?
하나님의 거룩한 날 주의 날을 하나님의 선물로 여기며 그 날을 지킨다는 것은 나를 향한 하나님의 은혜의 일을 기억하며 우리들의 인간관계의 미움과 악의와 증오와 질투를 넘어가는 것을 말합니다.
오늘 본문 10절의 말씀을 주목해 보시기 바랍니다.
제 칠일은 너의 하나님 여호와의 안식일인즉 너나 네 아들이나 네 딸이나 네 남종이나 네 여종이나 네 육축이나 네 문안에 유하는 객이라도 아무 일도 하지 말라
이 날은 누구에게도 심지어 다른 피조물에게도 차별이 있어서는 안됩니다.
이 날은 하나님의 은혜의 일들을 모두 함께 기억해야함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잃었던 아들을 찾은 아버지는 성대한 잔치를 벌립니다.
그 아들 혼자만이 먹고 마실 잔치가 아니라 온 동네 모든 사람들이 함께 즐길 잔치였습니다.
이것이 아버지의 마음입니다.
한 주일동안 세상에 휩쓸려 세상과 더불어 살아가지만 하나님의 은혜를 기억하고 주의 날에 아버지의 집으로 돌아오는 우리들을 우리 아버지 하나님께서 어떻게 맞이하시겠습니까?
안식일 주의 날은 그냥 놀며 쉬는 날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용납하시고 우리의 무거운 삶의 문제를 해결해 주시는 날입니다.
우리의 죄가 용서되고, 마음과 육신의 질병이 치유되고, 삶의 문제가 해결되며 우리의 근심으로부터 마음이 놓이는 날입니다.
사랑하고 존경하는 교우여러분,
저와 여러분이 참되게 안식일 지키고, 안식일이 우리의 6일간의 삶을 지키는 은혜의 체험이 있는 우리들의 생이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기원합니다. (아멘)